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님께 진심을 담아 고백하자!
- 조태성
1.
설 명절 연휴 첫날을 제외하고는 집에 머물며 교회에 안 왔습니다. 아내만 청소하고 영상 촬영하려고 교회 다녀오곤 했지요.
아무튼 이번 설 명절은 집콕하면서 적당히 먹으면서 읽고 싶은 책들을 읽고 영화나 드라마도 보면서요. 건강하고 차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좋은 습관이 하나 생겼는데요. 명절이나 연휴 기간을 보내고 나면 저를 돌아봅니다. 영적 긴장감을 잃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기본을 놓치지 않았나 돌아봅니다.
2.
오늘 교회 의자에 앉아서 기본적인 부분을 조용히 점검합니다. 성령님을 초청하고 의지하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합니다. 말씀과 기도, 하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들 가운데 제가 중보적 기도해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지 점검합니다.
특히 성령님과의 친밀함도 점검하는데요. 성령님과의 친밀함을 점검할 때 제 나름대로 형성된 부분들을 순서대로 점검합니다.
3.
우선 목사가 아니라 아들이요, 친구로서 교회에 앉아있음을 되새깁니다. 제 안에, 그리고 곁에 이미 동행하시는 성령님을 느낌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식하고 바라보고자 노력하고요.
성령님의 함께 하심을 충분히 누리면서 마음으로 성령님의 성호를 부릅니다. 입을 열지 않고 진심이 담겨지기를 사모하면서 마음으로 천천히 성령님을 찾습니다. 제게는 이 과정이 참 중요한데요. 지난 번 다른 글에서 나눴던 부분을 다시 나누면 이해가 더 좋을 듯합니다.
4.
작년에 <팬텀싱어 시즌 3>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남성 4중창 크로스 오버 팀을 만드는 오디션 프로그램인데요. 시즌 1부터 호응이 좋아요. 일반인부터 오페라 가수, 뮤지컬 배우, 연극배우, 판소리 가수 등등 다양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사연도 제각각이라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지는 점도 좋은데요. 드라마틱한 인생에 걸맞은 탁월한 노래실력으로 감동도 주니 참 좋습니다.
그 중에 외국인 참가자가 눈에 띕니다. 남태평양 피지 섬에서 한국으로 성악 공부하러 온 소코 라는 참가자인데요. 한국어를 참 잘 해서 대학교 직원으로 근무하며 공부합니다. 경연에서는 ‘첫 사랑’이라는 김효근 교수의 시에 음정을 붙인 아트 팝 가곡을 감동적으로 불렀습니다. 심사위원 중에 유명한 작사가 김이나 씨가 노래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아서 말합니다.
5.
“외국인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우리 가사를 더 잘 표현했어요. 우리한테는 너무 당연한 한글이기 때문에 표현에 더 소홀하게 되는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소코 씨는 가사 단어 하나하나를 자기 나라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고민하고 진지하게 해석하셨어요.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잘 표현하셨어요. 우리나라 가수들이 이런 점은 더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대'라는 단어는 '너'와 '당신'이라는 단어와는 다름을 잘 표현해주셨어요. 우리나라 가수들도 한 단어 한 단어를 노랫말로 뱉어낼 때 그 단어의 깊은 의미와 감정을 진지하게 해석해내셔서 불러주시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나 반성하고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6.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에 우선순위를 두다 보니 노래의 감동과 김이나 씨의 심사평이 성령님과의 교제에 자연스레 연결됩니다. 종종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방법을 몇 가지 추천해드리는데요. 우리의 생각과 기분, 감정들을 자주 성령님께 말로 표현하는 것이 그분과 교제 나누는 좋은 방법입니다. 성령님을 존중해드리고자 할 때 함께 사용하면 좋은 방법이 간접적인 침묵이지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넌 좀 생각하고 말해!”
말이라는 것이 입을 열어 말한다고 다 말이 아니라는 의미지요. 성령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편하게 말을 걸고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은데요. 생각을 좀 하면서 성령님께 말씀드리고 여쭤보면 더 좋을 때도 있습니다. 진지함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순수함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진심을 담아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함을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7.
저 같은 경우 교회에 혼자 있을 때가 많습니다. 교회 오자마자 앉아서 성령님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의식합니다. 이미 함께 계시지만 존중해 드리고 싶은 제 마음, 의지를 담아서 초청합니다. 그리고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함께 계신 성령님을 기다립니다. 제가 그분을 순수하게, 친밀하게 진심을 담아서 한 단어, 한 문장을 고백할 수 있는 상태가 되고 싶어서지요. 간접적인 침묵 모드가 됩니다.
얼마나 간접적인 침묵을 할까요? 그때그때 다릅니다. 중요한 건 제가 성령님께 순수하고도 진심을 담아 잘 존중해 드리는 언어생활이 가능하겠다 싶을 때까집니다. 가수들이 노래 시작 전에 잠시 눈을 감고 노래 가사에 집중하듯 침묵합니다. 아니, 저는 지금 노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더 집중해야 합니다.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기다립니다.
8.
언제부터인지 많은 말이 중심이던 기도생활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진심을 담아 한 단어, 한 문장 표현하는 관계 중심의 기도생활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재인식하면서부터입니다.
그래서인지 제 기도 시작은 침묵으로 시작합니다. 침묵이 길어지면 침묵으로 시작 된 기도가 침묵으로 마칠 때도 있지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눈 영혼의 충족감을 얻습니다. 성령님께서 저를 들으시고 저도 성령님을 듣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보니 진심을 담아 “성령님~”하고 부르는 것조차도 제가 과연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만을 담아 입술로 부르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점검하게 됩니다.
9.
설 명절을 감사하게 보내고 저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 부분을 중요하게 점검합니다. 이 부분이 점검 되고서야 지금처럼 글도 작성합니다. 오늘 해야 할 다른 만남과 사역들을 출발합니다.
성령님을 존중해드리지 못하면서 부지런히 움직여서 칭송받는 큰 일을 잘 해내도 제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존중해드리는 영적 상태가 충만해지면 더 많이, 더 빠르게, 그러나 여유있게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심을 종종 경험합니다.
10.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제게 기대하시는 영적 루틴을 잘 지키며, 성령님께 진심을 담아 고백드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오늘도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아시고 실천하시며 본이 되어주시는 분들이 여기에 많이 계셔서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성령님과 함께 샬롬입니다^^♧
첫댓글 아멘^^
참.. 건망증으로 이런 웃긴일이..
어제 여기에 댓글 단다는게 가까운 목사님
교회카페에 엉뚱한 데 댓글 달뻔 했네요 ㅎㅎ
쓰다가 지워졌으니 망정이지 로그인이 핸펀
바꾸고는 됐다안됐다해서 귀찮아서 안하는데
거기에 로그인이 돼서 이 카페인 줄 착각을 하고
엉뚱한 글에 댓글 달뻔 했어요.
저도 지금까지 어려움 겪으면서 수치심, 모욕감,
억울함 저처럼 겪은 사람 없을정도로 징글징글하게
겪다보니 울분이 올라와서 글을 읽다가 6년 전에
저희 남편교회 목사님이 `수치심치유`라는 책을
주셨던 일이 기억이 나서 엉뚱한 곳에 댓글
쓰다가 날라가서 오늘 다시 쓰는 거예요.
샬롬^^♧
주님의 사랑으로 댓글을 올려주시니 참 감사해집니다. 더욱 은혜가 풍성하시기를 소망하며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사랑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