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국(1600 – 1662)
조선 중기의 화가로, 안산 김씨로 이름은 명국이고, 호는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이다.
(술을 엄청 좋아했고, 술에 취해서야 붓을 휘둘러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도화서 화원을 거쳐 사학교수(四學敎授-종6품))를 지냈고,
1663년(인조 14년)과 1643년(인조 21년)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이것이 김명국에 대한 정식 인적 사항이다. 그러나 기담, 괴벽의 이야기는 많다. 그의 일화는 호가 취옹이듯이 술과 관련된 것이 많다.
그의 화풍을 말할 때도 술에 취해 붓을 마음대로 휘둘렀다고 한다. 이 말은 붓질을 거칠게 한 절파 화풍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달마도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기려도(騎驪圖-나귀를 타고 가는 사람ㅋ)도 많이 그렸다.
김명국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조년간의 화단도 살펴보자.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 병자 호란으로 혼란하였다. 왕실과 사대부 사회는 그림을 즐길 분위기가 되지 못했다.(인조는 이징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림을 좋아하는 것을 공박했으나, 내면으로는 당시의 사대부들이 그림을 즐겼다. 그러나 그림 그리는 기예를 천기(賤技)로 여겨서, 화가의 신분을 낮추어 보았다. 이때 활동한 화가를 보면,
까치와 산수 --- 조속
포도 --- 이계호
매화 ---- 오달제
소 --- 김식
산수화 --- 윤의립, 송민고, 조직
왕실과 사대부가 좋아하는 그림은 일반적으로 보수화 경햐을 띈다. 인조 때도 마찬가지이다.
절파 화풍의 김명국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명국은 절파 화풍 중에도 마지막 시기에 해당하면 狂態邪學派로 뷸린다. 그러나 그의 달마도는 일본에서 인기가 높앗다고 한다.
1700년 대가 되면 김영국의 그림이 재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으로는, 관폭도, 투기도, 심산행려도, 어정산수도, 기려인물도, 노엽달마도 은사도, 누각산수도 등등등이 있다.
신위의 달마도 미술 평에김명국의 그림을 일컬어 “인물이 생동하고 필묵이 혼융(混融) 백년 이내에는 필적할 이가 없을 것 같다”고 하였거다.
첫댓글 오늘은 기려도를 배웁니다.
나귀를 타고 가는 사람을 그린 그림을
기려도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박사님~
머리가 나빠서 이런 단어 하나만으로도 흡족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김명국 화가를, 내가 답사를 따라다녔던 유홍준 선생이 무척 좋아한 화가였습니다.
술에 취하여 붓을 휘두르듯이 그리니까. 예술가가 어떻다는 등, 이런저런 설명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술공부를 하는 나로서는, 조성중기 절파 화가다.라는 정도로만---- 공부란 이처럼 무미건조하고 재미가 없네요,
선생님 덕분에 그림의 세계를 유람합니다...
좋은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