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산동에
완전 독채는 아니고 아랫채인데 집주인이 상주하는 건 아니고
일년에 한두번 내려와 며칠 묵는다니 뭐 반독채이지 싶고
또 구례에서 마당 있는 월세 10만원짜리는 찾기가 힘든데
월세 10만원이라 하고, 옛날 집이지만 대충 수리는 해놨고 해서
바로 계약을 하고 이사했다.
씽크대가 완전 낡아서 그게 맘에 걸리긴 했지만
월세가 10만원이니 뭐 감수하자 하고 들어왔는데
낡아도 너무 낡아 경첩은 이미 녹이 슬어서 문을 여닫을 때마다 녹가루가 후두둑 떨어지고
문이 제대로 안 닫혀지고(이런 건 감수하고 쓸 수 있다) 거기다가
합판이 부스러져서 합판가루까지 날리고...
(계약하면서 싸기는 하지만 밥해먹을 곳이 너무나 던적스러운 것이 맘에 걸렸으나
월세가 싸다는 생각에 왠만하면 감수하고 살자 하는 맘으로 들어온 것임)
그래도 써보려고 공들여 다 닦아내고 신문지 깔고 그릇을 정리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어서 주인한테
"녹가루와 합판가루만 안 떨어져도 그냥 쓰겠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
보증금을 좀더 받고 새로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
아니면 우리가 새로 들이고 나갈 때 가져가겠다" 물어보니
두 가지 다 부담스러우니 그냥 쓰란다.
그러면서 "수리하려고 했지만 너무 낡아 수리가 안된다 하는데 어쩌냐" 이러네.
"월세 20만원 낼테니 계약 파기하고 달라는 사람도 있는데 안 줬다"며...
정말인지 아닌지는 뭐 확인할 길이 없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계약금을 백만원 걸었는데 그럼 월세 20만원 내겠다는 사람이
그 계약금에 위약금(최소 100만원)까지 물어주며 들어온다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한번 말을 시작하면 한 가지를 가지고 기본이 10분을 넘어가니 치가 떨려서
'그래, 사는 데까지는 그냥 살지 뭐...' 하고
열심히 닦아내고 정리를 해 나갔다. 그런데 몇 시간 뒤 주인이 이런 제안을 한다.
"월세 3만원을 더 내면 씽크대를 새로 놔주겠다" 그러길래
내가 남편한테 물어봐야 한다 하니
"그까짓게 몇 푼이나 된다고 물어보냐"며
"아주머니가 알아서 내도 될텐데 남편한데 물어본다 하니 참 좋은(?) 사람이다" 이런다.
어쨌거나 서방이나 나나 집주인이 월세 몇 푼이라도 더 받으려 용쓰는게 꼴뵈기 싫어서
생각해본다 하고 하루를 보내며 열심히 닦아내고 정리를 해봤지만
떨어지는 녹가루와 합판가루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 그리하자 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 덕분에 집이 좋아진다"며 헤헤거린다.
서울에 집이 몇 채나 있어서 세 받아 사신다는 양반이 너무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그렇게라도 세를 올려받으려고 머리를 굴렸을 걸 생각하니 참...
몇 시간을 투자해 닦아내고 정리한 걸 아침에 다 꺼내놓고
씽크대 사러 간 집주인 기다리며 이 글을 쓴다.
가구가 하나도 없어서 옷도 정리 못하고
냉장고도 아직 안 들어서 음식물 정리도 못하고...
그래서 산골집에 들어와 허무한 이 얘기를 적는다.
씽크대 뜯어낸 자리는 곰팡이 투성이에 시멘트도 떨어지고 난리가 아니구만
집 수리를 700만원(이것 역시 나하고 뭔 상관이라고 이틀만에 열번도 더 들었음) 들여 했다면서
그때 뜯어내고 새로 했음 두번 일 안될텐데 쯧쯧...
부엌방도 몇 번이나 닦아내고 했구만 이게 뭐냐...
씽크대 닦아내느라 생고생, 그릇 정리한 거 다 끄집어 내느라 열받아...
그래도 새 거로 밥 해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어제 라면 하나 끓여 두 끼로 나눠먹었는디
얼릉 밥해묵게 해주라 잉...
첫댓글 아이고, 이게 뭔 난리래. 당장 오늘 씽크대 설치해준다더니 10월 1일까지 참으란다.
'내 말이 곧 법이다'며 '그냥 그리 알고 며칠 참으라' 한다. 이게 뭔 상황이냐...
2탄을 써야할랑가보다... 어이없네...
구례입성기가 나처럼 이리 요란한 얘기거리를 겪는 사람 또 있을까 싶다.
아이고 정말 파란만장 합니다요
잘 지내시지요? 제 꼴이 우울하다 보니 카페에도 안 가게 되네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