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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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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간대 로코물 세 편
단 하나만 볼 수 있다면, 어떤거 볼래?
1. 로맨스의 재구성
유아인 X 고해인
: 공개연애를 했다. 연애는 끝났지만 공개는 끝나지 못했다.
생각 해 보면 사랑이라는게 다 똑같긴 하다. 관심생겨서 만나다가 자주 보면 질리고, 그러다 감정 식으면 헤어진다는 면에서. 글에 서론 본론 결론 삼단 구성 폼이 정해져 있는 것 처럼 연애에도 일정한 형식이 있다. 그리고 나는 적지 않은 횟수의 연애를 항상 그런 식으로 진행 해 왔다. 딱, 한번 빼고.
"왜 안 와? 너 진짜 죽을래?"
"촬영이 이제 끝난걸 어떡해. 가고 있으니까 떽떽 거리지 마."
"약속 시간이 몇시인 줄이나 알아? 내가 널 왜 이렇게 기다려야 해?"
"그러게 누가 내 스케줄 고려 없이 영화 시간 잡으래? 내가 아홉시는 너무 이르다고 했지?"
약속에 늦은게 누군데 남자는 아주 적반하장이다. 나는 있는대로 성질이 나서 뭐라고 쏘아 붙였다.
"나도 얘기 했지, 내일 새벽촬영이라 늦게 자고 얼굴 부으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일찍 봐야 한다고!"
"니가 뭐 언제부터 촬영에 그렇게까지 사명감이 있었다고. 너 공갈 배우잖아. 끊어."
남자는 제 할말만 하고 뚝 전화를 끊었다. 나는 끓어오르는 울화를 참을 수가 없어서 앞좌석 등받이를 거칠게 걷어 찼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매니저 오빠가 뭐라고 타이르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영화관 데이트니 뭐니를 하겠다고 남자를 기다린지가 두시간 째다. 시간이 계속 늦춰져서 영화표를 취소하고 재예매하고를 다섯번도 더 했다. 나는 바득바득 이를 갈며 애꿎은 매니저 오빠에게 으르렁 댔다.
"삼십분 내로 안 오면 결별 기사 내는거야. 나 분명히 말 했어."
"그걸 왜 힘 없는 나한테 얘기하니… 사장님 한테 가서 얘기 해……."
"결별 기사 떴을 때 해명 낸다고 직접 발로 뛴거 다 알거든? 사장한테 보너스도 두둑히 받았더라?"
매니저 오빠는 헛기침 몇 번으로 말꼬리를 돌렸다. 다 따져 묻기도 짜증나, 아주. '탑배우 공식커플 유아인-고해인, 열애 2년 끝 결국 결별' 아직도 몇개월 전 그 기사 헤드라인이 생생하다. 방 안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무기력함에 젖어있다가 기사를 발견 했을 때, 내심 심란하면서도 얼마나 홀가분 했는지 모른다. 공개연애의 굴레도 벗고 남자의 무관심에서도 벗어나 이제 난 진정한 싱글이 되는거야! 나도 잘생기고 젊은 신인 배우들이랑 잘 해볼거다! 하는 해방감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두시간도 안 돼서 양 쪽 회사가 반박 기사를 띄웠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메이썬 엔터테인먼트, '사실 무근 루머 강경 대응 하겠다…' 애정전선 이상 無' 따위의 기사 제목에 얼마나 치를 떨었는지 모른다. 기자들한테 일일이 전화를 돌려 막무가내로 결별설을 일축시킨 장본인이 바로 이 인간이란 말이지. 이번엔 매니저 오빠가 앉은 운전석 의자를 사납게 걷어찼다.
"고해인!"
"이십 팔분 남았다."
"어휴……."
짙게 선팅 된 벤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밤 11시 27분, 압구정 CGV 앞. 나는, 지금 헤어진 전 남자친구와의 영화관 데이트를 앞두고 있다.
***
고해인, 서른 살.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오른 영화배우.
얼굴 예쁘고 몸매 잘났는데 연기까지 잘 하니 안 뜨는게 더 이상했다.
남들은 무명 몇년 거치고도 번번한 영화 하나 못 찍어 연기를 그만 둔다는데, 해인에겐 완전히 다른 세계 얘기다.
시나리오는 끊임없이 들어오고 광고 계약도 멈추지 않는다. 팬들의 사랑은 날이 갈 수록 크기를 불렸다.
연기에 대한 철학도 욕심도 딱히 없다. 그냥 적성에 맞고 재능이 있으니 되는 대로 할 뿐이다.
마흔이 되기 전에 괜찮은 역할만 도맡아 하다가 나이가 차는 순간 깔끔히 은퇴하는게 해인의 인생 목표였다.
흰 머리 보일까 전전긍긍 하거나 주름살 없애겠다고 주사 맞고 다니는 삶을 살기는 싫었다.
애 엄마 역할 같은거나 도맡아 하는 배우가 되기는 더 싫었고.
"왜요? 난 고해인씨가 아이 엄마 역할 하는것도 예쁘고 멋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렇게 말해주는 남자를 만나, 해인은 여배우 인생에 치명상이라는 공개연애까지 감수했다.
마스크도 안 낀 채 손 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진이 매일같이 포털에 오르내렸다.
인터뷰만 했다 하면 서로의 이름이 항상 언급되는 핫한 공개커플에게, 대중들은 유난히 관대했다.
예쁘다, 오래 갔으면 좋겠다, 하는 수준의 반응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개런티와 가치도 함께 폭등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문제는 대중의 반응이 아니었다. 해인과 남자의 감정은 대중의 열기보다 빠르게 엑셀을 밟았다.
좋아 죽을 것 같은 것도 딱 1년 이었다. 400일을 조금 넘기자 이제 서로의 일이 사랑보다 중요한 시기가 찾아왔다.
남자는 온갖 촬영에 빠져 해인을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았다. 사랑받으며 사는 일에 한 없이 익숙한 해인에게도 권태기가 찾아온건 당연한 일이었다.
콧대 높고 빠지는 것 없는 고해인이다. 저보다 일이 좋다는 남자에게 매달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감기몸살로 아파 죽겠다는 카톡을 다섯개나 보내뒀는데도 남자가 '미안, 촬영중이라.' 한마디 띡 던져놓고 잠수 타던 날, 해인은 이별을 결심했다.
2년간의 공개 연애는 그렇게 순식간에 정리됐다. 그리고 그 다음날 결별 기사가 포털을 덮었다. 이제 다 끝났구나, 안도하고 있을 때 였다.
결별 반박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너희 둘 공개 연애로 얼마나 득 보고 있는지 알지. 둘이 헤어졌다, 하면 다 같이 쫑나는거야. 고해인, 너 열애설 이후에 씨에프 들어온게 몇개인지나 알아? 그거 위약금 물어주려면 나 회사 팔고 집 팔고 차 팔고 장기도 팔 판이야. 진짜 다시 만나라고는 안 할 테니까 우리 당분간 거짓말 좀 하자. 연기 잘 하잖아, 너네?"
그래서 한 달에 두 번, 언플용 공개 데이트 계약이 시작됐다.
모자는 착용하되 안경이나 선글라스, 마스크 등 얼굴을 직접적으로 가리는 악세사리는 피할 것. 월 2회 중 1회 이상은 커플 아이템을 최소 2개 꼭 착용할 것. 절대로 시민들의 카메라나 파파라치를 의식하지 말고, 실제 연인처럼 데이트에 임할 것. 야외에서 다투거나 싸우는 일은 없게 하고 길거리를 걸을 때는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걸을 것. 스킨십 수위는 손잡기 이상, 포옹 이하로 제한을 둘 것…….
싫다고 아등바등 하는 해인을 애 취급 해가며 끌어앉혀 놓은게 본인이면서, 남자는 어째 공개 데이트에 비협조적이고 심드렁 했다. 오지 않는 남자를 약속장소에서 미리 기다릴 때 마다 해인은 이를 갈았다. 아니, 지금 내가 매달리는 그림이야 설마?
데이트는 완전히 이상했다.
영화관에 가도 대화 한 마디 없이 영화만 보고 나온다. 식당에 가도 주절주절 서로 자기 얘기만 하다 사진 몇 장 찍혔다 싶으면 금세 나와버린다.
길 거리 걸을 때도 손 잡는 것 이상의 스킨십은 없고, 가끔 하는 포옹마저 5초 이상은 하지 않는다. 달콤한 눈으로 해인을 바라보며 한다는 말이 고작 너 살 존나 많이 쪘어. 따위 뿐이다.
그런데 왜. 왜? 대체 왜!
[우리 이번 달 계약 이행 한번 남은거 알지?]
[다음주 목요일에 놀이공원.]
[그래]
왜 자꾸 남자를 기다리고 데이트를 기대하고 있을까, 천하의 고해인이!
"오른쪽에 카메라. 디치패스 같은데."
"팔짱 껴, 팔짱."
"이 참에 우리 확 뽀뽀 한 번 해버릴까. 그럼 한 두달 데이트 안 해도 될텐데."
"한 대 맞고싶으면 계속 해라."
"사람들 한테는 너 내 여자친구야."
"그래서 뭐?"
"니가 딴 남자랑 하하호호 하면 내 상황이 난감해, 안 난감해?"
"나 어제 미팅 다녀왔어."
"김감독님 영화?"
"응. 중반부에 있던 베드신 빼달라고 했어."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너 그거 때문에 어제부터 계속 기분 안 좋았잖아."
"무, 무슨! 내가 왜! 하나도 안 나쁘거든, 기분 좋거든, 신경 안 쓰이거든!?"
"속일걸 속여라, 해인아."
"너, 나 헷갈리게 하지 마."
"고해인 취했네."
"나 농담하는거 아니야."
"……."
"나 갖고 놀지 마. 내가 부탁할게."
"…좋네. 고해인이 나한테 뭐 부탁하니까."
2. 갑과 을
공지철 X 표은우
: 4년의 짝사랑은 거짓말을 낳았다. 사랑은 사랑으로 돌려막아야 했기 때문에.
듣던 대로 여자는 엄청난 미인이었다. 흰 웨딩드레스가 저렇게까지 잘 어울리는 여자는 처음봤다. 나는 괜히 기가 죽어 원피스의 치맛단을 만지작댔다. 화사하게 웃는 얼굴의 신부가 먼저 나서서 인사를 건네왔다.
"오빠! 못 온다더니."
"아무리 바빠도 니 결혼식은 봐야지. 축하해."
"고마워요. 얼굴 보니까 좋다. 근데, 옆에 분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여자가 묻자마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소리 없이 숨을 헙 들이킨 내가 올려다보자 남자는 멍한 눈으로 나를 흘끗 하고 다시 여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 여자친구야. 소개해주려고 같이 왔어."
"어머, 진짜? 웬일이야! 안녕하세요, 차수민이라고 해요."
"네… 표은우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이게 무슨 일이야. 나 오빠가 누구 만나는거 처음 봐."
"그러게. 나도 좀 놀랍네."
마주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남자는 입꼬리를 팽팽히 당겨 자상하게 웃고 있었다. 목소리도 표정도 저렇게 평온한데 잡은 손만 바들바들 떨고 있다. 이 상황 속에서 제일 비참하게 나인데도, 나는 남자가 측은했다. 가엾은 연기가 사람 마음을 후벼파서.
"누구 만나는 사람도 없길래 얼마나 눈이 높아 그러나 했더니, 은우씨같은 분 기다렸나봐요. 지철오빠가 잘 해줘요?"
"네. 다정하고, 친절하고… 매너있고 자상하고. 은근히 세심한 면도 있고 여자 마음도 잘 알아주고, 요리도 잘 하고 옷도 잘 입어요. 기념일도 잘 챙겨주고, 또, 잘 생겼고, 몸도 좋고…,"
"……."
"…좋은 사람이에요."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가만히 내려본다. 잠깐 당황하는 듯 하던 수민씨도 이내 환하게 웃으며 내 말에 공감했다. 지철오빠 진짜 좋은 남자예요. 두 분 너무 잘 어울려요.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만 가봐야겠다고 인사했다. 일이 바빠서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수민씨도 다음에 꼭 만나자고 대답하며 손을 흔들어줬다. 우리는 잡은 손을 끝까지 놓지 않고 신부 대기실 밖으로 나와 지하 주차장으로 곧장 향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마자 남자는 내 손을 놓고 벽에 기대 섰다.
"쓸데 없는 말을 왜 하지."
"…미안해요."
"오늘 도와준건 고마워요. 집까지 데려다 줄게."
"아뇨. 근처에서 약속이 있어서요. 맘도 안 좋으실텐데 집으로 바로 가세요."
땡 소리와 함께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나는 날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똑바른 걸음으로 걸어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렸다. 인사도 없이 로비 홀을 가로질러 걸었다. 등 뒤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당당한 척 걷던 걸음이 천천히 느려지고, 한 순간 무릎이 힘없이 꺾여 나는 자리에 주저 앉았다. 로비의 사람들 시선이 일순간 내게 꽂혔다가 이내 흩어진다.
남자의 첫사랑이 결혼을 했다. 나는 그 첫사랑 앞에서 그의 여자친구 행세를 하고 나왔다. 4년간의 짝사랑동안 내게 단 한번 눈길도 주지 않았던 남자는, 내 감정을 이런식으로 이용했다. 자리에 주저앉아 나는 엉엉 울었다. 비참하거나 창피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이용당해도 좋다는 생각마저 드는 내가 한심해서.
***
그렇게 좋다고 해도 눈길 한 번 안 주더니, 이제 와서 여자친구 행세를 하라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일찍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 손에 어렵게 자랐다.
그랬어도 태생이 예쁨받을 팔자에 항상 당당하고 떳떳해, 어디 가서 불의에 고개 숙인 적도 어영부영 넘어간 적도 없다.
누구들 처럼 돈 많고 스펙 좋아 콧대가 높지는 못했어도, 낮은 콧대 단단히 곧게 세우고 할 말은 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스물 넷 여름, 재판장에서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사랑 앞에는 자존심이고 뭐고 없다고 했던가. 그게 딱 남자를 만난 은우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나는 잘났고 그래서 사랑받을 가치가 있으니 날 함부로 대하지 말라! 가 삶의 모토였는데, 어째 남자에게는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헤프게 퍼주기만 하게 된다.
대놓고 선을 긋는 행동에도 그저 좋아 헤헤 웃게만 되는게 여간 중증인게 아니다 싶던 찰나, 4년만에 처음으로 남자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5월 2일에 시간 어때요."
"별건 아니고,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은우씨, 그 날만 내 여자친구 해줄 수 있어요?"
똥차 중의 똥차가 아닐 수 없다. 저를 몇년째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저딴 부탁을 하는 것 부터가 글러먹었다는걸 분명 은우도 안다! 머리로는!
새침하게 고민 해 볼게요, 대답해놓고 은우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옷이며 신발이며 악세사리를 몽땅 새로 질렀다.
가짜 여자친구 행세를 하던 날, 새로 산 구두는 작아서 발이 다 까졌고 원피스는 허리가 조여서 숨 쉬기도 불편했고 싸구려 귀걸이 때문에 귀에선 진물이 터져 퉁퉁 부었다.
그런데 어째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 저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자상한 웃음이 계속 머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아서.
우울하고 힘든데, 사실 비참해서 슬프지는 않다는게 더 자존심상해서 아팠다. 사랑이 이렇게 복잡하고 잔인한 감정이라면 다시는 겪지 않으리, 아무리 좋고 사랑해도 이딴 부탁에 다시는 응하지 않으리, 맥주 한 캔에 만취한 그 날 밤. 분명히 다짐했는데. 그랬는데.
"미안한데 우리 좀 만나죠. 이따 저녁 일곱시 어때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내가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어요. 미안합니다."
"네? 무슨 말씀을…"
"수민이가 우리 부모님한테 은우씨 얘기를 했나봐요."
"……."
"다음주에 인사 오라고 난리세요."
다시는… 응하지 않겠다고… 다짐 했는데…….
"3개월. 그 이상은 안돼요."
"애들 연애도 아니고 3개월은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어른들도 3달만에 질릴 수 있죠, 뭐."
"…그러는 본인은 4년동안 나를 졸졸…,"
"아 시끄러워요!"
"어떡해. 나 옷 안 이상해요? 프릴이 너무 요란한가? 바꿔 입을까요?"
"괜찮다니까. 우리 부모님 그런 분들 아니세요."
"남자들은 꼭 저런다니까. 막상 닥쳐보면 또 아닌 경우 많단 말이에요!"
"…남자친구 부모님을 많이 만나봤나보네?"
"무, 무슨! 무슨 소리를!"
"아니면 말고. 옷 예뻐요. 그만 불안해 해요."
"통화 끝났어요? 누구예요?"
"표은우씨. 정말 미안한데…,"
"수민씨 전화구나."
"……."
"가세요. 괜찮아요, 저."
"미안해요. 집에 데려다 줄게요."
"아니에요. 전 음식 나오면 먹고 갈게요. 배가 너무 고파서."
"……."
"식사는 다음에… 다음에 해요, 우리."
"놔요!"
"헤어질거야?"
"……."
"정말 나랑 이렇게 헤어질거야?"
3. 썸띵 인사이드 (SOMETHING INSIDE)
강하늘 X 신재아
: 사람들은 알까. 저 스윗한 남자가 사실은 상또라이라는걸.
"미쳤어. 너무 잘 생겼어."
등 뒤에서 채영언니가 호들갑을 떤다. 나는 화장을 고치며 카메라 앞 테이블에 앉아 질문 리스트를 읽고 있는 남자를 흘끗 쳐다봤다. 진짜 잘 생기긴 했구나. 피부도 매끈하고 콧대도 오똑한데 눈은 또 얼마나 예쁜지. 다가와서 인사하는 스태프들에게 웃어보이는 입매도 잘 빠졌다. 남자가 국내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인기를 얻은데에는 어마어마한 실력도 실력이지만 저 얼굴도 한 몫 했으리라.
"하늘씨 안녕하세요. 오늘 인터뷰 진행할 신재아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 안녕하세요. 제가 더 잘 부탁드립니다. 강하늘입니다."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악수를 받았다. 손이 얼굴과는 다르게 남자다운 면이 있었다. 남자는 읽고 있던 질문지를 매니저에게 건네고 테이블 위를 깔끔히 정리했다.
가벼운 인사에서 시작해 최근 활동에 대한 질문을 거쳐 피아노를 시작한 계기, 가장 행복했던 순간, 제일 좋아하는 연주곡 따위의 뻔한 질문을 거쳐, 이제 사생활을 좀 파고 들어볼 차례가 왔다. 나는 짓궂게 웃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자연스럽게 다른 쪽 다리를 꼬아 올리자 남자가 올게 왔다는 듯 눈을 꾹 감고 웃는다.
"제가 무슨 질문 할지 예상 하고 계시죠?"
"네. 대충 알 것 같네요."
흐하하, 머쓱하게 웃은 남자가 난감하다는 듯 붉어진 얼굴을 큰 손으로 한번 쓸어내렸다.
"가볍게 해볼까요. 혹시 만나는 분 있으세요?"
"아뇨, 없습니다."
"그럼 이상형은요?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린다거나, 피부가 희다거나?"
"음… 저는 사실 외모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럴 줄 알았지. 인터뷰를 하는 연예인들 중 열이면 열 모두 저렇게 말문을 열곤 한다. 얼굴은 안 봐요. 외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내면을 봐요. 착하고, 예의바르고, 잘 웃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대답이 나오겠지.
"저는, 자기 눈에 자기가 제일 예쁜 사람이 좋더라고요."
"…네?"
"저 사람은 나보다 눈이 예쁘고, 저 사람은 나보다 센스가 좋고, 저 사람은 나보다 뭐가 어떻고… 요즘 분위기가 다 그렇잖아요. 근데 저는… 자기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참 멋져 보여요. 내 눈엔 내가 제일 잘났어! 내가 제일 예뻐! 이런 분위기의 여성분을 보면 많이 끌리는 것 같아요."
나는 잠깐 말문이 막혀 아, 네… 그렇군요……. 따위의 말만 반복했다. 그 뒤의 인터뷰는 어떻게 진행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나는 어영부영 인터뷰를 마치고 촬영을 끝냈다. 사진작가가 에디터와 함께 사진을 셀렉하는 사이 남자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매니저와 함께 스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나는 구석에 멍하니 서 있다가 제일 마지막으로 남자의 악수를 받았다.
"오늘 수고하셨어요, 에디터님."
"아, 아니에요. 하늘씨도 수고하셨어요."
멍한 목소리에 남자가 씩 웃는다. 그러더니 내게 가까이 한 발 더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은밀히 속삭였다.
"저랑 저녁식사 하실래요?"
"네?"
"오늘, 지금요. 둘이서."
뭐에 홀린 듯 따라간 식당은 꽤 맛있고 분위기도 좋았다. 남자가 주문한 와인도 맘에 들었고. 분위기에 취하고 알콜에 취하고 남자에게 취하고, 어쨌든 그 날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햇살이 찬란한 다음날 정오, 내가 남자와 한 침대에서 발가벗은 꼴로 잠을 깬걸 보니.
***
인생에서 평범이란 딱지를 좀 떼 보고 싶었다.
일탈따위 가슴 두근대서 못하는 신재아, 하지 말란건 절대 못하는 신재아, 소심하고 안정적인걸 좋아하는 신재아.
대학도 모험 없이 안전하게 붙을 곳만 넣었고, 음식점에 가도 늘 같은 것만 시키고, 당연히 사람도 남자도 쉽게 만나지 않는 극도로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우연히 친구 따라 들게된 대학 동아리에서 유명한 연예인과의 지문 인터뷰를 하게 됐을 때, 처음 느껴보는 설렘과 떨림, 대단한 일을 해서 대단한 사람을 만나게 됐다는 느낌을 받자마자 진로를 틀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래서 그 사람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대화하면, 그러면 나도 내 인생의 평범함을 조금 지울 수 있지 않을까. 개복치같은 신재아, 그 재미없는 인생을 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낮은 자존감을 높이고자 선택한 직업이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반짝거리는 사람들은 또 그들만의 리그에서 놀고 있었으니까. 누구는 카메라만 꺼지면 바닥에 침을 뱉고, 누구는 재아의 몸매를 눈으로 길게 훑어내리고, 누구는 재아를 은근히 낮춰보고 깔아대기 일쑤였다.
그런 인간 덜 된 사람들마저 나보다 잘난 대우를 받고 사는구나 싶어지자 일에도 자기 자신에게도 흥미를 잃었다. 그냥 재미없게 살 팔자인가보지, 싶어서.
그러다가 남자를 만났다.
카메라가 꺼져도 여전히 스윗하고 젠틀한 사람. 자기 직업을 사랑하고 언제나 노력하는 사람. 게다가 재아에게 먼저 데이트 신청까지 해 오는 사람.
그래서, 너무 들떠서, 그게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랬나. 그래서 남자와 밥도 먹고 술도 마셨나. 그래서 남자 앞에서 진탕 취했나. 그래서, 그래서 남자와, 잤나. 재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남자, 좀 이상하다.
"그런 눈으로 나 좀 보지 마세요. 토나와."
"…뭐라구요?"
"무슨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잖아. 내가 지난번에도 말 했는데. 사람으로 보라고."
메스컴에서 보던 그 한결같이 예의바르고 다정한 피아니스트는 어디가고, 이상한 예민킹만 남았다.
웃는 얼굴 뒤에 묘하게 섬짓한 내면이 있다. 그리고 대체 무슨 생각인지, 재아에게만 그걸 전부 드러냈다.
툭하면 연락하고, 툭 하면 만나자고 하고, 툭 하면 집으로 찾아오고, 툭 하면 간섭하고 끼어들고…….
대체 이 남자 뭐지. 싸이코인가.
"저한테 왜 이래요?"
"말 했잖아. 신재아씨, 나랑 많이 닮았다니까요."
미친놈인가.
"어머, 하늘씨가 사무실까지 웬일이세요!"
"안녕하세요. 그냥 근처 지나가다가 잠깐 들렀어요. 식사는 다들 하셨어요? 제가 샌드위치 좀 사 왔는데."
"정말? 고마워서 어떡하지. 잘 먹을게요, 마침 다들 끼니도 걸렀는데. 고마워요."
"뭘요. 혹시 신재아 에디터님 안 계신가요?"
"…재아요?"
"네. 제 전화를 계속 안 받으셔서요. 오늘 같이 저녁 좀 먹자니까."
"나한테 도대체 왜 이래요? 사람 곤란하게 왜 자꾸!"
"내가 말 했잖아요. 신재아씨 나랑 많이 닮았다니까."
"대체 뭐가!"
"겉이랑 속이랑 너무 다른게?"
"…본인도 그걸 알긴 알아요?"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했지."
"왜 이래요! 지인 좀 만난게 이렇게 화 낼 일이에요?"
"어. 내 허락 없이 누구 만나고 다니지 마. 특히 저런 새끼."
"누구보고 새끼래. 니가 뭔데 난리야!"
"딱 보면 몰라?"
"……."
"또라이."
"어떡해. 어떡해요? 병원 가야 돼. 119, 119 번호가 뭐지?"
"……."
"소, 손가락 움직여봐요. 움직여요? 힘 잘 들어가구?"
"손 좀 베인거 가지고 왜 그래요. 진정해요."
"미안해요. 어떡해, 많이 아프죠. 아, 미안해요. 난 진짜 맨날 사고만 치고…"
"다친건 난데 왜 니가 울어."
"정말 미안해요. 내가 요리 다시는 안 할게요. 이 손이 얼마짜리 손인데……."
"진짜, 우는것도 예뻐서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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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하나! 하나만 골라야됨! 두개 고르면 두개 보고 오수랑 결혼함! ^______^
어제 한번 올렸던거 인물 살짞 바꿔서 재업이에요!
개인적으로 썸띵 인사이드 누가 드라마 제작좀....글로라도 좀.......제발.........
문제시 애는 원래 그러면서 크는거고 우리 엄마 눈엔 난 항상 애라고 위로함
첫댓글 속일걸 속여라 해인아 개쩐다.. 아인님 저 대사 한번만 해주세요...
보는건 갑과 을 볼래.. 왜냐면 내가 후회물을 또 존나 좋아해..
아니 동시간대에 한번만하면 손익분기점 어떻게 맞춰??
1111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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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 개좋아
삭제된 댓글 입니다.
ㄱㅆ 와 레알 틈새시장
@R=VD7월까지43키로까지빠졌다. 그렇지만 ㅅㅔ개 다 고르면 너 오수랑 결혼 + 니 딸 오수랑 결혼 (악독)
1111
아니..도대체..필력이..와.....bbb개도랏다.......와......
아...12
셋 다 고르고 오수랑 지옥간다....다들 즐감해ㅜㅜ...내한몸ㅇ희생해서라도 저걸 기록으로 남기겠어
2 오진다
11111진짜로 나오면 좋겠다 재밌을거같아
11111
하,,,,대박이다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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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는 남주 ㅈㄴ 똥차라 감정소비 심해8ㅅ8 난 3 재밌을듯
33333
222 공지처어어어어류
111..ㅜㅠㅜㅜ
3
1ㅜㅜㅠㅠㅠㅠㅠ
222 누구 갑과을써주라......보고싶어...
또보러옴..지철저거찍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