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가?
세상에 있는 그대로 사물을 보고,
들려지는 그대로 듣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똑 같은 강아지소리지만
한국 사람들은 “멍멍”이라고 듣고,
미국 사람들은 “바우 바우”라고 한다.
시계소리 조차 다르게 들린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똑딱 똑딱
미국 사람들은 똑스 딱스
소련 사람들은 똑스키 딱스키
프랑스 사람들은 똑숑 딱숑, 똑쥬르 딱주르
일본 사람들은 똑이노 딱이노
북한 사람들은 똑이니끼 딱이야요
독일 사람들은 똑캔 딱캔
중국 사람들은 똑카오 딱카오
왜냐하면
단어를 이해할 때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들로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보면
무엇이 보이는가?
어떤 사람은 고운 여인을 보고
어떤 사람은 노파를 본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가?
어떤 사람 눈에는 사과가 보이고
어떤 사람 눈에는 연인들이 보이고
어떤 사람 눈에는 천사가 보이고
어떤 사람 눈에는 악마가 보이고
어떤 사람 눈에는 사랑 love가 보이고
어떤 사람 눈에는 미움 hate이 보입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실험을 했다.
두 그룹으로 사람들을 나눈다면
한 그룹에서는 ABC에 알파벳에 대한 공부와 노래를 부른 다음에
이 글자를 보여주었다.
무엇으로 보이느냐고 물으니 대부분 B로 보인다고 답했다.
또 다른 그룹에서는 숫자에 대한 공부와 노래를 부른 다음에
이 글자를 보여주었다.
무엇으로 보이느냐고 물으니 대부분 13로 보인다고 답했다.
이 연구결과로 중대한 발표를 하게 된다.
“사람은 보여지는 것으로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에 저장된 경험과 정보로 세상을 보고, 이해하게 된다.”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
나는 온전한 눈으로 보여지는 것으로 세상을 본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우리는 이미 다 이 세상의 정보와 배움으로 세뇌되어 있다.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큰 눈, 견해가 있다.
하나는 사랑이며,
또 하나는 미움이다.
하나는 협력이며,
또 하나는 경쟁과 전쟁이다.
하나는 계획이며,
또 하나는 우연이다.
이러한 단어들을 보면서 무슨 단어가 유추되는가?
그렇다 바로 창조와 진화라는 두견해로 세상의 사람들의 견해가 나누어져있다.
창조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창조주의 작품이며,
그 모두가 우리를 향한 창조주의 사랑이다.
진화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우연이며
그 모두가 경쟁과 다툼, 양육 강식속에서 존재하는 무서운 전쟁터이다.
인생을 하나의 큰 섭리와 주관자의 인도하심 아래 있다고 믿으면
어떤 상황속에서도 마음의 평화와 신뢰, 기쁨, 안도를 경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온 우주가
그분의 사랑과 돌봄속에 있고,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처럼 돌보시는 귀한 사랑을 누리며 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세상은 우연이고,
나는 그저 먼지처럼 우연히 왔다 사라지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사라져 버린다.
그저 왔다가는 인생
내 즐거움을 위해 쾌락을 위해,
제멋대로 살다가 가면 그만인 것이다.
그 속에는 목적도, 뜻도, 의미도 없다.
피보나치라고 하는 이탈리아 수학자가
세상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창조주가 이 세상을 창조하였다면
창조주의 특징이 이 세상 만물에 보여 있을 것이다.
창조주의 흔적, 손길을 찾자.
그래서 찾은 결론이 피보나치 수열이다.
이 세상이 우연이 아닌
놀라운 질서와 조화, 순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피보나치 수열은 1에서 시작하고,
그 수는 1이라는 또 하나를 만나 다음 수를 결정한다.
그런 다음에는 앞에 수와 다음수를 만나서 그 다음 수를 결정한다.
만남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1
1+1=2
1+2=3
2+3=5
3+5=8...
이러한 수열의 원리를 따르는 식물들이 이 세상 식물의 90%이상이나 된다.
꽃잎의 수
나뭇잎의 수
특별히 해바라기 씨의 나선구조
솔방울의 나선구조
파인애플의 나선구조
작게는 앵무조개에서
크게는
태풍의 눈, 은하계에서도 나타난다.
태양계도 그냥 돌지 않고,
질서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돌아간다.
마치 대보름날 깡통돌리기를 하듯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계가 돌고 있다.
바깥으로 나가려는 힘과 가운데서 댕기는 힘의 균형속에서
지구가 제 궤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온 세상은 중심을 향해 도는 것이다.
가장 작다고 하는 원자도 알고 보면
그 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도는 것이다.
태양계도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그 태양계가 수천 억개 만나 만들어지는 은하계도
그 중심을 향해 돌아가는 질서를 가진다.
은하계도 수천 억개 만나 은하군을 이루고,
은하군도 수천 억개 만나 소우주를, 대우주를 이룬다.
대 우주 역시 아무렇게나 돌아갈까?
아니다
그렇다면 그 중심에 무엇이 있을까?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만물이 제 궤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솔방울 속에서의 나선모양의 숫자를 세어보라
마치 해바라기 씨 같은 나선 구조로 솔방울의 비늘같은 것들이
나선 구조를 이룬다. 왼쪽으로 돌아가는 모양, 오른 쪽으로 돌아가는 모양
신비하게 그 숫자를 세어보면 틀림없이 피보나치 수열과 일치한다.
얘를 들면 한쪽으로 가는 것이 5, 다른 쪽으로 도는 것이 8
혹은 한쪽으로 가는 것이 8, 다른 쪽으로 도는 것이 13
작은 것 속에서 우리는 창조주의 손길을 발견하고 경탄하게 된다.
그리고 피보나치 수열에서 앞에 숫자로 뒤의 숫자를 나누면
최고 아름다운 황금비율 1:1.618에 점점 가까워진다.
인간의 얼굴 속에서도
개미 한 마리에도
놀라운 황금비율이 수 없이 존재한다.
이 또한 우연히 만물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증거들이 아닌가?
세상을 보는 가장 아름다운 눈
그것이 신앙의 눈, 사랑의 눈이다.
이 세상 모든 만물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증거해 준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그래서 우리는 작은 나무 하나
작은 꽃하나
작은 나무 잎새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다.
< 말씀의 실상- 구상님의 시 >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無名)의 백태가 벗겨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萬有一切)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이적(異跡)에나 접하듯
새삼 놀라웁고
창밖 울타리 한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부활(復活)의 시범(示範)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창창(蒼蒼)한 우주,
허막(虛漠)의 바다에
모래알 보다 작은 내가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이렇게 역동하고 있음은
상상도 아니요, 기적도 아니요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이루어진
실상(實相)임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의 위대한 손으로 창조된 업적과 우주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사물들을 통하여 창조주를 식별한다. 그들은 그분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그분의 자비와,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의 은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더욱 분명히 읽게 된다. ”(보훈, 26-27)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그들에게 주신 시간 동안 마치 그분이 눈앞에 계신 것처럼 생애한다. 그들은 또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이야기할 때 그랬던 것처럼 장차 불멸의 상태에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고린도전서 13장 12절).”(보훈, 27)
https://youtu.be/bA9dfRjaJ6k
https://youtu.be/yEgbOwX1EBk
https://youtu.be/2zDMVsMSrq4?list=PLo_mlTnsP-Ou1UpwJJQ7nlLATXM4pk3AY
https://youtu.be/gXJL_Zu06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