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의 콩깍지] 10 - 여름방학
#1 S 병실 (밤)
은영이 들어서면,
성 민 (보며 놀라는, 힘없는 말투) 어떻게 알고 왔니...?
은 영 (보면서 다가오는) 경수가 전화해줘서...
성민의 달라진 모습에 은영, 가슴이 뭉클할 정도다.
은 영 바보같이...! 좀 조심하지 그랬어...?
성 민 (빙긋이 웃으며) 그러게... 이리 와 앉아... 얼굴 좀 가
까이 보자.
은영 와서 앉지만,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보다가 속상해서 얼
굴 돌린다.
(아픈 사람은 차분한데, 문병 온 사람이 오히려 더 허둥대는 감정
상태.)
성 민 (표정보고) 괜찮아. 내가 의산데, 다 알지. 다리 좀 부
러진 거 뿐이야.
은 영 (미소 지으려 노력하며) 그래...
성 민 넌 어때? 공부하러 갔단 얘긴 들었는데...
은 영 얼마 전에 왔어...
성 민 와서는 뭐해?
은 영 (자기얘기 하려고 온 건 아닌데) 어, 의류회사 마케팅
실에... 팀장으로 있어...
성 민 (기운은 없지만 활짝 맑게 웃으며) 그래...? 니가 팀장
이야?
은 영 응.
성 민 잘됐다...
두 사람 웃음기 멎고,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성 민 넌 그 색이 참 잘 어울려... 우리 처음 만나던 날도...
그 색 입고 있었는데...
은 영 그랬어...?
성 민 음.
은 영 (시선 피하는데) ....
성 민 그때 왜 다시 온다고 해놓고 안 왔니...?
은 영 ....!
성 민 기다렸는데... 전화도 여러 번 했구...
은 영 (수빈이 때문이라는 말은 못하는 것.) 그게... 그게...
미안해...
성 민 (미소 지으며) 그때 너 왔다간 일이... 한동안 잊혀지
지 않더라... 나중엔 니가 정말 왔다갔나... 꿈이었나... 이상한 기
분이 들었어.
은영 고개 숙이는데,
성 민 은영아...
은 영 (보면)
성 민 우리 헤어지게 된 거... 그거 경수 때문 아니야...
은 영 알아...
성 민 내가 어리고, 소심해서... 자존심 때문에 싸우지 말자
고 해놓고... 내 자존심 땜에 널 아프게 했다. 미안해... 용서해 줄
거지...?
은 영 그런 소리 왜 해...?
성 민 니가 섬에 내려왔을 때... 우리 다시 시작할 수도 있었
는데... 그랬다면... 지금 이런 말 할 필요도 없는데...
은 영 (문득 안타깝게 보는데) ....!
성 민 왜 안 왔어? 또 온다 그래놓구...
은 영 (마음 아프게 보는데) ...
성 민 (미소 잃지 않고) 가끔 그때 내가... 같이 살자고 널 잡
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했어...
은 영 (갑자기 울컥 눈물을 나올 것만 같아서) 저기, 그만 가
야겠어... (시선 피하며 황급히 일어나는데)
은영의 손을 잡는 성민.
성 민 왜 벌써 가...?
은 영 (돌아보지 못하고 울음 참으며, 겨우) 다음에 또 올
게...
성 민 정말 또 올 거지?
은 영 (고개 돌린 채 끄덕이며) 응...
성 민 또 와, 꼭?
성민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은영의 손.
그대로 병실 밖으로 허둥지둥 나가는 은영.
#2 S 병실 밖 복도 (밤)
병실에서 뛰쳐나오자, 울음이 쏟아지는 은영. 벽에 기대어 얼굴 가
리고 우는데,
경수가 보고는 다가온다. 은영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보인다.
말없이, 우는 은영의 어깨에 손을 얹는 경수.
은 영 어떻게 저렇게 될 수가 있니...? 어떻게?... 이제 어떡
하니...? (운다.)
우는 은영을 다독거리면서도 착잡한 표정인 경수.
은 영 넌 왜 이제야 얘기했어? 어? 왜?
경수에게서 등을 돌리고 우는 은영.
그런 은영을 보는 경수.
#3 S 병원 엘리베이터 (낮)
사람들 속에 섞여있는 경수와 은영. 무표정하게 서있다.
경수, 문득 은영을 보면,
정신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는 은영.
경 수 회사로 다시 들어가니...?
은 영 그래야지...
#4 S 마케팅실 (낮)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는 은영. 빼낸 반지를 주머니에 넣더니,
멍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는 은영.
옛 생각을 떠올린다.
#5 S 인서트 (3부 성민과 함께 한 추억들)
처음 만났던 날이며,
첫 키스,
의료봉사 마을에서 싸우며 나왔던 기억,
은영방에 찾아온 성민이 의자를 끌어당겨 안아주었던 기억,
양구에 배타고 들어가던 기억... 등.
#6 S 마케팅실 (현재. 낮)
눈물이 고여버린 은영이 울음을 참지 못하고 황급히 밖으로 뛰어
나간다.
실장과 직원들이 그런 은영을 본다.
#7 S 동 화장실 (낮)
화장실 입구 문을 잠그고는 물을 틀어놓고 우는 은영.
소리내어 운다.
#8 S 소제목
10. 여름방학.
#9 S 병실 (낮)
가습기에선 뽀얀 김이 나오고, 은영이 침상 옆에서 사과를 깎고 있
다.
경수는 반대편에서 물수건으로 성민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고 있
다.
성 민 (혼잣말) 지금쯤 진료소 앞에 꽃이 많이 피었겠다. (은
영에게) 왜 생각나지? 진료소?
은 영 어? (하면서 경수 힐끔 보고) 어... (얼른 사과 깎는데)
경 수 (은영에게) 너 언제 나 몰래 제주도도 내려갔었냐?
은 영 응? (난처한) 어...
경 수 그래...? (얼른 농담처럼, 성민에게) 둘이 뭔 일 없었
냐?
성 민 없었다, 임마...
은영은 좀 불편한데,
경 수 (성민 얼굴 닦아주며) 멍청한 놈. 여자가 거기까지 갔
는데 그냥 보내냐? 여자에 대한 예의도 모르는 놈.
은 영 (경수를 힐끔 보고는 시선 돌리는데) ...
성 민 (농담처럼) 그러게 말이다... 그때 그냥 보내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데... (하지만 은영을 잔잔하게 보는 눈길.)
성민 은영에게 손을 내밀면,
은영 잠시 머뭇거리다 사과 깎다말고 성민의 손을 잡아준다.
은영은 경수와 성민의 눈길을 피하고, 약간 불편하다.
경 수 (그런 성민과 은영을 보면서, 과장스럽게) 어? 분위기
가 왜 이래, 이거? 둘이 있을래? 나 나가 있을까?
은 영 (경수에게) 그러지마. 왜 그래...?
성민은 웃으며 은영의 손을 놓고,
경 수 (이내 과장스럽게) 아니, 담배 좀 피고 올라 그러지.
(성민에게) 아예 담배피고 오지 말까?
성 민 (웃으며) 이리 와 임마... 우리 다 친구잖아... 너희 둘
다 같이 있으니까 참 좋다...
경수, 다시 말없이 앉는데 심각한 표정 스치고,
은영은 그런 경수를 보고는 다시 사과 깎으려는데,
상 민 (근처에 놓인 책을 보며) 참, 은영아...
은 영 (성민을 쳐다보면)
성 민 그거 읽다만 책인데...
은영이 책을 집어보면 ‘히말라야에서 만난 성자’라는 책이다.
성 민 언제 도서관에 반납해줄래...?
은 영 응, 그래...
이때 노크소리와 함께 수빈이 들어선다.
경 수 (먼저 보고, 인사하며) 어? 어서 오세요... (하면서 은
영의 눈치를 본다.)
수빈을 돌아본 은영, 어색하게 일어난다.
수빈과 은영은 서로에게 눈인사하고, 은영은 말없이 시선 피하는
데,
수 빈 (성민을 보며) 좀 어때?
성 민 괜찮아. (하면서 은영을 약간 의식한다.)
경 수 그럼 얘기 나누세요. (은영에게) 우린 잠깐 나가 있자.
은영, 책을 핸드백에 넣으며, 경수를 따라 나간다.
#10 S 병원 건물 밖 (낮)
어색하게 좀 떨어져서 밖으로 나오는 경수와 은영.
경 수 (허탈하게 농담처럼) 아, 자식 여자 많아서 좋겠네. 난
누가 찾아와 주나... (하면서 돌아보면)
은영, 그 말도 불편하고, 표정도 좋지 않다.
경 수 (마음을 읽었는지) 커피 한잔 할래?
은 영 아니, 됐어. (먼 산 바라보며 돌아선다.)
그런 은영의 뒷모습을 보는 경수.
#11 S 병실 (낮)
성민은 편안하게 수빈을 보는데, 수빈은 복잡한 심정으로 심각하
다.
성 민 병원 일도 바쁠 텐데, 뭐하러 왔니?
수 빈 (그 말엔 대답 않고) .... 아직도 나 원망해?
성 민 (심각하게 보며) 그런 거 없어.
수 빈 그때... 레지던트 포기하는 게 아니었는데... 끝까지 말
렸어야 했는데... 내가 제주도 내려가지 말라고 그랬잖아...
성 민 수빈아... 지난 얘긴 하지 말자.
속상해서 고개 돌리는 수빈.
성 민 (바라보다 잠시 후) 우린 선후배로 남았으면 참 좋았
을 텐데...
수 빈 (마음 아프게) 알아. 내가 오빨 너무 좋아해서... 오빠
가 거절할 수 없었던 거...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결국엔 나와 사귈
수밖에 없었던 거...
성 민 아냐, 그렇진 않았어...
수 빈 (자책하는) 그래놓고 결국 난... 오빠를 혼자 내버려뒀
잖아... 미안해. 내가 같이 내려갔더라면... 이런 일은...
성 민 (말 막으며) 수빈아...! 그렇지 않아. 니 잘못도 내 잘못
도 아니야. 그러니까...
성민, 수빈을 보고 편안하게 미소지어 보이는데, 여전히 수빈은 복
잡한 심정이다.
수 빈 은영씨는 자주 와?
성민, 시선 피하며 끄덕이고는 다시 수빈을 본다.
수빈, 성민의 시선 피한 채 무심히 앉아있다.
#12 S 병원 뜰 (낮)
은영과 경수가 서성거리며 말없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이때 수빈이 은영 뒤에 다가와 선다.
수 빈 (은영에게) 안녕하세요.
은 영 (문득 돌아보고) 가세요...?
수 빈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은 영 (수빈을 볼 뿐, 당황한) ....
경 수 (은영에게) 먼저 들어갈게. (수빈에게 눈인사하고는
간다.)
경수 가고 나면, 은영과 수빈 좀 어색한데,
수 빈 성민오빠가 제 얘길 좀 하던가요?
은 영 아니요...
수 빈 오빠 참 좋은 사람이에요...
은 영 ....
수 빈 오빤 아니라고 하지만, 항상 마음속에 은영씨가 있었
어요.
은 영 (수빈을 보는) ....
수 빈 난 그거 알면서도 만났던 거구요. (잠시 후) 하지만 나
를 포기하면서까지 오빨 선택하진 못했어요. 결국 오빨 힘들게 했
죠.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나봐요.
은 영 ....
수 빈 끝까지 지키지도 못할 거면서, 괜히 오빠 붙잡고 있었
던 거... 미안해요. 오빠한테 잘해주세요.
인사를 하고 가는 수빈. 그대로 서있는 은영.
멀리서 그런 은영을 바라보는 경수.
#13 S 병원 식당 (밤)
말없이 밥을 먹고 있는 은영과 경수.
은영이 수저를 놓으면,
경 수 (쳐다보며) 더 먹지.
은 영 못 먹겠어.
경수 그런 은영을 보다가 혼자 밥을 먹는다.
경 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성민이한테 자주 와봐. 난 괜
찮으니까.
은 영 (그 말에 경수를 쳐다보고는, 잠시 후) 혼자는 못 오겠
어. 눈물이 날까봐...
경 수 (멈칫하더니) 그래... (이내 밥 먹는다.)
말없이 물끄러미 앉아있는 은영.
경수, 은영의 시선을 피하며 물을 마신다.
#14 S 스튜디오 (낮)
후레쉬 불빛이 터지면서, 얼굴이 없는 마네킹에 옷을 입혀 스틸촬
영을 하고 있다.
의상 자체를 홍보하는 룩북(look book) 촬영을 하는 것. 건조한 분
위기다.
마네킹과 의상들 옮기고, 분주한 직원들.
한쪽에서 촬영할 다른 마네킹들에 의상을 입히는 은영과 여직원
1.
은영, 복잡한 생각을 하는 듯 바삐 움직이던 손길이 스르르 멈추는
데...
사진작가 (은영쪽을 돌아보며 약간 짜증) 준비 아직 안됐어요? 빨
리 빨리 하자고? 이러다간 오늘 밤 새도 다 못해?
은 영 아, 예... (다시 손길 바삐 서둔다.)
근심이 서려있는 은영의 무표정한 얼굴에 후레쉬 불빛들이 터진
다.
#15 S 경수 사무실 (낮)
창 밖을 바라보며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경수.
착잡한 듯 한숨을 쉰다.
#16 S 병실 (밤)
성민모가 주전자를 들고 밖으로 나가고,
경수가 빨대를 꽂아 성민에게 물을 먹여준다.
성민은 조금씩 여러 차례에 나누어 물을 마신다.
성 민 넌 결혼 안해?
경 수 어, 해야지...
성 민 상대는 있고?
경 수 (잠시 머뭇거리다) 어... 있어...
성 민 누구냐? 궁금하다. 언제 나 한번 보여줘라...
경 수 (복잡한 심정) 그래야지...
성 민 내가 봐줘야지. 괜찮은 여잔지...
경 수 그래...
성 민 괜히 데려왔다가 내가 뺏어갈까봐 못 보여주니?
경 수 그래, 니가 뺏어갈까봐 못 데려오겠다.
성 민 (웃고는) 요즘 그 아가씨 화났겠다. 나 땜에 데이트도
못하고 이게 뭐냐?
경 수 괜찮아. 어서 일어나기나 해라.
성 민 이번엔 잘돼서 꼭 결혼해라.
경 수 어, 그래야지...
경수, 물컵 들고일어나 돌아서는데,
성 민 (혼잣말) 오늘은 은영이가 안 올 모양이네...?
경 수 (등 돌린 채로) 전화 한번 해볼까...?
성 민 그냥 둬. 바쁜가보지 뭐...
경 수 (돌아서며, 농담처럼) 내가 보고 싶으니까 그러지. 나
두 옛날부터 은영이 좋아했다. 너만 은영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전화하고 올게.
경수, 물컵 놓고 주머니에서 핸드폰 빼들며 나간다.
#17 S 병원 뜰 (밤)
핸드폰 폴더 열고 잠시 생각하는 경수. 이내 단축키 눌러 전화를
건다.
경 수 은영이니? 나야, 경수. 오늘 바쁘니? (착잡한) 병실에
못 와?
#18 S 스튜디오 (밤)
사람들과 은영 낮보다 더 많이 지치고 분주해 보이는 느낌.
사진작가 (은영에게 약간 짜증스럽게) 아, 이대로 들어가요?
은 영 (작가에게) 잠시만요. 금방 갈게요! (핸드폰에) 어, 못
갈 거 같애. 저기... (경수에게 물어볼 말은 아니지만, 걱정돼서) 성
민씬 좀 어때...?
#19 S 병원 뜰 (밤)
경 수 그냥 그래... 늦더라도 올 수 있으면 오지 그래?
은 영 (E) 오늘은 좀 힘들 것 같애. 밤새야 할지도 모르거
든...
경 수 그래... (얼른 급하게) 저기, 은영아...! 성민이가 말이
야... 니가 있을 때하고 없을 때가 많이 틀려... 무슨 말인지 알지?
#20 S 스튜디오 (밤)
은 영 (잠시 흔들리는 기분) 어... 알았어... 내일은 가볼게.
전화를 끊는 은영. 잠시 복잡한 기분이다.
이내 사진작가에게로 향한다.
#21 S 경수집 마당 (밤)
경수 들어오면, 마당에 넘어져있는 낡은 자전거.
경수 자전거를 일으켜 벽에 기대어 세워놓고는 바라본다.
불이 꺼져있는 집안으로 들어간다.
#22 S 꽃집 (낮)
포장이 되는 꽃다발.
꽃을 사들고 나오는 은영.
#23 S 병실 복도 (낮)
긴 복도를 따라 꽃다발을 들고 걸어오는 은영.
병실 앞에 서자, 꽃다발을 뒤에 숨기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24 S 병실 (낮)
은 영 (들어서며) 성민씨, 나 왔어.
하지만 성민의 병상은 비어있고, 아무도 없다.
은 영 어? 어디 갔지? 검사 받으러 갔나...? (다시 나가려는
데)
이때 침대시트를 들고 들어오는 간호사.
은 영 (간호사에게) 이방 환자 어디 갔어요?
간호사 (차마 말하기 힘들어) 정성민 선생님이요...?
은 영 네... (그제야 이상한 기분이 든다.)
간호사 오늘 새벽에 중환자실 내려갔다가... 바로 사망하셨어
요.
은 영 네? 아니, 저기, 말도 안돼요... 엊그제만 해도...?
간호사 (난감하여 시트만 내려놓고 다시 나가는) 죄송합니다.
은 영 (어찌해야 좋을지 허둥대가) 저기, 이 봐요...! (얼굴
일그러지며 울음 쏟아진다.)
은영의 손에서 떨어지는 꽃다발. 혼자 서서 울고 있는데,
이때 들어서는 경수. 어제와 다른 양복 차림이다.
경 수 왜 그래, 은영아...? (침상을 보며) 성민이는...?
은 영 (울면서) 성민씨가... 성민씨가... (경수에게 기대며 운
다.)
경 수 (갑자기 당혹감이 밀려들며) 성민이가 왜?!
은영, 경수를 붙들고 울고,
경수의 얼굴도 서서히 일그러진다.
우는 은영을 달래지도 못하고, 허둥대며 눈물을 씻어내는 경수.
두 사람의 발아래 떨어져 있는 꽃다발. (F.O)
#25 S 묘지 (낮. 몽타주)
(F.I) 영정 속에서 환하게 웃고있는 성민의 얼굴이 보여진다.
영정을 바라보며 사람들 속에 서있는 은영과 경수.
하관을 시작하자, 오열하는 성민모. (자식이 죽으면 상복을 입지
않는 것 같다.
성민보다 나이 어린 친척만 상복 입힐 것.)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성민모를 부축하고,
훌쩍이는 수빈과 의대 친구들의 모습이 보인다.
차마 볼 수 없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돌리는 경수.
그 옆에서 조용히 울고있는 은영.
#26 S 묘지 (해질녘. 몽타주)
멀리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이 보이고,
흙으로 덮인 봉분 옆에 멍하니 앉아있는 경수.
은영이 다가와 그런 경수를 본다.
은 영 그만 가자...
말이 없는 경수.
그대로 따로 떨어져 쪼그리고 앉는 은영.
말없이 따로 따로 앉아있는 은영과 경수.
#27 S 시외버스 (밤)
늦은 시간인 듯 한산한 시외버스.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있는 경수와 은영.
말없이 슬픔에 잠겨 멍한 두 사람의 모습.
두 사람에게서 천천히 빠져 나오는 카메라.
은 영 (N. 허탈한) 우리는 마치 일부러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동안 서로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 다시 바빠
졌고,
#28 S 의류회사 건물 전경 (낮)
은 영 (N. 계속) 시간이 흐르자 가끔씩 웃는 일도 생겼다.
#29 S 마케팅실 (낮)
실장은 자기 자리에서 일하고 있고,
은영과 남직원1이 사진과 슬라이드 필름들을 보면서 선별작업을
하고 있다.
남직원1은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남직원1 봄이라 그런가? 일하기가 싫어요. 추동시즌에 사용할
매장 비쥬얼 컨셉도 잡아놔야 되는데...
은 영 (아직 우울한 상태. 대꾸 없다) ....
남직원1 괜찮으세요?
은 영 (미소 지어보이며) 괜찮아.
실 장 (문득 와서 앉으며 사진 같이 보는) 나도 서른 되던 해
에 가까운 친구가 죽었어. 그때쯤엔 한번씩 그런 일이 생기더라
고... 마흔이 넘으면 친구가 하나씩 아퍼. 수술했다고 전화 오고...
남직원1 실장님 굉장히 냉정하게 말씀하신다?
실 장 그런가? 아직은 충격이 크겠지만, 나이가 들면 그런 것
도 다 살면서 겪어야 되는 일 중에 하나로 생각되거든.
은 영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사진을 보는데)
실 장 (남직원에게) 넌 실내에선 그 선글라스 좀 벗을 수 없
니? 내가 다 답답하다.
남직원1 왜 그래요? 제 포인튼데?
실 장 (벗기려 달려들며) 선글라스 끼고 보면 색감이 잘 보이
니?
남직원1 (도망가며) 놔요. 이거 없으면 저 쓰러져요.
웃는 은영. 다른 필름 집어들며 문득 웃음기가 사라진다.
#30 S 경수 회사 사무실 (밤)
창 밖은 까만 밤인데도 몇몇 직원들 남아서 일하고 있다.
경수도 서류들 쌓아놓고 사전도 펼쳐져 있고, 영문 보고서를 작성
하고 있다.
이때 퇴근을 하는 선배.
선 배 그만하고 가지?
경 수 외국인 투자자들한테 돌릴 문건이에요. 마저 하고 갈
게요.
선 배 그런다고 주가가 올라가? 쉬엄쉬엄해. 연일 야근하다
가 괜히 몸 망가진다. (가고)
선배 가고 나면, 경수 다시 일하는데,
이때 핸드폰이 울리고, 경수 일하면서 핸드폰을 받는다.
경 수 여보세요?
경수모 (E) 오늘도 늦냐?
경 수 예, 먼저 주무세요.
경수모 (E) 오늘 경선이 생일인데, 전화는 해줬어?
경 수 아 참, 그렇죠. (시계 보며) 지금 할게요.
경수, 전화를 끊고, 핸드폰 단축키를 눌러 전화를 건다.
통화를 기다리면서도 서류 뒤적이며 일하는 느낌인데,
전화를 받지 않자, 그냥 끊으려는 경수.
이때 전화기 안에서 배경 음악소리 작게 들려온다.
경 수 (무심코 다시 받으며) 경선이니? 오빤데,
이때 전화기 안에서 흘러나오는 성민의 목소리.
성 민 (E) 정성민입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시면, 확인하는 대로 곧 연락 드리겠습니다. (E.
삐 부자음, 녹음하시려면 1번...)
문득 멍한 시선이 되는 경수.
M. 김광석의 '그날들' 음악 시작되고...
얼른 전화를 끊고는, 당혹스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훔친다.
이내 핸드폰에서 저장번호를 찾아 정성민란을 찾는 경수.
참담한지, 다시 얼굴을 훔친다.
삭제할까요? 핸드폰 화면.
잠시 머뭇거리는 경수.
핸드폰 화면. ‘아니오’에서 ‘네’로 옮겨진다.
‘네’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
‘삭제되었습니다’ 라고 떠오르는 핸드폰 화면.
경수 핸드폰 내려놓더니, 멍하니 앉아있다.
#31 S 은영 자취집 (밤)
음악 계속 되고...
침실 문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깜깜한 거실에 혼자 들어서며
불을 켜는 은영.
은영 들어와 침실을 열어보면, 인경이 불을 켜놓고 책을 읽다말고
자고 있다.
은영 침실 불을 꺼주고 나오면,
가득 쌓여있는 설거지통과 굴러다니는 빗과 스타킹, 츄리닝 등 엉
망이다.
은영은 피로한 듯 거실로 가 앉는다. 물끄러미 앉아있던 은영,
갑자기 손을 걷어붙이고 근처부터 치우기 시작하는데,
이때 세워놓은 다른 가방을 떨어뜨리며 가방 안의 내용물들 쏟아
진다.
바삐 내용물을 가방에 집어넣다가, 문득 성민이 반납해달라던 책
이 손에 집힌다.
‘히말라야에서 만난 성자’라는 책이다.
책을 집어들자, 갑자기 허둥대는 은영.
#32 S 인써트 (병실)
성 민 읽다만 책인데... 언제 도서관에 반납해줄래...?
#33 S 은영 자취집 (현재. 밤)
은영, 어쩔 줄 몰라하면서 책을 가슴에 끌어안고는 얼굴이 일그러
진다.
마침내 참아왔던 울음이 터진다. 가슴아프게 우는 은영.
그 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을 다 쏟아낸다.
이윽고 한참만에 울음을 그치더니 눈물을 닦으며 진정하는 은영.
후련한 듯도 하고, 큰 숨 몰아쉬며 그대로 있다.
#34 S 거리, 경수차 안 (밤)
경수 무표정하게 운전을 하고 있는데,
이때 핸드폰이 울리면 전화 받는다.
경 수 (우울한) 여보세요? (아무 소리가 없자) 여보세요?
은 영 (E. 가라앉은 우울한) 경수니...? 나야.
경 수 (반갑지만, 역시 가라앉은)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은 영 (E) 응... 너두 잘 지내지?
경 수 그럼.
은 영 (E) 저기, 경수야, 나 술 한잔만 사줄래?
#35 S 포장마차 (밤)
경수와 은영이 나란히 앉아있다.
경수 말없이 소주를 들이키는데,
은 영 사는 게 왜 이러니? 우리가 꿈꿨던 삼십대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술 마신다.)
눈이 마주치자, 무슨 말을 해야할지 다소 서먹하다.
경 수 (술 따라주며, 무뚝뚝하게) 사는 게 뭐 다 그렇지. 넌
어때? 잘 지내? (자기 잔에도 따르고)
은 영 (당연하지) 그럼. 너는...?
경 수 나두... 잘 지내. 미안하다. 연락 못해서.
은 영 (일부러 밝은 듯) 괜찮아. 나두 못했는데 뭘...
경 수 (미소 지어 보이며) 좀 바빴어.
은 영 (역시 미소) 나두.
그러나 이내 할말은 끊기고, 금새 가라앉는 분위기.
경 수 (이내 밝은 톤) 바쁘게 지내니까 참 좋더라.
은 영 그럼. 바쁜 게 얼마나 좋은 건데...
경 수 이런 저런 잡생각도 안 나고.
은 영 맞아. (씩 웃다가, 이때 갑자기 울컥 눈물이 고인다.)
은영, 얼른 눈물 숨기려고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돌리는데,
경 수 (그런 은영을 보더니 어깨 안아주며) 괜찮아. 울어.
은 영 나쁜 사람...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까맣게 잊었는
데... 왜 나타나서... 이렇게 가버릴 거면서 왜 나타나서... (운다.)
경 수 ...
은 영 (울면서, 난데없이) 이 책... 도서관에 반납해줄래...?
그게 성민씨가 한... 마지막 말이 돼버렸어... 그게...
경 수 (다가와 은영 어깨 다독이며) 그래, 그래... (하지만 자
기 감정도 힘든)
은 영 그 따위 책이... 뭐 그리 중요하다구...
경 수 ...
은 영 우리... 너무 멀쩡하게 잘 살고있지 않니...?
경 수 응... (눈물 핑 도는지 눈 깜빡인다.)
은 영 한달 밖에 안됐는데... 이제 가끔씩 밖에 생각이 안
나... (운다.)
경 수 응... (눈물 보이지 않으려고 손으로 눈을 꾹 누른다.)
은 영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이 생겼지...? 왜...?
경 수 그러게...
은영 이내 크게 숨을 몰아쉬며 울음 그치려고 노력한다.
팔을 내리고, 그제야 두루마리 휴지 뜯어주는 경수.
은영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진정한다. 두 사람 잠시 말이 없다.
은 영 (멍하니 무표정하게) 성민씨가 도서관에 반납해달라
던 책 말이야...
경 수 (역시 무표정하게) 응...
은 영 성민씨가 읽다 밑줄 쳐놓은 건지, 다른 사람이 쳐놓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구절이 있더라... (훌쩍이고 잠시 후) 죽
음은 우리에게 그저 여름 방학 같은 거라고...
경 수 ....
은 영 성민씨가 먼저 여름방학 들어간 거고, 우린 좀 나중에
여름방학 맞는 거야. (고개 떨어뜨리며) 그렇게 생각하자...
경 수 (한숨) 그래... 여름방학...
그대로 말없이 없는 두 사람.
잠시 후 경수, 소주를 마시고, 은영도 혼자 소주를 마신다.
그렇게 앉아있는 두 사람.
#36 S 포장마차 밖 동네 거리 (밤)
포장마차에서 나오는 두 사람. 많이 취하지는 않았다.
경 수 우리 자전거 타고 춘천 가기로 했는데, 그것도 못 같
네...?
은 영 그러네...
경 수 다음에 언제 가지, 뭐... (은영의 등에 손을 대며) 가
자. 바래다줄게. (가려는데)
은 영 (멈춰 서며) 저기, 경수야...! 생각해봤는데...
경 수 (쳐다보면)
은 영 (주머니에서 반지상자 꺼내며) 우린 그냥 친구로 지내
는 게 좋을 것 같애...
경 수 (잠시 놀라 은영을 볼 뿐)
은 영 (반지상자 보며) 이거... 니가 남자로서 어디가 모자라
서 돌려주는 건, 아니라는 거 알지?
경 수 (반지 받고 허둥대다 바지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어...
그럼, 알지. (얼른 미소짓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들) 우린 친구잖
아... 저기, 너도 여자로서 상대가 안돼서 내가 다시 받은 건 아니
다. 절대로 상처받지 말구...
은 영 그럼 당연하지... 고맙다, 경수야...
경 수 아냐... 오늘 너 어쩜 내 생각하고 이렇게 똑같니...? 하
긴 뭐... 이 반지 너한테 줄 때도, 내가 참 어이가 없는 놈이었지...
두 사람 할말이 끊긴다. 어색해지려하자,
경 수 (웃으며) 가자. 친구로서 바래다줄게.
은 영 (마음 아프다.) 아냐. 그냥 혼자 갈게. 다음에 보자.
(이내 돌아서서 가버린다.)
그런 은영을 부르려다 말고 안타깝게 쳐다보는 경수.
경수를 두고 도망치듯 급히 걸어오는 은영. 괴롭다.
가로등 불빛 너머로 점점 멀어져 가는 은영을 바라보는 경수.
경 수 (N) 문득 나 자신이 용기 없고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
다.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그녀를 붙잡고, 성민이는 성민이고, 우
린 우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37 S 은영방 (밤)
은영이 심각하게 성민, 경수와 셋이서 찍은 사진을 보고 있다.
사진 속의 세 사람.
경 수 (N)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세 사람의 사진에서 화이트 아웃.
#38 S 고급 카페 (낮)
화창한 날. (시간이 한 달 정도 지난 느낌이 들게, 반 팔 차림이어
도 좋고.)
카페 앞에는 화환과 축하화분들이 보이고, 개업식 날이다.
곱게 차려입은 은영부모도 손님들을 맞고 있다.
카페 안은 젊은 실내 분위기와는 맞지 않게,
은영부모가 초대한 정장을 빼입은 늙수그레한 장년층 손님들로 즐
비하다.
손님들에게 차 서비스하던 은호와 소라는 불만스러운 표정인데,
이때 들어오는 젊은 손님들.
은 호 어서 오세요!
카페 분위기를 보고는, “아니다, 얘. 가자.” 하며 다시 나가는 젊은
손님들.
은호 실망하는데,
소 라 오우, 이게 뭐야? 실버클럽 같애~.
은 호 쉿! 조용히 해. 오늘만 그런 거야. 조금만 참아.
한쪽에 서서 그런 은호와 소라를 보며 차를 마시는 은영. 아직도
좀 우울해보인다.
은영모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은영아! 잠깐만. (이리 오라는
손짓)
은영, 한쪽에 찻잔을 놓고 가면,
은영부 (어느 부부에게 소개하는) 얘가 우리 여식입니다.
은영모 나이만 먹었지, 할 줄 아는 건 없어요...
은영부 인사드려라. 삼원 건축 사장님이시다.
은 영 (달갑지 않게 인사하는데)
은영모 아드님두 이번 기회에 데리고 오지 그러셨어요?
은 영 (그 소리에) 저기, 엄마 나 그만 가볼게. (빠져 나오
면)
은영부 (점잖게) 아니, 얘 은영아~?
은영모 (부부에게) 어머, 쟤가 저렇게 숫기가 없어서... 저 나
이 되도록 연애두 한~번 못해본 애랍니다. 제가 아주 속이 터져요.
그 소리를 뒤로하고 카페를 빠져 나오는 은영.
#39 S 경수집 마루 (밤)
안방에서 아버지 영정사진 내오는 경수. 조부는 행주로 제기를 닦
고있고,
경수모는 전기 후라이팬에 전을 부치고 있다.
경 수 (다운 된 기분) 자석요는 맘에 드세요?
조 부 아주 만족, 대만족이다! (껄껄 웃고)
경수모 (못마땅하게 조부에게) 이제 어디 아프시단 소리하시
면 안되요? 자석요까지 사드렸는데?
조 부 (헛기침, 경수모 무시하고) 경수야, 어제 내가 어딜 간
줄 아니?
경 수 어딜 가셨는데요? (사진 한쪽에 세워놓고, 밤을 까는)
조 부 결혼 중매회사라는 델 갔었다. 여자 소개시켜주는 회
사 말이야.
경 수 (아직은 좀 우울한) 할아버지, 저 괜찮아요. 그런 데서
여자 만나고 싶지 않아요.
조 부 너 말구, 임마! (경수모 눈치 보며) 재혼도 취급한다 그
래서 갔지.
경수모 어머, 아버님두 참, 제가 무슨... 오늘 아범 제산데, 무
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조 부 아니, 너두 아니구, 나 말이야! 나!
경수모 (놀라며) 네?
조 부 나도 혼자 산지가 꽤 되지 않니? 인생은 칠십부터라
구, 요즘 재혼들 많이 한다! (거의 추진할 태세다.)
벙 쪄서 난감한 경수와 경수모.
이때 대문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
경수모 (자리 피하며 일어나는) 아니구, 경선인가부다.
딸(3~5살)을 안고 들어온 경선. 마루에 딸만 내려놓고, 고개 돌리
며 얼굴을 감춘다.
딸과 경선의 차림은 부유하고 화려해졌다.
경수모 (손녀부터 안으며) 아이구, 우리 효림이 많이 컸네!
(그러다 경선 얼굴 보며) 넌 얼굴이 왜 그러니?
선글라스를 벗으며 고개를 드는 경선의 눈탱이가 시퍼렇다.
경 선 엄마...! (핑 눈물이 고인다.)
경수모 (효림이 놓고, 경선을 붙들고) 아이구, 세상에나... 이
게 무슨 일이니?
경 수 (경선에게 달려들어 보며) 누가 이랬어? 박서방이 그
랬니?
경 선 오빠...! (고개 돌리고 운다.)
경 수 내 이 자식을! (신발 신고 내려선다.)
경수모 아이구, 경수야! 그냥 둬라. 니가 가서 뭘 어쩔려구...!
경수 화가 나서 밖으로 튀어 나간다.
#40 S 두팔 사무실 (밤)
경수, 씩씩거리며 들어서면,
담배를 팍팍 피고 있던 두팔 경수를 뜩 본다. (왜 왔는지 아는 것.)
두 팔 (담배 비벼 끄며, 부하들에게) 니들은 나가 있어라.
경수에게 조심스레 인사들 하면서 나가는 부하들. 눈치 빠삭하다.
경 수 (주먹 움켜쥐고 부르르 떨며, 버럭) 박서방!
두 팔 (순간 약간 긴장하며 보는) ...
경 수 자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성난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온 경수.
한동안 두팔을 노려보더니, 갑자기 무릎을 팍 꿇는다.
두 팔 (당황하여) 아니, 형님. 왜 이러십니까?
경 수 (굳은 얼굴로) 자네야말로 정말 왜 이러나...?
두 팔 저기, 형님...! (난감하여 얼른 마주하며 무릎 끓는)
경 수 우리 경선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구, 애를 때리나, 때
리기를...
두 팔 (고개 조아리며) 죄송합니다, 형님.
경 수 어디 이유나 들어보세.
두 팔 (기다렸다는 듯) 아, 글쎄, 제가 생활비를 갖다주면, 사
치를 하지 뭡니까? 그돈이 어떻게 번 돈인 줄 형님도 잘 아시죠?
제가 중국땅까지 가서 피땀 흘려 번 돈입니다. 그런데 그 돈으루
다이아목걸이나 사고, 한 두개가 아니에요, 한 두개가! 그래서 홧
김에...
경 수 (면목없어지며) 그랬나...? 그래두(!) 그렇지, 애를 때
려선 안되지. 여자를...
두 팔 죄송합니다 형님.
경 수 나를 봐서라도 자네가 그렇게 폭력을 휘둘러선 안되
네. 자네 주먹을 한번 보게. 그건 흉기야, 흉기!
두 팔 (자기 두 주먹을 내려다보며) 죄송합니다. 다시는 휘두
르지 않겠습니다. (고개 들이밀며) 제발 그만 일어나시죠.
#41 S 인경 의상실 (낮)
서류가방과 팜플렛 들고, 기웃거리며 들어서는 영진.
영 진 어이구, 안녕하세요!
생수통을 들고 냉온수기에 꽂으려고 낑낑 매던 인경.
인 경 (떨떠름하게 보며) 어머, 여긴 어쩐 일이세요?
영 진 (얼른 서류가방 놓고, 생수통 받으며) 어이구, 제가 해
드릴게요. 지나는 길에 생각나서 들렀죠.
인 경 고마워요.
영 진 뭘요... (손 털며 둘러보며) 여긴 여자 옷들 밖에 없
나...?
인 경 (혹시 사려나 싶어서) 요즘은 뭐 남녀 옷이 뭐 따로 있
나요? 개성대로 입으면 되지. 누가 입으시게요?
영 진 옷은 천천히 보구요... (팜플렛 집어들고) 이번에 새로
나온 보험상품이 있는데, 이거 한번 보여드릴려구요.
인 경 (그러면 그렇지) 네?
영 진 (팜플렛 펼쳐 들이대며) 이게 한시적으루 판매하는 기
획상품이기 때문에 빨리 드셔야지 곧 마감되거든요. 인경씨한테
만 슬쩍 알려드리는데, 올해 지나면 보험료도 많이 올라요. 그래
서...
인 경 (옆에 있는 대걸레 집어들고) 나가요. 당장 나가요!
이때 은호와 소라가 들어온다.
은 호 인경이 누나!
소 라 안녕하세요...
인 경 (얼른 대걸레 숨기고) 어머, 웬일이니? 니넨 꼭 세트
로 붙어 다니니?
은 호 아이 참, 누난...? (소라에게) 우리 둘이 잘 어울린단
뜻이야.
인 경 (그 말에 삐죽거리는데)
은 호 (영진 보고) 근데 누구셔?
인 경 응? 어...
영 진 이영진이라구 합니다.
은 호 누나하구 사귀는 사람이야?
인 경 엉? 으응... 최근에 만났어.
영 진 (어리둥절해서 보고)
은 호 그래...? (하면서 영진을 아래위로 훑는데)
인 경 (영진에게) 은영이 동생이에요. 약혼녀고.
영 진 (감 잡고, 은호 소라에게) 아, 그래? 반갑다. 반갑습니
다. (소파 권하며) 좀 앉지 뭐. 앉아요.
은 호 (앉으며, 인경에게) 뭐하시는 분이신데, 이 시각에 여
기 계셔?
인 경 (영진 옆에 앉으며, 갑자기 폼 쟤는) 어, 인슈어런스 컨
설턴트셔.
은 호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모르겠는) 인슈어런스... 컨
설턴트?
소 라 (영진을 보며) 보험~!
영 진 아, 예. 그렇죠.
인 경 (은호에게) 넌 유학까지 갔다온 애가 그런 것도 모르
니?
은 호 아이, 알지...
인 경 (팜플렛 주며) 잘됐다. 이왕 왔는데, 보험 하나씩 들
어. 우리나라가 좀 위험한 일이 많니?
은 호 어?
인 경 영진씨, 뭐해요? 견적 뽑아요. 얘들 카페도 새로 내고
해서 들 꺼 많을 거예요.
영 진 어? 그래요? (신나서 서류가방 여는데) 그럼, 일단 화
재보험부터...
은 호 아이, 참... 저기, 누나. 내가 보험 들어주면 누나한테
도 도움되는 거지?
인 경 그럼. (고소한 표정이다.)
은 호 (영진에게) 그럼 몇 개 더 줘보세요. 엄마, 아빠 것도
다 들라 그러게.
영 진 그럴래? 고맙다. (인경에게) 고마워... (은호에게 펜 뚜
껑 뽑아 주는데서.)
#42 S 호텔 패션쇼장 (낮)
(9부의 경수가 주주총회 했던 호텔이다.)
패션쇼가 진행 중이다.
무대 위엔 모델들이 보이고,
은영은 무대 아래에서 무선으로 스텝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바쁘게 일하는 느낌.
#43 S 호텔 밖 (밤)
호텔에서 나와 일행들과 헤어지는 은영.
실 장 수고들 했어. 조심해서 들 들어가고.
은 영 내일 뵈요.
주차장으로 향하는 일행과 그냥 걸어 내려오는 일행으로 나뉜다.
은영 사람들과 걸어오는데,
문득 젊은 남녀가 손을 잡고 정답게 가는 모습을 본다.
#44 S 인서트 (9부. 경수와 우산 속에서 키스했던 추억.)
#45 S 호텔 밖 (현재. 밤)
그때를 떠올리던 은영, 쓸쓸하게 걸어간다.
#46 S 한강변이나 다리 위, 버스 안 (밤)
버스 안. 퇴근차림의 경수. 사람들 사이에 서있다.
멀리 버스 차창 밖으로, 강을 흘러가는 유람선이 보인다.
물끄러미 유람선을 바라보는 경수.
#47 S 인서트 (9부. 유람선 선상에서 데이트하던 추억.)
#48 S 버스 안 (현재)
생각에 잠겨있는 경수.
#49 S 은영 자취집 앞 골목 (밤)
집으로 오는 은영. 골목길 돌아서는데,
멀리 집 앞에 경수가 보인다.
얼른 숨는 은영.
잠시 후 경수 돌아가자, 은영 골목으로 다시 나온다.
#50 S 은영 자취집 (밤)
인경이 씻고 나오면,
퇴근 차림의 은영이 물끄러미 앉아 있다가 일어나 냉장고로 가며,
은 영 인경아. 우리 이사가자. (생수 꺼내 따라 마신다.)
인 경 갑자기 왜?
은 영 그냥. 이사가야겠어.
인 경 너 요즘 왜 그래...?
은 영 내가 뭘...
인 경 성민씨 그러고 나서 경수도 안 만나고, 그래 이해해.
근데 말도 안하고, 갑자기 이사는 왜 가?
은 영 (갑자기 화를 내는) 그냥 가는 거야! 그냥 좀 가면 안되
니?
인 경 얘가? 왜 화는 내고 이래?
은 영 (낭패감이 스친다.) 미안해...
인 경 너 왜 그래...? 같이 사는 나도 피곤해. 제발 얼굴 좀
펴!
은 영 알았어. 아무튼 이사 갈 거니까 그렇게 알어. (방으로
들어간다.)
인 경 쟤가...?
#51 S 경수방 (낮)
일요일인지, 일상복 차림으로, 책상서랍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
는 경수.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간다.
조 부 일요일인데 어디 가니? 좀 쉬지.
경 수 잠깐 나갔다 올게요. 할아버지.
#52 S 은영 자취집 앞 골목 (낮)
골목을 돌아서 은영의 자취집을 향하는 경수.
이때, 멀리 짐이 실린 이삿짐 트럭에 인경과 은영이 막 타자, 트럭
이 떠난다.
놀라 은영을 부르며 쫓아가는 경수.
#53 S 동 트럭 안 (낮)
창가 쪽에 앉아있던 은영이 무심코 사이드미러를 본다.
거울 속으로 멀리 트럭을 쫓아 달려오는 경수가 보인다.
괴롭지만 모른 척 외면하는 은영.
#54 S 동네 밖 거리 (낮)
골목을 빠져나온 이삿짐 트럭이 거리로 나서고,
숨을 헐떡이며 쫓아온 경수가 마침 서있던 빈 택시를 잡아탄다.
#55 S 동 택시 안 (낮)
경 수 (기사에게) 아저씨, 저 트럭 좀 빨리 쫓아가 주세요. 빨
리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거는 경수.
#56 S 트럭 안 (낮)
은영의 핸드폰이 울린다.
은영 핸드폰을 받지 않는다.
인 경 전화 받어. 전활 왜 안받어?
핸드폰 전원을 꺼버리는 은영.
#57 S 택시 안 (낮)
전화를 받지 않자 핸드폰을 집어넣는 경수.
경 수 아저씨, 저 트럭 좀 막아서 세워 주실래요?
#58 S 도로 (낮)
비상등을 껌뻑이며, 이삿짐 트럭을 추월해 가로막고 서는 택시.
이삿짐 트럭 끽 멈춰 선다.
트럭 안의 놀란 기사와 인경, 은영이 보면,
택시에서 튀어나오는 경수.
인 경 어머, 경수 아니니?
트럭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경수.
(시간경과)
택시는 보이지 않고, 좀 떨어진 곳에 이삿짐 트럭이 서있다.
은영과 경수가 길가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옆으로는 차들이 쌩쌩 지나간다.
경 수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나한테 말도 안하고 이사가
니?
은 영 어... 나중에 알려줄려고 그랬지...
경 수 전화하면 전화도 안 받고, 나중에 알려준다고? 이사가
면 날 불렀어야지. 친구라며?
은 영 (괴로운) 친구니까 안 불렀지...!
경 수 (버럭 화를 내며) 친구니까 불렀어야지!
은 영 .... 너 자꾸 왜 그래? 너까지 왜 나를 힘들게 하니? 이
렇게 힘들게 하는 게 친구야?
경 수 넌 나를 안 힘들게 하는 줄 알아? 좋아. 우리가 친구로
지내기로 한 거 좋아. 그런데 이사를 가면서도 말도 안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연락도 안되고, 내가 이렇게 거리감 느껴야 되니? 넌
내가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럴 거면 우리 아예 연락도 하지 말고, 보
지도 말자. (실망해서 가려는데)
은 영 (충격 받은 듯) 경수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경 수 (돌아서며) 나도 너한테 친구 이상의 것을 원하지 않
아. 앞으로 원하지 않을게! 절대로!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떨어져서 살아야 되겠니? 우리 정말 보지 말까? 그걸 원
하는 거야?
은 영 (잠시 후) 그런 거는 아니야...
경 수 그럼 됐어. 가자. (트럭을 향해 앞서서 간다.)
그런 경수를 보는 은영.
#59 S 달리는 트럭 짐칸 (낮)
이삿짐들 사이에 꾸겨 앉아서 실려 가는 경수.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 본다.
손을 높이 들어 반지 케이스를 멀리 길가로 던져버린다.
바닥에 튕겨 굴러가는 반지 케이스.
쓸쓸하게 거리를 바라보는 경수.
경 수 (N) 그래, 우린 친구였지, 애인은 될 수 없었다. 친구
에서 연인이 되는 것도 힘들었지만, 연인에서 다시 친구가 되기란
더 힘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얼마 후 우린 아주 멀쩡하게
친구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F.O)
#60 S 경수방 (낮)
(F.I) 반바지차림으로 늘어지게 자고 있는 경수.
경수모 (문 열고 들어서며) 아이구, 이 냄새. 이게 노총각 냄새
니? 뭐니? (경수 때리며) 일어나 얼른!
경 수 아이, 참? 일요일인데 낮잠 좀 자게 내버려두지. 엄만
셀러리맨의 비애를 몰라.
경수모 뭔 비애? (재떨이 치워가며) 머리 좀 감고, 담배 좀 그
만 피워! 이방만 들어오면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
경 수 (일어나며) 아이,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피곤해죽
겠는데...
경수모 (여기 저기 방 치우며) 방은 못 속여. 음양이 조화를 이
뤄야 냄새가 향기롭지. 빨리 장가나 가!
경 수 알았어... (밖으로 나간다.)
#61 S 도로 (낮)
반바지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경수.
차들 옆으로 갓길을 따라 힘차게 달려간다.
자전거 뒤에는 빨간 김치통이 실려있다.
#62 S 은영 오피스텔 앞 (낮)
경수의 자전거가 들어와 멎는다.
자전거 뒤의 김치통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는 경수.
경 수 (경비실을 향해) 아저씨, 금방 나올께요!
#63 S 은영 오피스텔 (낮)
경수가 커다란 김치통을 식탁에 올려놓는다.
경 수 김치 없지? 이거 엄마 몰래 훔쳐왔어. 두고 먹어.
은 영 (내심 좋지만) 어머, 자꾸 얻어먹으면 안 되는데?
경 수 자꾸 갖다달란 소리로 들린다?
은 영 (뽀르르 김치통 들고 냉장고로 가며) 고마워...
경 수 (냄새부터 킁킁 맡으며) 맞아. 이 집은 확실히 냄새가
안나.
은 영 (냄새 맡는) 무슨 냄새?
경 수 아니야.
은 영 커피 한잔 줄까?
경 수 내가 탈게.
이때 초인종 울리면, 현관으로 나가는 은영.
은 영 인경인가부다. (하면서 문을 열면)
선물꾸러미 들고 들어서는 은영모와 은영부.
은영부 은영아!
은영모 이사 잘했다. 그 전집 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네.
은 영 전화라도... 하고 오지... (난처한 듯 안을 보면)
은영모 (안을 빼꼼이 보며) 왜? 누구 있니? (하면서 신 벗고
들어오고)
그 소리에, 커피통과 차 스푼 든 채로 나와보는 경수.
은영모와 갑자기 부딪칠 듯 마주친다.
은영모 에그머니나! 깜짝이야.
은영부 (따라 들어와 경수 보고 놀라서) 아니, 누구세요?
경 수 (대충 감 잡고)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서경
수라고 합니다.
은영모 (은영에게) 누구?
은 영 저기... 친구야.
은영모 친구?
은 영 어... 옛날에 춘천에서 같이 선거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
은영부 (선뜻 반갑게) 아, 자네가 그 친군가?
경 수 아, 예.
은영모 (은영부에게 눈치 주고, 경수에게 달갑지 않은) 여긴
무슨 일이에요? 여자들만 사는 집에?
경 수 예, 그냥 놀러 왔습니다. (얼른 은영에게 커피통과 스
푼 주며) 저기, 난 그만 가볼게. 계시다 가세요. (인사하고 나간
다.)
은영부 (은영모에게) 아니 왜 사람을 쫓아내고 그래?
은영모 이이가? (은영에게) 여기 자주 들락거리니?
은 영 (얼른) 아니.
은영모 행여나 얼씬도 못하게 해! 시집가는 데 지장 있다.
은 영 그냥 친구야...
은영모 남녀간에 무슨 친구? 그러다 큰일 나는 거야!
은 영 으유, 그런 사이 아니야. 큰일이나 한번 나봤으면 좋겠
다... (부엌으로)
은영모 쟤가?
은영부 당신은? 우리 딸을 그렇게 못 믿어? (부엌을 향해) 난
믿는다! 은영아!
#64 S 경수집 마당 (낮)
경수 들어오면,
경수모 (한쪽에서) 이상하네...? 김치통이 어디 갔지? 익으라
고 내놨는데?
경수, 모르는 척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조 부 (마루에서 나오며, 누가 묻지도 않는데, 혼자 궁시렁궁
시렁) 노인정이래두 갈래문 돈이 있어야 되는데... 할마씨들이랑
뻐꾸기라도 날릴라문, 빈 입으로 되나? 커피라도 한잔씩 돌려야 뻐
꾸기도 먹히는 거구... 에이, 노인정 안 갈란다! (마루에 다시 걸터
앉는다.)
경 수 (웃으며 만원권 두 장 꺼내 주는) 자요. 이거라도 갖고
가서 노시다 오세요. 집에만 계시면 치매 걸려요.
조 부 요새 이거 이만원을 누구 코에 붙이냐? 이쁜 할망구는
사주고 미운 할망구는 안 사줄 수도 없고, 참...
경 수 (지갑에서 이만원 더 꺼내며) 여잔 생긴 거 갖구 차별
하면 안되죠...
조 부 (받으며) 그럼, 안 되구 말구...
경수모 (어느 새 노려보며) 아버님! 제가 용돈 드리잖아요!
조 부 그럼 나 다녀오마. (후다닥 나간다.)
경수모 아이구... 점점 더 왜 애가 되시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보면 내가 용돈도 안 드리는 줄 알겠어. (경수에게) 근데 너 여기
있던 빨간 김치통 못 봤니?
경 수 (움찔) 아니요.
경수모 (계속 김치통 찾는) 이상하네...? 분명히 여기 뒀는
데...?
경 수 멀쩡한 김치통이 어딜 갔다고 그러세요?
경수모 그러게나 말이다... 경선이네 줄라구 해놓은 건데...?
슬쩍 안으로 들어가는 경수.
#65 S 경수방 (밤)
바둑책을 보며 컴퓨터로 바둑을 두는 경수.
마당에서 무슨 소리가 나자, 문을 열고 나가 본다.
#66 S 경수집 마당 (밤)
할아버지가 마당 한쪽에서 자전거를 손보고 있다.
경 수 (나오며) 뭐하세요?
조 부 (자전거 만지며) 자전거가 비맞고 그러더니 녹이 슬어
버렸다. 경수야, 거기 기름통 좀 가져오너라.
마당 한쪽에서 기름통을 가지고 가는 경수.
조부에게 기름통을 주고 그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조 부 (기름치며) 여자나 기계나 이렇게 가끔씩 기름칠을 해
줘야 되는 겨. 그래야 문제없이 잘 돌아가지. (바퀴 돌려보며) 어떠
냐? 감쪽같지?
웃는 경수.
조 부 (들어가며) 그만 자자.
조부 들어가고, 경수 혼자 남아 자전거를 본다.
#67 S 동네 골목길 (밤)
사각사각... 페달 밟는 소리가 들린다.
동네 골목길을 조용히 구르는 자전거 바퀴.
경수가 혼자 자전거를 타며 골목을 돈다.
경 수 (N) 인생에서 남녀간의 친구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
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꼭 결혼을 해야만 완벽한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내 여자가 될 인연이 아니라면, 그냥 소중한
친구로 만족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그날, 밤새 자전거를 탔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