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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호교론
유스티누스
로마인들이여, 여러분의 도시에서 우르비쿠스 총독* 아래에서 어제와 그저께 일어난 일들과, 여러분의 통치자들이 어디서나 자행하는 비이성적인 일들은, 저로 하여금 여러분에게 이 글을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1,1]
☕ 무죄한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유스티누스를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했다.
㈜ : *우르비쿠스는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통치 시기에 로마의 총독이었다.
몹시 방탕한 생활을 하는 남편과 사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도 전에는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알게 된 뒤 그 여자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녀는 그 가르침을 남편에게 전하고, 절제하며 바른 이성에 따라 살지 않는 이들이 영원한 불 속에서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면서 남편도 절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설득하였습니다.
[2,1-2]
그러나 이 오입쟁이 남편은, 아내가 예전에 술에 자주 취하고 온갖 악습을 즐기면서 종이나 일꾼들과 거리낌 없이 저지르던 경솔한 행실을 그만두었으며 그에게도 그 모든 것을 중단하게 하려는 것을 기뻐하기는커녕, 자신의 뜻을 거슬러 집을 나간 그 여자가 그리스도인이라며 고발하였습니다.
황제여, 그 여자는 당신께 청원서를 제출하여, 먼저 자신의 집안일들을 정리하고 그다음에 고발에 맞서 항변하게 허락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 여자의 전 남편은 이제 그 여자에 맞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자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사람을 공격 했습니다. 그는 우르비쿠스가 단죄한 사람으로 그 여자에게 그리스도교 교리를 가르친 스승이었습니다. 그 남편은 프톨레마이오스를 체포한 자기 친구인 백인대장에게 프톨레마이오스를 데려다가 그에게 단 하나, 곧 그가 그리스도인인지만 묻게 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참된 것을 사랑했고, 속임수를 쓰거나 거짓된 마음을 품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백인대장은 그를 감옥에 가두었고 오랜 기간 감옥에 갇히는 벌을 받게 했습니다. 그가 재판을 받기 위해 우르비쿠스 앞으로 끌려갔을 때에도, 우르비쿠스는 오직 그가 그리스도인인지만 물었습니다. [2,7-12]
우르비쿠스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을 때, 역시 그리스도인인 루키우스라는 이가 이러한 판결이 매우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여 우르비쿠스에게 말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간음을 하지도, 불륜을 범하지도, 살인을 하지도, 강도질을 하지도, 훔치지도, 어떤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고 다만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 불린다고 고백한 이 사람을 단죄한 것입니까? 우르비쿠스여, 당신은 피우스 황제에 게나 황제의 아들인 철학자에게나 신성한 원로원에게나 어울리지 않는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르비쿠스는 다만 루키우스에게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당신도 이자와 같은 부류 사람인 것 같군.” 루키우스가 “그렇습니다” 하고 답하자, 우르비쿠스는 그도 데려가 처형하라고 명했습니다. [2,15-18]
☕ 프톨레마이오스와 루키우스는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우리에게 “당신들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어 당장 하느님한테 가서, 우리를 귀찮게 하지 마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와 우리가 조사를 받을 때에 두려움 없이 고백하는 이유를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계획 없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하여 만드셨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앞에서, 그분은 당신의 속성들을 본받는 이들은 흐뭇해하시고, 말이나 행동에서 악을 택하는 이들은 못마땅히 여기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 모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아무도 태어나지 않고 거룩한 가르침을 배울 이도 아무도 없으며 나아가 인류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터인데, 그 일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한 그 탓도 우리에게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될 것입니다. [4,1-3]
☕ 자살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거스리는 죄다.
우리는 조사를 받게 되면 우리의 신앙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악도 행하지 않았다고 자각하고 있고, 모든 일에서 진리를 말하지 않는 것은 불경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4,4]
만물의 아버지, 태어남을 겪지 않으신 분께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없습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그보다 앞서 있던 누군가가 그 이름을 붙였음을 전제합니다. [6,1]
☕ 하느님은 이름으로 가두어 놓을 수 없는 존재다.
‘아버지’,‘하느님’,‘창조주’,‘주님’,‘주인’은 이름이 아니라, 그분의 은혜와 그분의 업적에 대한 명칭입니다. 홀로 고유하게 ‘아들’이라고 불리기에 마땅한 하느님의 아드님, 아버지와 함께 존재하시며 태초에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질서를 부여하시던 때에 만물에 앞서 나신 로고스는 그리스도라고 불립니다. 그분은 기름부음을 받으셨고,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만물에 질서를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6,2-3]
우리는 스토아 학파와 달리 운명에 따라 어떤 행위를 하거나 일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각자 자신의 선택에 따라 올바로 행하거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7,3]
하느님께서 태초에 천사들과 인류를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 창조하셨으므로, 마땅히 그들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하여 영원한 불 속에서 벌을 받을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본성적으로 악과 덕의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스스로 덕과 악을 향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아무도 칭찬을 받을 수 없을것입니다. [7,5-6]
☕ 죄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과다.
악령들은 언제나,말씀에 따라 살며 악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이는 누구나 미움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악령들이, 씨앗과 같은 말씀의 한 부분만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 전체, 곧 그리스도에 관한 앎과 관조에 따라 사는 이들이 미움을 받도록 더욱 노력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8,2-3]
우리의 가르침은 인간들의 그 어떤 가르침보다 뛰어납니다. 우리를 위해 지상에 나타나신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로고스, 곧 로고스와 육체와 영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10,1]
☕ 말씀 자체이신 로고스는 인간의 어떤 가르침보다 뛰어나다.
철학자들과 입법자들이 발견하고 훌륭하게 표현한 모든 것은 그들이 말씀의 한 부분을 발견하고 관조하여 얻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로고스, 곧 그리스도 전체를 다 알지는 못했기에 자주 모순되는 것들을 말했습니다.[10,2-3]
☕ 철학자들의 가르침은 로고스의 한 부분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 본성을 취하시기 전에 살았던 이들은 인간 이성에 따라 생각하고 증명하려다 인간들의 편협함에 밉보이면, 불경하고 지나치게 호기심이 많다는 이유로 법정에 끌려갔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이 면에서 열렬했던 소크라테스는 우리와 똑같은 죄목으로 고발당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정부가 권장하는 신들을 거부하고 새로운 영들을 들여왔다고 떠들었습니다. [10,4-5]
☕ 지적인 호기심은 죽음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에게는 그의 가르침을 위하여 죽을 만큼 그를 믿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도 부분적으로는 알았던 그리스도는(그분은 만물 안에 계시는 말씀이셨고 지금도 그러하시며, 장차 일어날 일들을 예언자들을 통하여 예고하셨으며, 우리와 같은 본성과 감정을 취하셨을 때는 몸소 예고하시고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철학자들과 학자들만 그분을 믿은 것이 아니라 기술자들과 무지한 이들도 그분을 믿었고, 이들은 하나같이 명 예와 두려움과 죽음을 아무 것도 아닌 듯이 여겼습니다. 실로 이는 인간 이성이 이루어 낸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길 없는 아버지의 힘이 이루시는 일입니다. [10,8]
☕ 그리스도는 하느님이기에 그를 위하여 사람들은 목숨을 버렸다.
우리는, 겉보기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피하고 불편하고 부조리하게 여겨지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행복을 얻는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합니다. 악습은 불멸의 것들을 모방하여 자신의 행위들을 덕에 속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덮어 가리고(실제로 악습은 불멸하는 것을 그 무엇 하나 지니고 있지 않으며 만들어낼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악한 습성들은 덕의 것인양 굴면서 사람들 가운데 땅에 매여 있는 이들을 사로잡습니다. [11,6-7]
☕ 악은 화려함으로 위장하고 인간을 유혹한다.
저도 플라톤의 가르침을 좋아했고 그리스도인들이 비방을 받는 것을 들었지만, 그들이 죽음 앞에서도 그리고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모든 것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는 이들이 악하거나 쾌락에 대한 욕망 속에서 살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2,1]
☕ 유스티누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욕정적이거나 무절제하거나 인육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러한 즐거움을 잃게 될 죽음을 바라겠습니까? 오히려 지금의 삶을 계속하고 싶어 통치자들의 감시를 피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죽 음이라는 징벌이 따르는데 스스로 자기가 죄 있다고 고백하겠습니까? [12,2]
☕ 그리스도인은 성체성사로 인하여 인육을 먹는 집단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악령들은 악한 사람들을 통해 이러한 일도 이루어지게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 대한 거짓된 고발로 어떤 이들을 죽게 만들었고, 어린아이들과 약한 여자들이 포함된 우리의 종들을 고문하고, 끔찍한 고문을 통해 그들이 짓지도 않은 범죄를 공공연히 저질렀다고 자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범죄들엔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짓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낳음을 받지 않으신 형언할 길 없는 하느님이 우리의 생각과 행위들의 증인이십니다. [12,3-4]
☕ 박해의 뒤에는 악마의 꼬드김이 있다.
제발 누가 지금이라도 높은 단상에 올라, 비극 배우와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면 좋겠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는 짓을 무죄한 이들에게 덮어씌우며 여러분과 여러분 신들이 한짓을 그것과 전혀 상관없는 이들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깨달으십시오.” [12,7-8]
☕ 유스티누스는 죄없는 그리스도인을 죽이는 것에 대하여 부끄러워하라고 외친다.
저는 제가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지기 위하여 힘써 노력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플라톤의 가르침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비슷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 곧 스토아학파와 시인들과 저자들의 가르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3,2]
우리는 태어남을 겪지 않으셨으며 형언할 길 없는 하느님에게서 나신 로고스를 하느님 다음으로 경배하고 사랑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통에 참여하심으로써 우리를 치유하시고자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시기까지 하셨기 때문입니다. [13,4]
선과 악을 아는 능력은 인간의 본성에 속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악한 행위들을 했다고 우리를 단죄하고, 그러면서도 그러한 짓들을 범하는 신들을 좋아하며, 지금도 사람들에게 그와 비슷한 행동들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마치 그런 일들을 저지르는사람들인 듯이 사형에 처하거나 감옥에 가두거나 다른 어떤 벌로 단죄함으로써, 그들은 그들 자신을 단죄합니다. [14,2]
☕ 위정자들은 그리스도교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였다.
여러분이 공정하게 숙고해 보시면, 우리의 가르침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떤 인간적 지혜보다 더 숭고한 것임을 아실 것입니다. [15,3]
첫댓글 악은 화려함으로 위장하고 인간을 유혹한다.
"그분은 기름부음을 받으셨고,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만물에 질서를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과 악을 아는 능력은 인간의 본성에 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