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의술]
6·25전쟁과 혈액 투석기
 
정수기 원리와 비슷…
전상자들 콩팥 치료에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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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는 빗물도 그냥 마셨으나, 지금은 집집마다 회사마다 정수기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없다. 군대에서도 정수기를 사용하는 곳이 많다. 정수기는 삼투압을 이용해 물을 거른다. 삼투압은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용매가 반투막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압력이다. 바닷물로 민물을 만들거나, 배추를 소금에 절여 김치를 만드는 것도 삼투압을 이용하는 것이다.
정수기는 필터에 따라 ‘역삼투압 방식’과 ‘한외여과 방식’으로 구분된다. 역삼투압 방식은 인위적으로 압력을 가해 용매를 농도가 낮은 쪽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 해군은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해 담수로 바꾸는 역삼투압 정수기를 개발했다.
한외여과 방식은 고분자 플라스틱 원료로 비대칭 구조의 막을 모듈화하면서 실용화됐는데, 이 막은 0.001∼0.01미크론(μ)의 구멍을 가지고 있다. 정수기와 혈액 투석기는 원리가 비슷하며 6·25전쟁에서 사용됐다.
6·25전쟁에 도입된 콜프-브리검 투석기
제2차 세계대전 말인 1943년에 네덜란드의 콜프(Willem Kolff, 1911∼2009)는 셀로판 막을 사용한 회전 드럼 투석기(rotating drum dialyser)를 개발했다.
이후 스웨덴의 앨월(Nils Alwall)에 의해 최초의 초여과 조절 투석기(ultrafiltration-controlled dialyser)가 소개됐다. 그는 콜프의 드럼을 바로 세운 수직 드럼 투석기(Vertical drum dialyser)를 고안했는데, 이 투석기는 드럼은 고정돼 있고 투석액이 드럼 주위로 흐르도록 만들었다.
1948년 피셔만(Fishman)과 크룹( Kroop)이 콜프의 회전 드럼 투석기를 이용해 수은 중독으로 인한 급성 신부전 환자에게 6시간 동안 투석을 시행한 결과 8시간 후에 소변이 나오기 시작됐다.
1948년 콜프의 회전 드럼 투석기를 사용하기 편리하게 개조한 콜프-브리검 투석기(Kolff-Brigham dialyser)가 임상에서 사용됐는데, 이 콜프-브리검 투석기는 6·25전쟁 시기에 도입돼 미군에게 쓰였다.
콜프-브리검 투석기(Kolff-Brigham dialy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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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8군 11후송병원에 콩팥센터 생겨
전상자들에게 급성콩팥손상이 발생했을 때 사망률이 높다는 것은 2차 대전 때부터 알려졌다. 6·25전쟁 때는 부상으로 인한 실혈과 순환 혈액량의 감소뿐만 아니라 등줄쥐가 옮기는 한탄 바이러스에 의한 유행성출혈열로 급성콩팥손상이 빈번했다.
이 급성콩팥손상의 사망률은 80∼90%에 달했다. 이 높은 사망률 때문에 미8군의 11후송병원에 콩팥센터(Renal Center)가 생겼다.
월터리드 육군병원의 테스칸(Paul Teschan) 박사가 한국에 오고 곧이어 워싱턴으로부터 콜프-브리검 투석기가 도착했다. 혈압은 유지되지만, 소변량이 적은 환자는 이동외과병원(MASH)으로부터 콩팥센터로 후송됐다.
이 투석기를 사용한 사례가 처음 출간된 것이 1952년이었으니, 콩팥센터의 팀원들이 이 기계의 사용법을 배워 환자에게 적용한 것은 놀랄 만한 일이었다.
각 환자에게 투석기를 사용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의료기사, 의사, 간호사가 곁에서 지켜보았으며, 31명의 환자에게 72회 사용했다.
사망률 87%에서 53%로 낮춰
당시 급성콩팥손상 환자에게 사용하던 보존적 치료는 수액 균형을 감시하고, 나트륨의 섭취를 제한하며, 칼륨의 섭취는 최소한으로 하고, 근육 손상으로 인한 요소 생성을 줄이기 위해 단백질 없는 고열량식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혈액 투석을 포함한 이 같은 치료는 사망률을 87%에서 53%로 낮췄으며, 투석이 필요했던 중환자들은 약 70%의 사망률을 보였다. 당시 투석의 적응증은 생존을 위협하는 고칼륨혈증이나 고요소혈증이었다.
지금도 보존적 요법에 부가적으로 사용
테스칸 박사는 그의 보고서에서 혈중 요소치가 200mg/dL가 넘으면 ‘예방적 투석’을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메릴(Merril, 1955)이 이를 받아들여 지금까지도 보존적 요법에 부가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6·25전쟁에서 투석을 경험한 뒤 1950년대 말에 의사들은 급성콩팥손상뿐만 아니라 초보적인 콩팥이식 프로그램에서도 이를 시도하게 됐다. 전쟁이 의술의 발전을 가져온 사례다.
<황건 인하대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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