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8 주일설교 (묵도; 시 34:1-22)
본문: 요일 3:23-24
제목: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
1. 그를 사랑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지킨다
주님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 계명의 행함을 보이고 나타낸다는 것이다.
계명을 교리로 그만 알고, 계명은 지켜 행함에 그 목적과 본질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믿음이 있다면, 역사와 행함이 있어야 하고
사랑이 있다면, 수고와 희생이 있어야 하고
소망이 있다면, 인내와 오래참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그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나타나신 바 되었다.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오셨다.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이고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알게 된다.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해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의 행함이 없는 것이 항상 문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술로 입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면서도
말씀대로의 행함이 없어서 멸망하고 말았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29:13)
로마교회도 이를 그대로 닮아 1200년 동안 유럽 전체를 다스리면서도
암흑시대를 만들고 말았다. 가나안 땅의 사사시대 왕정시대를 그대로 빼 닮았다.
개혁교회는 교리 교리 하면서 행함이 없는 것은 그대로 닮았다.
현대교회는 치유니 삶이니 하면서 행함이 없는 것은 그대로 닮았다.
그래서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는 네 쌍둥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들 자기들이 하나님 백성이고 천국에 가는 줄 알았지만 결코 아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귀 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이 네 쌍둥이가 입과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원인과 이유가 있다.
성경을 사람의 계명으로만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계명을, 그대로 받지 않고,
사람의 계명으로 곧 사람의 교리와 신조와 체계로만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교훈과 책망을 받고, 바르게 되고 의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사도 요한도 오늘 본문 앞에서 말씀하신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의 행함, 사랑의 수고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진실함이 없고, 거짓 투성이인 것이 문제이다.
행함과 진실함이 있을 때, 사람들은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 것이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게 될 것이다.
행함고 진실함이 없다면, 그 진리는 거짓이요 마음도 불안에 떨 것이다.
행함을 강조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으로 업신여긴 루터만 보아도,
16세기 종교개혁이 얼마나 문서 위주 지성주의 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주님의 말씀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유대인들이 성경에서 율법을 뽑듯이, 개혁자들은 성경에서 교리만 뽑았다.
믿음 믿음만 노래하고, 사랑과 진리의 행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러면서도 백화점 대형마트들이 바겐세일하며 손님 끌어모으듯이,
교회가 전도 전도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 끌어 모으기에만 전념하고 있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 전도이지,
배나 지옥자식 만들기 위해 사람 끌어모으는 것이 전도가 아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을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을 수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헛것인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2. 그의 계명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3:2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은 둘 같아도 하나이다.
동전의 양면이요, 속과 겉이다.
사람의 계명과 철학으로 심리학으로 믿으니까,
사랑하는 것이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초대교회처럼 순수하고 단순한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말들을 버려야, 영적인 일을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고,
우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된다.
육신의 무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복종하게 해야 한다.
믿음도, 혈통과 육정과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로 받은 믿음이어야 한다.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로 믿어져야 한다.
믿음은 내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지, 말로만 입술로만 믿는 것이 아니다.
영접기도 백날 해봐야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제자훈련이라고 하는 것이 보면,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목사의 충성스런 제자 만들고 있다.
목사의 전위부대가 되고 목사의 맹종하는 하인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가 능히 될려면, 누가복음 14장 주님의 말씀대로,
부모 형제 처자식과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
목사부터 진정한 레위인이 될려면, 신명기 33장 말씀대로 ,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그의 부모를 보지 아니하고 그의 형제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해야 한다.
예수를 믿고 영접했으면 그분이 행하신 대로 우리도 행해야 한다.
계명을 지켜 행하고 서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할 때 사람들은 아 저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들이구나 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세상은 그들의 빛으로 밝아질 것이고, 세상은 그들의 소금으로 정화될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진정한 제자들의 모습이고 교회의 참된 모습이다.
초대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킨 것도, 발도인들 위그노들이 세상을 변화시킨 것도,
13세기에는 폭발적으로 교회개혁과 르네상스를 이룬 것도, 그 참 모습 때문이었다.
믿음은 오직 사랑으로 역사한다.
믿음의 진실 여부는 오직 사랑의 여부로 증거되고 확인할 수 있다.
이기적인 사랑의 나부터, 성령으로,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하나님 사랑도 이웃 사랑도 입술의 허언일 뿐이고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교회들이, 거짓 선지자들이, 적그리스도들이, 천국 문을 한없이 크게 만들어 놓았지만,
천국 길을 한없이 넓혀 놓았지만, 그 문과 길은 오직 지옥으로, 멸망으로 인도할 뿐이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아니하고
그래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생명으로 천국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만이 구원 받을 수 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만 들어갈 수 있다. 세상만 침노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
3.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한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3:24)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는 마음 중심에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이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으로 난 자들만 믿고 영접할 수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난 자들을 서로 사랑한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사랑한다.
그리고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한다.
이웃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다.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
이 사랑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자라야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는 사람이다.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어떻게 아느냐?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안다.
성령 하나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만 오늘날 교회는 성령을 잃어버렸고, 사람의 지혜와 초등학문이 지배하고 있다.
역으로 성령 운동한다는 자들은 은사에 치우치고 성령을 자기들의 하인처럼 부리고 있다.
성령 없이 성경 없고, 성경 없이 성령 없음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거듭난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쓰게 하신 분이 성경 없이 성경과 다르게 역사하실 수 없다.
모든 성령의 역사는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하고
모든 성경은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다’ 하였고,
‘내 말과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였다’고 하였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설교와 전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지혜로 혼잡하고 있다.
순전한 말씀은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로 혼잡한 말씀은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매일 성경을 상고하는 사람이 아니면
영적인 일을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한다.
영을 다 믿지 말고, 진리의 영과 미혹을 영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4:1)
얼마나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있는지를 주님도 성경도 누누이 말씀하지만,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무사태평 거짓 선지자들의 노예와 하수인에 만족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들에게 주님은 책망하고 계신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화 있을진저”
“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설교)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너희가 마지막에는 어찌하려느냐”
주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명령이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다.
그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자가 주 안에 주가 그 안에 거하심을 성령으로 아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