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7.20일 박주현 객원 논설위원이 올린 글입니다. 글 중에 나오는 다음 문장으로 序言을 대신합니다.
" 도대체 '이재명'이라는 인물의 궤적 중에서, 공인이나 권력자로서 토씨 하나 달지 못할 만큼 투명하고 깨끗하게, 상식적인 인과관계로 설명되는 일이 단 하나라도 존재하는가?"
◐ ◐ ◐
며칠 전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참으로 소탈하고 유쾌하게 웃었다. "나는 이제 집이 없다."
유튜브 실시간 댓글 창을 띄워놓고, 초고가 1주택자의 세금 부담을 올리는 투표 놀이를 즐기던 와중에 던진 홀가분한 '무주택자'의 커밍아웃이었다. 권력의 무게를 내려놓고 평범한 서민의 자리로 내려온 지도자의 모습에 맹신도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거룩한 무주택 선언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옛 성남 분당아파트(59평형)의 등기부등본 한 장이 공개되며 광장에는 찬란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등기부등본에 적힌 팩트는 기상천외하다. 집을 판 것은 맞다. 그런데 매수자에게 29억원에 아파트를 팔면서, 그 집에 무려 17억 7천만 원짜리 근저당권을 설정해 두었다.
근저당권자의 이름은 이재명, 그리고 아내 김혜경이다.
쉽게 말해, 집을 사는 사람에게 은행 대신 자신들이 직접 수십억 원을 빌려주고 그 집을 담보로 잡았다는 뜻이다. 집을 처분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매수자를 채무자 삼아 거대한 사금융 대부업체를 개업한 셈이다.
이 기막힌 거래 방식 앞에서 우리는 이 정권이 서민들의 삶을 어떻게 통제해 왔는지 차갑게 복기해야 한다. 치솟는 집값을 잡겠다며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짓은 시중 은행의 셔터를 내리고 주택담보대출의 숨통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평범한 시민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다가도 대출 규제의 턱에 걸려 피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대출의 문을 용접해버린 대통령 본인은, 자신의 초고가 아파트를 팔기 위해 기가 막힌 우회로를 창조해 냈다.
"은행이 대출을 안 해줘서 내 집을 못 사? 걱정 마라, 내가 직접 대출해 줄게."
서민의 주담대는 틀어막아 놓고, 본인은 직접 '제1금융권 이재명 은행'이 되어 17억짜리 맞춤형 특혜 대출을 실행한 이 눈부신 '내로남불'. 사다리를 걷어차 밑바닥 서민들을 벼랑으로 내몰아 놓고, 자신은 헬기를 타고 유유히 규제의 장벽을 넘어가는 이 경쾌한 자가당착 앞에서는 경제학 교과서조차 휴지조각이 된다.
다가올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서류상 소유권을 넘겨 무주택자 코스프레를 완성하고, 실제로는 17억의 근저당이라는 강력한 목줄을 쥐고 자산을 통제하려는 전형적인 파킹 거래가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이 꼼수를 지켜보다 보면 아주 근원적이고 서늘한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든다. 도대체 '이재명'이라는 인물의 궤적 중에서, 공인이나 권력자로서 토씨 하나 달지 못할 만큼 투명하고 깨끗하게, 상식적인 인과관계로 설명되는 일이 단 하나라도 존재하는가.
그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일은 언제나 탁하고 기괴하게 꼬여 있다. 수많은 측근이 연이어 목숨을 끊었을 때도, 경기도의 달러 뭉치가 북한으로 넘어갔을 때도, 목에 상처를 입고 부산에서 서울로 소방 헬기를 타고 날아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다못해 아버지에 대해서도 늘 다른 직업사를 얘기했다. 무엇 하나 정상적이고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법이 없다.
권력자의 투명함은 그 국가의 수준을 결정한다. 부동산 거래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친절하게 시연해 주신 무주택자 이 대통령의 꼼수는 작금의 대한민국이 처한 비극을 정확히 압축해서 보여준다. 최고권력자가 정직한 잣대 대신 얄팍한 편법으로 일관할때, 그 사회의 법치주의는 필연적으로 거대한 야바위판으로 전락한다.
꼬리를 자르고 서류를 비틀어 법망을 빠져나가는 기술을 정치적 유능함으로 착각하는 사회. 꼼수가 훈장이 되고 위선이 낭만으로 포장되는 이 기괴한 체제 속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룰을 지키는 평범한 시민들은 도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무겁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꼼수로 세운 성벽은 겉보기엔 화려할지 몰라도, 결국 그 얄팍한 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법이다.
출처 : 최보식의언론(https://www.bos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