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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장4~5절/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체험하게 되면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단순히 지혜를 얻고 도덕적인 기준을 정해주는 책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두움의 세력이 있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마귀나 사탄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체험한 후에 어두움의 세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했더니 더러운 귀신이 그 안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것이 장난이 아니고 실제구나’. 하나님이 실체인 것처럼 마귀도 실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마귀의 실체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성경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모든 세력을 꺾는 능력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을 때 우리의 삶에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어둠의 세력은 인간을 노예로 만듭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순간은 사람의 활동이 지극히 제한적이고 자기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탄이 사람을 이용하려고 할 때 바로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히틀러가 유대인 6백만 명을 죽인 것을 보며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실체이며 이러한 잔혹함은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최근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인간의 잔혹함과 비열함, 그리고 거짓을 통해서 얻어진 욕망을 통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내용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음란해지고 거짓이 진실처럼 꾸며지고 있지만 전혀 죄의식은 없는 것입니다. 혹여나 진실이 밝혀진다고 할지라도 자신들의 논리를 통해 거짓으로 진리를 감추어 놓고 위기를 벗어나면 더욱 나쁨 음모를 꾸미고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육신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둠의 세력들은 우리의 환경가운데 들어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안에 자리를 잡고 질병과 저주, 죽음을 만듭니다. 악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속고 살아갑니다. 따라서 어둠이 지배하기 시작하면 빛을 알 수 없고 빛으로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이 사단의 실체를 우리 안에서, 우리의 삶의 현실에서 몰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세력을 끊어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선행을 쌓아도 오래 못 갑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면 사탄의 권세와 싸워 이길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 귀신들린 사람들, 사단의 세력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특징이 있습니다. 인격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합니다. 특별히 요즘엔 가정 파괴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지옥을 만드는 사단의 작전입니다. 성도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사단은 교회를 파괴해서 신앙을 잃게 하고 가정을 파괴해서 삶의 보금자리를 잃게 하고 인격을 파괴해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포기하도록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문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어두움의 세력입니다.
사단의 세력은 분열되게 하는 일을 합니다. 권위주의라는 이름으로 권위를 거부하게 합니다. 그래서 세워져야 할 권위를 무너뜨립니다. 권위의 대명사는 하나님입니다. 권위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독재나 권위주의를 파괴하자는 이유로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사단입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질서를 파괴하고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각자 개인이 편리한 질서를 만들어 대혼란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의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분열을 획책하거나 질서를 파괴하는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책망하신다는 사실을 알아 질서를 회복하는 일을 실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질서를 세우고 화평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세워진 권위를 인정하며 질서에 복종하고 모든 사람들과 화평하게 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역사를 주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지만 사단은 이 세상을 혼돈과 무질서, 권위의 파괴, 가정의 파괴, 전쟁으로 몰아갔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려는 어둠의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어둠의 세력이 곳곳에 많이 숨겨 있습니다. 이 어둠의 세력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점점 깊고 넓게 우리를 사로잡아 파괴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어둠의 세력을 뽑아내고 막을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빛’ 입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소리 없이 물러납니다. 어둠을 물리치는 유일한 방법은 ‘빛’ 입니다. 그 빛이 나를 비취도록 하기 위해서 먼저 내 안에 빛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참 빛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내 안의 모든 어둠과 슬픔과 외로움과 악한 세력들을 다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캄캄한 방에 불을 켜면 순식간에 방이 환해지는 이치와 같습니다.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현대인의성경에 “그리스도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인류의 빛이었다”
지금까지 요한은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선재성과 영원성을 밝혀주었습니다. 예수를 제2위 하나님으로 신성을 증명하고 성부 하나님과 더불어 태초에 창조사역에도 동참하셨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요한은 ‘말씀’ 안에 생명의 빛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말씀은 빛이고 빛은 곧 생명입니다. 생명에는 빛과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생명이 있습니다. 빛이 비취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나고 창조의 역사와 죽은 자가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빛이 어둠과 사단의 세력을 몰아내고 모든 죽음과 질병과 저주를 몰아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생명의 빛으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의 모든 어둠이 떠나고 하나님의 빛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말씀합니다. 어두움에서 해방 받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6절에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어두움에 거하지 않습니다. 사단이 접근하지 못합니다. 빛은 어두움을 공격할 수 있지만 어두움은 빛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성격과 생각을 밝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밝게 만드실 것입니다. 빛이 있는 사람은 늘 미래와 모든 사건을 희망과 소망을 갖고 봅니다. 오늘 우리들 안에 예수님의 빛이 임하길 바랍니다. 우리들의 모든 생각이 예수님의 빛으로 말미암아 긍정적이고 자신감에 넘치길 소원합니다. 예수님이 사단을 꺾으시고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셨습니다. 생명과 빛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이래도 안 믿으시겠습니까? 이것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의 생명을 갖게 됩니다.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과 창조의 빛이 우리 내면에 들어와서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게 됩니다. 예수님의 빛이 우리 안의 더러운 귀신과 모든 어두운 생각을 추방하길 축원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예수님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빛이 비취므로 우리를 지배하던 어둠의 권세가 물러가고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역사가 새해의 소망을 담고 기도하는 우리 모두에게 축복의 열매로 풍성히 맺히는 아름다운 결과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들의 얼굴에 예수님의 빛이 빛나는 축복이 있음을 믿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천지를 창조했던 그 빛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능력의 근원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 생명 속에는 빛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그 빛이 안으로 들어옵니다. 우리 안에는 빛이 없지만 예수님께서 빛을 비춰 주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 빛이 가득 차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어둠의 세력, 사단의 세력, 죽음의 세력을 내어 쫓는 유일한, 절대적인 비밀입니다.
창세기1장 3~4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하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기에도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산에서 내려올 때 그 얼굴에 빛이 있었습니다. 너무 눈부셔서 사람들은 그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얼굴에도 빛이 나기를 축원합니다. 이 빛은 성전에도 있습니다. 역대하 7장1~2절에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하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 안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너무나 강력해서 감히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사울도 이 빛을 봤습니다. 사도행전 9장 3~6절에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써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라고 말합니다.
로마서13장11~14절에서 “또한 저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고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자” 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까? 저주로 부터 벗어나고 싶습니까?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까? 우리는 자신의 잘못된 점을 잘 알지만 고치지 못합니다. 성격도, 습관도 고치지 못한 채로 계속 어두움의 종 노릇하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같은 죄를 반복해서 저지르곤 합니다. 왜냐하면 어둠에 완전히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 안에 있는 어둠의 세력이 예수의 이름으로 완전히 떠나가기를 축원합니다.
5절에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신약성경에서 ‘빛’으로 번역되는 ‘포스’는 일반적으로 광명을 뜻하지만 메시야의 구원이라든지, 복음등을 묘사하는 상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하였습니다(마4;16; 행26;18. 엡5;13) 특히 요한은 빛을 생명과 관련지어 설명합니다. 즉 예수님이 생명이요 빛이라는 것입니다.
4절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말씀 안에 내재한 생명은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생명이며, 그것이 죄로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는 빛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선을 빛이라고 말한다면 악을 어둠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세상은 죄로 오염된 어두움이라고 말합니다(요14;30)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하고 말합니다. 예수의 오심을 통해 어두움에 갇혔던 세상은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빛이 비춰지지만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빛을 비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어둠에 갇혀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만물 속에 감추어 두었습니다(롬1;19) 특히 사람의 양심이나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어두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함으로 하나님은 그들의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롬1;28)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함으로 계속해서 어둠에 갇혀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고 그 실제를 삶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핑계할 수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과 관심과 배려는 끝이 없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을 사람들은 영접하지 않았습니다(요1;11)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었던 이유는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알 수 없었고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둠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사실을 로마서3장11절에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를 알 수 없도록 사탄이 어둠의 권세로 가리고 있어 깨닫지 못하고 알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의인이 없고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롬3;10) 하지만 구원에 참여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여 부르셔서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엡1;4)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기록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말합니다. 예수님은 불 경건한 자들, 죄인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보내셨으며 사단은 그분은 방해하고자 갖은 간계를 꾸몄지만 예수님은 악의 세력을 정복하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모든 것을 완전히 성취하셨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의 외침이,‘다 이루었다’(요19;30)하는 외침은 온 세상에 침투하여 어둠의 지배를 하고 있는 사탄의 음모를 이기셨음을 선언하는 말입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