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오년 3월 (1594년 3월)
315
3월 초1일 (기묘) 맑다. [양력 4월 20일]
316
망궐례를 드렸다. 활터 정자로 곧바로 올라가 검모포만호에게 캐묻고서 만호에게 곤장치고, 도훈도를 처형했다.
317
종사관(정경달)이 돌아왔다.
318
막 어두울 녘에 출항하려할 때, 벽방척후장 제한국(諸漢國)이 보고하기를,
319
"왜선이 이미 도망가버렸다."
320
고 했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321
초저녁에 장흥의 2호선이 실수로 불을 내어 다 타버렸다.
322
3월 초2일 (경진) 맑다. [양력 4월 21일]
323
아침에 방답 ∙ 순천 ∙ 우조방장이 왔다.
324
저녁나절에 활터 정자로 올라가 좌조방장 ∙ 우조방장 ∙ 순천부사 ∙ 방답첨사와 활을 쏘았다.
325
이 날 저녁에 장흥이 와서 이야기했다.
326
초저녁에 강진의 모종으로 쌓아 둔 곳에 실수로 불을 내어 모두 다 타버렸다.
327
3월 초3일 (신사) 맑다. [양력 4월 22일]
328
아침에 전문(명절하례로 임금께 올리는 글월)을 절하여 보내고 곧 활터 정자에 앉았다.
329
경상우후 이의득이 와서 말하기를,
330
"수군이 많이 잡아 오지 못했다고 그의 수사(원균)에게서 매를 맞고, 또 발바닥까지 맞을 뻔했다."
331
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332
저녁나절에 순천부사 ∙ 좌조방장 ∙ 우조방장 ∙ 방답첨사 ∙ 가리포 첨사 ∙ 좌수사 우후 ∙ 우수사 우후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333
오후 여섯 시쯤에 벽방척후장(제한국)이 보고한 내용에,
334
"왜선 여섯 척이 오리량(마산시 합포구 구산면 고리량) ∙ 당항포 등지에 정박 해 있다"
335
고 한다. 그래서 곧 배를 소집시키라고 전령하고, 대군을 흉도 앞바다에 진치고 정예선 서른 척을 우조방장(어영담)이 거느리고 적을 무찌르도록 했다.
336
초저녁에 배를 움직여 지도에 이르렀다가 새벽 두 시쯤에 출항했다.
337
3월 초4일 (임오) 맑다. [양력 4월 23일]
338
밤 두 시쯤에 출항했다. 진해 앞바다에 이르러 왜선 여섯 척을 뒤쫓아 잡아 불태워 버렸고, 돝섬(猪島: 마산시 합포구 구산면 저도. 용두산 해발 203m)에서 두 척을 불태워 버렸다.
339
또 소소강에 열네 척이 들어왔다고 하므로, 조방장과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에게나가 토벌하도록 전령했다.
340
고성땅 아잠포(阿自音浦:고성군 동해면 당거리)에서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341
3월 초5일 (계미) 맑다. [양력 4월 24일]
342
겸사복(윤붕)을 당항포로 보내어 적선을 쳐부수고 불태웠는지를 탐문케 하였더니, 우조방장 어영담(魚泳潭)이 긴급보고한 내용에
343
"적들이 우리 군사들의 위엄을 겁내어 밤을 틈타서 도망했으므로 빈 배 열일곱 척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344
고 했다. 경상우수사(원균)의 보고도 같은 내용이었다.
345
우수사가 와서 볼 적에 비가 많이 퍼붓고바람도 몹시 불었다. 바로 자기 배로 돌아갔다.
346
이 날 아침 순변사에게서도 토벌을 독려하는 공문이 왔다.
347
우조 방장과 순천 ∙ 방답 ∙ 배 첨사도 와서 서로 이야기하는 동안에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이 배에 이르자, 여러 장수들은 각각 돌아 갔다.
348
저녁에 광양의 새 배가 들어왔다.
349
3월 초6일 (갑신) 맑다. [양력 4월 25일]
350
새벽에 망군이 보니, 적선 마흔 척 남짓이 청슬(거제시 사등면 지석리)로 건넜다고 했다. 당항포 왜선 스무한 척은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고 긴급보고를 했다.
351
저녁나절에 거제로 향하는데 맞바람이 거슬러 불어 간신히 흉도에 도착하니, 남해현감이 보고하되,
352
"명나라 군사 두 명과 왜놈 여덟 명이 패문을 가지고 왔기에 그 패문과 명나라 군사 두 명을 보낸다."
353
고 했다. 그 패문을 가져다 보니,
354
"명나라 도사부(都司府) 담종인이 적을 치지 말라."
355
는 것이다. 나는 몸이 몹시 괴로워서 앉고 눕기 조차 불편하다.
356
저녁에 우수사(이억기)와 함께 명나라 군사를 만나 보고서 보냈다.
357
3월 초7일 (을유) 맑다. [양력 4월 26일]
358
몸이 극도로 불편하여 꼼짝하기 조차 어렵다. 그래서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패문을 지어라고 하였더니 지어 놓은 글이 꼴이 아니다.
359
또,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이 손의갑(孫義甲)으로 하여금 작성했는데도 그것마저 못 마땅하다. 나는 병을 무릅쓰고 억지로 일어나 앉아 글을 짓고, 정사립(鄭思立)에게 이를 쓰게 하여 보냈다.
360
오후 두 시쯤에 출항하여 밤 열 시쯤 한산도 진중에 이르렀다.
361
3월 초8일 (병술) 맑다. [양력 4월 27일]
362
병세는 별로 차도가 없다. 기운이 더욱 축이 나서 종일 아팠다.
363
3월 초9일 (정해) 맑다. [양력 4월 28일]
364
기운이 좀 나은 듯 하므로 따뜻한 방으로 옮겨 누웠다. 아프긴 해도 다른 증세는 없다.
365
3월 초10일 (무자) 맑다. [양력 4월 29일]
366
병세는 차츰 나아지는 것 같은데, 열기는 치올라 그저 찬 것만 마시고 싶은 생각 뿐이다.
367
저녁에 비가 내리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368
3월 11일 (기축) 종일 큰 비가 왔다. [양력 4월 30일]
369
어두울 무렵에는 개였다. 병세가 아주 많이 나아졌고 열도 또 한 내리니 참으로 다행이다.
370
3월 12일 (경인)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5월 1일]
371
몸이 매우 불편하다.
372
영의정에게 편지를 썼다.
373
장계를 정서하는 일을 마쳤다는 말을 들었다.
374
3월 13일 (신묘) 맑다. [양력 5월 2일]
375
아침에 장계를 봉해 올렸다.
376
몸은 차츰 나아지는 것 같으나, 기력이 매우 고달프다. 그대로 회(薈)와 송두남을 내어 보냈다.
377
오후에 원균(元均) 수사가 왔다. 그의 잘못된 일을 말했다. 그래서 장계를 도로 가져 와서 원사진(元士震)과 이응원(李應元) 등 거짓으로 왜인 노릇한 놈을 목잘라 바친 일을 고쳐서 보냈다.
378
3월 14일 (임진) 비가 내렸다. [양력 5월 3일]
379
몸은 나은 듯하지만, 머리가 무겁고 기분이 좋지 않다.
380
저녁에 광양현감(송전) ∙ 강진현감(류해) ∙ 첨지 배경남(裵慶男) 같이 갔다.
381
소문에, '충청수사(구사직)가 이미 신장(薪場)에 왔다'고 한다. 종일 몸이 불편했다.
382
3월 15일 (계사) 비는 그쳤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5월 4일]
383
미조항첨사가 돌아갔다. 종일 신음했다.
384
3월 16일 (갑오) 맑다. [양력 5월 5일]
385
몸이 매우 불편하다.
386
우수사가 와서 봤다.
387
충청수사가 전선 아홉 척을 거느리고 진에 이르렀다.
388
3월 17일 (을미) 맑다. [양력 5월 6일]
389
몸이 회복되지 않는다.
390
변유헌(卞有憲)은 본영으로 돌아가고 순천도 돌아갔다.
391
해남현감(위대기)는 새 현감과 교대하는 일로 나가고, 황득중 등은 복병에 관한 일로 거제도로 갔다.
392
탐후선이 들어왔다.
393
3월 18일 (병신) 맑다. [양력 5월 7일]
394
몸이 몹시 불쾌하다.
395
남해현감 기효근(奇孝謹) ∙ 보성군수(김득광) ∙ 소비포권관 이영남(李英男) ∙ 적량첨사 고여우(高汝友)가 와서 봤다.
396
기효근(奇孝謹)은 파종 때문에 돌아갔다.
397
보성군수는 말을 하려 했다가 사정을 말하지 않고 돌아갔다.
398
낙안 유위장(留衛將)과 향소(鄕所) 등을 잡아 가두었다.
399
3월 19일 (정유) 맑다. [양력 5월 8일]
400
몸이 불편하여 종일 신음했다.
401
3월 20일 (무술) 맑다. [양력 5월 9일]
402
몸이 불편하다.
403
3월 21일 (기해) 맑다. [양력 5월 10일]
404
몸이 불편하다.
405
명단을 작성하는 관리로 여도만호(김인영) ∙ 남도포만호(강응표) ∙ 소비포권관 이영남(李英男)을 뽑아 담당시켰다.
406
3월 22일 (경자) 맑다. [양력 5월 11일]
407
몸이 약간 나아진 것 같다. 원수의 공문이 왔는데,
408
"명나라 지휘 담종인의 자문(중국과 왕래하던 문서)과 왜장의 서계(書契:일본과 왕래하던 문서)를 조파총이 가지고 간다"
409
고 하였다.
410
3월 23일 (신축) 맑다. [양력 5월 12일]
411
기운이 여전히 불쾌하다.
412
방답첨사(이순신) ∙ 흥양현감(배흥립) ∙ 조방장(어영담)이 와서 봤다.
413
견내량이 미역 쉰세 동을 캐어 왔다.
414
발포만호(황정록)도 와서 봤다.
415
3월 24일 (임인) 맑다. [양력 5월 13일]
416
몸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미역 예순 동을 캐 왔다.
417
정사립(鄭思立)이 왜놈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왔다.
418
3월 25일 (계묘) 맑다. [양력 5월 14일]
419
흥양현감과 보성군수가 나갔다.
420
사로잡혔던 아이(希順)가 왜의 진중에서 명나라 장수(담종인)의 가지고 왔던 자인데, 흥양으로 보냈다.
421
저녁나절에 활터 정자에 올라갔는데 몸이 몹시 불편 하여 일찍 숙소로 내려왔다.
422
저녁에 아우 여필 ∙ 아들 회(薈) ∙ 변존서(卞存緖) ∙ 신경황이 와서 어머니 안부를 자세히 들었다. 다만 선산이 모두 산불에 탔는데, 아무도 끄지 못했다고 한다. 몹시 가슴 아프다.
423
3월 26일 (갑진) 맑다. [양력 5월 15일]
424
따뜻하기가 여름 날씨 같다.
425
조방장 ∙ 방답첨사가 와서 왔다. 발포 만호가 휴가를 받아 돌아갔다.
426
저녁나절에 마량첨사 ∙ 사량만호 ∙ 사도첨사 ∙ 소비포가 아울러 와서 봤다. 경상우후(이의득) ∙ 영등포만호(우치적)도 왔다가 창신도로 돌아가 겠다고 했다.
427
3월 27일 (을사) 흐리되 비는 아니 오다. [양력 5월 16일]
428
우수사가 와서 봤다.
429
몸이 좀 나은 것 같다. 초저녁에 비가 왔다.
430
봉(菶)이 저녁에 몸이 몹시 불편하다고 한다.
431
3월 28일 (병오) 종일 비가 내렸다. [양력 5월 17일]
432
조카 봉(菶)의 병세가 더 악화되었다. 몹시도 걱정된다.
433
3월 29일 (정미) 맑다. [양력 5월 18일]
434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하였다.
435
웅천현감 ∙ 하동현감 ∙ 소비포권관 등이 와서 봤다. 장흥부사 ∙ 방답첨사도 와서 봤다.
436
저녁에 여필과 봉(菶)이 같이 돌아갔다. 봉(菶)은 중병이 들어 돌아 갔으니 밤새도록 걱정으로 새웠다.
437
어두워서 방충서와 조서방의 사위 김함(金 )이 왔다.
438
3월 30일 (무신) 맑다. [양력 5월 19일]
439
식사를 한 뒤에 활터 정자로 올라가 충청군관 ∙ 도훈도를 처벌하고 낙안유위장 ∙ 도병방 등을 처벌했다.
440
저녁나절에 삼가현감 고상안(高尙顔)이 와서 봤다. 저녁에야 숙소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