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수폭포를 구경한 뒤 상파울루로 가는 버스를 탔다.
상파울루까지 14시간이 걸렸다.
오랫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보니 이제 이 정도의 버스 여행은 고된 일이 아닌 것이 됐다.
상파울루는 브라질의 항구도시이자 경제 수도다.
하지만 의외로 전통시장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결국 현지인을 수소문해 상파울루중앙시장(Mercado Municipal)을 찾았다.
택시에서 내려 시장 건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전통시장이라고 해서 길거리 노점상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시장 건물부터 현대적이었다.
아니, 대형 박물관을 연상시킬 정도로 시장 건물이 웅장했다.
■ 불편과 무질서는 전통이 아니다
시장은 옛 시가지의 중심부에 위치했다.
지난 1932년 군 훈련소로 지어졌는데, 이후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2004년 내부를 완전히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시장에 들어가니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먼저 눈에 띄었다.
농부들이 농작물을 수확하는 장면이었다.
시장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장의 아치도 눈길을 끌었다.
아치형 천장 아래로 수많은 점포가 통로를 따라 줄을 지었다.
천장이 높아서 그런지 음식점과 점포가 많은 데도 내부 공기가 전혀 탁하지 않았다.
점포도 깨끗했다.
중앙시장은 다른 시장과 많이 달랐다.
백화점처럼 에스컬레이터와 정보센터를 갖추고 있었다.
센터에는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안내했다.
통로 폭이 4∼5m로 넓었다.
그런데 점포와 통로 사이에 10㎝가량의 턱이 보였다.
이른바 영업선이었다.
우리나라 전통시장에서도 영업선을 더러 그려놓고 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만약 이곳처럼 약간 높은 단을 설치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로 중간에는 고객들이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둥근 식탁을 놓아 두었다.
실제로 식탁마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중에는 상파울루중앙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메뉴인 '볼로냐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이 많았다.
볼로냐 샌드위치는 한끼 식사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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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아크릴 상자에 색상별로 진열한 브라질 전통과자. |
■ 색색의 유니폼과 포장 종이 '눈길'
1층은 식재료가 주류를 이뤘다.
과일, 채소, 와인, 치즈, 초콜릿, 소시지, 고기, 양념류 등을 팔았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은 역시 과일상점이었다.
사과, 배, 딸기는 물론이고 생전 처음 보는 열대과일도 많았다.
그런데 과일은 하나같이 색종이로 포장됐다.
붉은 과일은 초록색 종이로, 노란 과일은 보라색 종이로 싸였다.
이 같은 보색 대비 덕분에 과일 색이 더 선명했다.
각각의 색종이에 포장된 과일은 다시 탑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
과일처럼 점원들도 색색의 유니폼을 입었다.
간판이 초록색이면 초록색 유니폼과 모자, 앞치마를 걸쳤다.
그런 모습이 흥미로웠다.
색상 통일은 신뢰감을 준다.
2층은 식당가였다. 좌석이 500석을 웃돌았는데, 백화점의 푸드코너 같았다.
가격도 싸고 음식 종류도 많았다.
음식점마다 흥겨운 남미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고객도 있었다.
■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향신료
브라질 사람들은 단것을 좋아해 과자를 즐겨 먹는다.
전통 과자도 인기가 높아 한번에 대량으로 사서 두고두고 먹는다고 한다.
상파울루중앙시장에도 브라질 전통과자 가게가 있었다.
과자를 주로 투명 아크릴 상자에 담았는데, 과자 색상별로 진열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향신료 매장도 시선을 끌었다.
작은 봉지에 담긴 향신료는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그중에는 유리병에 담은 올리브유도 있었다.
매장이 좁으니 안에 둘 물건도 일부러 처마에 매달았을텐데,
오히려 그런 풍경이 시장의 독특한 매력을 발산했다.
브라질을 여행할 때 소매치기를 조심하고, 밤에 돌아다니지 말고, 짐은 최대한 가볍게 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실제로 브라질은 치안이 위험한 나라로 손꼽힌다.
필자도 캐러멜 소스 테러(?)를 당해 옷에 온통 갈색 소스가 달라붙어 한동안 애를 먹었다.
그러나 상파울루중앙시장은 달랐다.
남미의 어느 시장보다도 질서가 잘 잡혔고 내부가 깨끗했다.
상인들은 자신이 파는 제품에 대해 전문 지식으로 고객을 응대하기도 했다.
시장은 변한다.
불편과 무질서는 더 이상 전통의 다른 표현이 아니다.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전통을 지킬 수도 없다.
진정한 전통시장은 변화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lmy730@hanmail.net
이랑주
이랑주VMD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