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비리 근절이냐, 사학 경영권 탈취냐.
20일 열린우리당이 국회에 제출한 사립학교법을 두고 사학재단들은 ‘사학 경영권 탈취 음모’라며 반발하고, 전교조 등 교육평등주의자들은 “사학비리 근절을 위해서는 법안 내용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 양측 모두 이 법안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1200여개 사학재단들의 협의체들은 지난 19일 ‘사립학교법이 열린우리당 안대로 통과되면 학교를 폐쇄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데 이어 오는 11월 초 다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나섰다. 반면 전교조가 주도해 만든 ‘민주적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는 “열린우리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오히려 사학재단의 기득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는 개혁 후퇴 법안”이라며 지난 17일부터 열린우리당 당사 앞에서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교사회·교수회·학부모회·학생회·직원회 법제화
열린우리당이 제출한 사립학교법은 현재 만들어도 되고 안 만들어도 되는 임의조직인 학교 내 교사회·교수회·학부모회·학생회·직원회 등을 법제화해 모든 학교가 이 같은 조직을 두도록 하고 있다. 이들이 학교의 기본 조직이 되도록 해 학교운영위원회도 구성하고, 학교예산 및 인사 결정에도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교조는 이 조항에 대해 불만이 거의 없다. 반면 사학재단들은 이 조항이 교원들의 경영 참여 기반을 조성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또 학교 내 집단 간에 갈등을 일으켜 학교를 정치판으로 변질시킬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역사적으로 공동의사결정체를 도입한 학교 중에 발전한 학교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 교사회 등이 법제화되고 학교 내 각종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되면 단결력 강하고 투쟁성 높은 전교조 교사 등이 장악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일선학교에서는 보고 있다. 교사회가 집단의 힘으로 교장이나 재단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얘기다. 교사회 등이 재단 비리 감시 등의 긍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전교조 같은 학교 내 운동세력이 기존의 투쟁적 활동행태를 벗어던져야만 가능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학교운영위원회(대학은 대학평의원회) 심의기구화
교사회·교수회·학부모회·학생회·직원회 및 동문·지역인사 등이 학교운영위원회를 구성, 학칙 제정·개정과 학교 예산·결산 결정, 학교발전계획 등의 심의에 참여토록 하는 안이다. 이 법안대로라면 학교장이 편성해 온 예산을 학교운영위원회가 심의하고, 최종 의결은 이사회가 한다. 최종 결정을 이사회가 한다는 점에서 학교운영위원회가 심의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들러리가 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전교조도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사학재단들은 교사회 등이 전교조 등 운동세력에 장악될 경우 학교운영위원회도 함께 장악될 수밖에 없고, 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예산안 등을 계속 심의에서 부결할 경우 학교 경영이 파행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사학재단들은 이렇게 될 경우 재산 출연으로 형성된 학교법인의 경영권이 침해되는 위헌적 상황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개방형 이사제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원회가 추천하는 인사로 사학재단의 이사 3분의 1을 임명하도록 하는 제도다. 학교의 최종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 이사회에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이 3분의 1 정도 반영되면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해지고, 학교 구성원들의 이익도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열린우리당 등의 주장이다.
하지만 전교조는 이 개정안의 단서조항 때문에 이 같은 긍정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이사를 추천할 때 법인과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재단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가 개방형 이사로 들어가기가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학재단들은 단서조항이 있더라도 이 제도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추천한 이사들이 법인과 협의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학교운영위원회나 교사회 등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생각에서다. 설립자의 건학이념은 이사 선임을 통해 계승되므로, 법인과 고용관계에 있는 피고용인이 사실상 이사를 선임(추천)토록 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국립대 부속병원 등 공공법인의 경우도 이사 선임(추천)권은 구성원들에게 부여되지 않는다는 사례를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