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 중국 대중을 사로잡은 "영원한 노래의 황후"
[중국권 음악계의 영원한 연인 鄧麗君'등려군]☜
연예인은 우리들에게 꿈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14억 중화권에서 가장 영향력을 미친 가수는 누구일까? 그것은 재고의 여지가 없이 떵리쥔(鄧麗君)이다.
그녀의 일본명은 テレサ・テン(테레사 텐), 영문명은 Teresa Teng으로 테레사 수녀를 가장 존경하여 취했다고 한다.
그녀의 키는 167Cm, 몸무게는 47Kg으로 전통적인 중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여자 가수였다.
생전에 그녀가 부른 노래는 1,000여 곡이고, 모두 100장의 판을 냈으며 공식적으로 장당 100만 장 정도의
판매고를 올렸으니 그동안 발행되었던 것은 얼마인지 상상을 해보기 바란다. 그녀의 별명은 '천재 가수',
'중국인 중 가장 위대한 가수', '영원한 노래의 황후', '엔카의 여왕' 등 수많은 별명을 갖고 있다. 비록 그녀가
중국 대륙을 한 번도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중국인들 사이에는 "낮에는 라오떵(老鄧)인 떵사오핑이 통치하고,
밤에는 샤오떵(小鄧)이라는 떵리쥔이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았으니 그녀의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중국의 '밤과 낮'을 지배한 두 사람]☜
떵리쥔은 지금 이 세상에 없다. 14년 전인 1995년 5월 8일 42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노래는 지금도 중국 대륙과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동남아시아,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불려지고 있다. 더욱이 그녀의 노래 중
가장 인기가 있는 [月亮代表我的心]은 1999년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10곡'중 5위에 랭크되었고,
2008년 9월 27일에 발사된 중국의 유인 우주선 '선조우 7호'에 실려 우주 공간까지 갔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녀는 정말로 '달님' 가까이에서 중국을 대표하여 노래하고 있으리라..
떵리쥔(鄧麗君)은 1953년 1월 29일 타이완의 윈린시엔(雲林縣) 빠오충시앙(褒忠鄕) 티엔양춘(田洋村)에서
아버지 덩슈(鄧樞), 어머니 자오수궤이(趙素桂) 사이의 네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大埤鄕 dapixiang]
떵리쥔의 이름 본래 '리윈(麗筠)'이었는데,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지은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동료들이 추천한 청나라 여류작가 천레이성(陳端生)의 희곡 재생연(再生緣)에서 재능이 출중했던
송나라의 '멍리윈(孟麗筠)'으로부터 딸의 이름을 취하였다는데, 발음을 사람들이 쥔(君)으로 하기도 하여서
리쥔(麗君)으로 나중에 고쳤다. 그래서 사후에는 묘지를 균원(筠園)으로 명명하였고 묘비명에는 본명을 기록해 두었다.
그는 아마도 떵리쥔이 재인으로 살아갈 운명을 느낀 것은 아닐까?
그녀는 태어나면서 노래에는 천부적인 자질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자질을 더욱 발휘하게 된 것은
1960년 초등학교 2학년 때 은사 리청칭(李成淸)으로부터 노래 지도를 받으면서부터였다.
그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이미 공연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로주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 2학년 때 휴학하고
[우주(宇宙)음반회사]에서 최초로 자신의 노래를 취입하고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鄧麗君宇宙唱片時期]
이후 홍콩, 일본 등을 오가며 노래를 불렀고 가는 곳마다 인기가 대단했다.
그녀는 언어 분야의 재능이 특별히 뛰어 났다.
그녀는 외국어로 영어, 일어, 프랑스어, 말레시아어와 중국어로는 북경어, 민난어(南어), 광동어, 상하이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고, 그 가운데 특히 상하이어를 잘했다.
일본에서 활동할 때는 일본회사가 통역을 붙여 주었으나 반년 뒤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일본어를 잘했다.
1970년대 말부터 중국 대륙에도 그녀의 노래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중국 대륙은 녹음기의 보급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따라서 반도체 녹음기를 통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더욱이 당시 대륙에서 떵리쥔의 노래는 금지곡이었다.
이유는 1930, 40년대 상하이의 '퇴폐적인 음악(靡靡之音)'과 구별이 없고,
가사도 매우 불건전(爛不健康)하다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사실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부친의 타이완 군대 근무 경력과 떵리쥔이 타이완 군대에 대한 여러 차례의 위문 공연,
또한 타이완의 노래인 [梅花'매화], [中華民國頌'중화민국송]등을 불렀고 타이완에서 '애국가수',
'군인들의 애인(軍中情人)'이었으며 금문도(金門島)에서 대 중국 방송으로 '반공'을 강조하였던 이유가
더 문제였다. 이념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수신이 제대로 되지 않은 단파 라디오로 몰래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이후 개혁 개방이 되면서 1980년대 초, 중국 대륙의 몇몇 여자 가수들이 떵리쥔을 모방하여 노래를 불렀다.
예를 들면 리꾸이(李谷一), 주밍잉(朱明瑛), 청린(程琳) 등이 이른바 '대륙의 떵리쥔'으로 이름을 떨쳤다.
중국의 유행 음악사상 그녀의 노래는 전무후무하고 이미 세계 문화유산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녀의 노래는 목소리가 청아하고 완벽한 창법으로 10억 명의 팬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특히 중국 전통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떵리쥔은 유명한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곡조를 붙여
부른 [但原人長久'단원인장구]와 후당(後唐)의 황제였던 이욱(李煜)이 지은 시
[春花秋月何時了]를 노래한 [幾多愁'기다수.(虞美人)]와 [獨上西樓'독상서루]와 같은
명문장의 시에 곡조를 붙여 낭낭한 목소리 부른 노래는 그녀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였다.
이러한 노래들은 백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의 1000여 곡의 노래 중 대표적인 노래는
[月亮代表我的心'월량대표아적심], [甛蜜蜜'첨밀밀], [再見我的愛人'재견아적애인], [小城故事'소성고사],
[我只在乎你'아지재호니], [漫步人生路'만보인생로], [海韻'해운], [忘記他'망기타]가 자주 불려지고
지금도 중화권 어디에서든 들리는 노래들이다.
한편 그녀의 남자 친구 이야기도 흥미를 끄는데 모두 다섯 명이었다.
그녀가 18세가 되었을 때 만난 첫사랑 린쩐파(林振發)는 말레시아의 부호의 아들로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두 번째는 25세에 만난 천상린(陳祥林)이었지만, 그가 타이완의 유명한 여배우 린칭사(林靑霞)와 약혼을 함으로써
깨지고 말았다. 세 번째는 1979년 27세 때 미국에서 만난 영화배우 청롱(成龍)으로 잠시 동안 서로 사랑했지만 헤어졌고,
네 번째는 29살 때 만난 말레시아의 사탕수수 재벌인 '상그리라 그룹'의 아들 꿔콩청(郭孔丞)과 비밀리에 약혼했으나
꿔공승의 할머니가 떵리쥔에게 가수 은퇴 조건을 내걸자 헤어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37세에 만난 14살이나 어린 프랑스 사진작가 [스테판 퓨엘]이 그녀의 마지막 길을 마지막을 지켰다.
어쩐지 쓸쓸함이 배어 있다.
결국 떵리쥔은 1995년 5월 8일 태국 치앙마이의 메이핀 호텔에서 기관지 천식 발작으로 서세, 향년 42세였다.
1990년부터 동거 관계에 있던 14세 연하의 사진작가였던 프랑스인 스테판 퓨엘이 마지막 간호를 했다.
[장례식장]에는 중화민국 청천백일기와 국민당 당기로 그녀의 관을 덮어 주었다.
국기는 당시 총통부 비서장 우보슝(吳佰雄) 등 4명이 직접 덮었고, 국민당의 당기는 허수덕(許水德) 등 4명이 덮었으며,
당시 총통이었던 리덩훼이(李登輝)는 [예술계의 공헌을 한 인물(藝苑揚芬)]이라는 만장을 내렸고,
국민당은 최고 영예훈장 '화하1등장장'을 수여하였다.
장례 위원장으로는 당시 타이완 성장이었던 숭추위(宋楚瑜), 행정원장 리엔잔(連戰) 등 고관들이 직접 참석하여
국장에 버금가는 의식이었다. 전세계 3만여 명의 팬들이 몰려 애도하였다. 현재 묘소는 타이베이시 동북에 자리하고 있는
금보산(金寶山)의 '균원(筠園)'에 영면하고 있다.
묘(墓) 앞에서는 동상과 레코드 장치가 설치되어 그녀의 노래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시신을 화장하지 않고 그대로 매장하였다.
사후 50년 정도까지 생전 모습 그대로 둘 계획이라고 한다.
흥미 있는 일은 북한에서도 떵리쥔 사망 이듬해인 1996년 2월 1일 그녀의 사진을 담은 기념우표를 발행했다는 점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2007년 작고 12주년을 기념하여
아사히 방송 단막극 [타이완 가수(臺灣歌姬), 떵리쥔]을 제작하여 30개 국가에 방송하기도 하였다.
중화권의 최고의 가수 떵리쥔은 아직도 우리에게 살아서 그의 고운 목소리로 우리의 정서를 어루만져 주고 있다.
짜이지엔워디아이런(再見我的愛人)"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작성자: 한인희 (hdib@hyundaiilbo.com) 2009-04-13/ 번역교정 2010-7-18 진캉시앤,
鄧麗君약력(1), 鄧麗君mv(2), 鄧麗君mv(3), 鄧麗君mv(4), 鄧麗君mv(5)
[번역교정/ 내용보충] 2010-7-18 김강현 아버지 덩슈(鄧樞), 어머니 자오수궤이(趙素桂) 사이의 네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떵리쥔의 이름 본래 '리윈(麗筠)'이었는데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지은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동료들이 추천한 청나라 여류작가 천레이성(陳端生)의 희곡 [재생연(再生緣)]에서 재능이 출중했던 송나라의 '멍리윈(孟麗筠)'으로부터 딸의 이름을 취하였다는데, 발음을 사람들이 쥔(君)으로 하기도 하여서 리쥔(麗君)으로 나중에 고쳤다. 그래서 사후에는 묘지를 균원(筠園)으로 명명하였고 묘비명에는 본명을 기록해두었다.
그동안 우리등려군님 께서 발매한 음반이 100 여집,,, 그중에 1장당 100 여만장이상 팔렸다니.. 헉~~~~ 계산을 해보니 숨이넘어가네,,,, 아시아 인구가 (2012년)현재 약 43억정도 세계인구의 60 여% 를 차지한다 , 이 43 억 아시아 인구중,, 등려군님의 음반을 대다수는 구입완료,,ㅋㅋ 했다고 봐야할것 같네요, 그리고 현재도 음반판매 는 진행중이라니,,,, 끝이 않보이네,,,, 등려군님을 존경하는 팬의 입장에서 자랑스럽읍니다, 저도 5장정도 음반으로 3장정도 공연 DVD로 구입했으니.. 저도 그중에 한사람이라니... 자~~~랑~~스럽네요,,,,
제가 등려군님 전도사를 자칭하여 다른사람에게 등려군님을 소개할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했죠, 등려군님의 음반이 지금껏 무려 27억7천여만장 이라고 ,, 반 뻥튀기 소개를 많이 합니다, 이는 등려군님을 어떡해좀 관심 가져주길 바라는 의미에서 알지도 못하고 대략적인 저의 계산으로만 소개를 하고 했는데,, 그럴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는표정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에서 쾌재를 불렀지만,, 속으로는 찔렸읍니다, 정확하지 않은 대략적인 저만의 개산법이었으니... 대략 이럴것 같다는 식의 포현방법 이었죠,,
그런데 자료난에서 보고 놀라운사실은 제가 반 뻥튀기 음반판매 소개와 자료난 수치를 대략 계산해보니 그동안 제가 소개했던 대략적 뻥튀기 숫치가 어느정도 일치함을 보고는 놀랍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료난의 소개한 100여집 중 1장당 100 여만장 하면 우선적으로는 약 10억여장,,, 이수치가 7~80년대이후까지,라고 보고 거기다 100여집 앨범중 한사람이 2장이상씩만 잡아도,, 헉~,,,, 90년대 이후 중국에 개방이후 거대한 중국시장에서 등려군님의 음반은 불티 났을테고 14억 인구중 등려군님의 음반을 1,2장 구입한 중국인들이 얼마나 많았겠냐? 이말씀이죠, 아시아 인구 중 2장이상씩 구입하지 않은사람 없었을겁니다,
당시에 발매음반 100여집 중에서 아시아의 팬 중에는 2~3 장 수집한 사람이 많았을텐데 이런식으로 계산해보면 허~~ㄱ 2~30 여억 ,,,,, 숨막히네 ,,,, 거기에 개방된 거대한 중국시장에서 등려군님의 음반판매 .. 이건 ,,, 상상하기 어려우리많큼 어마어마한 숫치네요, ㅋㅋㅋㅋ 어찌보면 제가 뻥튀기 음반판매 소개도,, 근거없는 얘기는 아닌것 같네요, 그보다 더많이 팔려나간 셈이네요, 현재도 판매수치는 진행형이라니... 저자신도 그러한 아시아 팬 이라는 점이 자랑스럽읍니다, 이러니 제가 등려군님을 포현할때 "아시아 가요계 의 대통령.. 이라 표현을 하는데 ,, 그러한표현 들으실 자격 충분하지요, 음반 더 팔아드려야 겠어요,
N.A.S.A(미국 우주항공 연구소) 에서 예전에 우리가 사는 지구의소식을 담은 메시지(Time Capstul)를 우주공간 어디엔가 존재할지도 모를 외계생명체 에 우리의 소식을 전달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읍니다, 중국의 우주과학자들도 우리등려군님의 노래를 메시지로 우주멀리 외계생명체 에 신호로 보냈다면 ,,, 어디엔가 존재할 또다른 외계생명체가 우리 등려군님의 노래 "월량대표아적심. 을 듣고 감격하지 않았을까요? 그들도 감정이 있다면,,,,,
첫댓글 청아한 목소리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밤 꿈에서라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의 유색 글자는 우리 카페에 있는 자세한 자료보기 링크가 되어 있습니다.
편집하여 올려주시느나 수고 많으셨습니다내 등려군
정말 대단한 가수였네요..
[번역교정/ 내용보충] 2010-7-18 김강현
아버지 덩슈(鄧樞), 어머니 자오수궤이(趙素桂) 사이의 네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떵리쥔의 이름 본래 '리윈(麗筠)'이었는데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지은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동료들이 추천한 청나라 여류작가 천레이성(陳端生)의 희곡 [재생연(再生緣)]에서
재능이 출중했던 송나라의 '멍리윈(孟麗筠)'으로부터 딸의 이름을 취하였다는데,
발음을 사람들이 쥔(君)으로 하기도 하여서 리쥔(麗君)으로 나중에 고쳤다.
그래서 사후에는 묘지를 균원(筠園)으로 명명하였고 묘비명에는 본명을 기록해두었다.
褒 忠鄕;빠오충시앙,,,,,,,,,褒누락 보충
오류 정정 감사합니다..!!
鄧樞爲....................鄧樞로 수정바랍니다
麗筠...................리윈 ....수정바랍니다
네, 수정했습니다..^^
꿔공승.......꿔콩청guo kong cheng (곽공승)
사체..........시신: 사체는 동물의 주검을 말하는 것이라 몹씨 불경한 단어임
게획.........계획
우주공간까지 설렵하신 등려군님의 노래 월량대표 아적심 , 어찌보면 세상에 수많은 가수들중에서 우주에까지 메아리가 울려퍼진 가수 , 우리등려군님이 세계최초 이닐까? 싶을때면. 정말로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읍니다, 아... 등려군님,, 그립습니다,
피아노곡 으로 듣고있는 님의 대표적인 이곡 "재견아적애인.. 이 쓸슬하게 들리네,,,, 사진속 등려군님은 저리도 곱게 웃으시는데,,, 마음은...
그동안 우리등려군님 께서 발매한 음반이 100 여집,,, 그중에 1장당 100 여만장이상 팔렸다니.. 헉~~~~ 계산을 해보니 숨이넘어가네,,,, 아시아 인구가 (2012년)현재 약 43억정도 세계인구의 60 여% 를 차지한다 , 이 43 억 아시아 인구중,, 등려군님의 음반을 대다수는 구입완료,,ㅋㅋ
했다고 봐야할것 같네요, 그리고 현재도 음반판매 는 진행중이라니,,,, 끝이 않보이네,,,, 등려군님을 존경하는 팬의 입장에서 자랑스럽읍니다, 저도 5장정도 음반으로 3장정도 공연 DVD로 구입했으니.. 저도 그중에 한사람이라니... 자~~~랑~~스럽네요,,,,
제가 등려군님 전도사를 자칭하여 다른사람에게 등려군님을 소개할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했죠, 등려군님의 음반이 지금껏 무려 27억7천여만장 이라고 ,, 반 뻥튀기 소개를 많이 합니다, 이는 등려군님을 어떡해좀 관심 가져주길 바라는 의미에서 알지도 못하고 대략적인 저의 계산으로만
소개를 하고 했는데,, 그럴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는표정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에서 쾌재를 불렀지만,, 속으로는 찔렸읍니다, 정확하지 않은 대략적인 저만의 개산법이었으니... 대략 이럴것 같다는 식의 포현방법 이었죠,,
그런데 자료난에서 보고 놀라운사실은 제가 반 뻥튀기 음반판매 소개와 자료난 수치를 대략 계산해보니 그동안 제가 소개했던 대략적 뻥튀기 숫치가 어느정도 일치함을 보고는 놀랍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료난의 소개한 100여집 중 1장당 100 여만장 하면 우선적으로는 약 10억여장,,, 이수치가 7~80년대이후까지,라고 보고 거기다 100여집 앨범중 한사람이 2장이상씩만 잡아도,, 헉~,,,, 90년대 이후 중국에 개방이후 거대한 중국시장에서 등려군님의 음반은 불티 났을테고 14억 인구중 등려군님의 음반을 1,2장 구입한 중국인들이 얼마나 많았겠냐?
이말씀이죠, 아시아 인구 중 2장이상씩 구입하지 않은사람 없었을겁니다,
당시에 발매음반 100여집 중에서 아시아의 팬 중에는 2~3 장 수집한 사람이 많았을텐데 이런식으로 계산해보면 허~~ㄱ 2~30 여억 ,,,,, 숨막히네 ,,,, 거기에 개방된 거대한 중국시장에서 등려군님의 음반판매 .. 이건 ,,, 상상하기 어려우리많큼 어마어마한 숫치네요,
ㅋㅋㅋㅋ 어찌보면 제가 뻥튀기 음반판매 소개도,, 근거없는 얘기는 아닌것 같네요, 그보다 더많이 팔려나간 셈이네요, 현재도 판매수치는 진행형이라니... 저자신도 그러한 아시아 팬 이라는 점이 자랑스럽읍니다, 이러니 제가 등려군님을 포현할때 "아시아 가요계 의 대통령.. 이라
표현을 하는데 ,, 그러한표현 들으실 자격 충분하지요, 음반 더 팔아드려야 겠어요,
N.A.S.A(미국 우주항공 연구소) 에서 예전에 우리가 사는 지구의소식을 담은 메시지(Time Capstul)를 우주공간 어디엔가 존재할지도 모를 외계생명체 에 우리의 소식을 전달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읍니다,
중국의 우주과학자들도 우리등려군님의 노래를 메시지로 우주멀리 외계생명체 에 신호로 보냈다면 ,,, 어디엔가 존재할 또다른 외계생명체가 우리 등려군님의 노래 "월량대표아적심. 을 듣고 감격하지 않았을까요? 그들도 감정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