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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다해 11월27일 (녹)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수원] 증언할 기회 -
수원교구 오산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제1독서 : 다니 5, 1 - 6. 13 - 14. - 16 - 17. 23 - 28
† 복음 : 루카 21, 12 - 19
★ 바빌론의 마지막 임금인 벨사차르가 하느님을 모독하는 잔치를 벌이던
가운데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이에 대하여 다니엘이 풀이하는데, 하늘의
참임금이신 하느님께서 바빌론을 멸망시키기로 하셨다는 것이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파괴될 때에 당신의 제자들이 박해를 당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서조차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를
잘 이겨 내어 참생명을 얻으라고 권고하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구약 성경』의 ‘시편’ 번역, 많은 성가 가사와 저서 등으로 한국 교회에
영적으로 깊은 영향을 끼친 최민순 요한 신부(1912-1975년)의 ‘고인의
기도’라는 시가 있습니다.
오늘 나의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가도록 힘을 주소서./ 내가 가는 길에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넓은 길 편편한 길 그런 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좁고
험한 길이라도 주와 함께 가도록 더욱 깊은 믿음을 주소서.
낮이 있으면 밤이 있습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입니다.
기쁠 때가 있으면 슬플 때도 있습니다. 밤이 없고 낮만 있는 하루, 내리막이
없고 오르막만 있는 길, 슬픔이 없거나 기쁨이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시에 담긴 기도의 내용은 이러한 삶의 이치를 잘 반영한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바라기보다 그 산을 넘을 수 있는 힘을,
걸림돌이 사라지기보다 그것을 디딤돌로 삼는 지혜를, 좁고 험한 길을
피하기보다 그 길을 주님과 함께 걸을 수 있는 믿음을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위기의 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그때가 오면 당신을 믿는 공동체가 세상의
권력에게 박해받게 되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서조차
미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러한 위기의 때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위기의 때를 통하여 참된 힘과 지혜와 믿음을 기르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장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인내가 생명을 얻습니다.
새벽 묵상 글에 종종 써서 아시겠지만, 저는 운동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런데 꼭 배우고는 싶었지만, 신부가 되기 전까지 전혀 배우지 못한
운동이 하나 있었지요. 바로 수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영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남들은 자유형을
넘어서 접형까지 능수능란하게 하는데, 제가 하는 수영은 주로
개헤엄이었으니 얼마나 부끄러웠겠습니까? 더군다나 신부가 되니
더 부끄럽습니다. 수영장에 가서 배우자니 사람들의 이목이 있을 것
같았고, 또 누가 서른 넘어서 수영을 배울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러나 본당의 학생들 여름캠프에 대비해서라도 꼭 수영을 배우겠다는
다짐으로 동네 수영장에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스스로 수영을 배우기에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글쎄 강습을 받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어린 사람이 바로 저였으며, 제가 신부인 것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때 수영을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
역시 부끄러워하면서 주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약간의 용기를
내어 배웠기에 지금은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것이지요.
종종 “참 좋을 때다. 내가 조금만 어렸었어도....”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자신이 지금 행할 수 없는 이유를 바로 나이라는 한계에 두고
있는 것이지요. 어쩌면 할 수 없는 이유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계는 그저 한계일 뿐, 중요한 것은 ‘지금이 가장 빠른 때다.’
라는 생각으로 지금 이 순간 당장 실천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굳이 결과에
대해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고, 자신의 한계 많음으로 인해 슬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망설임 없이 용기 있게 행하는 자세가 가장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용기를 갖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실 수 있도록 당신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박해의 순간에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말라고, 또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박해를 당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님을 이야기하십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인내로써 생명을
얻는 것’으로, 어떠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외로움을 느낄 정도로 한계에 봉착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진정한 마지막은 주님의 사랑에
의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순간입니다. 따라서
한계와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사랑에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의 자그마한 용기입니다. 이 인내가
생명을 얻습니다.
믿음은 오로지 사람들이 믿기 때문에 존재한다. 기적이, 설명이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처럼(파울로 코엘료).
우리에게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내 몫의 반성만 합시다. 남의 몫까지 반성하기에는 너무나 힘듭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서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친구라고 믿었는데, 어떻게 자기에게
사기를 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친구를 무조건 믿은 자신이 어리석다면서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친구와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매일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다가 초췌해 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이 사기를 당한 후, 돈도 잃고 마음도 잃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나쁜 놈은 그냥 나쁜 놈이라고 놔둬야 하는데, 그
친구의 몫까지 반성하면서 살았기에 이렇게 힘들었음을 알았습니다.
이때부터 친구에 관한 부분에 대해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쓰다보니, 이
친구가 얼마나 급했으면 이러한 행동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도 생깁니다.
그리고 이 친구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면서
지금이라는 순간에 더욱 더 충실히 살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기 하나 걱정하기도 힘든데, 남에 대한 미움으로 인해 남의
몫까지 스스로 간직합니다. 하지만 내 몫의 반성만 해야 합니다. 남의
몫까지 반성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지요.
내 몫의 반성만을 통해, 잃는 것들 가운데에서 분명히 얻는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더욱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 명연 마태오 신부 -
◈ [서울]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2013년 다해 11월27일
대림 제1주일부터 평화신문에 강론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부족한 저의 능력은
생각하지 못하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말과 글은 두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기도
합니다. 절망 중에 있는 이에게는 희망의 빛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말은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바른 길을 알려 주기도
합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님께서는 제게 힘이 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바른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제가 적성 성당의 본당신부로 있을 때, 아버님께서 성당으로 오신
적이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저를 위해서 3년 동안 성당에 계셨고,
덕분에 아버님께서는 3년 동안 혼자서 식사도 하시고, 청소도
하시고, 빨래도 하셨습니다. 어머님이 보고 싶으신지 가끔씩 성당에
오셔서 미사참례도 하시고, 식사도 함께 하곤 하셨습니다.
어느 날, 성당 마당에서 아버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담 옆에 있는 은행나무의 가지를 잘라야 합니다.’ 저는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담
밖으로 넘어간 가지가 바람에 부러질 수도 있고,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또 가지가 넘어가 옆집에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말씀을 하시기 전에 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시설분과장님과 함께 나무의 가지를 잘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어느 날, 아버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수녀님 숙소
앞에 꽃밭을 만들어 주세요.’ 저는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녀님께서 매일 예쁜 꽃을 보시면 마음이
밝아질 것입니다. 수녀님께서 그렇게 마음이 밝아지시면 신부님께도
잘 하실 것이고, 신자들에게도 더 많은 사랑을 주실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말씀을 하시기 전에 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시설분과장님과 함께 수녀원 앞에 예쁜 꽃밭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지혜로운 말, 따뜻한 말은 사람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줍니다.
아버님께서 계시다면 평화신문에 연재되는 저의 강론을 기쁜
마음으로 읽어 주셨을 것 같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지혜롭게 다듬어
주셨을 것 같습니다. 제게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말은 공동체를 분열시키기도 합니다. 무심코 한 말이
큰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입에서 나온 말은 다시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말을 해야 합니다. 잘못된 행동은 고치면 됩니다.
하지만 잘못된 말은 쉽게 고칠 수도 없습니다. 본당에서도 일 때문에
다툼이 생기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 일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늘 말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함부로 말을 한다고
책망을 합니다. 나이가 많은 것이 벼슬이냐고 따지는 말을 합니다.
조금만 참고, 조금만 들어주면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급한 성격만큼이나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너무나 빨리
자주하곤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잘
하였다는 말은 자주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비난하는 말, 비판하는
말,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은 정말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한 그 말이 그대로 나에게 비수가 되어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지내려 합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증언할 기회
2013년 다해 11월27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복음 : 루카 21,12-19
< 증언할 기회 >
이철환 작가의 ‘연탄길’에 ‘마음의 정원’이란 소제목으로 소개된
내용입니다.
김씨가 길가 가판대 위해 인형들을 놓고 장사한 지 6개월쯤
지났습니다. 검게 때가 앉은 와이셔츠 위에 허름한 양복을 걸치고
얼굴엔 수심이 가득 찬 한 한 중년의 사내가 다가왔습니다.
“이 인형 얼마예요?”
“신랑신부 인형이요? 삼천 원인데요, 손님.”
“하나 주세요.”
“네.”
“장사는 잘 되나요?”
“웬걸요. 하루에 서너 개도 팔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나마
인형이라도 팔아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니 다행이지요.”
“많이 파셔야 할 텐데... 여기 있는 신부의 모습이 꼭 제 아내를
닮아서요.”
그렇게 말하며 천 원짜리 세 장을 건네주는 사내의 눈에 눈물이
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서 그 중년 사내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얼굴이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밝아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신랑신부 인형 중 신랑의 인형을 하나만
더 사고, 감사의 의미로 과일이 들어있는 봉지도 선물로 놓고
갔습니다. 김씨는 어리둥절했습니다. 봉지 안에 있는 편지를
읽어보고야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열흘 전, 나는 밤거리에서 당신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날 나는
세상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내며 밤길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죽기 위해 미리 봐두었던 한강으로 가는 길에서 당신을 만났던
것입니다. 무심코 당신이 있는 곳을 보았을 때 당신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인형들을 앞에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일일이
시선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그런 모습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신랑신부 인형을 샀습니다. 나는 사업에 번번이 실패했고, 오랫동안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더 이상은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차리라 죽으려 했던 것입니다.
한강에 도착한 것은 새벽 2시가 다 될 무렵이었습니다. 눈을 꼭
감고 뛰어 내리려는 순간, 첨벙 하는 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습니다.
두려움에 깊이 찔린 나의 몸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만 강물이
아니라 다리 위의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물속에 뛰어든 것은 내 주머니 속에 있던 신랑 인형이었습니다.
다리 난간에 기대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왜인지는 몰라도 당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가난하지만 세상을 증오하지 않고, 거리에서 인형을 팔며 세상을
끌어안으려는 당신의 모습이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만일
그날 밤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어쩌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젠 저도 내일부터 양말이라도 팔아보려고
합니다. 저에게 이런 용기와 희망을 주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박해를 당하게 될 것이고
임금과 총독들 앞에 끌려 나가게 될 것인데 그 때가 바로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기회’란 것이 바로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인형을 팔던 김씨는 어쩌면 자살하려던 사내보다 처지가 더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자살하려고 하는데 김씨는 그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겐 전부를 잃은 것처럼
절망으로 떨어지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살아내기도 합니다. 우리 순교자들이 그런 분이셨습니다. 박해하는
이들은 재산을 몰수하고 고문을 하고 생명을 빼앗는다고 위협하면
기가 꺾일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그들이 어쩌면
‘전부’라고 여기는 것들을 ‘쓰레기’처럼 여깁니다. 이것이 증언입니다.
하느님만 있으면 그 평화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 하느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감동하여
박해하다가 신앙인이 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하느님을 증언하고 희망이 되는 이들은 어떤 위대한 일을
해 낸 사람들이 아닙니다. 김씨처럼 그저 자신의 삶을 감사히 살아내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나의 미소만으로도 한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때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태양을 본받읍시다. 계획도 준비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을 태울
뿐입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생명의
원천이 됩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냐가
관건입니다. 개가 두 발로 걸어도 개의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부처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증언할 말을 찾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이미 내 일상의
삶 안에서 충분히 증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일상을
행복하게 살아내십시오. 이 세상에서 참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하느님이 계신다는 가장 큰 증거입니다.
오산 성당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osan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 [기타]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혼란스러울 때 일수록 그분의 삶을 떠올려야 합니다.'
2013년11월27일 연중 제 34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루카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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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리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박해가 있을 것이고 그 때는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박해(迫害)란 말의 의미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다.
① 약한 처지의 개인이나 세력을 억누르거나 괴롭혀 해를 끼침.
② 억누르거나 못 견디게 굴어서 괴롭히거나 해를 끼치다.
박해가 이러한 의미라 한다면 박해는 인류와 늘 함께 있어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박해를 하는 힘을 가진 자와 박해를 받는 힘없는
자들은 항상 존재해 왔다. 작게는 어린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이나
폭력으로 시작해서, 크게는 정치적 권력을 휘둘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은 늘 있어왔다.
오늘의 한국 정세를 바라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사흘 전, 전주교구 사제들이 불법선거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그 뜻을 밝힌 시국미사가 있었고, 그에 대해 발끈한
정부는 방송매체를 통해 언론조작과 여론몰이에 힘을 쏟고 있다.
늘 그랬듯이 보수단체라는 이름의 사람들은 소리를 높여 천주교
사제들을 규탄하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언제부터 나온 단어인지 사전에도 없는 종북(從北)이라는 말을
사제들에게 씌우기까지 한다. 그 의미는 북한 체제나 사상을 따르거나
우호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이없는 이야기다.
이념적 갈등을 부추기기 위해 만들어진 과거의 망령들이 떠오른다.
역적, 반동, 빨갱이 그리고 종북.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의 선봉에 선 커다란 힘들 중의 하나는
교회였다. 그 중심이 사제들이었고 그들을 따르는 선한
신자들이었다. 사제들은 정치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세상 안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 악과 맞서
하느님의 백성을 지키려는 것이다. 사제양심을 저버리면서까지
타협과 안주를 선택하기에는 사제의 소명이 너무 크다.
가톨릭 신앙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지, 2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초창기 네 번의 박해(신유박해: 순조 1년. 1801년/
기해박해: 헌종 5년. 1839년/ 병오박해: 헌종12년. 1846년/
병인박해: 고종3년. 1866년)로 인해 흘린 순교자들의 피로 인해
그 기반을 만들어낸 오늘날의 한국 천주교회이다.
당시는 신앙의 인정을 위한 순교였다면, 오늘날은 세상의 정의를
위한 순교가 될 것이다. 항상 더러운 권력을 움켜쥐려는 세력과
그에 기생하려는 무리들은 있어왔고, 그들의 삶의 방식도
지저분하기 그지 없다. 늘 약자를 짓누르려는 전형적인 소인배의
모습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짓밟혀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 약자라고 불려졌던 옳은 마음들이었다.
신자들 입장에서는 동요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옳은지 헷갈릴 수 있다.
다만 오랜 시행착오를 겪으며 여기까지 온 교회를 신뢰해야 한다.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의 기준은 예수님의 삶과 말씀이어야 한다.
한 가지 부탁하고 자 하는 것은 세상 언론에 흔들리지 말았으면
한다. 섣부른 판단으로 옳은 마음들에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
고 김수한 추기경의 말씀이 떠오른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들은 빛 속에서 살 것이고,
언론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국민들은 어둠 속에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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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제주교구장이신 강우일 주교님의 말씀을 들어보셨으면
좋겠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
=7574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 [서울] 머리카락 하나하나 그대로
2013년 다해 11월27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머리카락 하나하나 그대로
거울을 보면 옛날이야기 외에도 여러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자신을 볼 수 있지만 실은 자신을 반대로 보는 것이라는 점이 그래요.
거울은 자신을 볼 수 있지만 각도를 달리하면 뒤의 상황도 보여줍니다.
어떨 땐 거울이 하느님이 주신 의미 있는 물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울 보며 내가 생각하는 나를 그대로 아시는 하느님? 아니실까?
머리카락 하나하나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나 그렇거든요?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 21,18)”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기타] 믿는다면
2013년 다해 11월27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믿는다면
(루카 21,12-19)
"...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루카 21,12-13)."
이 말씀은, "박해를 복음 선포의 기회로 삼아라." 라는 명령입니다.
스테파노의 순교 후에 예루살렘 교회가 큰 박해를 받게 되었을 때,
당시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서 각 지방으로 흩어졌습니다(사도 8,1).
겉으로 보기에는 교회가 망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박해는 복음이 더 널리 선포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사도 8,4)."
물론 하느님께서 신자들을 여러 곳으로 보내시려고 일부러 박해를
받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박해가 없었더라도 신자들은 선교활동을
했을 것이고, 더 편하게 활동을 했을 텐데, 박해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박해를 피해서 흩어졌지만 숨어 있지
않고 복음을 전한 그 열성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박해가 없었다면, 그리고
선교활동을 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다면 현실에 안주하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또 박해를 피해서 흩어졌더라도 숨어
있기만 했다면, 그냥 그렇게 교회가 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든 박해는 교회의 큰 위기였지만 결과를 보면 오히려 그게
교회의 성장과 발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신앙인들의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병에 걸려서 누워 있을 때, 사업 실패로 힘들어 할 때,
시험 불합격으로 좌절하게 되었을 때, 기타 등등...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을 겪을 때, 그때가 바로 자기의 믿음을
증명할 기회가 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절망하고 포기할 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 자체가 바로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4-16)."
이 말씀에서 '착한 행실'이라는 말을 단순히 '선행'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넓은 뜻으로 믿음, 희망, 사랑을 모두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모범을 보이는 것은 세상 사람들을
인도하는 하나의 등대가 되어 주는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로마로 끌려갈 때, 그가 타고 있던 배가 거센
폭풍을 만났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나타나지 않고 거센 바람만 심하게 불어,
마침내 우리가 살아날 희망이 아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모두 식욕마저 잃었다(사도 27,20-21)."
그때 바오로 사도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십시오. 배만 잃을 뿐
여러분 가운데에서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27,22)." 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이야기하고
(사도 27,25), 자기가 먼저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사도 27,35).
"그러자 모두 용기를 얻어 그들도 음식을 먹었다.
배에 탄 우리는 모두 이백칠십육 명이었다(사도 27,36)." 바오로
사도의 예언대로 배는 잃었지만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았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군인들, 선원들, 다른 승객들 가운데에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하느님(예수님)을 안 믿었더라도 나중에 믿게 된 사람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어떻든 바오로 사도의 믿음과 용기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었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복음의 씨를 뿌린 것과 같습니다. 믿음을 증언한다는 것, 또는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으시오." 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믿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도 그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더라도 믿음 없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안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행동으로 증명하지 않는다면 믿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을 수도 있는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믿기만
하면 무조건 모두 살아난다는 것은 아닙니다. 박해 때에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사람들이 많은데, 순교자들은 육신은 죽었어도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버리고 배교한 사람들은?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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