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현실이 어떠하든지 간에 주 예수를 믿어 새 사람이 된 사람들은 언제든지 성화 작업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 속에 산다. 거룩해져야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기 때문이다.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한다.(히 12장 14절)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선포 받아 주 예수를 믿음으로 죄에서 빠져 나왔다.
죄의 멍에에서 벗어났으므로 믿을 때의 기쁨과 감격은 참으로 컸다.
그리스도인들이 주 예수를 믿어 새 사람이 되므로 죄의 사슬에서 놓여났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다. 믿기 전에 행한 모든 일들이 다 죄였다. 이제 여기 이런 죄의 상태를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새 사람이 되어 살지만 삶의 과정에서 옛 사람의 욕망과 죄의 관습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다.
말을 바꾸면 그리스도인들 안에 새 사람과 옛 사람이 같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새 사람으로 살면 그것은 영으로 사는 것이다. 또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옛 사람을 다 청산하지 못한 상태로 살고 있다. 그리하여 죄의 욕망이 강하게 일어나면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런 죄의 욕망이 과거 믿기 전에 살던 방식이어서 그것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죄의 욕망이 일 때 그것을 물리치려고 애쓴다. 그런데 그런 애씀이 아무 소용이 없다. 죄의 욕망을 물리치려고 하면 그 욕망이 더 큰 힘으로 나를 압박해온다. 그리고 끝내는 욕망이 나를 이겨낸다.
뿐만 아니라 죄의 욕망은 육체의 욕망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몹시 괴롭힌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 그 욕망을 즐기게 되고 그 욕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서 다시 옛날의 관습을 따라서 살기를 바란다. 또 한 동안 그렇게 산다.
그러다가 정신이 들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자각을 하여 죄의 욕망 혹은 육의 욕망을 물리치려고 한다. 소리치고 몸부림치고 물러가라고 고리쳐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럴 때 복음 선포를 들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지만 교회에서도 설교자는 죄의 욕망을 해결하는 법을 결코 말해주지 않는다.
처음 믿을 때 복음을 이미 들었으므로 믿는 자들이 또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설교자들에게는 낯설은 일이다. 그래서 설교자들이 설교에서 복음을 선퍼해야 한다는 것에는 아무런 의식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죄의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할 때 물리치는 법을 전혀 모른다.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지만 가르쳐주지 않으므로 죄의 욕망을 물리쳐 죄를 피하는 법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옛 사람이 날마다 역사한다. 옛 사람이 시간마다 역사한다. 이럴 때 성경이 가르치는 법을 안다면 즉각 실천하여 죄의 욕망의 사슬에 매여 살지 않을 수 있다. 죄의 욕망을 이겨내면 성령이 역사하기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이 일고 기쁨이 함께 한다.
그러나 죄의 욕망을 물리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다 죄의 욕망에 져서 살고 힘없이 산다. 밖으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속으로는 옛 사람이요 혹 찰스 피니의 용어를 사용한다면 자연인으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죄의 욕망을 처리하는 법을 모르므로 그 욕망에 사로잡혀서 살다가 때만 되면 그 욕망을 성취한다. 그리고는 속으로 즐거워하며 그런 습관을 반복한다.
그리고 마침내 범죄 한다. 범죄 한 후에는 많이 후회하고 뉘우친다. 회개가 날 나오지 않지만 여러 번 회개하고 뉘우친다. 고백하고 용서해주시기를 구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해서 죄과를 용서해주시라고는 기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참회적인 행동 곧 자신을 괴롭히는 일을 많이 하였다. 이로써 지은 죄가 용서 되고 해결된 줄로 믿고 지난다.
그런데 문제는 범죄 한 후에는 그 범죄의 심리적 기체가 그대로 마음 판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그 죄의 욕망이 자주 나오고 다시 같은 범죄를 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나온다.
그럴 경우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런 죄의 욕망이 다시 살아나 다시 죄 짓도록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겨서 그러면 안 된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런 다짐은 죄의 메카니즘의 발동에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리고 다시 범죄하고 괴로워하며 보통 마음고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 지옥의 불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