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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모모는 일단 이 책의 주인공, 여자아이이다. 자신의 나이를 모르며 고아이고 어느 날 갑자기 어느 가난한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고대 원형극장의 폐허에서 발견되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답도, 대꾸도, 질문도 없이 오로지 들어만 준다. 그렇게 모모가 들어만 주면 상대방은 그렇게 혼자 얘기를 하는 사이에 어느샌가 해답을 찾고 돌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민이 있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모모를 찾아가 이야기하곤 한다.
베포: 도로 청소부이다. 이름이 따로 있겠지만 다들 그냥 도로 청소부 베포라고 부른다. 모모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며 비질을 즐긴다. 말이 조금 느리고 생각을 깊이 할 때가 자주 있어 바보 취급을 받기도 한다.
기롤라모:모모의 가장 친한 친구 중한 명이고 말솜씨가 좋고, 상상을 자주 하고, 그것을 즐긴다.
카시오페이아: 30분 앞에 미래를 내다볼 수 있으며 호라 박사가 키우는 거북이다. 미래를 내다볼 수는 있지만 미래를 바꾸지는 못한다. 등껍질 위에 글씨를 쓰며 대화를 할 수 있다.
호라: 회색 신사들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이다. 각자의 시간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한다. 무척 신비한 존재이다.
회색 신사들: 이들은 사람들의 시간으로 사는 이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시간을 아껴서 더 많은 걸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며 그렇게 사람들의 시간을 훔쳐서 산다. 세상의 모든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
마을 사람들: 모모와 같은 마을의 사는 사람들이고,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회색 신사들 때문에 즐거운 대화도 반가운 인사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버린다.
〈줄거리〉
<모모>는 주인공 모모가 회색 신사들에게 맞서 친구들의 시간을 지키는 이야기다. 어느 작은 고대 원형극장의 폐허가 있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 어느 날 어린 고아 모모가 나타난다. 모모는 마음을 다해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수 있었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모모를 찾아가 모모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회색 신사들이 나타났다.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아껴서 많은 걸 이루고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된다. 그러면서 모두 시간을 아끼려 하며 따뜻한 대화, 휴식 등을 쓸데없고, 시간 낭비라고 여기며 마을 사람 간에 따뜻한 대화, 관계라고는 조금도 남지 않게 된다. 마을은 점점 우중충해져 마치 회색 신사들처럼 회색빛이 되어간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모모는 모모의 친구인 베포 할아버지와 함께 이 회색 신사들과 마주쳐 이 사태를 만든 것이 '시간저축은행'의 영업사원인 '회색 신사'들이 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때문에 시간저축은행의 표적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30분 앞의 미래를 보는 거북이인 카시오페이아를 만나게 되고 카시오페이아와 함께 시간의 관리자인 호라 박사의 집으로 피신한다. 그리고 모모는 그곳에서 시간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된다. 그 시각 호라 박사가 관리하는 시간을 모두 빼앗고 싶어 하는 회색 신사들이 끝내 모모를 추격해 호라 박사의 집을 포위한다. 그러자 호라 박사는 시간을 멈추게 하고 모모에게 회색 신사들에게 가서 그들이 훔친 시간을 풀어주라고 한다. 그렇게 모모는 시간을 풀어주고 회색 신사들은 사라진다. 회색 신사들이 사라진 마을은 이제 사람들이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마을은 다시 따뜻한 원래의 마을로 돌아왔다. 모모는 이렇게 끝이 난다.
다. 모모를 읽고 난 후 나의 생각
나는 <모모>를 책숲에 오기 전에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하고 딱히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올해 책숲에 들어오게 되면서 <모모>를 한 번 더 읽어보게 되었다. 역시나 다시 읽어 본 <모모>는 매우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조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생각들은 아무래도 책이 시간과 관련이 있다 보니 시간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첫 번째는 카시오페이아이다. <모모>에서 카시오페이아는 30분 앞의 미래를 본다. 그리고 그 미래는 아무도 바꿀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에서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카시오페이아가 ‘넌 이렇게 할 거야 아무도 그 미래를 바꿀 수 없어’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데 음…... 그렇게 말함으로써 미래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만약 카시오페이아가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있었더라면 과연 그때도 모모가 같은 선택을 했었을까? 난 그건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미래는 언젠가 내가 선택해 결과가 오긴 하겠지만 그건 내가 선택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미래는 내가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나한테 누가 와서 ‘너 미래에 이렇게 할 거야. 그러니 이렇게 해.’라고 한다면 그게 나의 미래라 할 수 있을까? 아닌 거 같다. 그러니 모모도 카시오페이아의 말대로 했던 행동은 모모 자신이 만든 결과가 아니라 카시오페이아가 만든 결과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회색 신사들을 내쫓기 위한 호라 박사와 카시오페이아의 작전이 아니었을까? 그럴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다.
그리고 두 번째 생각은 시간에 관해서였다. 우리는 가끔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간을 아끼며 그것만을 보며 달려 나간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흘려보내 버린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다 우리의 삶인 것인데 우리는 목표를 이루고, 성공하기 위해 다 보내 버린다.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버리면서 절약, 저축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그렇게 보내버린 시간은 다시 우리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회색빛이 되어 사라진다. 이런 이야기를 <모모>에서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모모>를 읽고 생각하게 된 것 중 하나인데 나는 이 이야기를 글로 써보기로 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뤄 두겠다.
또 세 번째는 모모의 ‘들어주는 능력’ 도 기억에 남았다. 이야기에서 모모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우 잘 들어준다고 나온다. 그래서 그 부분을 읽고 나도 모모에게 가서 고민을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민이 무엇인지는 나만의 비밀이다. 사실 그렇게 모모처럼 잘 들어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왜? 들어주는 것뿐인 데?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지치지 않고, 끝까지 들어준다는 건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렇게 이번에 읽었을 때는 좀 더 드는 생각들이 많았고, 그렇게 궁금한 것들이 많아지니 책이 더 재밌었던 것 같다.
<모모>의 사람들은 왜 행복하지 못했을까?
모모는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을 시, 분, 초로 나누면서도 내가 행복하기 위한 시간을 내지 못한다. 왜냐면 자신들의 할일을 하기에 급급해 행복할 시간을 나중으로 미루어놓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룬 시간은 회색 신사들이 빼앗아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게 될까?
나의 ‘행복할 시간’을 미루지 말고 지금 하는 일을 다 나의 행복으로 가는 길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서 나는 숙제를 할 때는 다하고나서 행복하게 지내겠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숙제를 행복한 마음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다 나를 위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일이니까 말이다. 물론 말은 쉽지 실행하기는 어려운 이야기다. 일단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모가 이야기하는 시간과 내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시간 비교
모모는 시간을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모모는 행복하기 위해서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기에 급급해서 행복할 시간을 나중으로 미뤄둔다. 이걸 <모모>는 사람들이 회색 신사들에게 행복할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고 표현한다.
우리는 때때로 시간을 아끼고 저축하고 절약하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을 아끼고는 목표와 성공만을 바라보며 달려간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그 시간을 다시 누리고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한다. 그렇게 우리가 보내 버린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데 자꾸만 아끼며, 나중으로 그 시간을 미룬다. 그렇게 우리가 절약했다 생각한 시간은 회색 신사라는 존재가 다 가져가 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목표만 바라보고 살다 회색 신사들처럼 차갑고, 정이 없고 마치 컴퓨터 같은 사람들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시간이 늘 당연하게 우리 옆에 있다 보니 시간의 소중함을 다 잊고 살고 있는 거 같다.
<모모>를 읽고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시간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모모>를 읽고 이 글을 쓰게 되면서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부끄럽게 나도 시간의 소중함을 잊고 살고 있었던 거 같다. 모모의 말대로 곧 시간은 삶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자주 그걸 잊고 있다. 그러니 나는 시간을 아끼려 애쓰기보다는 매 순간 충실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4.시간은 과거 미래 현재라는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과거 -과거는 일단 내가 지나온 시간이다. 과거는 지난날의 나에 대해 기억할 수 있게 해주고 그렇게 나의 추억이 된다. 지금의 나와 비교하여 그동안의 성장을 보여주는 지도자와도 같다.
현재 -현재는 지금 ‘나’이다. 사실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재가 있어야 과거와 미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를 잘 살아야 한다. 내가 현재에 어떻게 사냐에 따라 미래가 바뀔 수 있다.
미래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갈 수는 있지만 미래에 있을 수는 없다. 나의 미래는 온전히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나오는 모모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과거를 지나 현재 그리고 미래로 가려고 한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흐름이다. 그런데 모모에서는 시간의 제약? 을 받지 않는 인물과 거북이가 나온다. 바로 카시오페이아와 호라 박사이다. 이 둘은 책 속에서 무척 신비로운 인물로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 먼저 호라 박사는 시간을 지키고 시간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역할을 하고 있기에 시간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 또 카시오페이아는 앞에 말했듯이 신비한 존재다. 나는 카시오페이아가 30분 앞의 시간을 본다는 건 아무리 판타지 세계이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판타지 세계이더라도 앞에서 말했듯이 자기 자신의 미래는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고 그래서 내가 행동하기 전까지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 일어날 일을 딱 봐서 단정 짓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번 정리를 해보겠다. 나도 모모처럼 시간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또 나는 미래를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남이 하라는 대로만 해 미래를 만든다면 그것은 내가 만든 나의 삶이 아니지 않은가 한다.
라. 글을 맺으며 -내 안의 빛
진정한 시간은 무엇인가? 시간은 삶이다. ‘우리는 그걸 잊고 살고 있다. 또, ‘행복을 즐길 시간’을 미뤄 둔다면 결국 우린 그 행복을 즐길 수 없다. 그러니 지금 하는 모든 일을 다 나의 행복으로 가는 길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나의 시간을 헛되게 쓰지 않고 자기 행복을 위한 시간으로 쓴다면 진정한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지금 내가 시간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일단 무언가를 보려면 빛이 있어야 한다. 이 글도 빛이 있어야 읽을 수 있고 친구 얼굴도 빛이 있어야 볼 수 있다. 이렇듯 내가 진정한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것도 ‘내 안의 빛’이 있다면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내 안의 빛을 밝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행복할 시간을 미루지 않고 나의 삶이 행복해진다면 그만큼 나의 빛도 내 행복과 함께 밝게 빛나지 않을까?
이렇게 긴 글을 써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이라 그런지 글 쓰는 게 힘들었고, 엉성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다 쓰고 나니 뿌듯하다. 나도 앞으로는 시간을 알차게 쓰며, 행복을 즐길 시간을 미뤄두지 않고 나의 행복을 향해 달려가야겠다. 그리고 내 안의 빛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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