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때문에 두 번이나 연기한 끝에 드디어 가거도(可居島)에 가게 되었다
세 여인들을 거느리고 내려선 가거도는 한 평의 땅이라도 파도에 휩쓸려갈까봐 서로를 꽉 껴안고 있었다
가거도는 있는 듯 없는 듯, 우리나라 서남쪽 끝에서 배시시 웃고 있는 최후의 말뚝섬이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그냥 거기 그렇게 있음로써 대한민국의 영토를 확 넓혀주는 섬이다
일제강점기에 소흑산도(小黑山島)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다시 본 이름을 찾았다
그렇다... 가거도는 그냥 가거도일 뿐이다.
드디어 출발이다
마침내 목포에서 아침 8시 10분에 출항하는 남해스타호에 몸을 실었다
고르지 못한 날씨 때문에 두 번 연기해서 세번째만에 가거도행 배를 타는 우리들의 마음은 설레었다
가거도 도착
멀미를 걱정했는데, 잔잔한 바다 덕분에 편안하게 4시간 30분을 달려 가거도에 도착하였다
지난번의 태풍 '무이파'로 인해 가거도항의 방파제는 처첨하게 부서져 있었다
공사 시작 30년 만인 2008년에 방파제 공사가 끝났다는데 앞으로 얼마가 지나야 보수가 끝나려는지...?
시끌벅적한 항구
휴가철이 지났지만 비내리는 가도항에 내리니 제법 시끌벅적하였다
하루에 한번 섬에 들어온 승객들을 실어나르려는 민박집 차량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이런 트럭의 짐칸에 앉아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가다 보면 엉덩이가 얼얼해진다
부두에 날아온 TTP
방파제에 있어야 할 네발 콘크리트 구조물(TTP)이 부두 위에 올라와 있었다
무이파가 몰고온 파도에 64t 짜리 구조물이 이렇게 부두까지 날아왔으니 대단한 위력이다
이번에 TTP 2천여 개가 유실되었는데 새로 만드는 TTP는 80t으로 무게를 늘인다고 한다
섬누리민박집
대리마을에서 트럭을 타고 고개를 여러개 넘어 항리마을에 있는 섬누리민박에 도착하였다
절벽 끝에 제비집처럼 앉아있는 섬누리민박은 '1박2일'과 영화 '극락도살인사건'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표지판 뒤로 길게 보이는 곳은 섬등반도인데 노을이 아주 아름다운 곳이다
가자, 독실산으로!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부랴부랴 점심식사를 마치고 독실산 산행에 나섰다
절벽 위로 나있는 등산로를 따라 한참 올라가니 옛정이 묻어나는 돌담집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젠 산길이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은 산길에는 풀이 많이 우거져 있어서 걷기에 불편하였다
하지만 섬등반도를 타고 올라오는 안개와 바람을 마시며 오르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왜, 독실산인가?
독실산은 '송아지 독(犢)'과 '열매 실(實)'을 쓴다
후박나무 열매를 좋아하는 송아지를 이 산에 놓아 기른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지금도 독실산에 방목하고 있는 이 소들은 얼마나 맛있고 몸에 좋을까? ...구미가 확 당겼다
후빅나무 숲
후박나무는 가거도 일대에 자생하는 난대성 상록교목이다
등산로에 터널을 이루며 빽빽이 자라고 있는 후박나무의 껍질은 천식과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가거도에는 식수가 풍부한데 특히 후박나무 뿌리를 타고 내려오는 물맛은 기가막히다
독실산 정상(해발 639m)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는 이정표도 없는 산 속에서 어렵게 정상에 다다랐다
섬은 온통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섬 중앙에 독실산이 우뚝 솓아있다
독실산은 신안군에 있는 1004개 섬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다
마침 정상에 있는 레이더기지에 근무하는 해경이 인기척을 듣고 나와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해경 내무반 앞에서
정상에서 사진을 찍어준 초병이 아랫쪽에 있는 초소에 연락을 했는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에서 왔다는 해경은 사람이 그리워서인지 사진을 찍자는 우리의 제안에 순순히 응해주었다
안개 속에서의 건배
집에서 얼려서 가지고 간 캔맥주를 마실 기회가 없어서 길 가운데 앉아서 마셨다
안개가 모든 풍경을 집어삼켜버려 아쉬움이 컸지만 세 여인과 함께 마시는 맥주맛은 일품이었다
섬은 서 있어서 섬이다
섬은 바다와 바다 사이에 서 있다
가거도는 대한민국과 중국대륙 사이에 팔 벌리고 서 있다
태풍의 길목 한복판에 눈을 질끈 감고 서 있어 여름마다 태풍과 처절한 전쟁을 치른다
어깨 너머로 보이는 국흘도와 검은여가 파도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짐작이 된다
독실산의 안개
더운 바닷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와 독실산에 부딪히면 물안개로 변한다
그래서 가거도는 1년 쾌청일수가 70일(국내 평균 81일)에 불과하다
산의 정상 부근을 휘감고 있는 안개로 인하여 독실산은 더욱 아득하고 신비롭게 보였다
가운데로 구불구불 나있는 도로는 항리마을에서 대리마을로 넘어가는 길이다
독실산에 내려와 민박집에 도착하니 겨우 5시 밖에 안 되어서 섬등반도를 향하여 올라갔다
황량한 폐교
섬등반도 중턱에는 버려진 폐교가 있었고, 조금 윗쪽에는 해경초소가 방치되어 있었다
이 운동장에도 어린이들이 뛰어놀던 시절이 있었을텐데...이승복상과 독서하는 소녀상이 쓸쓸하다
섬등반도에서 바라본 섬누리민박
섬누리민박집은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KBS 인간극장에도 나온 집주인은 서울 처녀한테 섬구경 가자며 데리고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딸 둘을 낳은 뒤 12년 만인 한달 전에 다시 늦동이 딸을 낳은 안주인의 밥을 얻어 먹기가 미안했다
섬등반도에 올라서다
섬등반도는 완전히 야생이 되어버린 염소떼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끝에 있는 봉우리까지 기보려 하였지만 거센 바람과 몰려오는 비 때문에 중간에 되돌아왔다
우리가 가지 못한 끄트머리엔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이 되어버렸다는 망부석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늦게 지는 해
민박집 안내문에 '대한민국 최서남단 해가 가장 늦게 지는 집'이라고 씌여 있었다
짙은 안개가 잠깐 벗어진 틈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지고 있는 태양을 본 것은 큰 행운이었다
방어회를 먹다
민박집 주인이 금방 잡아온 살아있는 방어는 탱글탱글해서 군침이 돌았다
쫄깃쫄깃한 방어회와 육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거북손 회무침을 시켜서 하산주를 마셨다
우리는 술친구
육지에서 가지고 간 발렌타인이 떨어지자 가거도의 소주와 맥주로 바꾸었다
이제 보니 군다를 바라보는 주인녀석의 눈빛이 음훙하네 ㅋㅋㅋ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다 보니 너무 안일하고 잇속만 챙기는 것 같아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말없이 밥 해주고 안주를 챙겨주는 안주인은 넘넘 착해 보였다
몽돌해안
새벽에 거센 바람과 빗소리떄문에 일짝 잠이 깨었다
창문이 덜컹거리고 회오리바람이 몰아쳐서 배가 뜨지 못할까 저으기 염려되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민박집 뒤에 있는 몽돌해안에 내려가 보았으나 쌓여있는 쓰레기 때문에 실망하였다
대리마을(1구)
가거도에는 3개 마을에 5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남쪽의 1구 대리(大里), 서쪽 기슭의 2구 항리(項里), 동북쪽 3구 대풍리(大豊里)가 그곳이다
대리마을은 가거도에서 가장 큰 마을로 항구, 면사무소, 한전, 농협, 교회, 절 등이 자리잡고 있다
가거도에서 목포까지는 145km, 중국 상하이까지는 435km 떨어져 있다
대한민국 최서남단비
면사무소 앞에 있는 대한민국 최서남단비를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그 머나먼 뱃길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단지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리에 천년만년 가부좌를 틀고 늘 처음처럼 앉아있는 가거도는 바람 불고 파도가 몰아쳐도 끄떡없다
표지석 옆에는 4월혁명 당시 학생으로 참여해 순국한 가거도 출신 김부연의 추모비가 있었다
몽돌해수욕장
대리마을 장군바위 옆에 있는 몽돌해수욕장은 텅 비어있어서 썰렁하였다
물결이 밀려왔다 밀려갈 때마다 몽돌 사이로 바닷물 빠져나가는 소리가 싸그락싸그락 들려왔다
가거도에서 오후 1시에 출항하는 쾌속선을 타고 가거도를 떠났다
파도가 어찌나 높은지 배가 마구 흔들려서 결국은 배멀미를 하고 말았다
상태도, 하태도, 흑산도, 비금도를 거쳐 오후 5시 30분, 목포항에 도착하니 노곤하였다
첫댓글 참, 보기좋고 멋지십니다... 세여인을 모시고 다니시느라 진짜 재미났을것 같은데~~~
세 여인~ 힘들어요. ㅋㅋㅋ 세 여인이 한 남자를 데리고 다녔답니다
해가 가장 늦게 진다는 그러나 서비스는 살짝 섭섭하게 해주면서 방어맛으로
소가 좋아한다는 후박나무 열매 , 안개로 휩싸인 생각보다 높은 독실산(639미터)
육지에서 멀다는 사실도
멋진 세여인과 의미있는 시간을 갖고 돌아오신 형님 부럽습니당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갈만큼 매력이 많진 않았어요
다만~ 우리 국토의 최남단이라는 지역적 호기심 때문에 달려갔자요
섬에서 자라소도 맛있겠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암소가 훨씬 맛있습니다.ㅋㅋ
세 여인을 데리고 섬나들이라
어느 소설의 제목 같네요 ㅋ
멋진여행 축하드립니다.
집에 있는 암소가 좋긴 좋은데 너무 비싸서 탈이에요 ㅎㅎㅎ
세 여인이 있었지만.. 힘이 많이 달렸습니다
섬여행은 또다른 맛이 있는 거 같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회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미카엘과 함께 섬에 가면 재미있는 일이 마니 생길것 같은데...
넘 행복해 보입니다. 행복이 따로 있는게 아닌것 같아요 당신의 순간 순간이 행복이네요.
삶의 순간순간을 행복으로 받아들이며 사는게 지혜라 생각합니다
매사를 낙천적으로 생각하시는 파리스형에게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캬~~ 방어회에 쇠주 한잔 하고 싶네..ㅎㅎ
세여인의 틈바구니에서 행복이 전해오네요~
덕분에 즐감하고 갑니다.
살아있는 방어의 탱탱한 피부 감촉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관매도에 연수(?)가서 조은 것 많이 먹으셨남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