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이틀 전
부치고 튀기고 삶고 찌고
무치고 굽고 한 솥 끓여 놓은 국까지
지난 토요일에 다 해놓고 일요일엔
아들과 새벽 미사 참례까지
일 년간 양구에 혼자 있던 아들이
작년 10 월달 강원 도청시험을 치더니
합격해서 올 2월 3일 강릉으로 발령받았다
객지에 혼자 있어 보니 영 마뜩찮은지
기어이 강릉 어미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설 연휴에도 근무가 있어 오늘 양구로 돌아가니
이번 설엔 나 혼자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음식도 미리 해서 싸서 보내려고
성급히 장만했더니
아들은 별로 가져갈 마음이 없는 거 같다
어제 딸네 식구가 와서 설 상을 미리 차려주고
장만한 음식 바리바리 싸 줬다 근처 사돈네
드리는 건 해마다 하니까
“얘야 올 설엔 바쁘면 오지 마라
오빠도 없고 엄마는 쉬련다
”단군이도 미리 세배하고
세뱃돈 받아 가렴
내 말에 밥 먹던 손자 녀석 숟가락 놓더니
얼릉 세배 할 자세 잡는다
집에서 늦잠 자다가 따라온 행색이라
머리는 까치집이고 세수는커녕 옷도
두서없이 대충 껴입고 온 손자 단군이
장난스런 포즈로 세배를 하더니
정성스레 담은 세배 봉투는 받자 말자
지어미에게 휙 던지는 성의 없음이라니
오늘 전국적으로 눈이 많이 온다는데
아들은 이달 말까지 양구 근무라 가야 한다
가는 길
눈 많이 내리면 어쩌지
인제 쪽은 길도 안 좋은데
걱정의 검은 구름이 가슴에
스멀거린다
눈길이라
이청준의 소설이 떠오른다
그 소설 읽었을 때가
막 첫아들을 안았던 70년대 중반이던가
눈길이라는 소설을 읽는 중에
모성이 이제 막 생성될 시기였음에도
울면서 읽고 읽으면서 울었던 소설 눈길
다시 중년에 읽었을 때는
그때 보다 덜 울었던 거 같다
세월은 나만 휘감아 묶어 둔 것이 아닌
당시 젖먹이 던 아들까지 세월에 묶인 채로
지금 내 곁에서 같이 늙어 가는 중이다
이기적인 자식의 마음과 그 자식이 평생 여리고
불쌍해만 보이는 어미의 마음은
억겹의 세월이 쌓여도 건널 수 없는 일
저 또한 부모가 되어봐야
그 자식의 좁은 마음에 들지 못해
서운하고 애통함을 겪을 터인데 그때 가서 알겠지
밖을 보니 진눈깨비가 내린다
밝을 적에 출발하라고 잔소리를 해야는지
그쪽은 눈이 왔다 하면 오지게도 쏟아지던데
좁고 경사진 길을 작은 차로 갈 아들이 걱정이다
소설 눈길
그 시대에는 자가용이 귀하던 시대라
이른 아침 발목이 빠지는 눈길을 어머니가
앞서고 아들이 따라오는 소설의 풍경
정거장까지
배웅하려는 어머니의 고집에
아들은 묵묵히 따른다
간밤에 아들과 잠든 그 집은 벌써 팔려서
남의 집이지만 아들은 모른다
아들을 보내고 돌아선 어머니는 아들이 밟았던
발자국을 되짚으며 가슴을 치며 울음을 삼킨다
돌아갈 집도 없는 자신의 처지 보다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보낸 아들을 향한 연민과
죄스러움으로 추위도 잊고 하염없이 울며 걷는 눈길
“야야‘ 내 그날 그 눈길 밟으며 돌아오는 길에
한없이 울었니라 내 돌아갈 집 없는 것 보다
니를 남의 집에서 자게 한 어미의 마음이 그랬니라
..
내일 눈이 많이 오려나
아들이 운전을 조심히 해야 하는데
아고 ㅎㅎ 고맙습니다 강릉으로 오려고 시험쳤나 봅니다 어쩌나요 또 밥 해줘야지요 ㅎㅎ 뭇별님 명절 잘 쇠시길요~^^
어느 가을날 이청준의 눈길을 읽고 가슴절절했던 기억이 있네요 난 왜 슬픈 소설이 좋은건지 내 청승도 알아줘야 합니다
저도요 슬픈 노래 슬픈 소설 좋아 해요 그런데 슬픈 노래는 자주 부르지 말라고 팔자로 굳는다고 ㅠㅠ 노래는 삼가하지만 소설은 슬픈 내용을 좋아 합니다 장앵란님 반가워요~ ㅎㅎ 명절 온가족 행복하시길요~
[카카오맵] 강원 인제군 북면 한계리 1004-4
https://kko.kakao.com/cFwQZzViOB
아드님이 통과할 것으로 보이는 한계교차로는
다행히 눈이 내리질 않네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카메라 클릭하면 실시간 영상이 뜹니다)
ㅎ 너무 고맙습니다 백수님 감사~ 감사
사실 오늘 새벽 5시에 출발했는데 조금 전에 도착했다고 문자 왔습니다 님 덕분에 잘 갔나 싶습니다 기쁜 날들 되세요~
어미의 마음을 섬세하게 일깨워 주신 운선님.
이청준님의 '눈길' 과,
운선님의 아들 사랑.
아주 기막히게 포개어 지듯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두개의 소설을 읽은듯 합니다.
아드님.. 올해는 정말 착한 처자 만나서
운선님 걱정을 덜어 드렸음 하네요.
어여뿐 처자 손 꼭 잡고 "어머니"
하고 부르는 그 모습.. !!
운선님. 내일은 더 춥데요.
따뜻하게 내복 꼭 입으세요..
고마워요 홀리님도 몸 안좋으신데 제 걱정까지 치료 꾸준히 받으셔야 합니다 홀리님
착하디 착한 강릉 할매앞길은 행운의 서광만 휘황찬,
착하디 착한 삼척할매는 이제 고생끝,
삼척할매여 이제 강릉할매로 선녀처럼 사시요.
청솔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