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라디아서 5 장)
우리는 우리 인생에 대해
예수님 보다는 돈이 더 도움이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죄인임을 알게 하소서.
-- * --
멍에는 구속과 억압이며 고통입니다. .
많은 사람이 멍에를 메고 괴롬을 당합니다.
죄로 인한 멍에,근심 걱정의 멍에,두려움의 멍에,
가난의 멍에 질병의 멍에,정신적인 멍에를 메고 괴로워합니다,
이처럼 멍에를
메고 눌려있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사역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
(이사야 58 : 6참조)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무거운 짐과 고통의 멍에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은 물론 매였던 멍에에서 풀려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종의
멍에를 다시 메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자유를 마음껏 누려야 합니다.
날마다 주안에서
찬송하며,기도하며,감사하며,
예배하며,헌신하며,복음을 전하며,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 많이 가져야 되고,
더 높이 올라가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얽매어
쫓기는 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성도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지향하며
현세적인 것보다 내세적인 것에 비중을 두고 살아야 됩니다.
현세적이고 육신적인 것은
모두가 잠시 잠깐 보이다가 곧
사라져 버리는 아침 안개와 같은 허무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능력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늘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율법의 세계로 돌아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오직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 것이 자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의 은혜를 믿으며,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1.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 :1)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율법의 정죄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죄로부터의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의요 구원이요 생명입니다. 의와 구원과
생명을 받은 자는 율법과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와 오늘 우리에게도 복음의
은혜와 자유 안에 굳게 서고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종의 멍에란 율법의 종으로서 짊어졌던 멍에를 가리킵니다.)
구약시대 곧 율법 제도
아래 있는 자들은 율법의 공포,
율법의 정죄, 율법의 형벌이라는 무거운 멍에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그 멍에를 제거하시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이 복음의 자유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율법의 멍에 아래로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 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라디아서 5 :2-4)
갈라디아교회는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려 할 것인가,
아니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 두 갈래 길에 서서 혼란스러워하는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거나 육체의 행위를 따라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 하지 말고,
오직 복음 안에 거하며 성령을 따라 믿음으로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의 요구 조건은 ‘하나님의 모든
법들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면 영원한 저주 아래 있음을 뜻합니다.
할례를
받는것은 율법 아래 속하여 율법을 다 지키겠다는 결심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않고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 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는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갈라디아서 5 :5-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사심으로 우리에게 의가 되셨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도
무할례도 중요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마음의
순종이기 때문에 참된 믿음은
결코 행함이 없는 믿음이 아니고, 사랑의 행위로 나타나는 믿음입니다.
2. 적은 누룩을 조심하라.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펴지느니라"
(갈라디아서 5 :7-9)
갈라디아 교인들은 복음을 받은 후
신앙생활을 잘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 선생들 때문에 복음 진리를 거역하는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잘못된 권면은 ‘누룩’과 같아서.
비록 그 오류가 작게 보일지라도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듯이 잘못된 권면은 온 교회를 부패시키고 변질시킵니다.
작은 오류가 점차 큰 오류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
들어온 작은 오류를 작게 여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
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갈라디아서 5 :10)
비록 큰 오류가 갈라디아교회 안에
들어왔고 심각한 탈선이 일어났지만, 바울은
사랑하는 교인들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 확신하였습니다. ‘
갈라디아 교인들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양들이라면, 그들은 바울이
다시 강조하는 바른 복음 진리의 교훈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요동케 한 자들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갈라디아서 5 :11-12)
바울은 할례를 전하지 않고 오직
바른 복음 진리를 전파하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았습니다.
만일 바울이 할례를 전했더라면, 핍박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핍박 때문에 진리를
변질시키거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진리에
관한 한, 바울은 비타협적이었습니다. 이만큼 이 문제는 중요합니다.
곡식과 가라지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참 교회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끊어져야 할 자들입니다.
요점은 할례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할례는 사람을 율법 지킬 의무 아래 두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으려 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무의미하게 되고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갈라디아서 5 :13-14)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복음 안에서 이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자유케 하신 것을 말합니다.
서로 종노릇하라’는 말은 상대방이 나의
주인이요 나는 그의 종인 것처럼 서로 섬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서로 섬겨야 하는 것은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서 5 :15)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를 얻은
우리가 서로 헐뜯고 비난한다면 그 자유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육체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성도도 때때로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나
계속 죄 가운데 머문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됩니다.
남을 계속 헐뜯고 비난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자일 것입니다.
3. 성령을 따라 행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 :16)
구원받은 성도의 성화는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이루어집니다.성화는 성도가 성령을 좇아, 성령의 도우심
으로 행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 :17)
구원받은 성도의 속에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대립과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성도가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성도가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그는 육체의 욕심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 :18)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을 받았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받고 있으므로 율법의 제도 아래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율법 제도 아래서는,
사람이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율법의 요구는 한마디로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구약 아래서 사람들은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여
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줄 뿐, 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암시된 메시아께서
오셔서 친히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제물로 내어주심으로 율법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오셔서 죄인들로 하여금 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게 하셨으므로 누구든지 성령의 인도하신 바가
되면 그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이 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 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라디아서 5 :19-21)
음란은 부부관계를 벗어난 모든 육체적 관계를
가리킵니다. 인간의 성(性)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것이며 그것은 부부관계에서만 사용되도록 의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악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음란의 죄악입니다.음란에 대한 최선의 대비책은 결혼입니다.
또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성적 자극이나
시험에 떨어지지 않도록 그런 환경을 피하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우상’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하나님 대신 하나님처럼
가치 있게 여기고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우상입니다.
인간을 숭배하며
과학을 믿고 돈과 명예와
쾌락을 삶의 목표와 최종적 가치로 두는 것도 분명히 우상숭배입니다.
남을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혹은 자기 명예나 세상 권력이나 물질적 이익 때문에
하는 싸움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 싸움입니다.
술취함이 정죄된 것은 사람을 방탕에 빠뜨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취함이나 마약은
사람에게서 바른 정신을 빼앗아 가고 사람을 비현실적 환각 상태에
빠뜨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책임 있는 인격자가 되지 못하게 합니다.
이상과 같은 일을 하는 자들은 결단코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4.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 :22-23)
"사랑"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또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희락"
우리가 들어갈 미래의 천국은 기쁨이 넘치는 세계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기뻐하는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화평"
성령님은
우리 속에 참된 평안을 주시고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게 하십니다.
"인내"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믿는 것이므로
본질상 소망을 내포하며 그 소망은 오래 참음을 필요로 합니다.
"자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시는 선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양선"
남을 위하고
남에게 유익을 주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선한 언행을 말씀합니다.
"충성"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감동하시고 우리를
도우셔서 믿음의 인격 또 믿을 만하고 충성된 인격을 만드십니다.
"온유"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낮추시고 부드럽게 하셔서 예수님의 품성을 닮게 하십니다.
"절제"
술이나 오락에 적용될 뿐
아니라 우리의 감정이나 시간과 물질 사용에도 적용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이란 구원받은 성도들 곧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죄악된 감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그렇게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5 :25-26)
성령으로 행하는 것은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 살며
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새 생명을 얻었으므로, 성령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헛된 영광은 세상 영광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부귀, 권세, 명예, 쾌락 등을 가리킵니다.
그것들은 영원하지 못하며 그것들은 영원하신 영광의
하나님과 그가 약속하신 영광의 천국과 비교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단지 얼마 동안만 누리는 헛된 것들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이 죄악의 본질입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탐하여 남을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고 또 속이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이 세상에서 갖추어야 할
덕목은 많은 지식이나 사회적 신분이나 물질의 풍요에
있지 않고 오직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데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유는 육체의 쾌락을 위한
기회로 삼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의와 선을 행하며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라고 주신 자유이니 헐뜯고 비방하는 자 되지 않게
하시고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선을 행하는 자 되게 하셔서
죄성을 극복하고 성화가 이루어지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10. 4.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