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소 : 무등산 편백나무 숲길 걷기
일 시 : 2023.07.27(목)
참 가 : 강공수 김상문 김영부 김재일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장휘부 정원길 등 11명 참석
불 참 : 1명(이용환-열병후유증)
회 비 : 0원
식 대 : 130,000원(황칠오리 2마리)
금일 잔액 : 0원
이월 잔액 : 478,000원
총 잔 액 : 478,000원
부곡정에는 회원 8명(강공수 김영부 김재일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등)이 모였다. 오늘 식사할 메뉴를 주문해 놓았다. 황칠오리는 1시간 이상을 끓여야 하기 때문에 주문을 해 놓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늘의 목적지는 편백나무 숲으로 정하였다.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혼자서 신발을 벗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신발을 신고 걸었다. 작은 자갈이 많은 길바닥이 거칠어서 쉽게 맨발로 걸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편백나무 숲에는 간혹 맨발로 걷는 젊은 여인들이 눈에 띄었다. 어떤 이는 모기장을 쳐 놓고 그 안에 들어가 앉아 있는 이도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모기들이 못살게 굴기 때문이었다. 또 어떤 여인들은 골짜기에 흐르는 작은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기도 하였다. 지난주처럼 삼삼오오 때를 지어 앉아 있는 사람들의 곁을 지나서 가장 높이 있는 단으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10여명의 여인들이 배낭을 메고 와서 쉬고 있었다. 우리 세 사람(박남용 양수랑 윤상윤)은 그보다 한 단 위의 마지막 단에서 자리를 잡고 쉬었다. 나는 목이 말라서 바로 옆에 있는 개울로 갔다. 손을 물에 넣었더니 맑고 시원한 물이 손에 잡혔다. 손바닥으로 한 움큼 두 움큼 세 움큼의 물을 쥐어 마셨다.
윤상윤이 지금까지 평생을 두고 한 번도 외도를 한 적이 없다고 전에도 말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도 역시 박남용의 물음에 그렇게 답하였다. 그랬더니 박남용이 그것을 믿을 수 없다고 윽박질렀다. 이 나이가 되어서 무엇 때문에 지나간 일에 대해서 거짓을 말하겠는가! 믿어 주어야지. 따라서 그는 그 분야의 천연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기 말로는 아내가 만족스럽게 해 주니까 외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는 고백이었다. 훌륭한 아내가 아닌가!
퇴계(退溪)와 율곡(栗谷)의 제자들 간에 스승에 대한 자랑을 하면서 서로의 스승이 훌륭하다고 우겼다고 한다. 제자들이 스승의 방사 현장을 훔쳐보고 그것으로 판단해 보자고 내기를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서 여기에 적어 본다.
전해지는 말로, 율곡은 조용히 방사를 즐기며 수도승처럼 모든 것을 조심하며 고고하게 살았으며, 퇴계는 일찍 아내를 잃었다가 재혼을 하였는데 재취분이 정신지체의 장애를 가져서 상도(常度)에서 벗어난 행동을 해도, 퇴계는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감싸주었으며, 또 그런 장애를 가진 분들은 본능에 솔직하기 때문에 성적 본능에도 충실하도록 남편으로서 적극 도와주었는데, 방사의 모습이 마치 천둥 번개가 치고 지나가듯 하였다는 이야기로 보아 자연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 후 둘째 부인마저 세상을 떠난 뒤, 48세의 퇴계(退溪)는 또 다시 명종(明宗)의 부름을 받았다. 역사상 명종이 가장 사랑하는 선비는 퇴계였다. 명종은 그를 항상 옆에 두고 정사를 살피고자 하였지만 경직(京職)은 부담이 된다고 극구 사양하다가, 향직(鄕職)은 감수하겠다면서 군수가 되어 단양(端陽)으로 갔다. 거기에서 관기(官妓) 두향(枓香)을 만나서 인생 마지막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었다. 임기를 마치고 풍기군수로 떠나게 된 퇴계는 두향을 데리고 갈 수 없어, 기적에서 두향을 풀어주고 떠나갔다. 퇴계를 따라 갈 수 없는 두향은 단양의 옥순봉 아래에 살면서, 선물로 퇴계에게 매실나무를 주었고, 퇴계는 죽는 날까지 그 매실나무를 두향으로 생각하고 항상 옆에 두고 살았다. 퇴계는 죽음에 앞서 매실나무에게 물을 주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주위가 조용하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더니 그 여인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니까 그 여인들이 점심 먹을 자리를 찾아 떠난 것으로 보였다. 우리도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려왔는데, 우리의 후미를 따라오던 친구들이 조금 아래에서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따라 일어나서 함께 음악정자로 갔다.
지난 주 노래인 <섬집 아기>를 불러보았다. 그리고 금주의 노래 장수철 작사, 이계석 작곡 <바닷가에서>를 불렀다. 작사가 장수철(張壽哲, 1917~1966, 인동인, 평양 대동군 출신)은 작곡가이면서, 합창단 지휘자, 종교 음악가이기도 하였다. 명예 음악학 박사이며 숭실대, 중앙신학교, 이화여대에서 재직하였고, 1960년 월드비젼의 밥 피얼스(Bob Pierce) 박사와 함께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을 창단하여 세계 16개국 104개 도시를 돌면서 130회 이상의 연주를 하여, 약 45만 명의 기록적인 청중을 동원하였다. 특히 그가 처음으로 합창단에 도입한 두성발성은 이후 한국 어린이 합창단의 중요한 발성법으로 자리 잡기도 하였다.
부곡정으로 갔더니 우리가 아침에 주문한 <황칠오리> 요리가 완성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 같이 강공수의 83회 생일 축하의 노래를 불렀다. 지난 주일에 생일을 맞았던 강공수에게는 뒷북치는 생일 축하의 노래가 된 것이다. 아들 삼형제만 있는 강공수가 온 가족이 함께 만나서 생일잔치를 하였으니, 강공수 가족의 행복한 분위기까지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우리도 함께 그 행복을 누려 보았다.
앞으로 8월 한 달을 쉬면서 9월 7일 첫 목요일에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강공수의 차 속에서 노윤택의 전화를 받았다. 송헌(松軒) 최문수(崔文洙)의 부음을 듣게 된 것이다.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노윤택은 오늘 저녁 5시에 홍석소회장과 빈소를 방문할 것이라 하였다.
전부터 최문수네 집을 방문할 생각을 하였다가, 드디어 지난 7월 3일(월) 최문수친구에게 전화를 하였다. 혹시라도 출타하게 되면 만날 수 없을까봐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려고 그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아 집 전화로 전화를 걸었더니, 부인 오여사가 받았다. 문수 친구는 지난 주 월요일 호흡기 질환으로 수완지구에 있는 KS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하였다. 오늘은 잠시 집에 들렀다가 전화를 받는 중이라면서, 오늘 사진을 찍었는데 결과를 확인하여 퇴원을 할지 더 입원 치료를 할지가 결정 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신체적 노쇠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노쇠가 병행되고 있다고 한숨 쉬며 건강한 사람이 부럽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병문안도 잘 되지 않으니 절대 오지 말라고 하였다. 가족들도 면회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내심 장마만 끝나면 다시 그를 방문할 참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그가 떠나버리다니!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