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나무>
자라 주임. 회사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우리 자라 주임 정말 성실해. 뭐, 좀 느려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항상 뭘 시켜도 책임감 있게 끝까지 해내잖아? 역시 대애단하셔.”
“자라 주임, 이번 한 번만 좀 부탁하자. 응? 항상 잘 해왔잖아. 네가 아니면 누가 이 프로젝트를 맡겠어?”
느리지만, 착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 항상 잘 웃고, 잘 참는 사람.
그는 처음엔 그 말들을 좋아했다. 자신을 어른스러운 사람으로, 어려운 일도 잘 해내는 사람으로. 그렇게 느껴지게 했으니까. 그는 기꺼이 그 이름을 등에 업었다.
그의 회사 사무실엔 그와 반대인 사람들이 많았다. 말도, 핑계도, 떠넘기기도 빠른 사람들.
“이건 자라 주임이 했어야지. 그럼 내가 이것까지 다 하리? 응?”
“아, 회의 자료요? 주임님이 아직 여유 좀 있다고 천천히 해도 된다고 하셔서 아직 안 했는데….”
말이 느려 제대로 반박도 못하는 그는 항상 그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마무리했다.
실수로 보고서를 잘못 올린 날, 팀장이 물었다.
“자라 주임답지 않게 왜 이래?”
“죄송합니다. 다시 해오겠습니다.”
어느새 입에 붙어버린 말을 기계처럼 내뱉으며 자라 주임은 허리를 굽신 숙였다. 자리로 돌아와 앉아 그는 텅 빈 눈으로 툭 떠오르는 자판을 눌렀다. 다시 쓴 보고서는, 팀장이 수고했다며 등을 토닥일 정도로 완벽했다.
그러던 어느날, 사건이 터졌다. 보고서 조작, 출장비 누락. 팀장이 회의를 열었다. 이번 사건의 책임자를 분명히 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자라 주임이 회의에 들어가자, 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하던 회의실 안이 고요해졌다. 착잡함을 흉내낸 얼굴로, 팀장이 말했다.
“이번 건은, 사수로서 미리 막지 못한 우리 현수 씨가 책임지는 걸로 하자. 우리도 많이 생각해보고 이야기하는 거야.”
자라 주임은 울컥해 입을 열었다.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의 침묵.
팀장은 내일 다시 회의하자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회의실을 벗어나는 사람들은 그를 보며 쑥덕거리기 바빴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날도 자라 주임은 여전히 사무실에 홀로 남아 야근을 했다. 다른 이들이 하나씩 떠넘기고 간 일들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다 쓴 문서들이 복사기에서 하나둘 나오는 것을 지켜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자리로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문서들과 함께 빈 A4 용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빈 종이에 사직서라는 단어가 크게 적혔다. 주저하지 않고 써 내려간 사직서에 적힌 이름은 자라 주임이 아닌 ‘김현수’였다. 잠시 잃어버렸던 그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되새기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입사한 이후 최초로 지각했다. 팀장의 자리 위에 놓인 문서는 오직 자라 주임의 사직서뿐이었다. 밤새 작업했던 문서들은 복사기 옆 파쇄기에 갈린 채였다. 회사는 아무 말없이 그를 보내주었다. 앞선 사건은 전부 그가 책임지고 퇴사했다며 마무리 지은 채. 그의 빈 자리는 빠르게 채워질 것이 분명했다. 여전히 느리지만, 착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잘 웃고, 잘 참는, 그런 사람으로. 그렇게 ‘자라 주임’의 자리가 대체되겠지.
그는 출입카드를 반납하고, 1층으로 내려왔다. 더이상 자라 주임이 아니게 된 그를 누구도 찾지 않았고, 그도 누구를 찾지 않았다. 근처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유리창 밖으로 사람들이 바쁘게 흘러갔다. 문득, 오래전에 읽은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이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떴다. 지금까지 그의 이름은 늘 남이 불러준 것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이 불러주는 이름에 그 자신을 맞추기 시작한 게. 하지만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가 불러주는 이름 없이 오롯이 존재하고 있었다. 잊고 있던 그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하나둘 떠올랐다.
텅 빈 커피잔에 비친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깨는 약간 굽었고, 눈가엔 거무튀튀한 다크서클이 내려왔지만, 그 안에 깃든 작은 불씨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무언가 무너진 자리에, 아주 조용하게 다른 무언가가 세워지는 중이었다.
그 무명의 상태가 가장 나다운 사람일 거라는 확신. 그리고 잊혔던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김현수. 그 순간, 비로소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어딘가에 속하려고 애쓰는 ‘꽃’이 아니라 단단하게 뿌리내린 ‘나무’가 되었다는 걸.
첫댓글 주임을 내려놓은 주인공 ‘김현수’의 감정이 잘 드러난 글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글 마지막에 ‘자신이 어딘가에 속하려고 애쓰는 ’꽃‘이 아니라 단단하게 뿌리내린 ’나무‘가 되었다는 걸.’라는 문장을 작성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자라 주임이 별주부전에 나오는 자라와 같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별주부전을 결합하며서 자라주임같이 표현한게 신선했습니다
자라 주임이라는 프레임을 벗고, 자신의 본 모습과 이름을 찾고 내면의 성장을 볼 수 있어서 인상 깊었습니다.
김춘수의 시 「꽃」을 인용한 마지막 장면은 존재의 본질과 자아 찾기의 메시지를 깊이 있게 전달하고 큰 울림을 줍니다.
현대 사회에서 '느리다' 라는 것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김현수' 역시 자라 주임이라는 이야기로 불리며 은근히 조롱과 책임 전가의 대상이 된다. 그런 불합리함에 저항하여 '자라 주임'의 칭호를 버리고 '김현수'라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주인공의 감정과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 잘 드러난 글이었다.
원작과 다르게 자라라는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어, 현대적인 주제와 잘 엮어낸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별주부전의 엔딩에서 더 나아간 자라의 엔딩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름 대신 ‘자라 주임’이라는 별칭으로만 불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하나의 개인으로 존중받는 게 아닌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되는 것을 암시하는 듯했습니다.
자라 주임이라는 별명으로 글이 전개되어 신선함과 재미를 더하면서도,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다만,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다소 갑작스럽게 끼워맞춰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우연성이 아닌 개연적으로 사건을 이끌어갔다면 더 몰입도 높은 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본인을 찾아가는 과정과 결과물이 굉장히 깔끔했던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주부전과 감춘수의 '꽃'이 너무 직접적으로 인용되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러한 소재들에 대한 해석이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면이 있어 앞서 말한 난점을 상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현대인의 고뇌와 일상, 자아 찾기, 개인의 각성 과정 같은 소재를 상징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보여주어 좋았습니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와 억울한 누명을 당한 자라주임의 억울함과 슬픔이 대화는 없지만 글을 통해 느껴졌다. 마지막 자라주임이 김현수라 이름을 불렀을 때는 시원 씁쓸함을 느꼈다
주인공이 자라라는 별명에 자신을 맞춰가다 끝나지 않고, 이를 벗어나 자신을 찾아가는 줄거리가 좋았습니다. 가면을 쓰고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될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 하나의 톱니바퀴로 여겨지는 인간의 모습을 잘 표현해낸 것이 좋았습니다.
자신을 잃고 살아가던 자라 주임이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순간, 깊은 해방감이 느껴진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의 존재로 서는 결말이 조용히 감동을 준다.
마지막 문장에서, 꽃이 아니라 단단히 뿌리내리는 나무가 되었다라는 표현을 보고 여운이 깊게 남았습니다. 인물설정이 잘 되어있어서 소설을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주인공의 이름 세 글자가 아닌 ‘자라 주임’으로 불리는 소재가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이 소재가 김춘수의 꽃과 적절히 어우러졌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별명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서 시선을 끌어당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을 되찾으면서 한층 더 주인공이 성장한 느낌을 받아서 좋았습니다.
초반에는 ‘자라주임‘, ’그‘라는 표현을 쓰다가 사직서를 쓸 때 이름을 적은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꽃‘이라는 시를 사용했지만 ’꽃’에 국한되지 않고 나무라는 소재를 새롭게 사용하여 마무리한 것이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불러주는 이름에 자신을 맞추려 했던 주인공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이름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짜 이름을 되찾는 장면이 인상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