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꼬막」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꼬막을 삶는 일은 엄숙한 일
이 섬세한 남도南道의 살림 성사聖事는
타지 처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모처럼 팔을 걷고 옛 기억을 살리며
싸목싸목 참꼬막을 삶는다
둥근 상에 수북이 삶은 꼬막을 두고
어여 모여 꼬막을 까먹는다
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졸깃거리는 맛
나가 한겨울에 이걸 못 묵으면 몸살헌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
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 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아니 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태풍이 안 오셨다는 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읎어서 바다와 갯벌이
한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
근디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
자네가 감옥 안 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
이 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정권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 거 말고 말여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
◆ 시_ 박노해 -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한 후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며 한국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분단된 한국사회에서 절대 금기였던 ‘사회주의’를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하여 1991년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 받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을, 1997년 옥중 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펴냈다. 1998년 석방된 이후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2003년 이라크 전쟁터 등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의 가난과 분쟁지역에서 글로벌 평화나눔을 펼치고 있다. 2010년 10월, 10여 년 동안 육필로 새겨온 5천여 편의 시 중에서 300편을 묶은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첫댓글 멋져요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