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기 때문에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다고 얘기합니다.
토마토는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먹거나 꺼리는 정도도 아닙니다. 그밖의 과일과 채소는 다 잘 먹습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집사람과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대봉감을 한 상자씩 보내주는데 그 감은 그렇게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껍질이 너무 두껍고 먹으려면 손에 잔뜩 묻고 씨도 길쭉하고 속도 들어 있어서 생각보다 먹잘 게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봉감을 좋아하고 잘 먹는다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올 가을 들어서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대봉감이 껍질이 두꺼워서 영 안 좋더라고 했더니 그걸 제대로 익힌 뒤에 겉껍질만 살짝 벗기면 된다는 얘기를 해줍니다.
어차피 집에 감이 있으니까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더니 먹기도 좋고 맛도 괜찮아서 대봉감이 왜 인기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 익은 뒤에 먹으면 버릴 것도 별로 없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감 물랭이입니다.
저는 단감은 껍질 채로 먹는데 요즘 책상 위에 올려 놓은 단감들이 물렁감이 되도록 놓아두는 분들이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저는 남의 책상에 있는 것도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 저기 다니면서 다 먹습니다.
그걸 껍질 채 어떻게 먹느냐고 다들 얼굴을 찡그리는데 깎는 게 귀찮으니까 그냥 먹습니다. 이것 저것 따지다보면 진짜 먹을 게 얼마 안 됩니다. 올 가을에 감이 많이 싸다고 하는데 충분히 먹어둬야 내년 가을에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예전에는 떫은 감을 우려서 먹는 침시(沈枾)라는 것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건 보기 드문 것 같습니다.
감이 떫은 것은 타닌(tannin)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 떫은 맛을 제거하는 방법은 침시(沈杮)로
하는 방법과 건시(곶감)로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감이 탈삽(脫澁)되어 단맛이 나는 것은 타닌이 당분으로 전환된 것이 아니고, 불용성이 되어 떫은맛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단맛은 좀 떨어진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저희 집에서는 늙은 감나무가 몇 그루 있었지만 다들 너무 늙어서 감이 많이 열리지 않아 감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얘기로 들어서 알고 있는데 침시로 하는 방법은 감을 45도 정도의 뜨거운 물에 하루 정도 담가두거나 알콜틀 이용해서 한다고 하는데 말만 들어봤습니다.
감 물랭이는 감이 연시가 된 것을 말하고, 말랭이는 썰어서 말린 것을 말합니다.
요즘 감이 흔하다보니까 감 말랭이가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단감을 썰어서 꾸들꾸들 말리면 먹을만합니다. 예전에 어른들이 홍시를 물랭이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 몇 자 올렸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