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가져온 글 2023.3.18)
김상수
1시간 ·
'한겨레21' 조일준 기자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인터뷰, 부분 내용을 옮겨온다.
-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라는 해법에 타당성은 있는가.
“그게 무슨 해법인가, 억지춘향이지. 윤석열식 해법은 ‘우리가 일본한테 지배를 받게 된 것부터 우리의 잘못이었다’는 식으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우리 탓이니 우리가 해결할게’ 한 것이잖나. 피해자가 가해자한테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자기에게 셀프 배상을 하면서 가해자한테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한 것인데, 이는 세계 외교사의 ‘신기원’으로 기록될 만한 문제적 해결책이다.”
―윤석열이 바이든 방문 때 “한-미 관계를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기로”?
"‘글로벌’은 미국 중심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 끌고 가겠다는 것을 미화한 거다. ‘포괄적’이란 말에도 함정이 있다. 모든 부문에서 미국이 하자는 대로 따라오라는 뜻이다. 한-미 관계는 1953년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돕는 군사동맹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이 과거와 달리 세계 10위 경제대국, 세계 6위 군사대국이 됐다. 미국이 아직은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체제를 유지하지만 중국의 도전이 거세다. 그런데 이제 한국이 미국의 신세만 지던 나라에서 미국을 도와줄 수 있는 정도의 힘이 생겼기 때문에, 그동안 한국 안보에 투자한 걸 회수하겠다는 수사적 표현이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다.”
- 윤석열이 즐겨 쓰는 단어들, 자유민주주의, 가치동맹, 가치외교, 어떻게 해석하는가.
"“모든 국가의 목표는 첫째가 시큐리티(Security·안보), 둘째가 프로스페리티(Prosperity·경제적 번영), 셋째는 오소리티(Authority·국격, 권위)다. 안보는 자주국방이 기본이다. 자력만으로 불안할 때 보조 수단이 동맹이다. 그런데 안보동맹을 ‘가치동맹’이라고까지 확대해놓으면, 번영과 권위까지도 동맹 하나로 묶어버린다는 얘기다. 동맹을 통한 경제적 번영? 지금은 미국이 오히려 안보에서 한국 편을 들어주는 대신, 경제적으로 우리한테 얼마나 많이 요구하는가? 가치동맹은 우리의 번영을 침해하는 것까지 정당화할 수 있는 독소적 함의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도 그렇다. 한 국가의 체제에 자유민주주의만 있는 건 아니다. 크게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세 가지가 있다고 치자.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잘 살지 않나.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미국의 가치와도 좀 다르다. 중국도 지향하는 가치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 속에는 미국식 체제가 최고라는 전제가 깔렸다.”
- 바이든, 기시다, 특히 기시다와 윤석열 기자회견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조했다.
"평화는 ‘피스 키핑’(Peace Keeping·평화 지키기)이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 영속적인 평화가 오진 않는다. 피스 키핑을 넘어 적극적인 ‘피스 메이킹’(Peace Making·평화 만들기)을 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미국 중심의 피스 키핑을 위한 한-미 군사협력을 평화라는 뜻으로 개념 규정을 했다. 번영도 미국적 경제질서 안에서 한국이 잘살 수 있다는 뉘앙스가 담겼다. 한마디로 미국 중심, 미국 편향적 대외정책을 하겠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감춰놓은 거다.”
- 북한은 한국과 미국에 끊임없이 ‘행동 대 행동’을 요구하며 상당한 수준의 양보도 했지만 실제로 얻은 것은 거의 없다. 지금으로선 미국이나 윤석열 정부의 전향적 태도도 기대하기 힘들다. 향후 당분간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는 어떻게 될까.
"먼저 ‘행동 대 행동, 말 대 말’이란 것부터 정리하자. 어느 나라든 국가 관계에서 상대의 선의만을 믿고 먼저 무조건 양보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말로 시작하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확인해가면서 그다음 단계로 가는 거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한국과 미국에 대한 불신이 크다.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 ‘세상에 크고 작은 나라는 있지만 높고 낮은 나라는 없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냥 하는 말이고, 국제정치에는 실제로 높고 낮은 나라가 있다. 미국은 그 정점이다. 내가 책에 썼듯이 ‘국제정치는 기본적으로 조폭의 세계’와 같다. 약소국은 행동 대 행동을 꼭 이행하고 싶어 하고, 강대국은 먼저 행동을 요구하게 돼 있다.”
- 미,북 평행선이 좀체 좁혀질 것 같지 않은데.
"잘 안 좁혀진다. 그런데 지금까지 북-미 관계를 보면, 북한이 벼랑 끝 전술로 미국을 애먹이고 체면을 손상하는 식으로 하면 미국이 조금은 ‘행동 대 행동’으로 옮겨준다. 그러고는 ‘당근을 줬더니 말을 잘 듣네?’ 싶으면 다시 채찍을 든다. 북한이 거기에 저항하면 미국은 ‘보편적 가치’나 ‘인류의 평화’를 꺼내 든다. 그런데 ‘평화’라는 것도 완전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게 아니다. 자기가 유리한 상태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평화라고 한다. 옛날에 로마제국이 전세계를 좌지우지 장악했을 때는 ‘팍스로마나’(Pax Romana·로마에 의한 평화)라 했고, 영국이 전세계를 지배하던 시절을 ‘팍스브리태니카’(Pax Britannica)라고 했다. 지금의 팍스아메리카나도 마찬가지다. 자기 중심성이 굉장히 강한 말이다.”
- 미국이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한반도의 긴장과 갈등을 유지하려 한다는 건가.
“바로 그거다! 팍스로마나도 로마제국이 자기한테 반항하는 나라가 없는 상태를 만들어놓고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희생 위에 올라서서 즐겼던 것 아닌가. 미국도 마찬가지다. 자기 세력권 안에 있는 나라들을 압박하거나 달래가면서 얼마든지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는 거다. 미국은 윤석열 정부가 자국에 요구하는 ‘확장억제’ 정책을 소원대로 들어주고 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에선 북한에 굉장히 위협이 될 만한 첨단무기와 전략자산을 전개해준다. 그러면서 우리한테 경제적으로 얼마나 많이 빼가는가. 미국 전기자동차 지원법이나 반도체 공급망 편입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도 그렇다. 미국이 세계 각 지역에 꾸리는 안보동맹은 이른바 동맹국들을 자기 진영에 계속 묶어두기 위한 프레임이다. 한·미·일 삼각동맹,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 4개국 협의체), 오커스(AUKUS,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 삼각동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경제적 이익을 뽑아낼 만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인도는 중국과 러시아 편이 돼버리지 않았나. 필리핀은 아직 가난한 나라여서 별로 득 볼 게 없다.” (후략)
한겨레21 인터뷰 https://url.kr/jp67sv
사진 - 문재인 대통령 시기 2018년 12월 12일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 철수를 상호 검증하기 위해 남북한 현장검증반원들이 군사분계선(MDL) 한복판에서 만나고 있다. 문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한반도는 평화로웠다. 전쟁의 위기는 걱정하지 않았고 국민들은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