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원칙의 시대》를 읽고서
주말까지 포함하여 5일이나 되는 긴 추석 연휴 동안에 위와 같은 제목을 가진 책을 한권을 대충이나마 읽어 보았다. 2009년에 낸 “하버드 중국사” 5권 중에 송나라 부분이라고 하며, 원 저자는 디터 쿤이라는 독일의 어떤 대학의 교수라고 하고, 역자는 미국에도 유학하고, 고려대학에서 학위를 한 육정임 박사이다.
우선 독일인이 중국사에 관하여, 영어로 책을 썼다는 것도 좀 신기하고, 또 “캠브릿지 중국사”라는 총서는 한국어로도 부분적으로 번역된 것을 보았는데, “하버드 중국사”라는 것은 처음 듣는 것이기도 하고, 또 내가 요즘 퇴계 선생의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와 같은 책을 몇 사람과 어울리어 읽고 있는 중이라서, 이런 책에서는 주자가 살고 있던 시대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궁굼하기도 하여 한 번사서 읽어 보았다.
이 책 번역본은 국판(菊版)으로 원문만 500 쪽, 부록으로 참고도서 목록만 30쪽, 자못 상세한 역자 후기에, 찾아보기까지 붙어 있다. 한글 번역도 무난하고, 가끔 원저자가 실수로 잘못 적은 것 같은 말에 대하여 역자 주까지 첨부하여 가면서 아주 알뜰하게 옮겼다.
이 책은 모두 12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1장은 당나라 말기에서부터 오대 시대에 관한 이야기이며 제2장(모범적인 통치자), 제3장(몰락으로 치달은 개혁), 제4장(남쪽의 송왕조), 제5장(유불도 세 가지 가르침) 같은 앞 부분은 송나라의 정치 군사 대외관계와 종교와 학문 같은 내용을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개괄 정리하여 둔 것이고, 그 다음에 늘어놓은 과거시험, 평생의례, 시와 회화, 도성(都城), 산업, 화폐와 조세, 공적 생활에서의 사생활 등을 나누어 적은 8가지 장은 분야별로 엮은 송나라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경제 상황, 기술과 산업 등을 나누어 해설한 부분이다.
이 책의 원저자는 송나라의 방직 기술, 송나라의 무덤 같은 것을 전공한, 송나라의 과학 기술이나, 송나라 사람들의 생활 의례 같은 쪽을 전공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러한 쪽에 관한 이야기가 딴 책에 비하여 자못 상세한 것이 이 책이 가지는 한 특색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서 다음과 같은 점을 매우 유익하다고 느꼈다.
첫 번째, 이 시대는 한족만이 천하의 주인이 아니고, 북쪽으로 요니, 금이니 서하니 하는 이민족이 세운 나라들도 있었는데, 송나라가 이런 나라들에 대하여 맞붙어 싸우기 보다는 오히려 정치에서는 문(文)을 숭상하면서 평화 공존을 도모하였는데, 이 점을 이 책에서는 매우 중시하고, 또 송나라를 운영한 한족 통치자들의 미덕으로 칭찬하고 있다. 그렇게 하였기 때문에 당시 송나라는 세계에서도 가장 살기 좋고, 또 높은 문화를 상당 기간 누릴 수 있었다고 보았다.
두 번째, 당시로서는 송나라가 문학, 예술뿐만 아니라, 산업, 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가는 분야가 많았는데, 그런 것, 특히 뒤에 말하는 과학 기술 분야의 발전 같은 것을 이야기 할 때도,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이 지금 아는 것과 같이 유학(성리학)이 이런 것의 발전을 가로 막은 것이 아니라, 유교의 합리적, 이성적 사고가 이 모든 문화영역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고, 도리어 이러한 것을 고루 발전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 시대를 읽어 내는데 핵심 코드는 “유교”와 “혁신”인데, 이 혁신을 이끈 원동력이 된 것이 유교라고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하면서, 중국의 르네쌍스라고도 할 만한 이 시대의 역사책을 쓰면서 책이름을 “유교 원칙의 시대”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때 남송에 살았던 주자의 글을 보면, 그 당시에 북쪽 이민족들 나라의 힘에 굴복하여 맥을 추지 못하는, 문화적인 우월성을 제대로 선양하지도 못하는, 자기 나라가 답답하기만 하고, 이런 부끄러운 시대에 살면서도 임금부터 대신들같은 지도자들이, 성의, 정심, 격물, 치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와 같은 옳바른 전통이 무엇인지도 확실하게 파악하지도 못하고, 더러 불교나, 도교 같은 데 기울어져 전쟁을 회피하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지 못하니 갑갑하기 짝이 없다는 불평 투성이다. 우리나라의 근대 문인 이상(李箱)이라는 분은 "지식인은 언제나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하여 절망한다"고 하였다고 한다. 아마 주자도 자기가 살고 있던 시대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절망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주자가 절망하고 있었던 시대가 세계 역사에서 그렇게 찬란한 시대였다고 하니 좀 헷갈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이 책의 저자와 같은 사람이 처음한 것이 아니고, 남송이 몽고에 의하여 함락되었을 때, 아무런 저항없이 넘겨준 당시의 수도 임안부(지금의 항주)에 들어가 보았던 서양사람 마르코 폴로가 세상에 이렇게 꿈과 같은 곳이 있었던가 하고 동방견문록에서 놀랍게 서술하였다고 하지 않았는가?
힘으로 치고 들어왔던 몽고도 결국은 문약하였던 한족의 문화에 머리를 숙이고, 중국식 과거제도를 도입하고, 주자의 학문을 국가의 정통학문으로 인정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 한국은 서양의 초강국 미국과 맞부딪치게 되는, 동양에서 다시 초강국이된 중국을 보면서 우리 나라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어느 나라 쪽에다 비중을 두어야할지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여 들고 있다. 그런 어려움에서 어떤 도움을 찾기 위하여서는 우선 그런 나라들이 어떤 나라들인지 한번 다시 냉정하고도 철저하게 검증하여 볼 때가 온 것 같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오히려 서양 사람이 쓴 이런 책을 좀 읽어 보는 것도 다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