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북천 이병주 문학관에
다녀왔다. (11월 15일)
바쁜 일정을 쪼개어 그 틈
속에 문학이란 걸 밀어넣고파 어렵게 여겨지는 운전대, 그보다 더 두려운 밤운전을 미끄럼 타듯 다녀왔다.
해마다 이병주 문학관에서는
시인을 초청해 문학의 밤 행사를 1박2일로 여는가보다.
문학관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유홍준 시인을 형이라 부르거나 유홍준 시인이 형이라 부르는 시인들이 문학의 밤을 형성하는 듯했다.
형이라 부를 수 있는 시인
사이가 있다는 건 참으로 시적으로 들렸다.
이번 가을밤엔 문태준
시인이랑 손택수, 장만호 시인이 왔다. 그들은 70년 개띠들이었다.
묘하게도 문태준
시인은 누구와 어울리냐에 따라 3인방 체제를 잘 만드는 듯하다.
김천 출신 3인방으로 소설가
김연수, 김중혁이 있었다면 유홍준 문학관에서 만난 이들은 개띠 3인방이라 할 만했다.
그를 일러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시인이라
칭하는 만큼 어디에 묶여도 그럴싸함이 느껴진다.
이태 전에 문태준 시인이
천강문학상 심사를 다녀간 적 있었다. 그의 시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만큼 그때 참으로 기뻤었다.
심사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그가 꽤 겸손하단 것이었다.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진솔함이 모습에서도 풍겨지는 듯했다.
그가 심사를 다녀가고 한동안
카카오톡 프로필에 충익사 모과나무를 걸어두고 있었음을 기억한다.
그건 내가 가끔 그분의 카톡
사진을 보고 있다는 누설도 되겠지만, 어쩌면 한 편의 시로 탄생될까봐 설레며
기다린다는 뜻도 되겠다.
나는 하필 그날 몹시도
바빴었지만 문태준 시인을 다시 만난다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기꺼이 틈을 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손택수,
장만호 두 시인을 한꺼번에 만나 단박에 다 좋아할 것이라는 건 꿈에도 알지 못했다.
안도현 시인이 나중에 중학교
교과서에 싣고 싶은 시가 뭐냐고 물어오면 손택수의 '묵죽'을 권하겠다고 했다던 바로 그 시인.
그래서 한 폭의 수묵화를
바라보듯 가슴에 박히던 그가 그토록 예사로이 옛시절을 읊고, 추억 뒤의 공허함을 잘 끌어낼 줄은 몰랐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말
속에 회화가 들어 있었다.
언제고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런 류의 문학시간 한 번 더 갖고 싶었음을 눈 깜빡임 한 번 없이 새겨 들으며 생각했었다.
오후 4시의 늦가을 풍경이
펼쳐지는 국도변으로 지난번 코스모스들은 자취도 없었지만
낙엽지는 가로수들의
스산한 분위기는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손택수
시인의 강연이 방금 끝난 후였다.
우리는 프로그램 모두를 즐길
수는 없었기에 낮시간의 순서를 몰랐었지만 첫번째 문학강연의 좋은 시간은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아쉬움은 예정에
없이 한 시간 지각하게 된 문태준 시인 덕분에 더없이 멋진 만남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이병주 문학관의
자태는 문학관으로서 가장 닮고 싶은 분위기를 짓고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함께 한 순수와 버들이
문학관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미 다녀갔다고 거만한 표정을 좀 지어주었다.
유홍준 시인은 우리가 건넨
의령의 특산물 망개떡을 무슨 책을 안듯 덥썩 안았다. 그는 여전히 눈빛 형형한 소년이었다.
곧바로 저녁 식사자리로
이동했다. 잠시 내부를 둘러보고 차 한잔 마셨을 뿐인데 북천하늘이 그새 깜깜해져 있었다.
동네 이름이 직전마을이었다.
그 마을 이름을
듣고는 돌아가시기 직전이니, 살 빠지기 직전이니 하며 이름풀이를 해보며 웃었다.
지난번 코스모스 축제장이
펼쳐졌던 바로 그 동네였다. 멀리로 메밀꽃이 흐드러졌던 들판이 늦가을 산들바람을 보내왔다.
그곳 마을회관을 닮은 듯한
식당에서 때이른 저녁을 먹고는 다시 본격적인 문학강연의 시간을 이어 갔다.
장만호 시인이 들려준 시인
김수영과 그의 아내 김현경의 이야기는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몰입하게 만드는 말의
차분함이 전형적인 강연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 주었다.
메모하고 싶은 걸 참다가(왜
그랬을까?) 뒤늦게서야 준비해 간 '가재미' 책의 첫머리 부분에 몇 자 끄적거려 놓았다.
<김수영 전집>과
부인 김현경 여사가 쓴 '김수영의 연인'도 좋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그의 인문학 정신을
찬양한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 를 먼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강신주를 노리고 있기에 이 책이 다급히 탐났다.
온몸으로 시를 밀고 나가라 했다던 김수영을
온전히 이해해보고 싶었다.
찬 겨울이 나를 그렇게 이끌어 줄 것이니
책읽는 고마운 겨울밤이 곧 오리라.
고맙게도 문태준 시인은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전주에서 오고 있다는 것만 중계로 들었기에 어느 상황인지는 전혀 몰랐는데,
한 시간을 훌쩍 넘긴 후 어렵사리 도착한
그의 행로는 생각보다 기구했다.
전주에서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가 요즘
보기드문 완행버스였단다.
그것도 남원으로 해서 함양까지 들렀다 왔으니
예정시간을 훌쩍 넘기지 않을 도리 없었다.
그의 마음은 오히려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보다
더 애가 탔으려니 하는데, 그건 유홍준 형이 알아서 편케 해줬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 빈자리를 훌륭히 어루만져 준 이가 바로
손택수 시인이었다.
그의 강연은 이미 끝이 났음에도 이병주
문학관의 자유로운 형식에선 그 따위가 통하지 않을 듯했다.
장만호 시인의 강연에 이어 즉석에서 손택수
시인의 김수영론이 대담 형식으로 이어졌다.
그 풍성한 시적 향연은 내가
오랫동안 꿈으로만 꿔오던 목마름에 단비였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한 순간도 졸지 않고 한 순간도 놓치지 않은
오직 완전한 문학콘서트였다.
문태준 시인은 결국 약속에 늦은 관계로,
또한 다음 시간에 쫓기고 있단 이유로 엑기스만 뽑는 단축수업이 주어졌다.
그의 문학강연을 통해
시적 세계를 해석하는
관찰력이 뛰어남을 느꼈던 것 같다. 시적 시야가 확장되는 경이로운 체험이랄까.
조금의 거드름도 없는 높은 겸손의 경지에서
오묘한 함수관계를 풀어내는 수준높은 직관력이 부러웠다.
그가 시를 해석하여 내놓은 책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를 육성으로 듣는 듯한 몰입의 경지였다.
30분 듣기로 어찌 그 넓고 아득한 시의
경지를 이해할까만, 자고로 너무나 행복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수업이 마쳐지고 너무도 당연하단듯 저자
사인회가 이어졌다. 장소이동을 해야 했음에도 책을 산 우리는 사인을 받아야 했다.
나는 그에게 의령과 인연이 있으며 기억하실지
모르겠다고 살짝 전해 보았다.
사인을 하려던 그는 아주 반갑게 웃어주었다.
심지어 내 이름 중 한 글자를 말하기까지 했다.
그런 것에도 감동이라 해얄지는 모르겠지만,
감동에 버금가는 기쁨이 밀려왔다.
그때 점심으로 먹은 소고기국밥을 그는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내친김에 한번 다녀가시라고 했다.
그것도 우리에게 와서 문학강연을 해달라고.
미래의 한 순간은 그렇게 스치는 한 마디에서
우선 성사되었으니, 자세한 것은 조율만 남은 상태이겠다.
진정한 문학의 향연이 시작될 밤이
찾아왔지만, 우리 일행은 아쉬워도 돌아와야 한다는 것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시골의 밤은 무척이나 어두워서 밤운전이 몇
손가락에 꼽히는 나는 두려울 법도 했지만, 그저 늦게까지 놀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했다.
어쩔 수 없이 돌아오는 차에서도 되돌아가 회
한 접시 같이 나누며 문학의 밤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다.
그러나 몸은 순한 양이 되어 있었으니 어찌
하겠는가. 마음따로 몸따로는 나이 들면 나오는 반응인가 하였다.
그 가을 밤 문학하고 돌아왔다. 삶이 어찌
문학과 따로일 수 있겠는가.
움직임이 곧 문학이요, 그러한 삶이 곧
시적이었다.
첫댓글 그들을 만난 소감문 또한 문학적이네.
신선한 충격을 간접적으로 느껴보는 중이다.
혼자만이 써놓았던 것을 살짜기 내걸어 보았습니다.
그날 언니가 얇은 몸을 이끌고라도 함께 했었더라면 더 오래오래 공유할 수 있었겠지요.
다음엔 더 얇아 바스락거려져도 함께 해요. ^^
감사합니다. _()_
가만히 앉아 있어서 오는 충격보다 찾아 가서 느끼는 감흥이 더 즐거운 것 아닐까요?
한 시간을 투자하여 찾아갔고 같이 있으며 웃고 즐긴 시간이 있어 그 강연이 더 많은 여운을 남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고생했어요 세 분 밤늦은 시간까지 명강의 듣는다고....
즐감....
회장님이 분주히 다니며 여기저기 소식 물어다주시니
몸은 따라 갔어도 항상 앉아서 숟가락만 올리는 기분입니다.
요즘 문학행사에서 예리한 안목으로 따스한 넓이로 우리들의 문협을 이끌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