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정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저 유명한 나자렛의 몽키스패너부터 시작하여 예수 락커론에 이르기까지, 중동에서 폭풍처럼 살다 간 이 청년에 대한 연구는 많은 너드들의 심장에 불을 지펴왔죠.
최근 저는 몇 편의 문건 -무협지로 불리는-을 검토하던 중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로마 무림의 사파 교주였다."
여기서 사파라 함은 사악한 문파라는 뜻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한족의 문파를 정파, 이민족의 문파를 사파로 불렀던 것에서 차용하여, 로마의 무림 문파도 로마인(라틴족)의 문파를 정파, 그 외의 문파를 사파로 불렀으리라는 추측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목수의 집안에서 아버지를 모르는 아들로 태어난 예수는 어려서부터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자연히 질풍노도의 시기에 일진 생활도 했겠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초보적인 무공을 익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막에서 기연을 만나 40일간 은둔고수로부터 사파의 상승무공을 전수받고 고수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죠.
성경에는 이 내용이 마귀의 시험을 받은 것으로 변주되어 있는데, 흔한 무협영화에서 기연으로 만난 스승이 제자를 얼마나 심하게 굴리는가를 보면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이 시기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던지 훗날 예수는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무공구결에 부득불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옵고"를 넣게 됩니다.
아무튼 갑자내공을 얻게 된 예수는 성전문파의 간판을 깨고 좌판을 뒤엎어 위명을 떨쳤고, 한편으로는 저잣거리에서 싸구려 무공을 펼치던 출신을 잊지 않고 거리의 협객인 나자로가 주화입마에 빠져 폐인이 되자 활공으로 기혈을 다스려 살려 내는 등 갈릴리에서 많은 선행을 합니다.
이렇게 인심을 얻은 예수는 마침내 제자를 모아 자신의 무공을 전파하는데, 처음 도장을 열자마자 제자가 5,000명이나 모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먹일 밥이 없자, 앞에서 나자로의 기혈을 뚫어준 것에서 알 수 있듯 의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예수는 빵 5개와 물고기 12마리로 즉석에서 내단을 만들어 모든 이들이 허기를 잊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는 특히 경공에 뛰어났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수준은 배를 타고 가다가 파랑이 심해 배가 흔들리는 와중에 등평도수로 산책을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결의 심오함을 보여주는 것이, 이 시점에서 등평도수를 사사받은 제자 중 구현이 가능했던 것은 12호법 중에서도 수제자인 베드로 뿐이었고, 그 베드로 조차도 내공심결에 대한 자신감 결여로 중간에 실패해 버리죠. (물론 입지에 오른 고수였던 예수는 등평도수 중에 물에 빠진 베드로를 건져서 들쳐 업고 배로 돌려보내 줍니다.)
여담입니다만, 등평도수에 실패했던 베드로는 검술이 뛰어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정파(로마가 인정한 문파) 장문인이 예수를 잡으러 오자 그 수하의 귀를 발검과 동시에 베어버렸거든요. 귀를 단번에 쳐 내는 칼놀림도 예사롭지 않지만, 당시의 조악한 야금술로 만들어낸 칼을 가지고 면도칼로나 할 법한 예리한 베기를 구사한 것은 검기나 검강이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일겁니다. 물론 예수에게 배운 거겠죠. (예수가 검술을 가르쳤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검을 사 오너라. 돈이 없으면 외투를 팔아서라도 사 오너라."고 시켰던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문파의 세를 불려나가던 절세고수 예수였지만 사파라는 한계를 넘지 못하고 결국 정파들의 무림맹에 막혀 관헌들에게 무공을 폐해지고 십자가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말죠. 하지만 운기행공으로 폐해진 혈도를 뚫었는지, 아니면 예수에게 창술을 배웠던 로마병사의 검기점혈로 막힌 혈도가 뚫렸는지 죽은 줄 알았던 예수는 바위굴에서 운기조식하여 다시 일어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세상이 싫어진 예수는 사막에 있던 스승에게 돌아가 은거하기로 결심하고, 잠시 제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세상 끝까지 무공심결을 전하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장기인 경공술로 하늘을 날아 사라지죠. (이 때 발휘한 무공이 어기충소인지 능공허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생애를 정리하고 보니 다빈치 코드에서 제기된 의문이 풀립니다.
"왜 예수는 결혼을 하지 않았는가?" -> 강호인이니까. 강호인은 가족을 두지 않으니까요.
역사는 기록으로 전달된다지만, 기록은 상당히 많은 사실들을 배제시키면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마치 기레기들이 사건의 본질을 빼 놓은 기록으로 역사를 전달하려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당대의 기록자들이 의도적이건 의도적이지 않건 중요한 사실들을 누락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때로는 구전이 기록이 누락시킨 사실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는 그림으로 변주되어 기록될 수도 있는 것이고요.
제 눈을 붙잡은 그림은 카라바죠의 "성모와 아기예수 곁에 있는 성 안나"였습니다. 17세기에 그려진 이 그림에서 마리아는 발등에 어린 예수의 발을 올린 채 뱀의 머리를 밟아 부수고 있습니다. 히브리 신앙에서 뱀은 악마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뱀의 머리를 부수는 것은 곧 악에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 것이 됩니다. 즉, 무력에 의한 정의구현인 것이지요.
여기서 저는 이 그림이 작가만의 독특한 표현인지 아니면 과거 수백년간 전승되어 온 기록되지 않은 전승을 담아낸 것인지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된 이콘들을 찾아 보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진실에 근접할 수 있었습니다. 악마의 머리를 밟아 부수는 마리아의 그림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려져 왔던 것입니다.
16세기에도 곤(棍)을 들고 사탄을 참교육 하는 용맹한 마리아의 이콘이 있었습니다. 이미 제압되어 기를 못 펴는 사탄과 곤을 치켜들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대비되는 구도입니다.
더 오래 전 14세기에도 유사한 이콘이 있었습니다. 사탄의 팔을 관절기로 제압한 후 채찍으로 내려치거나, 권법으로 사탄을 제압거나, 유술로 엎어놓고 목을 꺾는 등의 용맹한 마리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악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협객으로서의 마리아는 이미 중세부터 묘사되어 왔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카라바죠의 그림은 화가의 상상력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전승을 옮겼다는 것이지요.
이 그림으로 돌아와서 여기서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마리아가는 뱀의 머리를 밟을 때 혼자 밟고 있지 않습니다. 어린 예수의 발을 발등에 올린 채 밟고 있지요. 이는 마리아가 단지 악을 징벌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을 예수에게 가르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에게 무공을 전수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저의 오류를 수정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는 광야에서 스승을 만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무공을 전수받아 이미 상승고수의 반열에 올랐던 청년 예수는 무림출사의 첫 관문으로 광야에 숨어 있던 마리아의 숙적을 광야에서 40일간 추적하여 궁지에 몰아넣었고, 세 명으로 이루어진 적의 무리들은 마리아의 아들에게 각기 다른 뇌물을 바치며 목숨을 구걸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리아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가브리엘이라는 천사에게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이 (뭐 하나씩 꼭 빼놓고 전하는)천국의 전령은 양치기 소녀에 지나지 않던 잔다르크를 무쌍의 기사로 변모시킨 천사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잔다르크가 그러했든, 마리아도 십대의 나이에 비급을 전수받아 절정의 고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리아도 모종의 이유로 자신을 숨겨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천하를 뒤흔들 상승무공을 갖췄지만 일개 목수에게 몸을 의탁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결혼 전에 예수를 잉태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아기가 로마 무림에서 사라져야 할 혈통의 마지막 후손이었을 지도 모르지요.
평범한 목수와 결혼하여 평범한 아낙으로 위장한 채 살아가던 마리아.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계속해서 찾아오는 자객들의 뚝배기를 깨며 힘겹게 아들을 키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아들을 절정 고수로 길러냈고, 아들이 장성하자 마침내 그를 보내 적의 본거지를 부수는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이제야 몇 가지 아귀가 맞는 부분이 생깁니다.
요셉은 왜 혼외자를 가진 마리아를 소박놓지 않았나? ---> 개겼다가 뚝배기 깨질까봐. 해로데는 왜 예수 가족을 추적했나? ----> 나중에 마리아가 찾아올까봐. 예수는 왜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나? ---> 나중에 걸리면 어떻게 될 지 알고 있으니까. 예수는 왜 부활하자 마자 동굴에서 도망쳤나? ---> 엄마가 오고 있으니까.
어린 나이에 절세고수가 되어 기적과도 같은 행장록을 남긴 예수였지만, 그도 마리아는 두려웠던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 그녀는 당대 최강의 고수였으며 로마 무림의 공포로 군림하던 여성이었습니다. 교단과 황실의 추격을 받았지만 결국 제자이자 아들인 예수를 키워 그 본산을 박살냄으로써 자신과 가정을 지켜냈습니다. 어쩌면 십자가에서 죽어가던 예수에게 활공을 한 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없는 로마 병정이 아니라 마리아였을 지도 모릅니다.
p.s.
여성의 지위가 낮던 당대의 한계로 역사적 기록에는 그 무용을 남기지 못하였지만, 정신은 맥맥이 이어져 왔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무공은 막달레나를 통해 전승되어 4~5세기 무렵에 걸출한 고수를 배출했으니까요. 그게 누구냐면...
안티오카가 낳은 오함마의 성녀 마르가리타입니다. 함마를 높이 들고 사탄의 뚝배기를 타격하는 그녀의 위용을 보시죠. 그리고 하늘 높은 곳에서 초식을 읊어주는 마리아도 같이..
하나 더......... 예수의 청년 시절 행적은 성서 어디에도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수 많은 기적을 보여주면서 신의 독생자라 불리우던 예수인데 어이하여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청년 시절의 행적이 보이지 않을까요?? 이 의문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어질 2편에서 다루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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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이 읽히는데 재미있다. 독창적이다. 몇가지의 추론은 추적하는 맛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