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되지 못한 지네의 최후
하아무
하동 평사리문학관에 문인집필실이 있다. 거기 앉아 있으면 관광객이나 등산객이 오다가다 한마디씩 한다. 글이 저절로 술술 나오겠다고. 맞다. 술술 나온다.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거기만큼 좋은 데도 없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데다가, 섬진강이 내려다보인다. 어머니 품에 안겨 ‘에스’자 몸매의 미인을 내려다보는 형국이다. 비가 올 때면 반투명 커튼을 드리운 듯하고, 안개가 산허리를 휘돌다 문득 산줄기를 어영차 들어올리기도 한다. 보름달이 집필실 마당을 슬슬 쓰다듬을 때면 한 마리 늑대가 되어 산마루를 치달리고 싶어진다. 매화꽃, 산수유꽃, 벚꽃, 배꽃 따위가 흐드러질 때면 뛰는 가슴을 억누를 길 없어 환장한다.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집필실로 한옥을 멋스럽게 지어 운치도 있고 조용해서 더없이 좋지만, 문제는 온갖 벌레와의 동거다. 수많은 길벌레와 날벌레가 무시로 제 방인 양 드나든다. 나방은 제 사랑을 받아달라는 듯 밤새도록 문을 두드린다. 아침에 이불을 걷어내면 도둑 동거를 한 녀석들이 그 속에서 기지개를 켜기도 한다. 앞에는 대나무숲, 뒤에는 밤나무가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원래 그것들의 집이었을 자리에 집필실을 지은 것이니 우리도 일정 부분 양보해야 한다고, 무슨 환경보호론자인 양 작가들끼리 막걸리 한 잔 마시며 씩둑거리기도 한다.
헌데 도무지 이해도, 양보도 안 되는 녀석이 있다. 지네다. 큰 녀석은 20, 30센티미터나 되고 흑갈색 몸통에 선명하게 붉은 머리가 인상적이다. 게다가 30, 40쌍에 이르는 다리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된다. 적응은커녕 마주칠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지고 등골이 오싹해지곤 한다. 늘 집필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나도 그럴진대 주로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여류작가들에게는 오죽하겠는가. ‘오싹’이나 ‘송연’의 수준을 넘어서 한밤중에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냅다 비명을 질러대고 흡사 벌집을 통째로 뒤집어쓴 것처럼 굴기도 한다. 아직 물린 사람은 없지만 나타났다하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얼마 전 한 달을 예정하고 들어왔던 동화작가는 열흘 만에 달아나고 말았다. 자다가 나무를 긁적이는 소리에 눈을 떴는데, 그만 지네와 눈이 딱 마주쳤다나.
하루는 자는데 발등을 찌르는 통증에 잠을 깼다. 엉겁결에 보다가 둔 책으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가만 보니 20센티미터가 넘어 보이는 지네였다. 오른쪽 발등엔 두 개의 빨간 이빨자국이 선명했다. 다시금 통증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이미 치명타를 입은 듯 지네는 괴롭게 몸을 비틀었다. 한번 더 내리치면 묵사발이 될 것만 같다. 나는 다시 한 번 책 든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으허, 분하다.
가만, 지금 네가 말을 한 거냐?
그렇다. 지네가 말하는 거 처음 보나?
처음 본다. 어찌된 일이냐?
공력이 높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가? 헌데, 분하다니?
오늘밤만 넘기면 용이 될 수 있었는데…….
그럼 네가 민담에 나오는 ‘지네 각시’인가?
무수한 그 후손들 중 하나다.
허면, 지금껏 함께 산 서방이 있었단 말인데, 그게 누군가?
아직도 모르겠는가? 잘 생각해보게나.
생각해보라고? 내가 아는 사람인가?
그렇다. 바로……, 너다.
그, 그럴 리가……. 내 마누라가 지네?
그건 그렇고, 넌 나를 이렇게 모질게 내리쳐야만 했나?
민담과 달리, 누구도 나에게 너의 정체를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민담은 민담일 뿐 아닌가.
민담에선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마누라의 정체가 지네임을 알려주고…….
그 아버지도 나의 천적 지렁이가 변신해서 나타난 거지.
어쨌든 지네 퇴치법까지 가르쳐 주지 않나.
하지만 그동안 살아온 정 때문에 서방은 지네를 죽이지 못하고.
그래서 지네는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었지.
아무리 내 정체를 몰랐어도 그렇지, 이건 너무 하지 않나?
뭐가 말이냐?
그래도 넌 환경보호론자를 자처해왔고…….
그랬지.
벌레든 동식물이든 사람과 공생해야 한다고 주장해오지 않았나.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너하고 결혼해 아들딸까지 낳고 살아왔는데…….
사람일 땐 안 그런데, 넌 솔직히 너무 혐오스럽게 생겼다. 그리고 독이 있잖아.
지네한테 물려서 죽은 사람 거의 없다.
거의지 전혀 없는 건 아니지 않나. 내가 죽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 가능성 때문에 나를 그 책으로 짓뭉개겠단 말인가?
안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을 물 것 아닌가.
아니, 난 전혀 그럴 마음 없다.
말은 그리 하지만 지네란 원래 사람을 무는 해충 아닌가.
해충? 우리가 해를 입힌다고?
그래, 지네로 태어난 이상 그런 본성을 버리지는 못할 것이고.
그리 따지면 인간은 우리랑 무어가 다른가. 서로가 속이고 사기치고 협박하고 물고 헐뜯고 해치고 복수하고……. 우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잖은가. 그리 보면 인간도 해충인가?
……그래,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결국 인간의 입장에서 익충이니, 해충이니 하는 것 아닌가.
……뭐, 그렇긴 하지.
헌데, 인간 이외의 것들 입장에서 보면 말이야.
……?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럽게 생긴 게 뭔지 아나?
그…….
세상에서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게 뭔지는 아나?
그…….
그리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그게…….
나는 끝까지 지네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지네도 터진 옆구리를 붙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결국 답을 얘기하지 못하고 절명하였다.
그 후로 다시 지네가 집필실에 나타나도 나는 녀석을 죽일 수 없다.
─『시에』 2011년 가을호
하아무
경남 하동 출생. 2003년 『작가와사회』, 2007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2008년 MBC창작동화대상 수상으로 등단. 소설집 『마우스브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