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새싹
임 우 희
봄 분위기다. 지난 겨울에 대파 한 단을 베란다 구석에 보관해 두었다. 아침마다 밖에 나가 파를 잘랐다. 자른 파 대에서 진액이 눈물처럼 뚝 떨어졌다. 뿌리만 남은 것을 빈 화분에 흙을 담아 깊숙이 묻어 두었다. 가끔 물 한 번 준 것이 전부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파란 잎이 뿌리를 밀고 쑥 자라있다.
묘한 기분이다. 파란 새싹이 무슨 새해 상징이라도 된 듯이 보인다. 눈 맞춤을 해본다. 대파는 잎줄기까지 버릴 것 하나 없이 활용도가 높다.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념 채소 중 하나다. 면역력 강화와 체내 콜레스테롤 조절에 효과적인 식자재라 매일매일 사용하게 된다. 생으로 사용할 땐 알싸한 매운맛과 특유의 향이 있고, 익히면 단맛을 내기 때문에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오래전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암 수술로 힘겨운 병원 생활 중에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는 일이 많았다. 말기 암 환자라 치료 중 허리 부분에 무리가 갔던 모양이었다. 허리뼈 두 곳이 부러지는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퇴원이 한 달 정도 연기되었다. 수술에다 허리까지 다치니 그 통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걸음조차 걸을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걸음을 떼면 곧 바로 넘어졌다. 일어나면 다시 또 넘어졌다. 발가락 양쪽이 덜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시어머님은 집안 일을 힘들어하셨다. 대책을 세울 여유조차 없는 몸인데 고민이 되었다. 얼른 수술을 하고 최대한 빨리 회복해서 다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 놓아야 했다. 당시 나는 보석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잠시도 자리를 비울 상황이 아니었다. 20여 년을 운영해온 터라 비교적 안정된 자리를 잡고 있던 차에 사고가 터진 것이었다. 나는 마음이 조급했다.
경대병원 신경외과에서 특수 사진을 찍었다. 신경선이 눌려서 겨우 명맥만 유지한 상태라는 결과가 나왔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하지 않으면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새벽 응급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후에도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 위에 누워 석고로 보조대를 만들어서 등과 허리 전체를 묶어 감싸지 않으면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의사에게 소염제 진통제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다고 말했다. 담당 의사는 그렇게 하면 확실히 회복도 빠르고 부작용도 적지만 고통이 너무 심해서 권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환자와 보호자의 서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서명하고 통증을 내 의지로 견뎌내기로 마음 먹었다.
정말 통증은 심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었다. 매일 전기로 지지고 살이 찢기는 아픔이 3개월 넘게 지속되었다. 참아내야 한다. 견뎌야 한다. 풀어지는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시어머님이 큰 보자기를 들고 와서 운동하도록 도와주셨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 내려오는 여덟 계단이 베를린 장벽보다 아득해 보였다. 어머님을 붙잡고 몇 발자국 떼어 놓으면 하반신이 저리고 아파서 보자기를 펴고 퍼질러 앉아야만 했다. 어머님이 허리와 다리를 주물러 주셔야 겨우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우리는 온몸이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서로를 부등켜 안았다.
운동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천 리, 만 리나 되는 듯 아득했다. 시아버님도 크게 의지가 되었다. 침대에 눕히고 일으킬 때마다 온 힘을 다 해 도와주셨다. 6개월이 넘어갈 무렵부터 통증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IMF 직후라 경제적인 걱정도 많았다.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되자 하루에 3시간 정도로 근무를 했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았다. 몸은 힘들어도 고객은 계속 찾아 들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내 몸으로 경제를 꾸려 갈 수 있어서인지 시부모님은 더욱 극진히 보살펴 주셨다. 허리가 불편하긴 해도 현실을 인정하니 견딜만 했다. 지금은 남편과 더불어 부지런히 운동을 한 덕분에 맨발로 걷기에 도전하여 4년째 접어들고 있다.
잘린 뿌리에서 난 대파가 처음보다 더 싱싱해 보인다. 오랜 세월 잘 버텨준 나에게도 이젠 말하고 싶다. 애 많이 썼다. 머리와 가슴의 부조화로 힘들 때도 많았지만 잘 견뎌 주었다. 아픔과 괴로움을 묵묵히 함께해준 가족들에게도 가슴속으로부터 찐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젠 좀 더 천천히, 뒤돌아보지 않고 살고 싶다. 앞으로 내 삶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애끓을 것도 없고 아쉬움도 없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첫댓글
눈물납니다.
생명이란 그런 거군요.
小珍회장님,
지금은 여유롭게 쓸 수 있어 행복합니다.
늘 건강 하세요.^*^
고통이 희망으로 넘어가도록 아픔을 참고 견디신 임 선생님! 홧팅!!
김성문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래도, 이젠 이렇게 공개 할 수도 있어서 괜찮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이 공간에서 뵙기를
소망합니다.^*^
필명으로 작품 올리시는
일 삼가바랍니다.
우리카페 규정이 필명으로 글을 올리지 않토록
규정되어 있는데 새로
오시는분들이 잘 모르시는것 같아요.
집행부에서 그런일은
공지해주시는게 옳지
싶은데...사람들은 좋아서? 회원들께 무슨 말을
안하려 하니....
5매수필란에 소금별이란분이 글을 올렸기에
누구시냐고 내가 댓글을
달아놨는데...
남평선생님,
건강하시지요?
고맙습니다. 컴퓨터가 신형으로 바꿨더니 적응이 어려웠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이 많으시길 바랍니다.^*^
@임우희 아이구. 우리 임선생이
셨구먼. 임우희 얼마나
이름이 좋고 아름다워요.
아호와 이름을 병행하여
사용하는건 무방하니까
그렇게 사용하시지요.
ㅎ
@남평(김상립) 남평선생님,
참으로 아름다운 말씀으로
행복하게 하셨네요.
늘 멋지십니다.^^
아고...그런 일이......댓글조차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용기 잃지 않으시고 엄청난 병을 이겨낸 임우희 선생님께 감동의 박수만 보냅니다.
국장님,
감사합니다..
이젠 민둥 해져서
점점 감성을 잃을까 가끔
상기합니다.
건강하세요.^^
그런 고통을 겪으셨군요.
그래도 나아서 다행입니다.^^
저도 척추디스크로 3년째 운동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신노우 선생님,
늘 누구에게나 다정하신
모습이 참 좋습니다.
건강관리 정성껏 하셔셔
오래오래 젊음을 유지하시길 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미소를 잃는 임선생님이 존경스럽습니다.
박미정샘,
늘 다정스런 댓글 고맙습니다.
함께라서 행복합니다.^^
임 선생님 대단한 인간승리세요.임 선생님 인생을 응원합니다.
숙온 서해숙선생님,
제주도에서 여전히 잘 지내시죠?
늘 밝게 웃으시던 아름다운 모습 멋지십니다.
대구에 오시면 한 번 뵙고싶네요.^^
선생님~ 그런일이 있었군요. 평소에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대단 하십니다. 그래도 늘 남을 먼저 배려 하시고 도와 주시고 늘 웃으시고 오케이 하시고 ~멋진 인생입니다.
김남희샘,
너무 격려를 많이 해주시니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아픔이 큰 부담이 된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견뎌낸 정신적 자산이 되어 배짱이 커졌습니다..
오래 못 뵈서 보고 싶네요.^^
선생님의 글을 읽고 한참 멍 했습니다.
사람살이는 거져 살아지는게 하나도 없는 겁니다.
선생님의 눈물 겨운 고통이 있었으므로 좋은 작품이 탄생 되고
또는 그 파 한 뿌리에 새로운 생명체를 보게 됩니다.
참 견뎌 오셨습니다.
앞으로는 건강한 모습만 보리라 믿으며 사랑 합니데이.
임춘희선생님,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머가 많고 끼가 넘치는
주변을 활기차게 만드는
묘한 실력을 갖고 계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