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밀레니엄 이후에도 영국 씬은 90년대의 블러 (Blur)와 스웨이드 (Suede), 오아시스 (Oasis) 붐을 계승할 만한 감성적인 밴드들을 꾸준히 배출해오고 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브릿 씬에 그다지 열광하는 편은 아니지만, 콜드플레이 (Coldplay)가 자국 평정에 이어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입성하며 팬들과 평단의 인정을 획득한 세계적인 밴드가 된 것에는 그에 합당한 재능과 감성, 발군의 멜로디 메이킹이 존재했다고 본다. 그런데, 콜드플레이와 그와 비슷한 성향을 추구하는 밴드들을 설명하는 코드로 자리잡아온 '멜랑콜리아'란 따지고 보면 용어의 유희에 다름 아니다. 이미 몇몇 뮤지션들이 지적했듯, 사실상 이모 (emo)나 멜랑콜리 (melancholy)적 측면을 가지지 않은 대중적인 밴드가 존재하겠느냐는 이야기다. 결국 감성은 필수적인 요소이며, 그것을 어떤 연주방식과 멜로디, 가사를 통해 아름답게 표현해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더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일단 발군의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밴드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약속 받은 밴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씬에서 이미 콜드플레이의 후계자(?)들로 일컬어지는 킨 (Keane)이나 최근 부상하고 있는 써틴 센시즈 (Thirteen Senses) 역시, 그런 측면에서 아름다운 연주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상종가를 누리고 있는 밴드들이다.
저러한 브릿 씬의 멜랑콜리아를 최근 본격적으로 수용했다고 하여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 피더 (Feeder)의 2005년도 신작 "Pushing The Senses"이다. 일각에서는 피더가 트렌드에 편승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런 스타일을 취했다고 하는데, 마치 그런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피더라는 밴드의 과거의 스타일은 스트레이트하고 밝고 로맨틱한 팝 펑크와 얼터너티브 사운드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들의 97년도 데뷔작인 "Polythene"부터가 매우 모던하고 얼터너티브적인 작품으로서 당시 브릿 씬의 음울하고 처연한 스타일의 밴드들과는 확연히 차별되었기에 개인적으로도 주목하게 되었었다. 이것을 다른 차원에서 이야기한다면, 피더가 웨일즈 출신의 영국 밴드임에도 당시 브릿 씬을 주름잡던 밴드들의 노선을 따른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을 택하여 시작했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출발점이 비록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해도, 탁월한 멜로디 메이킹에 푸른 하늘 같이 청량한 낭만과 젊음의 돌발적 에너지를 듬뿍 실어냈던 이들의 사운드는 팬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 멜랑콜리아가 용어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피더에 적용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피더는 애초부터 넘치는 감성과 멋진 멜로디를 지닌 밴드였으며, 그것이 신작 "Pushing The Senses"에서 조금 더 애수 띤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해서 피더 자체가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 변신을 꾀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데뷔 이후의 세월 동안 밴드에게 일어났던 신변상의 변화들과 달콤하고도 쓰라린 추억들은 자연스럽게 밴드로 하여금 이런 스타일의 앨범을 만들게끔 이끌었을 것이다.
팬들도 숙지하고 있다시피 2002년 초 네 번째 앨범 "Comfort In Sound" 발표 직전,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인 그랜트 니콜라스 (Grant Nicholas)와 베이시스트 다카 히로세 (Taka Hirose)는 밴드에서 동고동락했던 드러머인 존 리 (John Lee)를 잃었다. 존의 자살로 인해 상처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Comfort In Sound"는 영국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앨범에서부터 나타난 차분하고도 침잠하는 스타일이 본작 "Pushing The Senses"에까지 연장되었다는 것이 외면적으로는 틀리지 않는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본작 "Pushing The Senses"는 전작의 연장선상이니 멜랑콜리아의 수용이니 하는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라도, 충분히 아름답다. 무수한 인생사와 변화하는 감성들을, 가슴 저미는 애틋한 멜로디와 읊조리는 듯한 그랜트의 보컬로 고즈넉하게 담아내는 앨범은, 다른 수식이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이다.
물론 예전의 피더처럼 매력적으로 질주하는 'Pushing The Senses'나 'Pilgrim Soul' 같은 트랙들도 있지만, 역시 이 앨범의 진정한 면모는 가장 애틋한 감성들이 서려 있는 'Feeling The Moment' 'Bitter Glass' 'Tumble And Fall' 'Frequency' 'Pain On Pain'과 같은 곡들을 통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앨범을 여는 첫 곡 'Feeling The Moment'는 마치 백워드 마스터링 같은 노이즈로 시작하여 갑자기 강렬한 연주로 돌입하고, 이어 너무도 아름답고 초연한 멜로디 속에서도 상대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을 담아 노래하고 있다.
'순간들이 지나버리는 것을 느끼며...
태양빛이 없을 때 그대는 뭘 느끼나요? 아무도 없을 때 뭘 느끼나요?
내가 그대와 같은가요?
나는 결코 그대를 그렇게 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나는 단지 그대와 같기에.'
첫댓글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