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본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뭐가 있을까.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이미지는 ‘인구 고령화’와 ‘부동산 거품 붕괴’가 아닌가 싶다.
이런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이 이웃의 일본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 그 근거로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나 산업구조가 일본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거론한다.
그 전망이 옳든 거르든 관계없이 우리나라 부동산을 바윗덩어리처럼 짓누르는 심리적인 밑바탕에는, 바로 우리가 일본처럼 될지 모른다는 집단적 두려움이 있다. 신도시 몰락론에서 최근 젊은 층의 전세 눌러앉기 현상까지 일본화의 유령이 한국 부동산시장을 떠돌고 있다.
왜 일본 하면 부동산 버블 붕괴가 쉽게 연상될까. 우리는 어떤 사건이 자신의 머리에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가에 따라 그 사건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평가한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라고 한다.
휴리스틱은 주먹구구식으로 판단하거나 ‘감(感)’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휴리스틱은 판단을 빨리할 수 있도록 ‘생각의 지름길’을 안내하지만, 직관적으로 판단하게 되면서 단순화시키는 위험성이 있다. 사회적으로 떠들썩한 이슈가 됐던 극적이고 생생한 사건의 이미지는 쉽게 떠올려지고 개연성(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과대평가한다.
가령 비행기 추락 사고, 유람선 전복, 대형 화재, 대학살 등은 충격적인 일이기에 오래 기억하고 그것의 발생 가능성을 실제보다 높게 본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친인척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면 비행기를 탈 때마다 겁이 난다. ‘친인척의 사망 = 비행기 처참한 잔해’가 쉽게 떠올려지다 보니 위험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는 전 세계적으로 아주 드물게 발생한 극적인 사건이다. 그 사건은 언론을 통해 계속 반복돼 알려지면서 나도 모르게 뇌리에 깊고 강한 이미지로 각인된다.
테러하면 이슬람 사람들이 쉽게 떠오르는 것처럼 대폭락한 일본 부동산과 버블 붕괴는 쉽게 연결되는 이미지다. 그래서 버블 얘기만 나오면 일본의 부동산 버블붕괴 사건을 떠올리고 금세 내 앞에서 일어날 것처럼 사건 발생 확률과 빈도를 높이는 것이다.
유사 개념으로 ‘의대생 증후군’이라는 것도 있다. 일종의 건강 염려증이다. 의대생들이 특정한 질환의 증상을 배우다 보면 ‘내가 요즘 몸이 안 좋은 데 혹시 그 병에 걸린 것 아닌가’라고 걱정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조금만 인구 고령화, 저성장, 저물가, 중산층 몰락 같은 말만 들으면 하면 일본을 떠올리며 우리나라도 일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사실 역사적으로 핀란드, 스위스, 스웨덴 등 많은 나라에서 집값이 급락했지만, 일본과는 달리 대부분 그 고통을 견뎌내고 다시 일어섰다.
미래의 우리나라 부동산이 일본 전철을 따라갈 수 있고 따라가지 않을 수도 있다. 미래는 미실현된 가능성의 세계이지, 숙명의 세계는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기말의 묵시록처럼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과정을 끼워나가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