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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1:1~15 교회 안에 지도자는
요즘 교인들이 교회를 등지고 떠나가고 있고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있다는 안타까움의 마음의 말씀을 드리면서 진정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교회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세번째 시간으로 교회를 맡아 관리하는 사역자, 즉 청지기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유투브에서 이재철 목사님은 "교회에 목사 장로 권사는 있는데 하나님이 없다." 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 교회엔 하나님이 안 계셔서 교인들이 떠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그 교회에 안 계시는데 거기에 남아 있다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 문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를 관리하는 사역자(?)주님의 종(?) 목사에 대하여도 살펴보려고 합니다.
창2~3장을 보면 최초의 사람인 아담에게 사단(뱀)이 찾아와 미혹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미혹하는 말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물어보는데, "하나님이 네게 그렇게 말하더냐?"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했는데? 라고 물으면서 그 말씀의 뜻은 이런 거야 선악과 먹어봐 안죽어 하면서 자기 해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거나 섞거나 해서 속이며 미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기록 한 말씀에서도 보면, "교회 안에 거짓말하는 자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주의 종이라고 하는자가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하늘 양식으로 먹여 거듭나게 하고, 거듭난 자들에게는 건강하게 돌봐 주님의 장성한 자로 잘 자라도록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내용을 알게 하는 성경 지식을 주어서 그 지식으로 종교 생활을 잘 하는 자들로 만들고, 또 이런 저런 방법으로 사람을 많이 모으는데 전심을 다하며,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 큰 교회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잘못 알고 교회 건물 관리하는 것을 하나님의 일 하는 것으로 여기며 지도자 자리에 앉아 그 일을 하게 하고 자신도 그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앞에 언급한 내용을 잘 생각하고, 거짓 종의 설교와 가르치는 말(진리를 가지고 다른 목적을 위한 하는 말)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자기가 몸 담고 있는 교회에 사역자가 하는 설교와 말을 듣고 그 말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는 설교와 말인지 아니면 주의 이름을 부르고 병을 고치며, 사람들을 많이 모아서 주의 일이 아닌 종교 생활을 하게 하는 말은 아닌지 초대 교회 성도인 붸뤠아 사람들처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시로 바울 같은 참된 사도를 통하여 우리의 구원을 막고 있는 자들이 어떤 자인지 알려주고 있으니 사도들의 말씀을 참고 해서 자기 교회 목사가 주님의 참 종인지 거짓 종인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살필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이런 거짓 된 자들이 앉아 있는데, 당시 교회 안에 성도들이 저들을 용납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어서 교회 일원인 나도 영적인 사람인지, 아니면 말씀을 가지고 있지 않아 가짜를 용납하는 내가 아닌가에 대하여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교인들이 자기 목사를 용납하고 있다는 것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교인들이 세상 화 되어서 이거나,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은 교회 생활 잘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생명과를 먹어야 한다는 것으로 깨닫지 못해, 사단에게 미혹을 받아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으로 살면 되는 사람이 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본문 11:3~4절을 보면, 당시의 고린도 교회 상황은 복음적이지 못하고 혼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도로 교회 안에 그런 지도자들로 혼탁하게 하는 것을 묵과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의 피로 사신 주님의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의 제자요 사도로서 고린도 교회가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신앙의 깨끗함(영혼 구원의 목적)에서 떠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주님의 교회로 다시 되돌려 놓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이유를 11:13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지도자”들 때문임을 지적하면서, 그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라고 알려 주면서, '저들은 그리스도의 참사랑과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주님의 참 종이라고 말하는 자들' 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 안에 지도자들은 실제로 어떤가요? 내가 나가는 교회의 담임 목사의 설교의 내용은 어떻한지요? 우리가 들어야 하는 복음을, 기쁜 소식인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진정한 복은? 예수가 그리스도. 곧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원자며, 교인인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이신 그분의 말씀만을 듣고 믿어 그분을 마음 안에 (진리의 성령=말씀의 영으로)영접하여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세상 사람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꿔져야 함) 하고, 거듭난 자는 예수그리스도의 하신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먹어 자라나서, 그 이후의 삶이 영혼의 구원이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려줘 영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들어볼 때, 그 내용이 영혼 구원 곧,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따라 사는 사람이 되는 참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 삶에 필요한 것들을 주신다는 것으로 바꿔, 그 거짓말에 집중하게 하여, 영혼의 구원에 의한 하나님의 생명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 교회를 울타리로 쳐 놓고, 기독교 종교로 살게 하는 목적의 설교라면 이는 미혹하는 자입니다.(요8장 참고: 예수가 유대인에게 너희는 마귀 자손이라고..)
이재철 목사님은 "요즘 기독교TV 설교를 들어보니 이단들이 너무나 많다." 라고도 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와서 13절에서 바울은 저들이 '그리스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가장하는” 이라는 말은 진리를 말할 때 본질에서 벗어난, 그래서 이것저것을 섞어 그럴듯하게 참 인양 꾸며서 하는 거짓말을 말합니다.
가장함의 특징은 그의 가진 것이 내용적인 면에서 진짜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아닌 지식을 생명인 양 속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은 종인데 결이 다른 종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설교에 대한 목적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있지 않고, 자기 자신(종교 직)을 위하는 목적에 맞게 꾸민 말과 섞어 만든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의 미혹하는 거짓말이나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좁은 길로 인도함이 아닌 넓고 큰길로 잘못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도 참 종과 거짓 종이 함께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하고, 우리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참 종과 거짓 종의 기준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분별해야 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가 혼란케 된 이유가 (4절)에서 ‘복음의 사람이 아닌 자들이 교회 안에 가르치는 자의 자리에 앉아 거짓을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당시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자가 진리를 바르게 깨닫지 못한 자들이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들을 너무 안일하게 그리스도의 참 종이요 진리를 전하는 참 종으로 인정하면서 저들의 거짓말을 받아들이고 있고, 그들의 가르침을 허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의 사람]이란? “그가 교회를 크게 짓고 사람들을 많이 모으고... 즉, 교회 집단을 잘 만들어 관리를 잘하는 일에 목적을 가지고 사는 자(마7:20~23)가 아닌, 하나님의 뜻, 곧 교회가 세상에 존재함의 이유가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그래서 참으로 예수가 우리의 구원자인 그리스도임을 자신 스스로 알고 믿어 마음 안에 영접하여 가진 자가 되어, 거듭난 이후의 삶을 오직 그분이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예수가 구원자라고 그분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그분을 소개하는 사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구원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르게 소개하여 마음 안에 영접하여 가지도록 하고, 또한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난 영적인 새 생명들에게 영의 양식으로 풀어먹이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불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도록 돕는, 그래서 주님과 영적으로 한 몸 되게 하는 자를 말합니다.
우리가 복음서에서도 보았듯이,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유대 종교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 제사장들을 보실 때 안타깝게 여기시는 마음을 가지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역시 이 마음을 가진 제자였습니다. 고후 11장은 사도 바울의 안타까움 이상의 감정이 들어있는 구절들로 가득합니다.
고후 11:22절은 「그들이 히브리 사람이냐? 나도 그러하다. 그들이 이스라엘인들이냐? 나도 그러하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다.」 반박하는 모습에서 그의 심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에게서 참 종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은 고후 11:23~28에 서술된 내용에서 알 수 있는데, 사도로서의 이 땅에서의 격는 역경들을 ‘밖의 일들’이라고 하면서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규정하면서, 이러한 밖의 것들 보다 자신은 ‘안에 있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이라고 참 종의 가지고 있는 안타까워 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안에 있는 것’이란 어떤 것을 말씀합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거듭난 후 삶이 복음 증거 하는 일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로 인하여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밖의 문제들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종으로 안의 문제는 결코 자신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는데, 그것을 말씀하는 종이 참 종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결코 불리할 수 없다고 하는 '안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28절의 성도들을 향한 (날마다 염려하는 것 = 하나님의 사랑) 입니다.
예수의 핏 값으로 산 교회(성도)에 대해 날마다 염려하는 것이 그가 가진 해결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들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교회에 대해 ‘무엇을’ 날마다 염려했습니까?
그는 먼저 자신이 주님을 만나 거듭남의 과정을 거쳤고, 고후12장은 그 과정에서 나타난 자신의 이전과 이후를 설명하면서, 마치 요한복음 3장의 말씀에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느니라.”의 말씀처럼 교회의 성도들이 자기가 변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런 변화를 기대하지만, 실제 교인들이 그런 말씀으로 인한 변화 없이, 거듭남의 과정이 없이 교회에 문이나 밝고 가는 종교인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는 당시 교회 안의 혼탁함을 바라보면서 제자 된 신분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바른 교회로 세우고자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을 가르치던 자들을 향해서 거짓 사도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교회 안에 가르치는 자칭 주님의 종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살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오늘날의 교회 안의 종의 모습은 사뭇 성경의 초대교회 때 제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사직이 세상 조직처럼, 당회장, 노 회장, 총회장 자리가 만들어져 있고, 해마다 그 자리싸움이 끊이지 않으며, 더 나가서 세상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목사 아버지가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것과 같이 교회 자리를, 직장의 자리를 물려 주는? 실로 안타까운 현실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은 양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어주는 주님과 제자들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사도 바울이 지적한 대로 거짓 종임을 스스로 들어내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해야 할 종이어야 함에도,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외형적으로 큰 대형 교회를 지향하며,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세상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에 섞어서 생명 아닌 것들에 집중하게 하니, 영의 양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음으로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세상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가진 말쟁이들을 불러서 말 잔치를 하는가 하면, 세상의 여러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도입하여서 마치 지역에서 교회가 지역 사람들의 편의를 돕는다는 명분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공간으로 내어주면서 마치 진정한 교회처럼 포장하여 참 하나님의 교회인양 하는 것이 사도바울이 지적한 꾸미는 것으로 이는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 모으는 목적에 온 힘을 쏫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이름을 주님의 이름보다 더 높게 쌓아 놓고 주님의 이름보다 우리 목사님, 우리 교회, 하면서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면서 언론에, 기독교 TV에 광고까지 하며, 간증하며 자랑하지만, 이는 혼탁한 교회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런 행동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참 종과 참 목회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보이는데도 교인들이 이를 용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저들의 입에서 나오는 설교가 영적인 새 생명을 얻게 하는 것에 관함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받아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을 전 하는데, 그런 말을 듣는 것에 미혹을 받아, 거짓말임을 모르고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교회 안에 있는 거짓 지도자들을 말하면서 성도들의 구원을 염려하여 이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성도들이 저들과 같은 거짓된 자들이 될까 두려움으로 염려하여 참 종과 거짓된 종을 구별해 주면서 오늘날 교회 성도들에게도 저들을 용납하는 성도들을 보고 주의해야 함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영적인 눈을 떠서 사도 바울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한 영혼을 구원하려는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니다.
그 일에 집중하는 사역자를 찾고, 예수그리스도의 하신 말씀으로 다시 거듭난 새 생명들을 잘 자라도록 건강하게 양육하는 지도자가 있는 교회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칠 때 자기에게 오는 유대인들을 보고 그들을 향해 천국(예수그리스도)이 가까이 왔으니, 구원자인 메시야가 왔으니 그에게로 가야 한다고 외쳤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와, 크고 좋은 교회 건물과, 높은 학력를 소유한 목사가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우리의 구원이 중요한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오직 한 가지 그 일 때문에 세상에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가르치는 자로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참된 종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자기 생각, 곧 교회 건물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하며, 사람이 모여야 한다는 기독교 교회 울타리를 세우고 관리 감독을 잘 하는 것의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지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추수 할 일꾼으로 자기 사명을 가지고 영적 거듭난 새 생명의 사람이 되도록 자기 자신을 내어 주어 저들을 섬기는 종으로 돌아서야 할 것입니다.
그리 할 때, 여러분들은 사역 현장에서 수고 한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심은 대로 결산할 때가 올 것입니다. 청지기의 일을 그치는 날이 곧 도래할 것입니다. 그날을 오늘 지금 기억하고 바울의 심정을 가지고 돌아서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충성이 바울의 권면한 대로 성도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돌아설 때 하나님의 기쁨에 함께 영광스러움에 참여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며, 주님께서 진정한 친구로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주님이 교회를 주신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를 항상 기억하고 자신이 교회 안에서 주어진 일이 한 영혼의 거듭남과 장성한 자 되게 하는 것임을 잊지 않고 그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추수할 일꾼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나를 추수꾼으로 불러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추수할 일꾼(영혼을 구원하려는 주님의 마음을 가진)을 보내 주시고 그의 입술에서 사도바울이 가졌던 영혼을 사랑하는 가슴을 가진 자를 오늘 우리에게 달라고 간구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