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세우기 세션에 오신 70대 할머니의 사연에 가슴이 무척이나 아프고 먹먹해졌다.
할머니의 첫 아들은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똑똑한데다, 미술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고, 한 마디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예쁘고 영특한 아이였다고 한다. 4살 때까지 품에 끼고 젖을 물리며 애지중지 키운 귀하디 귀한 아들이었다. 모진 시어머니의 구박도 아기를 보며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애기가 8살 되던 해 양어장에서 놀다 빠져 죽었다. 양어장에 같이 들어간 다른 동네 아이들은 멀쩡히 다 살아나왔는데, 할머니의 아들과 밑에 집 귀한 막내 아들, 둘만 죽었다고 한다.
황망한 일을 겪으니 눈조차 감을 수가 없더란다. 남편은 돈 벌러 객지에 나가 없고, 죽은 아들 밑에 동생인 갓난쟁이를 데리고 3일 동안 눈도 못 감고 정신이 나가 있었다. 보다 못한 동네 사람들이 와서 밥을 해주고 주사도 놔줘서 겨우 살아났단다.
죽은 아들이 너무나 그리워서 또래 아이들이 학교 다니는 모습이라도 보려고 등굣길을 몰래 훔쳐보면 철없는 아이들이 할머니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 (죽은) OO이 엄마다!"라고.
아들이 죽은 후 할머니는 미친여자처럼 살았다고 했다. 또 아기를 낳아야 슬픔이 가신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6년만에 다른 아들을 낳았고, 모두 삼남매를 키워냈다.
하지만, 할머니는 수면제를 먹어도 듣지 않는 불면증 때문에 지금도 잠을 못 자서 고통스럽다고 하셨다.
가족세우기 촉진자인 유명화 선생님이 할머니앞에 죽은 아들 대역을 세우고 다음과 같이 말하도록 했다.
"아들아, 너의 결정을 존중한다. 너는 갔어도 언제나 내 가슴에 함께 있다. 엄마는 여기서 조금만 더 살다 너한테 갈게"
꽃봉오리도 생기기 전인 어린 새싹같은 나이에 무지개 다리를 건너가버린 아들. 정말 그 애기는 자신의 결정으로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난 것일까? 죽기를 결심하고 양어장에 스스로 들어간 것일까? 그것이 아들의 선택이었는지, 원가족과의 얽힘에서 비롯됐는지, 전생의 카르마였는지, 아니면 정말 재수가 없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세션이 끝나고 하신 유명화 선생님의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을 울렸다.
" 우리에게는 죽음에 대한 이런 저런 상이 있어요. 일찍 죽으면 나쁘다. 사고를 당해서 죽으면 나쁘다... 일찍 죽을 수도 있고, 늦게 죽을 수도 있고,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병들어 죽을 수도 있고, 인간사에 얼마나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납니까? 단지 그게 나한테 일어난 거예요."
이런 비극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은 자의 운명에 있는 그대로에 동의하고 물러서는 일이다.
유선생님도 막내 아들을 8살때 교통사고로 잃으신 후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통해 이런 말씀이 나오는 것이리라.
다음 날 가족세우기 세션에 다시 오신 할머니는 오랜만에 잠을 푹 주무셨다며 좋아하셨다.
가족세우기를 공부하면서 생명이라는 것이 인간의 손에 있지 않다는 자명한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적인가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동안 시험관 시술을 9번이나 하고도 임신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생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어떤 여자들은 전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엄마가 될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애기가 덜컥 덜컥 생길까?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인간의 바람과는 너무나 무관할 수 있음을, TV나 인터넷상에서 수시로 보게 된다.
10대의 어린 미혼모, 불륜으로 유부남의 아이를 가지게 된 상간녀, 강간이나 근친성폭력으로 임신한 여성, 남편이 정관수술을 했는데도 4번째 아기를 임신해서 낙태를 고민하는 다둥이맘, 나이트에서 만나 하룻밤 불장난으로 임신을 한 여자 등등...
역사적으로 수없이 일어난 전쟁을 통해 적군에게 강간당하여 임신하고 출산한 여성들은 또 얼마나 많았으랴?
이들에게 임신이란 축복이 아니라 저주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일이고, 임신을 될까봐 몹시 두려워했을 터인데 어찌하여 이토록 자연스럽게 생명이 잉태 되었단 말인가?
반면 난임 인터넷 카페에 가보면 나처럼 시험관 시술을 수차례 하고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지옥같은 고통속을 헤매는 여성들의 사연도 수두룩하다.
시험관 시술이 10회는 기본이고, 블로그 이웃중에는 40번이 넘어서 아예 횟수를 세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임신에 계속 실패하면서, 그리고 가족세우기를 공부하면서 생명이란 것이 인간의 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간절히 기도하고 울며불며 하늘에 매달려도 나에게 자식의 인연이 없다면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반면 내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천지운행의 법칙에 따라 때가 되어 어느날 갑자기 선물처럼 아기가 올 수도 있다.
생명의 신비함과 존귀함을 사유하던 어느 날, 나도 아주 운좋게 지금까지 목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10살 때 온 가족이 여름에 홍천강에 놀러갔다 죽을 뻔한 기억이다. 강에서 놀다가 급류가 흐르는 곳에 빠져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물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옛부터 물귀신 이야기가 왜 전해내려오는지 온몸으로 체험했다. 정말로 수십개의 갈코리같은 손이 발을 아래로 쭉쭉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죽음의 공포속에서 사투를 벌이던 그 순간, 4살 위 중학생인 오빠가 내 몸을 확 잡아채서 끌어올렸고,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만약 오빠가 나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10살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하고 지금 이곳에 없을 것이다.
만약 그 날 오빠가 함께 홍천강에 가지 않았더라면, 함께 여행을 갔더라도 오빠가 다른 쪽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더라면, 옆에 있었더라도 오빠가 물을 무서워하여 물에 빠진 여동생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태였더라면....
나라는 작은 생명체를 살리기 위해 주변 상황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딱 들어 맞았음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또 하나는 어머니와 오빠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일이다. 셋방살이를 하며 가난한 새댁으로 살던 엄마가 첫 아기인 오빠를 데리고 잠을 자다가 방구석에서 가스가 새어나와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아버지는 일하러 나가서 집에 없고, 멀리 사시던 외할머니가 우연찮게 딸네 집에 들렀다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딸과 손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황급히 밖으로 빼내어 동치미 국물을 먹여서 살렸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가 가끔 하셨는데, 어릴 때는 전설의 고향같은 옛날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부모와 자식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끈이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 외할머니가 연락도 없이 멀리 떨어진 딸네 집에 들러서 마침 그 시간, 그 순간에 오게 된 것인가 놀라운 일이다.
만약 외할머니가 그 때 오지 않으셨더라면, 어머니가 나를 낳기전이므로 나도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경험처럼, 피로 맺어진 가족의 사랑이 생명을 살리는 힘이 되기도 하나, 이조차도 무력해지는 죽음이 또 얼마나 많은가?
얼마전 한강에서 실종되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대학생의 이야기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공부 잘하고 착하고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 보이는 의대생인 외아들이 하루 아침에 황천길로 떠났을 때, 그 부모님은 앞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까?
아무리 자식이어도 단지 부모의 몸을 빌려서 이 세상에 태어났을 뿐, 완전히 개별적이고 다른 존재인 것이 부모자식 관계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그들의 일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함께 따라죽고 싶은 충동이 자연스럽게 수도 없이 일어날 것이다.
앞으로 과학 기술이 더 발달하면 영화 매트릭스처럼 정자와 난자를 모체의 자궁과 같은 기계속에 집어넣고 다량의 복제인간을 만들어내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공장에서 기계를 찍어내듯이 엄마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를 인간복제품들이 만들어질 지도 모른다.
한 발 더 나아가 죽은 사람의 DNA를 복제시켜 다시 부활시키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진리처럼 회자되는 '생명은 인간의 손에 있지 않다'라는 명제가 과거의 유물속으로 묻히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을까?
미래에 생명에 대한 개념과 태도가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 주어진 생명에 동의하고 고개숙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언제 어느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 있는 것이 생명이다.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한순간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입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긍정확언을 하고, 착하게 산다고 이런 일들을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 밖에 없기에 내 인생에 좋은 것 , 나쁜 것을 가감없이 받아들이겠다는 태도가 나를 생명력 있는 삶으로 이끌 것이다.
인생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울고불면서 죽네 사네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 뜻대로 하려는 성향이 엄청나게 강했기에, 이 공부를 난임의 경험을 통해 아주 하드 트레이닝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의도없이, 기대없이, 내려놓고, 그냥 합니다.
나는 내 삶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두 사랑하고 신뢰하고 허용합니다.
나에게 일어난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가 당연하고 일어나도 됩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됩니다.
삶에 원하는 일,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라고,원치 않는 일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문제는 여기에 집착할 때 탐진치(욕망과 분노와 어리석음)라는 지옥 3종 선물셋트를 넘치도록 받으며 허우적거리다 이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영성이 있는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났으니, 여력이 되는 만큼 깨달아서 행복하고 가볍게 살다가 지구를 떠나고 싶다.
https://blog.naver.com/starhealer1004/222403123740
출처 네이버 블로그 <창조와 치유의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