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청주 따로또같이 산악회
<산사랑&산사람> 영동 천태산
외적의 침입에 끊임없이 시달려왔던 고려왕조. 오랑캐 소탕은 왕실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중부내륙의 산에는 공민왕의 전쟁, 피란과 관련된 유적, 전설이 널려있다. 홍건적의 2차 침입 때 졸지에 수도를 함락당한 고려 왕조는 안동에 임시수도를 정해 급히 피란했다. 불심이 깊었던 노국공주와 공민왕은 왕실회복을 위한 기도순례에 나섰고 이때 행적들이 영남, 충청권의 사찰에 기록으로 전해진다. 청량산 응진전(應眞殿)에는 공주의 애절한 기도 흔적이 서려있고 주흘산 혜국사에는 행재소(임시궁궐)흔적까지 남아있다. 이들의 기도 행렬은 제천 월악산을 거쳐 영동 천태산에 까지 이어진다.
1361년 개경을 침공당한 공민왕은 피란길에서 맑은 범종소리에 이끌려 국청사(國淸寺)에 머무르게 된다. 왕과 공주는 국태민안을 염원하는 백일기도에 들어갔고 마지막 날 왕비는 꿈에 원각국사를 만나 ‘오랑캐가 물러갈 것’이라는 응답을 받게 된다.
용기를 얻은 고려 군사들은 한파와 폭설을 이용해 기습 공격을 펼쳐 오랑캐를 몰아냈다. 공민왕은 환궁하자마자 국청사 부처님의 가호를 입어 ‘나라가 평안’하게 되었다며 절 이름을 영국사(寧國寺)로 바꾸게 했다.
◆ ‘충북의 설악’으로 불리는 바위 명산=충북 영동과 충남 금산에 걸쳐 있는 천태산은 ‘충북의 설악산’으로 불린다. 해발 715m에 불과 하지만 기암괴석과 노송들이 어우러진 경치는 설악의 공룡능선에 비길만하다.
등산로는 누교리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30여분쯤 오르다 삼신바위를 지나면 삼단폭포가 나타난다.
가을내내 낙엽을 실어 날랐을 폭포는 어느 새 바짝 말라 어린애 오줌줄기만한 물줄기만 흘려 내린다. 적막한 계곡, 인파의 소란을 피해 이제야 폭포도 안식(安息)에 든다. 마지막 언덕길은 숨 가쁘게 오르면 영국사 입구. 철조망을 따라 전국 산악단체에서 달아 논 리본이 바람에 펄럭인다.
영국사 바로 밑엔 천태산의 명물 은행나무가 우뚝 서있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와 함께 명품 노거수로 알려져 있다. 천연기념물 223호인 이 나무는 국가에서 재난이 있을 때마다 크게 울었다는 신목(神木)으로 높이가 30m에 이른다.
최근에 도종환, 안도현 등 전국의 시인 228명이 이 나무를 위한 헌시(獻詩)행사를 가졌다. 1천년의 좌절과 울분을 온몸으로 품은 나무의 덕을 기리기 위해서다.
◆ 경사 70도, 75m암벽에 등산객들 압도=보통 천태산 등산코스는 A코스로 올라 남고개를 돌아 내려오는 D코스가 애용된다. 암벽을 오르는 맛과 조망, 문화유적이 이 코스에 잘 배치되어있다.
절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걷다가 안내판이 나오면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솔향이 짙게 풍기는 오솔길을 따라 등산로는 이어진다. 한적한 겨울 산길, 시선을 빼앗아가는 단풍이 없으니 이제 마음껏 상념에 잠긴다. 사색에 익숙해 질 때쯤 하얀 암벽이 눈앞을 막아선다. 기운찬 암릉의 위용, 악명 높은 천태산 암벽의 시작이다.
첫 번째 암벽을 힘들게 올랐다 싶었는데 난코스가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 암릉길은 경사가 60, 70도는 돼 보였고 길이도 꽤 길었다.
암벽 타기는 위험과 보상이 같이 존재하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수해야하고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천태산 암릉의 클라이막스는 685봉 못 미쳐 75m짜리 암벽. 수치상 각도는 70도지만 배낭을 매고 바위에 발을 딛으면 체감각도는 거의 직각에 가깝다. 아마도 국내 산행 코스 중 일반인들에게 등반이 허용된 코스 중 가장 길고 어려운 코스가 아닐까 생각된다. 암벽을 탈 때는 로프를 양발 사이에 두고 발과 손동작을 엇박자로 하면 체중을 분산시킬 수 있어 균형을 잡기가 쉬워진다.
20분 남짓 로프와 씨름을 하고나니 체력은 거의 방전상태. 그래도 1시간 반 만에 정상에 섰다. 대슬랩(slab)을 완주한 노고에 보답이라도 하듯 충청의 명산들이 파노라마를 펼쳐 놓았다. 남쪽 흐릿한 금강물빛 사이로 갈기산과 월영봉이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듯 둘러섰고 북쪽으로 서대산, 대성산이 하늘금을 그렸다. 날씨가 좋을 때는 대둔산, 덕유산, 마이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고 한다.
◆ 노국공주와 공민왕 전설 어린 망탑봉=이제 하산 길, 가끔씩 멋진 조화를 이룬 노송의 자태에서 이 산자락 어디에선가 구국기도에 몰입했을 노국공주의 자취를 떠올려 본다. 산 밑 영국사 앞자락에 미니어처처럼 서있는 망탑봉이 내려다보인다. 망탑봉은 노국공주를 끔찍이 아꼈던 공민왕이 공주를 위해 별채를 지어 은거케 한 곳. 공주가 지성으로 합장을 했을 3층 석탑엔 지금도 옛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D코스는 전망이 뛰어나고 볼거리가 많다. 특히 노국공주의 꿈에 나타나 국권회복의 암시를 주었던 원각국사의 기념비가 자리해 있다. 거북과 용으로 꾸며진 비석엔 대사와 공주의 신심(信心)이 새겨진 듯하다.
잡초가 우거진 등산로를 따라 밑으로 내려선다. 영국사가 찬바람 속에서 고즈넉이 일행을 반긴다. 영국사는 공민왕이 머문 덕에 유명세를 얻었지만 안타깝게 공민왕과 관련된 유물은 없다. 원각국사비, 부도, 3층석탑도 모두 이전에 세워진 것들이다. 하긴 전란 중에 불사(佛事)를 일으킬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왕은 왕실과 조정이 무사히 피란을 한 것과 공주의 기도가 응답을 받아 나라를 되찾은 고마움의 대가로 절 이름을 따로 하사해 고마움을 표현했을 뿐이다. 그 과정이 후대에 일화로 전해져 이 고장의 큰 자부(自負)가 되었다.
피란 중 싹튼 왕과 왕비의 애틋한 사랑과 구국기도는 당대에는 나라를 구했고, 후대에는 애틋한 일화를 남겨 이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니 이 또한 왕과 공주의 덕이라 하겠다.
◆교통=경부고속도로 옥천IC에서 내려 4번 국도를 타고 이원면에 도착. 501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개심저수지 지나 양산면 누교리 영국사 방향으로 진행.
◆맛집=(지역번호 043)=일미식당(743-1811, 올갱이해장국) 솔잎순대(743-9098, 순대·육류), 일화식당(745-1151, 한식), 용빈가든(744-4668, 한식), 촌닭(744-9031, 토종닭), 금강가든(744-2577, 오리)
◆숙박=푸른산민박(744-4659), 천태산맑은물민박(745-2939) 영동파크(744-9220)
첫댓글 날카로운 은유는 언제나 얼굴을 볼수있을까. 난 산이 싫다.
청주한씨 종호야! 5월달에 축구대회할때 갈테니까 그때 랑데뷰하자.
난 언제나 마음뿐지나간 옛날이 그립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