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기독교 ㅇㅇ종 XX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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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가까운 곳 산에 있는 절로 산책을 갔다. 무슨 특별한 절기인지 평소와 달리 스피커에서 특유의 낮은 음으로 염불 소리가 흘러 나왔다. 경건한 마음으로 듣다가 비위가 상해버렸다.
왜냐하면 무조건 “.........해서 참회 합니다.”로 끝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번에 왔을 때는 정부가 무슨 일로 불교에 섭섭하게 했다고 정부를 규탄하는 프랭카드를 여기 저기 붙여 놓았더니 작금에 대부분이 국민들이 분노하는 친일굴욕적 외교에 대해서는 어금니 꽉 다물고 있으면서…..
더욱이 그 절의 주지는 나름 의식이 있는 비구니라고 소문을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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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호주로 돌아가서 살던 곳이 중동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밀집지역이라서 사방에서 집 안이 보일 수 있어서 매우 불편했었다. 일반적으로 내가 사는 집 안이 보여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나의 내적 세계에도 밖으로 들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자신의 내적 세계가 들어나도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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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신의 내적 셰계가 많이 들어날수록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 예수, 부처가 바로 그런 사람일 것이다. 즉 들어날수록 더욱 빛나는 존재인 것이다.
내가 부처보다 예수를 따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 절이 없고 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을 좀 알게 되어서도 여전히 나는 예수를 택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출신성분, 삶의 과정, 최후를 맞는 과정이 부처 보다는 예수가 훨씬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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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따져 보자! 매스미디어가 오늘 날처럼 발달한 세상에서도 아무리 유명한 연예인, 정치인이라도 3년 정도 활동하고 들어가면 곧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2,000년 전에 공적으로 활동한 시간은 겨우 3년 안팎에 불과한 예수가 오늘날까지 날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더욱이 80대까지 활동하시다가 제자가 드린 음식을 잘못 잡수시고 식중독으로 돌아가신 부처님에 비하면.
석가는 전공이 철학이어서 난해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 예수는 목수 출신이어서 실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흥행감으로서는 부처 이야기 보다 예수 이야기가 훨씬 흥미가 있다.
출신 성분으로 볼 때 부처는 금수저, 예수는 흑수저 출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부처는 개인이 알아서 잘 해보자는 식으로 나갔고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설파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예수에게 한 표를 던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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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들은 실질적으로 예수의 복음을 버리고 개인적으로 잘해 보자는 부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현실은 언제나 예수 편은 매우 소수이고 기독교인라고 해도 절대 다수가 부처의 제자인 것이다.
세상과 사회에 대한 책임 보다는 개인의 완성을 통하여 다음 세상의 안위를 구하는 영성은 도피적 영성이어서 실제로는 기독교가 아니고 불교적인 접근인 것이다.
그럼으로 ‘대한기독교ㅇㅇ교회’라고 하는 것 보다는 ‘ 대한기독교 ㅇㅇ종’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어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