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아야 하는 이유(계1:9-20)
갈등
1. 요한계시록 내러티브 두 번째 시간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묵시 문학입니다. 묵시 문학은 박해 시대에 기록된 성경이에요. 구약에서는 다니엘,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이 해당됩니다. 묵시 문학의 특징은 상징 언어와 은어를 사용하기에, 이것을 잘 풀어야 올바른 해석과 적용을 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1차 수신자인 아시아 일곱 교회 이름이 나옵니다. 11절,“에베소, 서마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들은 모두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로 인해서 고통 가운데 있었어요.
이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도 요한 자신도 지금 로마 제국의 신앙 박해로 인해 밧모라는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밧모 섬은 길이가 16km, 넓이가 9.6km인 크지 않은 섬입니다. 들리는 것은 거친 파도 소리밖에 없고 온통 바위로 이뤄진 척박한 섬이에요. 요한은 자신이 박해를 받고 있는 이유를 전해줍니다. 9절,“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요한은 일곱 교회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하며 이것 때문에 박해를 받으며 참아야 했습니다.(참음에 동참-나도 참고 있다는 표현)
2. 신앙 박해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본질이 여기에 나타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전도와 선교,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에요. 교회가 존재하는 한, 박해가 있거나 없거나 복음 전도는 이어집니다. 전도와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고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동참하는 것뿐이에요. 어느 주일 날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었습니다. 그가 성령 안에 거했어요.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요한에게 분명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지금부터 보는 것을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보내라!
성령께서 사도 요한에게 먼저, 일곱 금 촛대를 보여주었어요.(12절) 이후 13-18절까지 길게 천상에 계신 예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요한은 베드로와 더불어, 누구보다 주님을 잘 알고 보았던 사람입니다. 요일1:1,“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누구보다 주님을 잘 알고 보고 만졌던 요한에게 성령께서 오늘 본문에 이렇게 길게 천상에 계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것이 전해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4. 성령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명령했습니다.(19절) 그리고 결론으로 20절,“네가 본 것은 내 오른 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오늘 본문은 이렇게 일곱 별과 일곱 촛대에게 초점을 맞추며 마쳤어요. 이 두 가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현대 교회에 적용해서 성령께서 오늘날 촛대로 비유한 교회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고 계실까요?
실마리
5. 사도 요한이 베드로와 더불어 예수님을 제일 잘 알고, 보고, 듣고, 스킨십까지 나누었던(만졌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요한에게 성령께서 일곱 금 촛대를 보여주고, 촛대 사이에 계신 주님을 보게 하셨어요. 촛대는 교회를 상징해요.(20절) 주님이 교회들 사이에 계십니다. 교회를 보고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분이 어떤 모습으로 요한의 눈에 보였습니까?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었어요. 주님이 제사장 옷을 입으셨어요. 주님은 우리의 유일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았어요.
이 모습은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성결한 모습입니다. 그의 지혜가 한이 없고 불꽃 같은 눈으로 일곱 교회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실 때-성육신(incarnation)-는 다윗의 후손, 즉 아시안으로 오셨어요. 그가 육신으로 계실 때에는 백인이 아니셨어요. 예수님 성화를 백인으로 그린 것은 다 가짜입니다. 주님을 백인으로 그리니까, 아프리카에서는 흑인으로 그리기도 했어요. 이것도 가짜입니다. 그의 얼굴은 노란색으로 그려야 해요. 하지만, 천상에서 주님은 백인도 황색도 흑인도 아니십니다. 그 얼굴은 자체 발광-빛이 날 뿐입니다. 눈만 불꽃 같은 것이 아닙니다.
6. 제게 성령이 임하고, 하늘 문이 열린 적이 몇 차례 있습니다.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두 차례 보여주셨어요. 한 번은 제사장 옷을 입으신 주님을 멀리서 보여주시고,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신 다리 쪽을 가까이 클로즈업해서 보여주셨습니다. 두 번째는 그의 얼굴을 보여주셨는데, 저는 환상 중에 그의 얼굴의 칼라-색깔이 궁금해서 유심히 보았는데 색깔은 보이지 않고 오직 환한 빛만 발할 뿐이었습니다. 성령님은 한 분이시라 요한에게 보여주신 주님과 제게 보여주신 천상의 주님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발은 용광로에서 연단한 빛난 주석 같았어요. 사도 요한이 본 것을 기록할 때, 무엇이다고 말하지 않고 계속해서 무엇과 같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정직한 기록이에요. 사람의 눈으로 보고 문자로 옮기는 한계성입니다. 주님의 발의 강함-능력을 의미합니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이 위엄이 있었어요. 그의 오른 손에 일곱 별-일곱 교회 사자들이 있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말씀이 흘러나오고, 그의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 천상의 주님은 빛이십니다.
7. 성령께서 사도 요한에게 천상의 예수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지상에서 계셨던 주님과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주님을 기억할 때, 지상에 계실 때 모습만 아니라 이제부터는 천상에 계신 주님의 모습도 알아야 했어요. 그래야 요한이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고 일곱 교회에 편지를 하고, 자신도 올바른 믿음으로 박해 시대를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요한이 천상에 계신 주님의 모습을 볼 때,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어요. 요한은 연약한 피조물이고, 주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선 연약한 피조물의 모습이 다 이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에도 똑같았어요. 눈이 멀고 그 앞에 두려워 떨었어요. 천상에 계신 예수님이 오른손을 요한에게 얹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안심하고 주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요한이 일곱 교회와 더불어 험악한 박해 시대를 이겨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이것을 잘 아시고, 요한과 일곱 교회에게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주기 위해 천상의 주님의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스데반처럼 하늘의 영광을 보면서, 모든 박해와 위협을 이기도록 격려해주셨습니다.
8. 오늘 본문은 이렇게 전개하며 일곱 별과 일곱 촛대에 초점을 맞추며 마칩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입니다. 일곱 교회를 책임 맡은 청지기들-하나님의 종들이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입니다. 교회를 촛대로 비유한 것은, 촛대는 움직입니다. 촛대를 움직이시는 분은 천상의 예수님이시고요. 교회가 촛대 역할을 하지 못하면 촛대를 주께서 옮기실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도 담겨있습니다. 박해 시대에 모든 교회와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천상의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지상에서 여러 위협과 압박이 있었지만, 잘 참고 메시야의 역할을 다하셨습니다. 이제는 일곱 교회 사자들과 교회들이 이 일을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오늘을 사는 세계 모든 교회들과 교회를 섬기는 청지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단지 요한과 일곱 교회만 보고 나누라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시대를 넘어서 종말이 올 때까지 모든 교회와 주님의 제자들이 보고 듣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복음 제시
9. 천상에 계신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자신이 누구이신지 확인해주셨습니다. 17-18절,“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주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그는 인생이 아니시고 하나님이세요. 주님은 공자나 석가, 소크라테스 등 위인들과 동급이 아니세요. 세계 4대 성인이라 부르는 이들 가운데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약한 피조물입니다.
석가는 죽기 전에, 제자들이 죽음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할 때 그는 말하지 못했어요. 자신이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피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자원해서 희생제물이 되심)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사 사시고 영원히 죽지 않으십니다. 즉, 부활하셨습니다. 그는 영생하시며 사망과 음부의 열쇠-생사화복을 주장하십니다. 그에게 우리 인생과 교회가 모두 달려 있습니다.
기대
10. 오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교회를 세워갈 때, 사도 요한과 같이 우리의 눈이 열려 천상에 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교회를 책임지고 나가아가는 지도자들은 반드시 이런 경험을 하면 유익해요. 제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서 이런 경험을 해보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누구이신지 제대로 알아야 요한과 일곱 교회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이 역할을 언제든지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현대 교회가 증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사도 요한에게 천상에 계신 주님을 보여주시고 그의 모습을 박해를 당하며 시련 가운데 있던 일곱 교회에게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시간 다 같이 기도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지식으로만 아니라 체험적으로 알고, 체험적으로만 아니라 지식으로도 제대로 알게 하옵소서! 두 가지 균형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