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방산 왕방정
성이 난 채 길을 가다가,
작은 풀잎들이 추위 속에서 기꺼이 바람 맞고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만두고 마음 풀었습니다.
――― 판화가 이철수, 『길에서』
▶ 산행일시 : 2013년 12월 4일(수), 안개
▶ 산행인원 : 7명(오기산악회 수요산행 )
▶ 산행거리 : 도상 9.3㎞
▶ 산행시간 : 5시간 53분
▶ 교 통 편 : 이계하 님 카니발
▶ 시간별 구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 따랐음)
08 : 13 - 천호대교 남단 굴다리 주차장 출발
09 : 47 - 포천시 신읍동 호병골 입구 삼거리 유료주차장, 산행시작
10 : 23 - 쉼터, 유불선지탑(儒佛仙之塔)
10 : 48 - 291m봉
11 : 30 - △551.7m봉
11 : 38 ~ 12 : 38 - 552m봉, 점심
13 : 26 ~ 14 : 30 - 왕방산(王方山, △736.3m), 휴식
15 : 30 - 왕산사
15 : 40 - 호병골 입구 삼거리 유료주차장 가는 도중 산행종료
1. 안개 속 등로
▶ 왕방산(王方山, △736.3m)
의정부에서 축석령 넘어 포천 가는 길은 교통량이 많아 늘 정체 또는 지체다. 오늘은 설상가
상으로 안개가 자욱하여 시정거리조차 몇 미터 되지 않는다. 차내 이미자 테이프는 한 바퀴
돌고 다시 동백아가씨부터 시작한다. 어렵게 포천시에 들고 시청 뒤 신읍천(新邑川) 따라 올
라가다 호병골 갈림길 입구 삼거리에서 멈춘다.
왕방산 밑에 자리 잡은 왕산사까지 도로가 아스팔트 포장되어 있어 차로 올라갈 수 있지만 거
기서 왕방산을 갔다 오기에는 너무 짧아 싱겁다. 웬만큼 산행거리로 왕방산을 원점회귀 등산
하기는 호병골 입구 삼거리가 적당하다. 길옆 유료주차장 주차료가 1시간당 1,000원이라고
하여 5시간을 예상하고 5,000원을 선불한다.
호병골로 들어가지만 안개가 워낙 짙어 산세를 가늠할 수가 없다. 들녘 지나 아파트가 나오고
그 오른쪽 뒤 산자락으로 등로가 보인다.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근린공원이다 해도
결국은 왕방산 줄기로 이어질 것이 뻔하므로 냉큼 든다. 이내 한국아파트 쪽에서 오는 등로와
만나고 소나무 낙엽 깔린 걷기 좋은 산책로다.
산행 시작할 때는 약간 소슬하던 대기가 산등성이 오르자 훈훈하다. 겉옷 벗는다. 유불선지탑
(儒佛仙之塔)이라는 돌탑 3개가 쌓여 있는 쉼터에 오른다. 탁주 입산주가 시원하다. 큼지막한
돌탑 3개를 정규헌 이란 분이 포천 수호의 탑이라고 쌓았다. 지극한 정성이다. 산등성이 오르
고 내리고 곳곳이 벤치 놓인 쉼터다.
한동안 유유하던 발걸음은 291m봉을 넘고부터 아연 바빠진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끝없이 이
어진다. 도대체 쉬운 산이 있기나 하던가? 오뉴월 비지땀 뻘뻘 흘리며 오른다. 고개 한껏 뒤
로 젖혀 올려다보는 공제선이 겹겹이라 아무리 오르고 올라도 오른 것 같지 아니하더니만 시
간이 말해준다.
무럭고개에서 오는 주능선과 만나고 조금 더 가면 △551.7m봉이다. 판독불능인 삼각점은 안
내판에 ‘포천 432’다. 이제부터 왕방산 정상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이다. 등로에는 잔설마냥 지
난주에 내린 눈이 희끗희끗하다. 552m봉 햇볕받이 공터가 점심자리로 명당이다. 이따 깊이
울(深谷)에 가서 오리고기 먹을 요량으로 이른 점심 먹는다.
2. 안개 속 등로
3. 유불선 탑이 있는 쉼터
4. 거북바위
5. 왕방산 가는 길
6. 왕방정
노송 즐비한 등로다. 바윗길 나오면 등로는 미리 우회한다. 등로 옆 거북바위가 그럴 듯하다.
머리 쑥 뺀 모양이 달리 볼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 ‘거북바위’라는 팻말을 달아놓아
서다. 더러 눈길 오르고 ┫자 왕산사 갈림길 지나 왕산정에 들렸다가 헬기장 옆으로 돌아가면
왕방산 정상이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 ‘포천 23, 1982 재설’이다.
왕방산의 유래는 분점한 동두천시와 포천시, 왕방사 간에 대략 일치한다. 동두천시의 안내도
에는 “972년경 도선국사가 정업을 닦을 때 왕께서 친히 행차하시어 격려하였다 하여 왕방산
이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며…….”라 적고, 포천시가 왕방정에 내건 현판에는 “872년경
도선국사가 사찰을 창건하고 수도할 때 국왕이 친히 행차하여 격려하였다 하여 왕방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새겼다.
한편 왕산사의 왕방산 왕산사 유래에 따르면 “877년 신라 헌강왕 3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자
왕이 친히 방문하여 격려해 주었으므로……” 하고 있다. 신라 제49대 왕인 헌강왕의 재위기
간은 875년 ∼ 886년이다. 포천시지명위원회에서는 王方山, 旺方山, 王訪山으로 쓰이던 왕방
산의 한자 표기를 2009.8.19. ‘王方山’으로 확정하였다.
포천시내는 아직 안개가 자욱하다. 언론에서는 스모그라고 하여 외출을 자제하도록 당부하
였던 터라 그 스모그가 걷히기 기다릴 겸 왕방산 정상 약간 비킨 양광 따스한 남쪽 억새밭에
서 1시간 남짓 휴식한다. 왕방정 도는 등로는 눈과 얼음이 녹아 진창이다. 왕산사로 내리는
길은 되게 가파르다.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내리 쏟는다. 이쪽으로 왕방산을 오르지 않은
게 퍽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왕방산 정상에서 왕산사 절집까지 2.1㎞. 잠깐이다. 왕산사에서부터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다.
이계하 님이 정하 님 동무하여 차 가지러 쏜살같이 앞서 갔다. 우리는 느긋하게 산 굽이굽이
돌며 내린다.
8. 왕방산 정상에서
9. 오른쪽 희미한 산은 해룡산
10. 하산
11. 산모퉁이 돌면 왕산사가 나온다
▶ 깊이울(深谷)
깊이울의 오기고기가 유명하다 하여 찾아간다. 무럭고개 넘어 왼쪽 계곡이 깊이울이다. 인터
넷 검색에서는 ‘고향나들이’ 집이 잘한다고 소개되지만 낚시에 걸리는 수가 없지 않아 신중을
기한다. 우선 음식점 외관을 현장 조사한다. 낚시터인 심곡저수지 위쪽까지 오가며 동네 오리
집들을 예의 살피고, 심곡저수지에 산책 나온 마을 주민에게 탐문한다.
맛이 대개 비슷한데 많은 사람들이 그중 ‘고향나들이’ 집을 찾는다고 한다. 우리의 짐작과도
맞아 떨어졌다. 주종은 숯불 오리구이다. 음식 값은 선불. 돈 안내고 그냥 가는 사람들이 있어
서 선불로 받는다고 한다. 4인에 반 마리는 팔지 않고, 6인에게 1마리는 팔지 않는다고 한다.
배짱이다. 우리는 7명이니 1마리 반을 주문해야 한다. 1마리 43,000원, 반마리 27,000원.
양이 푸짐하다. 쟁반에 수북이 쌓아놓으니 먹기도 전에 질려버린다. 그래도 서로 격려하다가
을러대며 다 먹어치웠다. 우리가 오기가 아닌가 반문한다. 우리 인원에 돌솥밥 3인분(1인분
4,000원, 탕이 딸려 나온다)이 충분하다.
▶ 無名
‘無名’은 의정부교도소 옆 야산에 위치한 카페 이름이다. 이계하 님이 20여 년 전 의정부에서
살 때 몇 번 들렸다고 한다. 서울 가는 길에 찾아간다. 43번 국도 타고 가다 의정부교도소 교
통표지 따라 들어간다. 캄캄한 산길에 가로등 하나 없어 으스스하다. 교도소 정문 지나고 미
군부대 캠프 스탠리 정문 앞이 주차장이다.
카페가 이런 곳인가? 또 다른 세계다. 어스름한 불빛 아래 젊은 연인들 쌍쌍이 소곤소곤 밀어
를 나누는 곳이다. 우리만 떼로 왔다. 야외의 모닥불 주위에 자리 잡는다. 확실히 나이 먹은
탓이다. 우리의 담소 소리가 너무 커서 스스로 놀란다. 톡톡 튀는 불꽃 바라보며 맥주잔 비운
다. 눈이라도 내리면 더욱 좋겠다.
11-1. 깊이울 고향나들이 오리집에서
12. ‘無名’ 카페에서
13. ‘無名’ 카페에서
14. ‘無名’ 카페 화장실에 걸린 석성 김형수 화백의 산수화
석성 김형수(碩星 金亨洙, 1929 ~ ) 화백이 1986년 여름에 그렸다. 화제(畵題)에 눈길이 가서
찍었다. 그림과는 화제가 그리 썩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1986년 여름에 우
리나라에 특별한 사건이 생기지도 않았다.
굳이 들어보면,
5월 10일, 교사 546명 교육민주화선언 발표
8월 13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 준비위 발족.
8월 16일, 신민당서 탈당한 신보수계 인사들이 유한열 의원을 총재로 하는 민중민주당 창당
8월 27일, 태풍 베라 상륙
9월 7일, 전국 승려 2천여 명, 해인사서 불교악법철폐대회 개최 후 대규모 시위
화제는 성삼문(成三問)이 중국에 갔다가 백이와 숙제의 무덤 앞을 지나게 되어 읊은 『제이제
묘(題夷齊廟)』이다.
當年叩馬取言非 그때에 말을 치며 말리 든 이 누구런고
大義堂堂日月輝 옳은 일 당당 함이 해와 달처럼 빛났오
草木亦霑周雨露 아무리 푸새인들 그 뉘 땅에 난 것인가
愧君猶食首陽薇 수양산 바라보며 그대 일 한하노라
첫댓글 왕방산 정상석이 바뀐 것 같네요, 2008년 여름에 갔을 때와 다른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