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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버리미기재~대야산~밀재~조항산~청화산~늘재)(260920. 일)
(낙동산악회 20기 - 21구간)
□ 때 : 2026. 09. 20(일)
□ 곳 : 버리미기재~불란치재~촛대봉~대야산~밀재~고모치[고모령]~조항산~갓바위재~
청화산~늘재
□ 낙동산악회
□ 참여 : 모두 25명
□ 날씨 : 햇볕
□ 길 : 돌길+바윗길+푸석돌 길+흙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6. 09. 20(일) 01:56~14:38(12시간 44분, 일출 보기 위해 머문 시간, 쉰 시간 포함)
□ 푯말에 터 잡아 셈한 거리
○ 버리미기재--0.9km--곰넘이봉--1.1km-불란치재--0.5km--촛대봉--1.2km--대야산--1.1km--밀재--2.5km--고모치--1.2km--조항산--4.3km--청화산--2.1km--늘재(=총 14.9km)
※ 이 거리는 실제와 다를 수 있음.
※ 청화산--늘재 거리를 2.1km라 한 푯말도 있고, 2.6km라 적은 길 푯말도 있다.
□ 일러두기
1. 나온 데[출처]
○ 「실전 백두대간 종주산행」, 조선일보사⇒‘실전 백두’로 적음
○ 지도⇒‘지도’ 로 적음
○ 푯돌에 적힌 산 높이⇒‘푯돌’로 적음
○ 푯말에 적힌 높이 따위⇒‘푯말’로 적음
□ 간추린 발자취(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2026. 09. 20(일) 01:56 버리미기재(480m-‘푯말’) 나섬.
○ ?? 곰넘이봉
○ 02:10 미륵바위
○ 03:25 불란치재
○ 03:45 촛대봉(661m-‘푯돌’, 668m-‘다른 지도’)
○ 05:00~05:10 대야산(930.7m-‘푯돌’), 머묾.
○ 05:25(?) 대간 길을 벗어나 「피아골」 · 「월영대」 쪽으로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 올라옴.
○ 05:45~06:21 (다시) 대야산, 아침밥 먹음
※ 해 뜨기를 기다리며 머묾.
※ 06:10 해 돋음
○ 06:38 「대문 바위」
○ 06:58 밀재(해발 701m-‘푯말’)
○ 07:05 잘루목
○ 07:50~07:57 속리산 전망대, 머묾.
○ 08:15 「마귀할멈 통시바위」 · 「손녀마귀 통시바위」 갈림길
○ 08:37~08:46 「고모치(고모령)」(737m -‘푯말’), 「고모샘」, 머뭃
○ ?? 「왕송 마을」 갈림길
○ 09:20 「의상 저수지」 [「송면 저수지」] 갈림길
○ 09:37~09:55 조항산(鳥項山, 951m-‘푯돌’, 954m-‘푯말’), 머묾.
○ 10:29~10:33 「갓바위재」(769m-‘푯말’), 머묾.
○ 11:52~12:15 머묾.
○ 12:57 「시루봉」 · 「연엽산」 갈림길,
○ 13:11~13:15 청화산(970m-‘푯돌), 머묾.
○ 13:16 헬기장
○ 14:10 「정국 기원단」(靖國祈願壇)
○ 14:38 늘재[늘티](해발 380m-‘푯말’), 산행 끝.
미륵바위
촛대봉
대야산
대야산에서 속리산을 당겨 본 풍경
속리산 앞이 마치 호수 같다
해가 솟을 동쪽
구절초
대야산
대야산을 찾은 다람쥐
해가 돋기 전 바다 같이 보이는 동쪽
으라차차
나무 막대기가 대문바위를 받치고 있다
밀재
속리산 천왕봉, 문장대, 묘봉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백악산
가야 할 조항산 - 가운데서 약간 왼쪽
청화산- 뒤 가운데 쯤
속리산 - 뒤 오른쪽
오리방풀
은분취
당삽주
흔히 '창출' 이라고 한다
비짜루
엉겅퀴 종류인데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다
노랑투구꽃
속리산 산등성(이)
중대봉 - 가운데서 약간 오른쪽
조항산
대간 길에서 뻗어나간 시루봉 - 가운데
연엽산 - 왼쪽
갓바위재
뒤돌아 본 조항산
까실쑥부쟁이
청화산
정국기원단
늘재
□ 줄거리(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2026. 9. 19(토) 22:40쯤 인제대 역을 떠난 버스는 3시간 9분쯤 달려 2026. 9. 20(일) 01:49쯤 버리미기재에 닿았다.
버리미기재(해발 480m-‘푯말’)는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칠성면 경계에 있는 고개로 해발 고도는 480m”, “조선시대에 대야산 북쪽 영남대로가 통과하는 문경 새재가 양반의 길이었다면 대야산 주변의 버리미기재 고개는 배고프고 지친 민초들의 고개였다”. 고 한다.
버리미기재라는 이름은 “옛날에 기근(饑饉/飢饉)이 심할 때 ‘조그만 밭뙈기를 빌어 먹이던 곳’ 또는 ‘보리로 밥을 지어 먹이다.’라는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길 나설 채비를 한 다음 버리미기재를 나서(01:56) 곰넘이봉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났다.
‘청보리’ 총무 님이 ‘곰넘이봉’이라 말했으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버리미기재에서 16분쯤 뒤 「미륵바위」에 닿았다.(02:10)
「미륵바위」에서 1시간 15분쯤 뒤 「불란치재」에 닿았다.(03:25)
간간이 바위 지대를 지나고, 뒤에 오는 대원들을 기다려 같이 움직이면서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어느 대원이 ‘불란치재’란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물었으나 안타깝게도 이름 유래까지는 알지 못한다.
「불란치재」에서 20분쯤 뒤 촛대봉(661m-‘푯돌’)에 닿았다.(03:45)
촛대봉 높이를 668m(‘지도’)로 표기한 기록도 있다.
촛대봉에 이르는 구간 중간에도 바위+밧줄 구간이 있었으나 촛대봉부터는 그 숫자가 늘어나고, 대야산 발부리에 닿으면 본격적인, 거의 곧추선, 수직인 바위 지대를 만난다.
바위에는 밧줄이 걸려 있어 조심스럽게 오른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옛날에 수십 미터 직벽을 오르내렸다.
어느 해와 19기 때는 직벽이 네댓 구간으로 구분이 지어진 듯한 곳으로 오르내린 것 같다.
모르기는 하되 대야산에 이르는 직벽 구간에 두 갈래 길이 있는 것 같다.
19기 때는 그 갈래 가운데 오른쪽으로 올라 상대적으로 수월한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아마 왼쪽으로 올랐다고 생각한다.
대야산 직벽 구간에 사다리가 놓여 있는 것을 이번에 처음 봤다.
마치 설악산 용아장성 들머리 봉정암을 지나면 높다란 사다리가 있고, 일본 북 알프스에 가면 ‘야리가다케’와 그밖에 두어 군데 쇠사다리가 놓여 있는 것을 연상시켰다.
바위 구간을 거의 다 올랐을 때 다리에 쥐가 났다.
바위를 타고 오르면서 꽤나 용쓴 모양이다.
뻣뻣하게 굳은 다리를 주무르고, 발가락을 몸 쪽으로 오그려 고통에서 헤어나려 했다.
촛대봉에서 1시간 15분쯤 뒤 끙끙거리며 대야산(930.7m-‘푯돌’)에 닿았다.(05:00)
나무그늘 님이 건네준 아스피린 두 알을 먹고 증세가 호전되었다.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10분쯤 머물다 대야산을 내려섰다.(05:10)
다리가 괜찮을지 걱정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앞 사람 불빛만 바라보면서 내려가는데, 아무래도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벌바위」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야산에서 20여 분 내려서는데, 앞서 가던 대원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며 올라오고 있었다.
명색이 백두대간 길을 몇 번이나 걸었으면서 백두대간 길을 놓치고, 「벌바위」 쪽으로 내려섰으니 부끄러운 일이었다.
앞서 다리에 쥐가 났으므로 대야산 아래 갈림길에서 대야산에 다시 오르지 않고, 왼쪽, 밀재 쪽 대간 길로 바로 접어들까 생각이었다.
몇 발자국 옮기는데 다른 대원들이 “대야산에 올라 일출을 보고 갑시다...”하고 제안했다.
망설이다가 ‘아스피린’ 약을 믿고 나도 대야산으로 올랐다.
발길을 돌려(05:25)(?) 20분쯤 뒤 다시 대야산에 닿았다.(05:45)
해 뜨기 전 동쪽과 남서쪽 골짜기에 구름이 솜처럼 대지를 덮고 있었다.
동쪽은 바다처럼 보였고, 남서쪽 속리산 방향은 호수 같았다.
대야산에 다시 오르기를 잘했다고 여겼다.
대원들이 그 광경에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조금 전 다리에 쥐가 난 것도 잊을 뻔했다.
해 뜨기를 기다리며 아침밥을 먹었다.
06:10쯤 해가 솟았다.
대원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도 솟는 해와 구름이 낮게 드리운 골짜기와 산등성(이)을 찍어댔다.
그 사이에 다람쥐 한 마리가 바위에 올라 먹이를 찾아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을 몇 십 장 열심히 찍었다.
다시 찾은 대야산에서 36분쯤 머문 뒤 해가 제법 솟은 것을 확인하고 대야산을 되돌아 내려섰다.(06:21)
대야산을 내려서는데 다리가 조금 뻐근하기에 걷는 속도를 줄였다.
대야산을 나서 17분쯤 뒤 「대문바위」에 닿았다.(06:38),
「대문바위」에서 20분쯤 뒤 밀재(701m-‘푯말’)에 닿았다.
밀재는 대야산에서 1.0km, 월영대까지 1.9km 거리에 있다.
밀재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도 가은읍을 넘나드는 고갯마루”, “대야산 등산로가 개척되기 이전부터 충북 괴산 삼송리와 경북 문경 가은읍 완장리를 이어주던 고개였으나 지금은 고개를 이용하는 주민은 거의 없고 오로지 대야산 등산로로만 쓰이고 있다.”
“밀재는 양봉으로 꿀을 채취하던 곳으로 우리말로는 ‘벌(蜜)고개’인 셈이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벌고개’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밀재(蜜재)’ 보다는 알아듣기 쉬울 것 같은 느낌이다.
밀재에서 7분쯤 가면 허리가 잘록한 잘루목이 나오고(07:05), 이 잘루목에서 45분쯤 걸어, 속리산과 백악산이 뚜렷하게 보이는 바위 전망대에 닿았다.(07:50)
다오리 님이 배와 고구마를 삶아 말린 것을 내놓아 맛있게 먹었다.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7분쯤 머문 뒤 바위 전망대를 나서(07:57) 18분쯤 뒤 ㅣ/ 「마귀할멈 통시바위」 · 「손녀마귀 통시바위」 갈림길에 닿았다.(08:15).
이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바로 나아가면 「마귀할멈 통시바위」와 「손녀마귀 통시바위」를 거쳐 둔덕산으로 가는 길이다.
대간 길은 오른쪽으로 내려서야 한다.
이 갈림길에서 「마귀할멈 통시바위」까지는 멀지 않다.
「마귀할멈 통시바위」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문경시 농암면 경계를 이룬 곳이다.
내가 어느 땐가 백두대간 길을 걸을 때 혼자서 「마귀할멈 통시바위」와 「손녀마귀 통시바위」를 거쳐 둔덕산 100여 미터를 앞두고 되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오르지 못한 둔덕산은 2020. 7. 18(토). 일반 산행으로 다녀온 적이 있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솔고개」 쪽에서 둔덕산(969.6m)을 거쳐 「손녀마귀 통시바위」와 「마귀할멈 통시바위」를 바위를 거쳐 밀재를 거쳐 대야산에 올랐다가 경북 문경시 가은읍 「벌바위」 쪽으로 내려갔다.
둔덕산에서 「마귀할멈 통시바위」 구간 여기저기에 무더기로 ‘여로’ 아름다운 꽃이 등산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마귀할멈 통시바위」·「손녀마귀 통시바위」 갈림길에서 22분쯤 뒤 「고모치[고모령]」(737m-‘푯말’)에 닿아(08:37), 「고모샘」에 가서 시원한 물 두 바가지를 마셨다.
처음에는 「고모샘」에 가지 않으려 했으나 다오리 님이 가기에 따라 내려갔다. 가는 길에 지고 다니던 물을 비우고 대야산 석간수 한 병을 채워올 것을 그렇게 하지 않아 아쉬웠다.
내가 여러 번 백두대간 길과 그냥 대야산을 갈 때도 이곳 「고모샘」에서 물을 받은 일은 없었으나, 19기 때 물 한 병을 받은 적이 있었다.
9분쯤 머문 뒤 고모령[고모치]를 나서(08:46) 34분쯤 뒤 「의상 저수지」 [「송면 저수지」] 갈림길에 닿았다.(09:20),
이 갈림길은 「의상 저수지」에서 3.8km, 고모치에서 0.9km, 조항산까지 0.5km 거리다.
「의상 저수지」를 「송면 저수지」로 표기해 놓은 지도가 있다.
2019. 3. 3(일) 일반 산행으로, 늘재~청화산~조항산~송면 저수리~「의상동 왕 소나무」~「옥양교」 구간으로 걸은 적이 있다.
이 갈림길에서 17분쯤 뒤 조항산(951m-‘푯돌’, 954m-‘푯말’)에 닿았다.(09:37)
다오리 · 순애 님이 과일을 내놓아 맛있게 먹었다.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조항산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문경시 농암면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조항산이란 이름은 봉우리가 새의 목처럼 생겨서 붙여졌다고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조항산을 나서 「갓바위재」로 가는 길에는 바위 지대를 지난다.
전에 늘재~버리미기재 쪽으로 백두대간 길을 걸을 때 바위에서 내려서는 지점에 나무가 있었고, 밧줄이 없어 긴장한 적이 있었다. 눈이 내려 얼면 위험한 구간이다.
18분쯤 머문 뒤 조항산을 나서(09:55) 34분쯤 뒤 「갓바위재」(769m-‘푯말’)에 닿았다.(10:29)
지도를 보면, 이곳에서 오른쪽[거의 서쪽]으로 가면 충북 괴산군 청천면 「의상 저수지」[ 「송면 저수지」]로, 왼쪽[거의 동쪽]으로 가면 경북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 「상궁 마을」로 이어진 길이 있다.
4분쯤 머문 뒤 「갓바위재」를 나서(10:33) 1시간 15분쯤 걸어 길 푯말(↑청화산 1.7km, ↓조항산 3.1km, ←궁터 산촌 생태마을 4.7km, ←복호골 삼거리 1.7km)이 있는 곳에 닿았다.(11:48)
길 푯말이 있는 곳에서 4분쯤 걷다가 작은 골짜기에서 시원한 바람이 제법 불어오는 길에 퍼질러 앉아(11:52) 쉬었다.
앞에 다오리 님이 걷고 있었으나 쉰다는 말도 못하고 쉬어 미안했다.
골바람이 솔솔 불어와 시원했다.
김유정은 「소낙비」에서 “골바람은 지날 적마다 알몸을 두른 치맛자락을 공중으로 날린다”고 묘사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런 골바람을 20분 넘게 온몸으로 맞으면서 심민철 대장 · 쏘롱라 님이 각각 내놓은 사과와 포도를 맛있게 먹었다.
시원한 바람을 쐬며 과일까지 먹고 쉬고 있었으니 더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두 분께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무려 23분을 쉰 뒤 길을 나서(12:15) 42분쯤 뒤 ㅜ 「시루봉」 · 「연엽산」 갈림길에 닿았다.(12:57)
여기에 길 푯말(→늘재(우복동) 2.6km, ←시루봉(우복동) 3.1km, ←회란석 6.9km, ↓조항산(백두대간) 3.7km)이 있는데, ‘늘재(우복동, 시루봉(우복동)’이라 써놓았다.
이 갈림길에서 대간 길은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시루봉, 연엽산은 가보고 싶은 곳이었으나 기회가 많지 않았고, 어쩌다 그곳으로 가는 산악회가 더러 있었고, 얼마 전에도 있었으나 늦게 서두르는 바람에 자리가 없어 가지 못했다.
늘재~청화산~시루봉~연엽산~「농암 초등학교」 구간을 걷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백두대간 길과 일반 산행으로 몇 번이나 지나간 곳인데, 19기 때 아무 생각 없이 시루봉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먼저 와 있던 ‘승승장구’ 님이 늘재 쪽을 가리켜 주었던 일이 생각났다.
대간 길은 ㅜ 「시루봉」 · 「연엽산」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이 갈림길에서 14분쯤 뒤 청화산(970m-‘푯돌’)에 닿았다.(13:11)
청화산 푯돌 앞에 있는 길 푯말은 글자가 지워진 채 몇 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그대로였다.
4분쯤 머문 뒤 청화산을 나서(13:15), 1분쯤 뒤 헬기장에 닿았다.(13:16)
헬기장에서 37분쯤 뒤 「정국 기원단」(靖國祈願壇)에 닿았다.(14:10)
정국(靖國)이란 낱말은 “어지럽던 나라를 태평하게 함”《여기까지 표준 국어대사전에서 따옴》이라고 하므로, ’어지럽던 나라를 태평하기를 빌면서 세운 단(壇)인 셈인데, 백두대간 길, 늘재~청화산 사이 그곳에 세웠는지 모를 일이다.
나라가 태평하면 좋은 일이고, 그런 뜻을 담아 푯돌을 세웠으니 고맙게 받아들여야 겠다.
이 시설을 언제 세웠는지 모르겠으나, 일제 강점기 때 세웠다는 확인되지 않은 설도 있어 기분이 찜찜하기도 했다.
정국기원단에 여성 한 사람이 기원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가 “사진 찍어 드릴까요?”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괜히 말을 걸면 불편해 할까 봐....
정국기원단에서 28분쯤 뒤 늘재에 닿아(14:38), 산행을 마쳤다.
늘재(380m-‘푯말’)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과 충북 괴산군 청천면을 연결하는 32번, 49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 “‘길게 늘어진 고개’”를 뜻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늘재에는 아주 키가 큰 ‘배두대간’ 푯돌과 성황당이 있다.
“늘재는 992번 지방도로(충북애서는 592번 지방도로)가 가로지른다”
“늘재는 경북 상주시에 속하고, 이곳 사람들은 ‘늘티’라고 부르고 있다.”
※ “큰 음나무(1982. 10. 26) 보호수 지정), 수령 약 320년”《「실전 백두...」에서 따옴》
이 되었다 했으니 지금쯤은 나무 나이가 340년 이상 되지 않았나 싶다.
전에는 음나무를 보았으나, 19기 때와 이번에도 음나무를 미처 보지 못했다.
지난 19기 때 늘재에서 산행을 마치고, ‘승승장구’ 님이 사서 얼음에 쟁여둔 음료수를 시원하게 마셨다. 이태 전 일이다.
회장 님, 대장 세 분, 기사 님 수고했고, 대원들 바위 구간 오르내리느라 수고 많이 했다.
늘 수고 많은 청보리 총무 님 고맙고, 얼음과자 사 준 나무그늘 님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감미로운 하모니카 음악을 연주한 유도사 님에게 꾸벅하고 인사한다.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것이나, 내가 아는 것만 기록함)
○ 노린재나뭇과 갈래 : 노린재나무(?)
○ 녹나뭇과 갈래 : 비목나무, 새앙나무[아구사리, 생강나무, 단향매(檀香梅)]
○ 단풍나뭇과 갈래 : 단풍나무
○ 마편초과 갈래 : 누리장나무, 작살나무[자주(紫珠)](?)
○ 목련과 갈래 : 함박꽃나무
○ 물푸레나뭇과 갈래 : 물푸레나무, 쇠물푸레나무[쇠물푸레]
○ 범의귓과 갈래 : 산수국
○ 소나뭇과 갈래 : 소나무
○ 옻나뭇과 갈래 : 개옻나무
○ 운향과 갈래 : 초피나무[제피나무]]
○ 자작나뭇과 갈래 : 개암나무(?), 사스래나무, 서어나무
○ 장미과 갈래 : 국수나무, 산딸기나무[산딸기], 팥배나무[감당 01(甘棠), 왕잎팥배, 왕팥배나무
○ 진달랫과 갈래 : 산앵두[산앵두나무, 꽹나무, 당채, 산이스랏나무, 이스랏나무, 천금동], 진달래[진달래꽃, 진달래나무, 두견, 두견화, 산척촉], 철쭉[철쭉나무, 척촉(躑躅), 산객(山客)]
○ 참나뭇과 갈래 : 굴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 측백나뭇과 갈래 : 노간주나무
○ 콩과 갈래 : 싸리(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나무
○ 포도과 갈래 : 머루[머루나무, 산머루, 목룡(木龍)]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성 식물
○ 노박덩굴과 갈래 : 미역줄나무[미역순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식물
○ 볏과 갈래 : 조릿대
◎ 이 구간에 있었던 풀
○ 국화과 갈래 : 구절초, 까실쑥부쟁이, 단풍취, 당삽주[용원삽주, 참삽주, 창출], 미역취, 산국[들국, 들국화, 산국화, 야국](?), 쑥부쟁이(?), 우산나물, 은분취(?), 참취,
○ 꿀풀과 갈래 : 오리방풀(?)
○ 마디풀과 갈래 : 여뀌, 흰여뀌
○ 마타릿과 갈래 :마타리
○ 미나리아재빗과 갈래 : 노랑투구꽃, 은꿩의다리
○ 백합과 갈래 : 둥굴레, 비비추, 비짜루[닭의비짜루], 산부추, 선밀나물, 여로 01(?), 원추리
○ 봉선화과 갈래 : 물봉선화
○ 산형과 갈래 : 기름나물(?)
○ 앵초과 갈래 : 까치수염
○ 장미과 갈래 : 돌양지꽃(?)
○ 현삼과 갈래 : 꼬리풀(?), 며느리밥풀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1. 쥐가 나다
대야산 수직 바위 구간을 거의 오른 뒤 다리에 쥐가 나서 고통스러웠다.
평소 운동 부족이 몸으로 나타난 것으로 짐작한다.
대야산에서 내가 쥐가 난 것을 들은 나무그늘 님이 아스피린 두 개를 주기에 사양 않고 넙죽 받아 바로 먹었다.
곧 효과가 나타났다. 나무그늘 님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나는 약이나 주사를 싫어해서 여간해서는 약을 먹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으려 하는데, 대야산에서 조항산, 청화산을 거쳐 늘재 가파른 길을 갈 생각을 하니 앞뒤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몇 년 전 백두대간 중재~백운산~영취산을 지나, 장안산~번암리 구간을 일반 산행으로 걸은 적이 있었다.
영취산에서 무룡고개로 내려섰다가 장안산을 오르는데 다리에 쥐가 나서 힘든 적이 있었다.
그때 ‘홍아’ 님이 ‘근육 이완재’를 주어 고맙게 먹었고, 장안산에서 벗이 내 다리를 주물러 어려움을 덜었던 일이 있다.
그때 동행했던 00 님도 많이 걱정해 주었다.
내가 몇 십 년 산에 다니면서 쥐가 나기는 두 번째였다.
다행히 바위를 오르면서 쥐가 나지 않아 다행이라 여긴다.
안 그래도 내 등 가방[배낭]이 크고 무겁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제 무거운 등 가방에 사냥 잘하는 고양이 한 마리 넣어 업고 다녀야 할까 보다.
2. 매듭
가파르거나 수직을 이루는 바위를 오르내리려면 튼튼한 밧줄이 필요하다.
밧줄은 우선 굵어야 하고, 튼실해야 하고, 바위나 나무나 기타 쇠 고정 장치에 밧줄 끝을 단단히 묶어야 한다.
사람 힘으로 묶는 것보다는 쇠고리 같은 곳으로 단단히 묶어야 한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이 밧줄에 촘촘하게 매듭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
매듭은 오르고 내릴 때 밧줄을 잡은 손이 아래로 미끄러지지 않게, 몸을 알맞게 지탱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안전장치다.
이번에 수직 구간에 묶어둔 밧줄 매듭이 듬성듬성 있는 것이 있어 조심스럽게 오르내렸다.
3. 바위+밧줄 구간
산에 다니다 보면 가파르거나 수직에 가까운 바위에 긴 밧줄이 걸려 있는 곳을 지나야 하는 일이 더러 있다.
백두대간 길에는
○ 늘재~속리산 문장대 구간
○ 대야산~촛대봉 구간
○ 지름티재~희양산 구간
○ 구왕봉~지름티재 구간이 까다로운 구간이다.
일반 산으로는
○ 농바위~거대하고 가파른 바위 구간~중대봉~대야산 구간
○ 악휘봉~시루봉~(덕가산~되돌아 나옴~칠보산~보배산) 구간 가은데 악휘봉에서 시루봉 가는 구간에 긴 밧줄이 걸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밖에도 까다로운 바위+밧줄 구간이 많이 있으므로 늘 주의할 일이다.
4. ‘산 욕심’
나는 ‘산 욕심’이 많다.
지금은 그 욕심을 많이 줄였으나 전에는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다니면서 목적한 산에서 그 옆에 있는 산 두어 개는 더 왔다 갔다 했다.
대간 길을 걸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둘레 산등성(이)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저곳에 가 봐야 하는데, 언제쯤 가 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욕심을 내면 아내가 타박한다.
“한국에 아직도 가 보지 않은 산이 있나요?”
“당신이 아직 십대인 줄 알아요?...”
산에 다니면서 몇 십 년 아내 고생을 시켰으니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아내 말을 수용하여 욕심을 줄이고 있으나 아내는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5. 사진 찍을 대상은 넘치고...
한 번에 사진을 500 장면을 넘게 찍으면 사진 선별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무한정 다 올릴 수는 없고, 추리기 작업이 만만치 않다.
어떤 것은 올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적게 찍으려 하지만, 현장에서는 한 장이라도 더 담고 싶다.
욕심 조절이 쉽지 않다.
우리네 삶도 그럴 것이다.
욕심을 제어하지 못해 곤란한 일도 생기고, 더러는 낭패와 곤욕을 겪기도 한다.
‘적당히’‘’“가 중요한데, ‘적당히’ 중요함을 알면서도 욕심이 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쉬운 것이 인간이 가진 약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스 · 로마 신화」 같은 신화를 잘 모르지만 신화에서는 신도 분노하고 화를 주체하기 힘든 면도 있는 것 같다.
하물며 인간일진대 욕심 누르기가 그렇게 쉽겠는가? 하고 ‘자기 합리화’, ‘자기변명’을 한다.
6. 우복동(牛腹洞) 이야기
우복동을 설명하는 기록을 옮긴다.
※ 청화산과 우복동
“청화산 동쪽 시루봉은 그 남쪽 도장산(828m)을 아늑하게 감싸안고 분지형을 이루고 있다. 바로 이곳을 세상에 둘도 없다는 명당 우복동(牛腹洞)이라 한다. 우복동은 지리산의 청학동(靑鶴洞)과 경기도 가평군 어디에 있다는 유교사회의 이상향인 판미동(板尾洞)과 함께 전설적인 이상향이다. 이 우복동은 평생을 선비가 살 만한 땅을 찾아다녔다는 이중환(李重煥)이 〈택리지(擇里志)〉에서 ‘청화산은 뒤에 내외의 선유동을 두고 앞에는 몽유동에 임해 있다 앞뒤편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 산의 높고 큼은 속리산에 미치지 못나 속리산 같이 험준한 곳은 없다. 흙봉우리에 돌린 돌이 모두 수려하고 삼가가 적고 모양이 단정하고 평평하여 빼어난 기운이 흩어지지 않아 자못 복지(福地)다’ 라고 적고 있다. 청화산과 도장산 사이 우복동에서 시작한 하천을 용유동 쌍룡계곡이라 하는데....”《여기까지 「실전 백두대간 종주산행」, 조선일보사에서 따옴》
우복동에 한 번 가보고 싶다.
시대가 변했으나 유교사회 이상향(理想鄕)이라는 우복동은 아직도 이상향일까?
우복동에 가서 살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 다른 사진은 아래 제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angol-jong

첫댓글 한길,행님.!!
일단 고생했어요. 알바에 다리 쥐까지,, 그래도 행님은 복이 많은 참 많은 편입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전국 산을 가보았기에 말입니다. 그저 부러을 뿐입니다. 나도 행님따라 꾸준히 갈 것입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시고 다음 산행에서 만나요.
우리나라에 크고 작은 산이 3,000곳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 많은 산을 다 가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조금 이름 있는 산은 조금 다녔으나 모든 산을 다 다니지는 못했지요.
크고 작은 산이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생각입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한가위 식구들과 넉넉하고 의미있게 맞기 바랍니다.
즐감하고 수고많이하셨습니다
항상 안즐산하세요
좋은 자료 귀중하게 활용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가위 식구들과 의미 있고 즐겁고, 건강하게 맞기 바랍니다.
🍂☕️
새벽 2시도 안 된 시각, 버리미기재의 차가운 정적을 깨고 시작된 발걸음이 대야산의 아찔한 수직 암벽을 타고 넘어 늘재에 이르기까지…
그 거친 숨소리와 묵직한 몰입감이 글로 온전히 전해져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 깊은 곳까지 풍요로워지는 한가위 잘 보내시고,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발 빠른 왕서방 님을 짧은 시간이라도 가까이 할 수 있어 기분 좋았습니다.
내 사진에 담은 님 모습. 포근하고, 아침 저녁 얼굴을 맞대는 이웃처럼 느꼈고, 듬직했고, 또한 훤칠한 키에 보기 드문 미남이었습니다.
멋진 님. 모습을 담을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한가위 식구들과 오순도순 깨알 쏟아지는 행복을 품기 바랍니다.
대야산이 멋있는 것은 형님이 계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욕심만으로 산을 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미 산을 닮아있기에 가능한 형님의 역사이겠지요
즐감합니다
고맙습니다
대야산 진면목을 구경하기 싶으면 둔덕산~마귀할멈통시바위~대야산 구간을 걸어보기를 권합니다.
또 한 군데 청화산과 조항산 중간 갈림길~시루봉~연엽산 구간을 걸어보고 싶은데 아직 가지 못해 아쉽습니다.
대간 길이나, 일반 산행으로 대야산을 여러 번 갔는데, 대야산에서 대간 길 밀재와 대간 길 벗어나 월영대로 내려가는 길을 헷갈렸으니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헛 걸음을 했기에 다시 대야산에 올라 멋진 해돋이와 구름 자락이 낮게 깔린 멋진 풍경을 맛보았으니 다행이었습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시대 따라 한가위 풍습이 많이 바뀌어도 식구들과 넉넉하고 의미 있게 맞기 바랍니다.
큰형님의 산행기를 읽노라면, 그날의 힘들었던 산행이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복귀가 됩니다. 전반 5키로 정도를 진을 빼듯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갈길이 먼, 후반 대간길이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물며, 근육경련까지 경험하시면서, 완주를 하셨다니, 참으로 대단하시다는 말밖에는요. 큰형님의 수고로 만들어진 사진 한컷 한컷이 더 귀중하고, 소중한 추억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어느곳 하나, 평평한 흙지면이 없었던것 같아, 발바닥은 불이 났고, 특히 청화산 하산길은 기대를 벗어나, 더 끔찍했던것 같습니다. 하산하자마자, 회장님을 대면하면서 나온 첫 일성이 20km이내 대간 산행중 가장 힘들었던 코스였던것 같다고 했었습니다. 여느하산길처럼 산행이 곧 끝난다는 기대감이 앞섰던 만큼, 심리적인 실망감으로 하산길이 더 험난해 보였던것 같습니다.
간간이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때면, 그냥주저앉아 땀을 식히기도했습니다.
큰형님 산행과정을 닮은 저의 모습을 보고선, 웃기도 했습니다. 여명과 일출, 멋진뷰, 수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은듯 합니다. 힘든 코스 수고 많으셨습니다.
추석 명절, 웃음 가득한 즐거운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여러 번 오르내린 대야산 바위 구간이었으나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운동 부족이 겹쳐 바위 구간에서 팔에 힘을 주고, 어디 적당하게 발 디딜 틈이 없어 나도 모르게 바둥거렸나 봅니다.
나무그늘 님이 건넨 아스피린 덕을 톡톡히 보았고, 결과적으로 쥐가 나서 대야산에 다시 올라 황홀한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걸 인생 길 '새옹지마'라고 하면 너무 비약한 것이지만, 마음이 부자가 되었습니다.
36년 전 지리산 이어걷기할 때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은 뒤 연하천 대피소에서 추위에 떨면서 라면을 먹은 뒤 길을 나섰을 때 내가 구름을 탄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몇 해 전 1월 1일 한라산에서 해돋이를 맞을 때 한라산 꼭대기를 제외한 제주 전역이 구름에 싸여 내가 구름 위에 올라탄 황홀함을 느낀 일이 있었습니다.
앞에 든 두 경험 다음으로 멋진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골 바람. 가슴 깊은 곳까지 식혀주는 시원함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입니다.
바쁜 길에 느끼는 '망중한' 입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한가위. 식구들과 넉넉하고 뜻 깊게 맞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