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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4:27
대륙의 남과 북, 동과 서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던 사마리아는 제국의 군홧발에 차이고 차인 땅입니다. 애굽과 앗수르, 바벨론과 페르시아, 로마까지 제국의 탐욕에 짓밟혀 고유한 민족성을 상실했습니다.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며 수치와 소외의 낙인을 찍고 살아가는 공동체였습니다. 공주야! 사람들의 관심이 죄다 먹고 사는 문제에 가 있다. 믿는 이들의 관심도 예외가 아니다. 땅이 양식이 인생에서 중요하지만, 전부가 될 수 없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백성이 가져야 할 관심은 무엇인가?
Samaria, a transportation hub connecting the south and north, east and west of the continent, is a land that has been kicked and kicked by the empire's guns. Egypt, Assur, Babelon, Persia, and Rome were trampled on by the greed of the empire and lost their own ethnicity. It was a community that was treated as an invisible man and lived with the stigma of shame and alienation. Princess! People's attention is on the issue of living on everything. Believers' interest is no exception. Land is important in life, but it cannot be everything. What are the interests of the people who met the Lord of Resur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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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어떤 관심으로 사셨는가?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라고 정체를 드러내자 사마리아 여인은 믿는다. 믿고 곧장 마을로 들어가서 예수를 메시아로 증언한다. 자신이 말하지도 않은 일까지 다 알고 계시는 예수는 필시 메시아인 것이 분명하다고 전했을 것이다. 여인이 전한 것은 잘 정리한 신학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다가와 자기 인생 이야기에 관여해주신 예수 경험을 나누었을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께서 하신 일 자체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복음이었다.
What interest did the Lord live when he was in this land? When Jesus revealed himself as a messiah, the Samaritan woman believes. Trust and go straight into the village and testify of Jesus as a messiah. Jesus, who knew everything he didn't even say, must have been a messiah. What a woman said was not a well organized theology. He would have come up to him and shared the experience of Jesus who was involved in his life story. What Jesus did to a Samaritan woman would have been an expression of God's mercy and love. It was the gos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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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을 구해 제자들이 먹을 것을 권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양식은 자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제 추수할 때가 되었는데 제자들을 심는 일에 기여하지 않았지만 거두는 기쁨에는 참여할 수 있다고 하신다. 제자들로서는 둘 다(양식과 추수)문자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다. 하지만 예수가 자신의 일을 온전히 다 이루시는 날에는 성령께서 그 말씀의 뜻을 헤아리게 하실 것이다.
Although Jesus asked for food and encouraged his disciples to eat, Jesus answered that his food was to do the will of the one who sent him and to complete the work. It's time to harvest, and he said he didn't contribute to planting his disciples, but he can participate in the joy of reaping them. Both (style and harvest) are words that cannot be understood literally by his disciples. However, when Jesus fully accomplishes his work, the Holy Spirit will make him count the meaning of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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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인의 증거를 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예수께로 가서 머물며 직접 말씀을 듣는다. 이틀을 유하면서 예수에게서 말씀을 듣는 후에 믿는 자들은 더 늘었고, 이제 사마리아 여인에게 듣고 믿은 차원보다 더 깊은 차원의 믿음으로 나아간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었던 예수와의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만남과 충격이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었던 예수와의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만남과 충격이 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정직하게 내적인 목마름을 인정하고 구원을 구하는가? 추수에 대한 주님과 제자들의 입장 차이가 무엇인가?
After hearing the evidence of the Samaritan woman, the Samaritans believed it, went to Jesus, stayed, and heard it directly. After hearing from Jesus during their two days, the number of believers increased, and now they move to a deeper level of faith than the level heard and believed by the Samaritan woman. The personal and personal encounter and shock with Jesus in a Samaritan woman occurred to these Samaritans as well. Do you honestly admit your inner thirst and seek redemption?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the Lord and his disciples' positions on the harv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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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인의 증언(27-30)
a.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의 이상한 만남:27
b.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마리아 여인:28-30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31-38)
a.예수님의 양식;31-34
b.예수님의 관점:35-38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그리고 동네 사람들(39-42)
a.사마리아인들의 반응:39-41
b.사마리아인들의 고백: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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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27a)
제자들이 돌아와서(27b)
예수께서 여자와(27c)
말씀하시는 것을(27d)
이상히 여겼으나(27e)
무엇을 구하시나이까(27f)
어찌하여(27g)
저와 말씀하시나이까?(27h)
묻는 이가 없더라(2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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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28a)
물동이를 버려두고(28b)
동네에 들어가서(28c)
사람들에게 이르되(2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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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한 모든 일을(29a)
내게 말한 사람을(29b)
와 보라(29c)
이는(29d)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2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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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30a)
동네에서 나와(30b)
예수께로 오더라(3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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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31a)
제자들이 청하여(31b)
가로되 랍비여(31c)
잡수소서(3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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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내게는(32a)
너희가 알지 못하는(32b)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3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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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33a)
서로 말하되(33b)
누가 잡수실 것을(33c)
갖다 드렸는가 한 대(3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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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34a)
나의 양식은(34b)
나를 보내신 이의(34c)
뜻을 행하며(34d)
그의 일을(34e)
온전히 이루는(34f)
이것이니라(3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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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35a)
넉 달이 지나야(35b)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35c)
하지 아니하느냐(35d)
내가(35e)
너희에게 이르노니(35f)
눈을 들어 밭을 보라(35g)
희어져(35h)
추수하게 되었도다(3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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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는 자가(36a)
이미 삯도 받고(36b)
영생에 이르는(36c)
열매를 모으나니(36d)
이는(36e)
뿌리는 자와(36f)
거두는 자가(36g)
함께 즐거워하게(36h)
하려 함이니라(3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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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37a)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37b)
말이 옳도다(3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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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로(38a)
노력 지 아니한 것을(38b)
거두러 보내었나니(38c)
다른 사람들은(38d)
노력하였고(38e)
너희는(38f)
그들의 노력한 것에(38g)
참예하였느니라(3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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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말이(39a)
그가(39b)
나의 행한 모든 것을(3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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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말하였다(39d)
증거 하므로(39e)
그 동네 중에(39f)
많은 사마리아인이(39g)
예수를 믿는지라(3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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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들이(40a)
예수께 와서(40b)
자기들과 함께(40c)
유하기를 청하니(40d)
거기서(40e)
이틀을 유하시매(4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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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말씀을 인하여(41a)
믿는 자가(41b)
더욱 많아(4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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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에게 말하되(42a)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42b)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42c)
이는(42d)
우리가 친히 듣고(42e)
그가(42f)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42g)
앎이니라 하였더라(4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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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변화_A change of woman.
추수는 주님의 뜻_Chusu means the Lord.
사마리아의 변화_Changes in Sam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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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인에게 오셔서 여인의 상철 진리로 만지시므로 그 증걸 통해 온 사마리아인들의 마음의 상처까지 모두 치료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주의 명령에 따라 희어진 밭으로 열맬 거두러 갈 때 믿는 자가 많아지게 하시고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 신 줄 앎이니라. "고 고백되어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제가 여인처럼 상철 접고 진리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 번 불태울 수 있도록 주께서 도와주옵소서.
Thank you for coming to the Samaritan woman and touching her with the truth of her table, and even treating all the wounds in the hearts of the Samaritan people through the evidence. Now, when we go to the white fields according to the orders of the Lord, many believe in them, saying, "What we believe is not because of what you say, so we hear it closely and know that he is truly the savior of the world." "Let the confession be made." Thus, may the Lord help me to fold like a woman and burn my passion for truth once again.
2026.2.11.wed.Clay
신학 비평//
1) “이상히 여겼으나 묻지 아니하더라”
나의 관심은 생존을 넘어 의미로 이동하고 있는가?
나는 예수 곁에 있는 제자인가, 예수를 향해 달려가는 사마리아 사람인가?
요 4:27은 짧지만 잔인하다.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묻는 이가 없더라.” 여기엔 이중 실패가 있다. 1. 이해하지 못했다. 2.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놀람(thaumazein)은 있었으나 사유(noēsis)로 넘어가지 못한 상태다. 플라톤 이래 철학은 “놀람에서 시작한다”고 말해왔지만, 이 장면에서 놀람은 불편함으로 봉인된다. 왜?
2) 관심은 중립적이지 않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관심(Sorge)의 구조로 존재한다. 무엇에 관심을 두느냐가 곧 존재 방식을 규정한다. 제자들의 관심은 분명하다. “랍비여 잡수소서” 먹을 것-일정-이동-생존의 질서 이건 나쁘지 않다. 그러나 전부일 때 문제가 된다. 그래서 예수는 말한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이 말은 영적 비유가 아니다. 존재론적 선언이다. “나는 너희와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다.”
3) 사마리아 여인: 관심이 이동한 존재
같은 장면, 다른 인물.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둔다. 이건 상징이 아니다. 의식의 중심이 이동했다는 표식이다. 생존 → 의미 수치 → 증언 개인 → 공동체 그녀는 신학을 정리하지 않았다. 교리를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전한 것은 이것 하나다. “내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 실존적 관여, 나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타자, 이것이 복음의 최초 형태다.
4) “나의 양식은 뜻을 행하는 것” — 목적론의 전복
아리스토텔레스적 목적론에서 양식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예수는 목적과 수단을 전복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다. 예수는 보냄 받은 뜻을 이루기 위해 산다. 그래서 말한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 예수에게서 삶의 목적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사명(Mission)이다. 이때 양식은 에너지 공급이 아니라 존재를 지속하게 하는 의미의 원천이다.
5) 추수의 시간 — 아직 오지 않았는데, 이미 왔다
제자들은 말한다. “아직 넉 달이 지나야…” 예수는 말한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이건 시간 인식의 충돌이다. 제자들-연대기적 시간 (Chronos) 예수-결정의 시간 (Kairos) 추수는 미래 사건이 아니라 이미 열려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관심이 생존에 묶인 자는 열매를 보지 못한다.
6) “우리가 친히 듣고 앎이니라” — 매개를 넘어선 믿음
사마리아 사람들의 고백은 결정적이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우리가 친히 듣고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여기서 믿음은 소문 → 만남 중개 → 직접성 정보 → 인식(gnōsis) 철학적으로 말하면 타인의 증언은 계기의 역할만 하고, 진리는 직접 경험 속에서 확증된다. 여인의 역할은 끝났고, 공동체의 신앙이 시작된다.
7) 신학적 비평 요약
제자들은 예수 곁에 있었으나 예수의 관심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여인은 주변부였으나 존재 전체가 이동했다. 양식에 묶인 관심은 추수를 보지 못하게 한다. 복음은 설명이 아니라 관여의 사건으로 전파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