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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전부터 오우삼 감독이 14년 만에 총격전을 다시 다룬다는 것과 제작비 4천만 달러를 들여 여러 나라를 돌며 촬영한다는 것 등등 소식들이 많았고, 호평과 부푼 기대들이 퍼졌다.
오우삼 감독은 그 일본영화가 홍콩에서도 인기를 끌었다고 했는데, 그건 필자가 모르는 바이고 1978년에 중국대륙에서 《쭈이부(追捕, 추격체포)》라는 제목으로 인입한 다음 여러 면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음은 직접 겪었으므로 잘 안다. 당시 일본인들은 관객연인수 8억으로 추정했고 중국은 사실 관객수를 집계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자주 상영했으니 본 사람이 몇 억 명이 되리라는 건 분명하다. 지금 중국의 40대 중반 이상 가운데 그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이 드물 것이다. 중국어 더빙에 만족하지 않고 20세기 말에 일본어 원본 DVD를 얻어서 본 사람들도 꽤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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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누명을 쓰고 도망갈 수밖에 없는 현상, 주인공 모리오카가 필사적으로 탈출하려고 난생 처음 접한 비행기를 몰고 비행하는 장면, 도쿄 한 복판에서 모리오카가 경찰들에게 포위되었을 때 말무리가 나타나 구해주는 장면, 여주인공 마유미의 대담한 사랑고백과 남친 구출 등등 중국 관중들이 처음 접하는 내용들이 아주 많았고 현대화 대도시 도쿄의 모습들도 신기했다. 하다못해 모리오카를 추격하는 집념의 경찰-야무라 경장의 장발도 구경거리였으니 당시 중국신문에서는 일본의 이발비가 엄청 비싸기에 장발이 생겨났다는 해석까지 할 지경이었다.
남녀주인공을 열연한 다카구라 겐(高倉健)과 나카노 요시코(中野良子)는 그 영화 덕분에 중국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고 다른 작품들에도 인입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에는 어느 여자가 중국에 다카쿠라 겐 같은 사나대장부가 없다고 탄식하여, 신문과 잡지들에서 중국의 다카쿠라 겐을 찾아야 하느냐는 지상토론이 벌어졌고, 국산영화들에 다카쿠라 겐처럼 무뚝뚝한 남자주인공들이 늘어났으며 심지어 《쭈이부》에서의 다카쿠라를 그대로 모방하여 코트의 깃을 세운 배역들이 숱해 나왔다. 그리고 장이머우, 천카이거 등을 대표로 하는 이른바 제5대 감독들이 바로 1970년대 말에 영화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거개 다카쿠라를 숭배했고 장이머우 감독은 수십 년 뒤 다카쿠라를 특별초청하여 합작영화 《천리길을 홀로(千里走单骑)》를 찍었다.
그처럼 영향력이 굉장했으므로 오우삼 감독이 새로 찍겠다 나서고 투자자가 거액을 투자할 수 있었다. 중국시장만 보더라도 40대부터 80대 까지 넓은 지지층이 있다는 판단이 쉬이 나오고, 40대 이하는 오우삼의 느와르영화 팬들이 많을 테니까 얼마든지 영화관에 끌어들일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오우삼 감독이 할리우드를 떠나 아시아로 돌아온 뒤 야심작으로 내놓은 《타이핑룬(太平轮, 태평륜)》은 재난영화로서 “중국의 타이나닉호”라는 선전에도 불구하고 흥행참패했기에, 이번에는 익숙한 총격전으로 명예를 회복함과 함께 돈도 벌려고 노렸다. 게다가 일본과 한국 스타들도 청했으니 중국 시장은 물론 국제시장도 점유하겠다는 야심이 드러났다.
《맨헌트》는 개봉 직전까지만 해도 중국 사이트들에서는 부모님을 모시고 편히 볼 수 있는 영화라는 등 기대들이 많았고 첫날에는 당일 흥행 1위를 차지하였다. 허나 이튿날 금요일부터 부진을 보이더니 개봉작품들의 흥행을 결정하는 첫 주말이 다 지났으나 3일 동안 흥행성적이 인민폐로 7천 만 위안 정도에 그쳤고 아흐레만에야 간신히 1억 위안에 턱걸이했다. 참고로 금년에 최대 흥행작인 《전랑2》는 4시간 만에 1억 위안을 돌파했다.
《맨헌트》제작비 4천만 달러는 인민폐 2. 6억 위안에 상당하고 흥행성적이 제작비의 3배에 이르러야 수지를 맞춘다는 법칙에 비춰보면 7. 8억 위안을 확보해야 밑지지 않는 《맨헌트》의 참패는 불보듯 뻔하다. 한국, 일본과 다른 나라들에서 얼마나 벌지 모르겠다만 구멍을 메우기는 역부족일 것 같다.
오우삼 감독은 흥행여부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제일 큰 기대를 건 중국시장에서 이 정도로 실패하면 다시 투자를 얻어내기 어렵겠다.
《맨헌트》가 현시대를 배경으로 설정해서 새로운 장면들을 만들어내기는 했다만, 지금 중국 관중들은 거대한 장면들을 이미 많이 접촉했고 출국경험이 많으므로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들의 실상도 잘 알며 특히 도시관중들은 거주환경이 상당수 국제화대도시들에 못지않거나 지어 더 화려하고 더 볼만하다. 때문에 오우삼 감독이 아무리 애써도 장면으로 관중을 영화관에 끌어들이기는 힘들다. 뭐나 다 먹으려다가 하나도 먹지 못한 셈이다.
중국관중들의 불만 이유는 다양하다. 특히 전작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전작과 대비하면서 이러저런 불평을 터쳤다. 남자주인공이 일본인으로부터 일본에서 활동하는 중국변호사인데 일본어가 엉망이니 말이 되는가, 변호사라는데 머리를 쓰기는커녕 무모한 짓들이나 하더라, 여자주인공이 중일혼혈아로 설정되었고 나카노에 비해 여자답지 못하다, 전작의 지혜와 끈기가 사라지고 치열한 총격전이나 두드러지더라, 오우삼이 권총과 비둘기로 자기의 옛 작품들에 경의를 표했더라(오마주), 오우삼 감독의 딸이 킬러의 하나로 나오던데 너무 뚱뚱하고 볼 품 없어 킬러같지 않더라, 오우삼이 제 딸을 너무 티나게 밀어줬다... 입소문이 이렇게 퍼지면 전작 팬들이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200자루 총과 6천 발 탄알이 볼거리는 있더라는 평도 나왔으나, 열세를 되돌리자면 어림도 없다.
중국영화가 산업화를 실시하던 2003년에 연도흥행총액이 10억 위안에 불과했으나, 2017년에는 11월 20일까지 500위안을 돌파하여 14년 동안에 시장이 50배 이상으로 늘어났고 이후에도 더 커질 추세이다. 하기에 억대 투자 영화들도 많아지는데, 그와 반대로 일본에서는 거액투자영화들이 오랫동안 만들어지지 않아, 오우삼 감독은 《맨헌트》에서 드라마관련자들을 기용했다 한다. 3~ 40년 전 일본영화의 호화로움에 감탄만 하던 중국을 돌이켜보면 세상은 돌고 돈다는 말이 실감난다.
중국시장의 변화는 관중들의 구미와 안목의 변화도 말해준다. 명감독이나 명배우, 명작 리메이크로 얼렁뚱땅 속여넘길 수 없는 게 중국영화시장이다.
필자가 볼 때 《맨헌트》의 주요한 문제점은 일본맛이 사라지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작품이 되고 만 것이다. 40여년 전의 일본 소설 및 영화와 30여 년 전의 홍콩 느와르 영화를 짜깁기했으니 말이다. 오우삼 감독이 일본소설의 판권을 사지 않고 아예 새로 영화를 만들어 일본에서 모함당한 중국 변호사와 중일 혼혈아가 일본, 한국 등을 돌면서 벌이는 이야기를 엮었더라면 오히려 모종 신선감을 자아내면서 지금보다는 훨씬 흥행했을지도 모른다.
남의 작품을 모방하든 자기 작품을 우려먹던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1980년대에는 뒷날 리메이크할 영화들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지난 달 25일 제38회 청룡상수상대회에서 《택시운전사》와 《아이 캔 스피크》가 상들을 받았다. 물론 좋은 영화들이지만 필자가 전에 거듭 강조했다시피 자꾸만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을 내다보면서 미래지향적인 영화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우선 한국맛이 물씬물씬 난다는 걸 전제로 하면서... 하나라도 확실히 먹는 게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