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의 주인공 태현실씨
흑백영화 시대의 할리우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레이스 켈리’가 존재하듯이, 70년대의 한국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이름이 있다. 우아함과 고고함의 대명사 그레이스 켈리처럼, 한국 여인 특유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연기했던 드라마 ‘여로’의 여주인공, 태현실씨.
드라마가 방영된 72년 이후 벌써 3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7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모진 시집살이 속에서도 고고하게 남편을 뒷바라지하던, 다시 만나고 싶은 추억속의 여인으로 생생히 살아있다. 그리고 70년대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오늘날 젊은 미국인들이 그레이스 켈리를 떠올리는 것처럼, 그녀는 전설속의 여배우로 자리매김해 있다.
‘일부종사’ 약속하고 영화계 입문
어찌 보면 배우 태현실씨에게는 요즘의 여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듯한 화려하고 톡톡 튀는 듯한 느낌은 조금 부족하다. 오히려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맑은 눈동자와 고고한 표정이, 화려한 배우의 이미지보다는 작가나 교수에게서 풍기는 지적인 향기를 풍긴다. 그러한 그녀가 어떻게 연기자의 길을 들어서게 되었을까?
“처음부터 영화배우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선생님 몰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다 들켜서 몇 번 혼나긴 했지만(웃음).”
그녀는 지성적인 외모가 눈에 띈다는 것 그리고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점을 빼면 남다를 것 없는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하지만 대성할 여배우감은 어디서나 눈에 띄는 것이었을까? 그녀는 친척 오빠이자 당시 촬영기사로 일하던 ‘태길성’씨의 권유로 영화계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얌전하고 품행이 바른 예쁜 딸이, 당시만 해도 소위 ‘딴따라’라고 불리던 연예인의 길을 걷겠다니, 부모님의 반대가 거셀 수밖에 없었다. 그 때 태현실씨와 어머님이 했던 약속은 ‘연예인이 되어도 ‘일부종사’해야 한다’는 것.
“부모님 반대가 거셌죠, 뭐. 요새처럼 부모님들이 자식이 연예인 한다고 하면 적극 성원해주던 그런 시기가 아니니까. 그때 어머니가 저를 불러다 앉혀놓고 ‘하나만 약속하자’고 하시더군요. 여배우가 되더라도 불안한 가정생활을 하지 않고 꼭 ‘일부종사’해야 한다고. 어머니와 그 약속을 하고서야 비로소 영화 일을 할 수 있었어요”
이후 태현실씨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KBS 1기 탤런트로 연예계에 첫발걸음을 내딛었다. 이후 그녀는 배우로서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는데 그 첫번째 계기가 된 작품이 바로 62년 데뷔작 ‘아름다운 수의’였다. 훤칠한 외모와 고고한 아름다움에서 풍기는 지적인 느낌이 영화계에서 원하는 여배우상에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덕분에 그녀는 무명생활 없이 이후 2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명실상부한 국민적 배우로 떠오르게 되었다.
온 국민의 눈시울을 적시던 ‘여로’의 ‘분이’
데뷔 이후 안정된 연기 활동을 펼치던 그녀가 국민적인 대스타로 발돋움하게 한 계기가 바로 드라마 ‘여로’였다. 90년대 드라마 ‘모래시계’가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귀가시계’라고 불리울 정도로 갖가지 신드롬을 만들어냈지만 72년 방영된 ‘여로’의 인기에 비할 수는 없다.
바보 남편 ‘영구’에게 시집와 매서운 시어머니(박주아 분)의 시집살이를 견뎌야했던 슬픔을 간직한 여주인공 ‘분이’. 그나마 전쟁으로 인해 남편과도 생이별을 해야 했지만 오랜 세월동안 남편에게 일부종사하는 마음가짐을 버리지 않았던 고고한 ‘분이’.
당시 태현실씨가 연기한 인내심 많은 한국의 여인상 ‘분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키며 드라마 방영시간이면 온 국민을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 모았다. 지금과 달리 텔레비전이 무척이나 귀하던 시기였다.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면 ‘여로’ 방영시간마다 드라마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는 이야기는 현대의 젊은이들에게까지 전설로 이어져 내려울 정도이다.
또한 지방의 극장은 영화가 아니라 ‘여로’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이 매우 많았다. 영사기를 돌리다가도 드라마 방영시간이 되면 모든 화면을 정지시키고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있는 휴게실로 너나 할것 없이 모여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순수했던 시대, 때로는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여러번 있었노라고 태현실씨는 회상한다.
“촬영을 마치고 박주아씨(시어머니 역)와 시장을 보러 다니면 저는 착한 며느리라고 상인들이 한푼이라도 가격을 깎아주곤 했어요. 그런데 박주아씨는 착한 며느리 못살게 구는 시어머니라며 물건값을 깎아주기는커녕, 욕도 하고 손가락질을 받아야했죠. 또 한번은 박주아씨와 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났는데 박주아씨가 다리를 다쳤거든요.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며느리를 구박하더니 다쳤다’고 말씀하시더군요.(웃음)”
뿐만 아니라 한번은 집을 나갔던 며느리가 ‘여로’의 착한 며느리 ‘분이’에 감동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며 한 할머니가 그녀에게 몇번이나 감사를 표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수줍게 웃는다. 그야말로 ‘분이’는 그 당시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선사하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역할도 역할이었지만 태현실씨와 같은 지적인 아름다움과 우아함 그리고 고상함을 갖춘 여배우가 ‘분이’를 연기했기 때문에 그만큼 ‘여로’의 인기가 높았던 것이 아닐까.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행복하게 살아있는 ‘분이’
세인의 심금을 울리던 국민적 드라마 ‘여로’가 종영된 지도 어느덧 삼십년이 지났다. ‘여로’의 슬픈 이야기를 담아내던 흑백 화면은 어느덧 추억이 되었고 젊은이들에게 ‘여로’의 존재는 개그맨 심형래씨가 연기하던 코믹한 ‘영구’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70년대의 한 부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여로’의 향기가 모두 걷힌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는 ‘여로’가 악극으로 부활해 태현실씨와 탈북 배우 김혜영씨가 동시에 ‘분이’역할을 맡아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드라마 속의 ‘분이’ 태현실씨가 연기나 가정 모든 면에서 행복한 삶을 이루어 왔다는 것이 세인들이 ‘여로’의 향수를 잃지 않게 하는 가장 큰 요소일 것이다.
자신의 연기 생활에 대해 “‘여로’ 이후에도 악역은 별로 맡지 않았어요. 욕을 먹거나 하는 일은 드물었으니 배우로서 행복했었죠”라고 회상하는 태현실씨의 표정에서 배우로서의 삶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얼핏 엿보였다. 뿐만 아니라 태현실씨는 드라마속의 ‘분이’처럼 가정에 충실한 여배우로서도 유명하다.
이미 드라마가 방영되던 당시 태현실씨는 사업체를 경영하는 현재의 부군과 결혼을 한 상태였고 이후에도 연예계의 잉꼬부부로 살아 왔다. 그야말로 연예계 데뷔전에 어머니와 했던 ‘일부종사하라’는 약속을 멋지게 지킨 셈이다. 1남1녀, 장성한 아들과 딸을 두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려온 태현실씨는 이에 대해 “연기 생활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던 것은 남편이 이해심이 많은 덕분이죠. 남편의 철학은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거든요” 라며 남편에게 공을 돌리는 ‘분이’와 같은 미덕도 잊지 않았다. 또한 어린 연기 후배들에 대해서도 격려와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요즘 후배들은 어떤 면에선 무척 부러워요. 우리 때완 달라서 좋은 환경 속에서 연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연기도 무척 잘하죠. 어떻게 보면 예전 우리 때보다도 훨씬 잘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점점 그 연기 속에서 ‘진실’을 찾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 아쉽네요. 연기란 건 사명감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추억 속의 여인으로, 전설 속의 여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왕년의 여배우답게 지금도 고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태현실씨와 꽃구경을 나선 본지 조수빈 기자
기자와 양재동 꽃시장 나들이를 함께 한 태현실씨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만발한 꽃들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특히 그녀를 알아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인공세로 인터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는데 귀찮아하지 않고 일일히 미소로 화답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진정한 국민배우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꽃 가운데서도 우아함과 고고함을 간직한 동양란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세월에 휩쓸리지 않은 그녀의 기품이 서양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를 떠오르게도 했다.
중장년층에겐 꿈속의 이상형이자 추억의 여인으로, 젊은 세대들에겐 전설 속의 여배우로 각인되어 있는 그녀의 모습이야말로 한국의 ‘그레이스 켈리’가 아닌가?
그러나 서양의 그레이스 켈리가 짧은 세월 연기생활을 마감했고 비운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것에 비해, 태현실씨는 꾸준히 연기활동을 하며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 여전히 세인들에게 ‘여로’의 ‘분이’로 각인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그녀는 그레이스 켈리보다도 더 성공적인 삶을 산 셈이다. 그래서 더욱 영원한 스타로 남을 수 있는 것 같다.
기자와 헤어지던 그녀의 뒷모습에, 순간 오후의 햇살이 미소를 머금어 ‘반짝’하고 빛이 났다. 30년 전의 ‘분이’가 행복한 모습으로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