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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2중국적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만 65세가 되면 누구나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어서 이민자들에게 한국 국적을 회복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을 믿는 모든 크리스챤들은 이중국적자인 것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 세상의 나라에 살면서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에도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20)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과 저의 국적이 어디에 있다고 합니까?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자각하고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기도인가를 깨달어야 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시민권이 없다면 이 기도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럴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나리이 임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주기도문의 핵심입니다. 이 기도가 주기도문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보십시오.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전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오셨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하셨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기 사역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 구한 것이 많은 중에도 무엇보다도 먼저 구할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성경에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다.
마태복음에는 천국이라는 단어가 49번이 나옵니다. 마태는 ‘하나님나라’라는 이름보다 ‘천국’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이 처음 기록될 때에 대상이 유대인을 위하여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붙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에 ‘하늘’이라고 하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헬라인을 위한 성경이기 때문에 유대인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조심해서 부를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라고 바로 번역을 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16번, 누가복음에는 38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서에서 백여 번 가까이 하나님 나라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나라는 그만큼 성경 전체의 주제가 되고 또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이 되고 주기도문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국 만주를 방문하여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산과 들판을 돌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잃어버린 영토에 대한 아쉬움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조선 자치국이기에 거리거리마다 한글로 상호가 적혀 있고, 절반 가량 사람이 조선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의 통치는 중국정부에 다스려지기에 만주는 중국 땅입니다.
우리는 사회정치 시간에 국가의 3대 요소에 대해 배웠습니다. 국가의 3요소는 국토와 국민과 주권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반도라는 영토가 있고, 그 땅에는 조선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주권이 없었습니다.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植民地)였습니다. 백성의 주권이 상실된 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란 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곳,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그곳이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면 천국이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죽어서 가는 곳입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그 천국을 생각해보십시오. 천국의 그림을 한번 그려보십시오. 주께서 예비하신 황금보석으로 꾸민 집을 그려보십시오. 우리는 죽어서 그 황금 보석으로 꾸민 거리를 거닐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생각을 하면 신나지 않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황금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까? 사실 세상사람에게 있어서 황금은 신입니다. 돈은 맘몬, 하나님입니다. 돈에 의해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국에서 황금 같은 길을 바로 깔아뭉개면서 걸어 다니게 될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신처럼 하나님처럼 받드는 황금을 발로 뭉개면서 걸어 다닙니다.
여러분, 얼마나 신나고 기분이 좋습니까? 신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황금은 아스팔트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우리 성도는 황금을 쫓아다니며 살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 시민권자에게는 황금(맘몬)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은 천국 시민권자로서의 수치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나타나는 찬란한 천국을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찬란한 천국, 아름다운 보배 집을 믿습니다. 우리를 위해 예비하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가장 중요한 뜻은 보석집이나 황금 길이나 열 두 진주 문에 있지 않습니다. 천국의 가장 중요한 것은 천국의 가장 중요한 것은 천국의 왕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 통치입니다. 주권입니다.
조국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권을 가진 나라로,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 의해 통치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미국대통령 죠 바이든에 의해 통치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주인이 되시어 통치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지옥을 생각하면 어떤 것이 생각납니까? 펄펄 끊는 유황불을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죽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연상됩니다. 성경이 또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황불이, 그 뜨거운 불이 지옥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 뜨거운 불 가운데서도 천국을 경험한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우상에게 절하라는 명령에 대해 우상숭배를 거절했던 세 친구들은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 불 속에서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곳이 지옥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옥이 지옥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지옥의 참혹함을 친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를 갈아야 하고 슬피 울어야 한다”
그 예를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호의호식하던 부자도 죽었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때 늦은 외침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왜그렇느냐?”
“저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울을 묻혀서 내 혀끝에 젖히어 달라”
지옥에 있는 부자는 간청합니다. 그렇게 해주었습니까? 어떻게 합니까? “안돼”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지옥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에 악인이나 선인에게 차별 없이 빛을 주시고 비를 주십니다. 선인의 밭에도 악인의 밭에도 구별 없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기회를 똑같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자비로 함께 하셨습니다. 악인들도 함께 사랑하시고 그들이 멸망 당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지옥에서는 하나님의 자비가,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졌습니다. 어느 정도 끊어졌느냐 하면 단 한 방울의 물도 주지 않을 만큼 자비가 끊어진 곳이 지옥입니다. 하나님과 영영히 끊어진 것보다 무서운 저주는 없습니다. 비록 뜨거운 풀무 불 속에 있어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주님과 함께 있으면 주님의 다스림과 함께 있으면 그곳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서 살고 있습니까? 지옥 같은 상황이 지옥처럼 여겨져서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지옥 같은 상황이어서 힘들고 어렵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순교하기 직전에 믿음의 아들이요 제자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데마라는 사람을 언급합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딤후 4:10)
데마가 세상 나라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데마는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데마는 상당기간 동안 바울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복음을 위하여 애쓰며 충성했던 평신도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따라가기를 꺼리는 로마 감옥에까지 바울을 따라 갔으며 충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데마의 마음에는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치다 보니 막상 현실적으로 손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살면 무슨 큰 떡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날마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어려움과 가난만은 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하루 아침에 딴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특별히 사도 바울이 얼마나 권면하면서 만류했겠습니까? 그러나 냉정하게 뿌리치고 데살로니가로 떠나가버렸습니다.
데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나라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행복을 추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잘못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겠습니까? 바로 여러분의 심령에서 시작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누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까? 자기의 죄인임을 자각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간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으로만 살 수 있다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기뻐하고 죄를 멀리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추구하며 누리는 것입니다.
성결교에서 아주 유명한 이성봉이라는 목사님을 계십니다. 그 목사님은 6.25동안 무렵 전라도 목표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시다가 공산당에 붙잡혔습니다. 공산당이 붙잡아서 고문을 하고 조롱을 합니다.
어느 날, 이 목사님을 밖으로 끌어내어 고문을 하고 조롱을 했습니다.
“어이, 영감! 천국을 보여봐!”
이 목사님에게 발길로 걷어찼습니다.
“네, 천국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 죽어서 말고 지금 보여 보란 말이야.”
“네, 지금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눈앞에 당장 보여 보라는 공산 당원에게 대답했습니다.
“내 마음이 천국이요.”
“천국 본점이야 내 소관이 아니니까 보여 드릴 수 없고 지점이야 내가 보여드릴 수 있는데 내 마음이 천국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고문 받는 사람이 고문하는 사람 앞에서 “내 마음이 천국이요”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초대교회 시에 기독교박해가 극에 달했을 때에 기독교인들을 화형이나 십자가형이나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신하가 황제에게 보고하기를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이상합니다. 기독교도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는데 얼굴이 찌그러진 인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결같이 얼굴이 평온합니다.”
어떻게 되어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속에 계셨기에 마지막 순간에도 주님을 부르며 죽어갔기에 그들의 마음은 평온했고, 얼굴을 부드러웠습니다.
사도바울은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과 유대의 모든 높은 사람들 앞에서 죄수로서 재판을 받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이여, 여러분 모두는 내가 사슬에 매인 것 외에는 나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가정에서 부부는 하나여야 하지만 얼마나 다른지 모릅니다. 대화 방식에서도 남녀의 차이가 있습니다. 대체로 남자는 ‘백 마디 말을 한마디로 줄여서’ 말하는 반면에 여자는 ‘한마디 말을 백 마디로 늘여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생활에서는 얼마나 다른지, 하나하나가 걸림돌이며,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의지를 갖고 하지만 한계를 드러냅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의지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때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나라이 임하옵소서”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네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고, 용서가 안되면 이 기도를 하십시오.
내가 주님의 다스림을 받고, 아내가 다스림을 받고, 자녀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다름과 틀림을 뛰어넘어서 화해와 용서를 이루는 천국 같은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나의 마음에 임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이 우리 가정에 일어나고,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공동체에 드러난다면 바로 천국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 속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나라이 임하시오며”
“주여 다스려 주옵소서”
기도하면서 주님의 도우심 가운데 주님의 주권을 드러내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여러분과 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찬송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438, 4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