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갈라치면 아버지는 비누에 칫솔, 치약, 면도기, 때수건까지 꼼꼼히 챙기셨다. 워낙 절약하시는 아버지는 무엇이든 아끼고 싶으셨던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항상 일정한 목욕탕 코스가 있다. 발끝조차 담그기 힘들 정도의 뜨거운 물에서 한
30분 정도 때를 불리고, 아버지가 형과 나의 몸을 피부가 빨갛게 될 정도로 때를 밀어 주시면 형과 나는 교대로 아버지의 등을 밀어 주곤 했다. 그렇게 2시간쯤 목욕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아버지는 구멍가게에서 바나나우유를 사 주셨다.
형이 결혼을 한 뒤 분가해 살면서 나는 늘 아버지의 목욕탕 친구였다. 아버지의 등은 형 대신 내
차지가 되었고 아버지도 으레 내가 일요일마다 시골에 내려올 때면 기다렸다는 듯 비닐 봉투를
들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의 등은 때밀이 아저씨 차지가 되고 말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내가 때밀이 아저씨께 부탁했고, 아버지는 싫다고 하셨지만 내가 “오늘 하루만 밀어 보세요”
하며 억지를 부렸다. 아버지는 마지못해 몸을 맡기셨는데, 그게 편했던 나는 그 뒤 몇 번 더 아버지의 등을 때밀이에게 미뤄 버렸다.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내게 아예 말씀을 안 하시고 바로 때밀이 아저씨 앞에 당신 몸을 맡기시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식당일을 하시는 아버지는 몸에 냄새가 난다고 때밀이하는 이들이 꺼리는
것 같다며 항상 목욕탕에 가면 당신 힘으로 구석구석 한 번 씻고, 때밀이에게 몸을 맡기시는 거였다. 나 혼자 편하자고 한 짧은 생각이 아버지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린 것이었다.
어제 아버지와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 마침 때밀이가 없어서 2년 만에 내가 직접 아버지 등을
밀어 드렸다. 아버지를 침대 위에 눕히고 구석구석 깨끗이 밀어 드렸다.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지만 그래도 기분만은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서 예전에 먹던 바나나우유를 두 개 사서 아버지와 하나씩 먹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무뚝뚝하시던 아버지가 불쑥 한마디 하셨다.
“아들 목욕 한번 잘했네!”
그날저녁 집으로 돌아와 있는데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작은애비야, 너그 아빠 겁나게 시원헌갑다. 자주 좀 밀어 드려라.”
“네” 하고는 울컥 목이 메어 와 말을 잇지 못했다.
정진영 / 전북 전주시 송천동2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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