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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5월 1일 금요일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회당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고, 사도들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약속을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28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29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32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33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이며 노동절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노동자’라는 낱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노동 센터에서 학생들에게 노동자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거지”, “외국인”, “장애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또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말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고향 회당에서 가르치시자 사람들은 그분의 지혜에 탄복하지만 이내 무시합니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마태 13,55) 아마도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나 대사제의 아들이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하필 목수라는 직업을 가진 노동자를 예수님의 아버지로 선택하셨을까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회칙 「노동하는 인간」에서 하느님의 창조 행위를 노동으로 설명하십니다(25항 참조).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노동자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교황께서는 현대 물질문명의 발전에 따라 노동의 참된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고 인간의 노동이 상품이나 도구로 취급된다는 점을 지적하십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노동의 가치를 오직 돈벌이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노동은 거룩한 것이며, 하느님의 창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노동은 해치워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아름다운 예술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의 많은 부분도 농부와 목수와 어부 등 노동자에 관한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신 아름다운 노동에서 배웁시다. 우리는 모두 창조주 하느님을 닮아 자신이 맡은 일에서 예술가가 되어야 함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충실히 살아온 삶의 흔적!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거룩한 수녀님들 연피정을 동반해드리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마침까지 대침묵 속에 피정이 진행되니, 시간이 정말 느리게 가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선물처럼 주어진 여유로움에 감사하며, 정말 오랜만에 제 발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얼굴을 비롯해서 몸 전체는 매일 뽀득뽀득 씻고 관리를 하는 편이지만, 잘 보이지도 않고, 늘 가려져 있는 발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오늘 자세히 보니, 정말이지 발에게 미안했습니다. 보기가 흉할 정도였습니다.
매일 바쁘게 오르락내리락, 달리다시피 살아오다 보니 발바닥은 굳은살이 깊이 박히고, 뭐 한번 제대로 발라준 적이 없다 보니 부르트고 갈라져서 참 보기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결코 부끄럽지는 않았습니다. 나름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로구나. 백방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닌 흔적이로구나, 하는 마음에 기뻤습니다.
한 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였습니다. 신자들 대부분이 공단에서 일하는 근로자들과 농사짓는 농부들이셨는데, 영성체 때 펼친 손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고된 일에 손이 너무나 거칠고 투박했습니다.
사고를 당했던지 손가락 한두 개가 없는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끄러워하실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살아오신 흔적이요, 박수받으셔야 마땅한 훈장이라고 확신합니다.
오늘 노동절인 동시에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입니다. 의아해 하실지 모르겠지만 노동에도 영성이 있습니다. ‘노동의 영성’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사용하신 용어입니다.
‘노동의 영성’, 그 핵심은 아주 쉽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창조주시며 구세주이신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일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열심히 노동하셨던 한 인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출가하시기 전까지 양부 요셉을 따라 장인(匠人)으로서 매일 이마에 비지땀을 흘리며 사셨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일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켜나갈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완성시켜나갑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 창조사업을 계승합니다. 따라서 오늘 노동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 하나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가치 부여입니다. 그 어떤 일에 종사하든 자신의 일에 중요성을 부여해야 합니다. 자긍심을 지녀야 합니다.
오늘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을 맞아 세상의 모든 노동자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하루 노동자 성 요셉의 전구에 힘입어 은총 충만한 하루, 새로운 에너지를 충만히 부여받는 행복한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하시는 모든 일들, 세상을 위해, 언젠가 도래할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임을 확신하십시오. 어려운 일이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매일 되풀이하는 이 일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내가 성화되며, 내가 하느님 창조사업에 참여한다는 의식을 지니시면 좋겠습니다.
일과 싸우지 않으면 죄와 싸워야 한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5월 1일, 교회는 노동자 성요셉을 기념합니다. 세상도 오늘을 노동절로 지냅니다. 그런데 세상이 노동을 바라보는 방식과 교회가 노동을 바라보는 방식은 많이 다릅니다. 세상은 노동을 자주 짐으로 봅니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 가능하면 적게 하고 많이 받아야 하는 것, 돈만 충분하면 벗어나고 싶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노동이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부당한 임금, 과로, 착취, 경쟁, 인간을 부품처럼 대하는 구조가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죄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한 가지 결론을 너무 쉽게 내려 버렸습니다. ‘일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필요악이다. 일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그러니 행복은 일하지 않는 데 있다.’ 정말 그럴까요?
오늘 강론의 제목은 이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일과 싸우지 않으면 죄와 싸워야 한다. 이 말은 쉬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가만히 있으면 중립이 되지 않습니다. 밭을 가꾸지 않으면 그냥 빈 땅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잡초가 자랍니다. 방을 치우지 않으면 그냥 방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먼지가 쌓입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손이 선을 만들지 않으면 상상력이 악을 만듭니다. 시간이 하느님께 봉헌되지 않으면 시간이 나를 잡아먹습니다.
일은 저주가 아니라 창조 때부터 주어진 소명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도 일하시니 당신도 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이것을 가르칩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죄 이후의 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땀 흘림의 고통은 죄 이후에 심해졌지만, 일 자체는 타락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노동은 저주가 아니라 하느님을 닮기 위한 소명입니다. 다만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한 일은 타락의 길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는 일부터 말입니다.
왜 일을 하면 하느님을 닮을까요? 행복은 자존감입니다. 그런데 자존감은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라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참된 자존감은 ‘나는 하느님과 닮았어.’에서 옵니다. 하느님은 영원히 창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있는 부모는 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요셉은 일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가장 닮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순명은 감상적인 순명이 아니었습니다. 책임지는 순명이었습니다. 먹이고, 보호하고, 데리고 피신하고, 다시 돌아오고, 집을 세우고, 일해서 가족을 살리는 순명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만일 요셉이 일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하느님께서 성모님과 예수님을 그에게 맡기셨을까요? 물론 하느님께서 사람을 선택하시는 기준은 세상의 능력주의와 다릅니다. 하느님은 부자를 고르시는 것도 아니고,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고르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에게 책임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은총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지만, 인간의 책임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마술이 아닙니다. 은총은 게으름을 거룩함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먼저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용서받는 존재이기에 용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은 단지 마음씨가 좋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의로운 사람은 하느님의 뜻 앞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신비 앞에서 도망칠 수도 있었습니다. 헤로데의 위협 앞에서 주저앉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집트 망명 생활의 고단함 속에서 원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움직였습니다. 천사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하자 그는 일어났습니다. “아기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하자 그는 밤에 일어나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 하자 다시 움직였습니다. 요셉의 순명은 늘 발과 손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출처: 마태 1,20-24; 마태 2,13-23)
사랑은 감정만으로 사람을 지키지 못합니다. 사랑은 일해야 합니다. 아기를 사랑한다면 밤에 일어나야 합니다. 부모를 사랑한다면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합니다. 공동체를 사랑한다면 청소도 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맡겨진 일을 해야 합니다. 일하지 않는 사랑은 결국 말뿐인 사랑이 됩니다.
다윗의 이야기가 이것을 무섭게 보여 줍니다. 성경은 다윗의 죄를 소개할 때 이상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해가 바뀌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었다.” 그런데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뭅니다. 그는 저녁때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밧 세바를 봅니다. 그리고 죄가 시작됩니다. 간음, 거짓말, 살인, 은폐. 한순간에 무너진 것 같지만 사실 그 시작은 눈이 아니었습니다. 시작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싸워야 할 전쟁터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싸우지 말아야 할 욕망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졌습니다. (출처: 2사무 11장)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누워 있을 때 마음은 맑아집니까? 아니면 휴대폰을 만지며 비교하고, 불평하고, 음란한 상상에 빠지고, 남을 판단하고, 자기연민에 젖습니까? 몸은 쉬는데 영혼은 더 피곤해지는 경험을 우리는 압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은 창조하고, 돌보고, 사랑하고, 내어줍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그는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본성에서 멀어집니다. 저도 사실 쉬는 날도 무엇을 해야 할 지 하루 일과를 짜 놓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선택에 먹힙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그의 단편 「악마와 빵 조각」(1886)에서 노동과 죄의 상관관계를 기막히게 묘사했습니다.
한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가진 것도 많지 않았고, 먹을 것도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자기 밭을 갈았습니다. 자기 손으로 땅을 일구고, 자기 땀으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이었습니다. 잠시 쉬려고 밭둑에 앉아 빵 조각을 먹으려 했는데, 그 사이에 작은 악마가 몰래 다가와 그 빵 조각을 훔쳐 갑니다. 작은 악마는 기대했습니다.
‘이제 저 인간이 화를 내겠지. 욕을 하겠지. 하느님을 원망하겠지. 그러면 내가 이긴 것이다.’ 그런데 농부는 빵이 사라진 것을 보고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져간 자가 배가 고팠나 보지.” 그리고 허허 웃고는 다시 밭으로 돌아가 일을 시작합니다.
이 장면이 중요합니다. 왜 농부는 악마에게 지지 않았습니까? 빵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마음이 한가해서도 아닙니다. 그는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손으로 오늘을 감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빵 조각 하나를 잃어도 자기 존엄을 잃지 않았습니다. 일과 싸우는 농부의 자존감은 악마가 건드릴 수 없을 만큼 단단했습니다. 실패한 작은 악마가 대장 악마에게 혼이 납니다. 그러자 대장 악마가 비법을 알려 줍니다. “그에게 넘치는 곡식을 주고 한가하게 만들어라.”
무서운 말입니다. 악마는 농부를 망하게 하려고 가난을 준 것이 아니라 풍요를 줍니다. 굶겨서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넘치게 해서 무너뜨립니다. 농부는 풍년이 들어 곡식이 남아돌자, 그것으로 술을 빚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더 이상 밭에서 땀 흘리는 시간이 아니라, 술에 취해 떠들고 빈둥거리는 시간이 시작됩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짐승처럼 변합니다. 처음에는 여우처럼 교활하게 서로 속이고, 다음에는 늑대처럼 서로를 물어뜯고, 마지막에는 돼지처럼 추하게 굴러다닙니다. 그들이 가난할 때는 빵 조각을 잃고도 사람다웠습니다. 그런데 풍요로워져 일의 질서를 잃자, 인간 안의 짐승이 깨어났습니다.(출처: 레프 톨스토이, 「악마와 빵 조각」, 1886)
그러니 그리스도인은 풍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풍요 속에서 노동의 질서를 잃는 것은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와 싸워 지치고 싶지 않다면 먼저 오늘 해야 할 일과 싸우십시오. 사막 교부들의 아버지인 성 안토니오는 사막에서 홀로 기도하던 중 지독한 아케디아, 곧 영적 권태와 나태에 빠졌습니다. 기도를 해도 기쁨이 없었습니다. 혼자 있으면 거룩해질 것 같았는데, 오히려 잡념이 더 크게 들렸습니다. 세상의 욕망이 떠오르고, 지난 기억이 괴롭히고, 미래의 불안이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절규합니다. “주님, 제가 구원받고 싶은데 이 잡념들이 저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그때 안토니오는 환시를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앉아서 밧줄을 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기도했습니다. 다시 앉아서 밧줄을 꼬았습니다. 또다시 일어나서 기도했습니다. 기도와 노동, 노동과 기도가 리듬처럼 이어졌습니다. 그 사람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였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안토니오야, 이렇게 하여라. 그러면 너는 구원받을 것이다.”
안토니오는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기도만으로 자기 비대한 자아를 다스린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기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몸을 통과하지 않으면, 기도는 때로 생각 속에서만 맴돕니다. 손을 움직이는 노동이 함께할 때, 인간의 몸도 영혼의 편이 됩니다. 안토니오는 이후 기도와 손노동을 함께했습니다. 그는 밧줄을 꼬며 자기 정욕과 교만도 함께 묶었습니다. 성 요셉이 목수 일을 통해 성가정을 지켰듯, 안토니오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지켰습니다. (출처: 성 아타나시오, 『안토니오의 생애』)
성 요셉의 두 가지 특징은, 의로움과 일을 사랑함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가르침을 오늘의 말로 풀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노동은 죄를 씻는 세례수와 같고, 게으름은 죄를 낳는 자궁과 같다. 일하는 손은 천사의 손이 되고, 노는 손은 악마의 놀이터가 된다. 그대가 땀 흘릴 때, 하느님께서는 그대의 땀방울 속에 당신의 은총을 섞어 주신다.” (출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창세기 강론』의 노동과 나태에 관한 교부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의역)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5월의 첫날입니다.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렀습니다. 교회 전례력으로 5월은 ‘성모 성월’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5월에 성모님께 사랑과 공경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본당에도 5월에는 행사가 많습니다. 5월 2일은 성모의 밤, 5월 3일은 생활 성가 대회, 5월 10일은 Mather’s day, 5월 16일은 다문화 미사, 5월 17일은 청소년 음악회, 5월 23일은 꾸르실료 재교육, 5월 24일은 견진성사가 있습니다. 시편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한지고, 형제들이 오순도순 한데 모여 사는 것, 오직 하나 하느님께 바라 얻고자 하는 것 한평생 주님의 집에 모여 사는 것” 이런 말도 있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농부가 여름에 땀을 흘리는 것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기 위해서입니다. 어부가 그물을 던지는 것도 물 때가 맞아야 합니다. 물 때가 맞지 않으면 그물을 던져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물 때가 맞으면 힘이 들어도 힘차게 그물을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읽었던 멋진 글이 있습니다. 제목은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입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대답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요즘 우리는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사도들은 예수님께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희는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여라. 병자들을 고쳐 주고,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어라.”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이야기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죽음도, 권세도, 칼도, 박해도, 굶주림도, 천신도, 악신도’ 사도들의 앞을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길, 진리, 생명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산에 오를 때 먼저 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작은 표시는 큰 힘이 됩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은 먼저 간 사람들의 땀과 노력입니다. 역사는 혼자 달리는 마라톤이 아닙니다. 역사는 함께 달리는 이어달리기입니다. 앞선 사람들의 지혜를 배우고, 후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남겨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류가 만들어 온 문명이며 문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 희생의 길, 사랑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군중들의 모욕이 있었고, 제자들의 배신이 있었고, 뼈를 깎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부활의 길이었고, 희망의 길이었고, 영원한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 공식을 알면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 수 있었습니다. 원리와 이치를 아는 사람은 지도와 나침판을 가지고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유교에서는 삼강오륜을 이야기합니다. 불교에서는 팔정도를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삶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이런 가치와 척도로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유가 없는 진리는 때로 독선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광신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참된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독점하고 억압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진리는 우리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죽음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작됩니다. 알은 깨어지는 아픔을 거쳐야만 비로소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아기는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끊어야만 비로소 스스로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고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순교하였지만, 교회는 온 세상으로 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위, 명예, 성공을 추구하는 생명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생명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생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어주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주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내어주는 생명을 말씀하셨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 참된 생명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희생과 끝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신앙으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함께 가는 것입니다. 말로는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고백하면서 행동은 다른 길을 찾고, 다른 진리를 찾아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밤 항해하는 배를 안내하는 북극성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만 밝은 빛으로 안내할 뿐입니다. 밤길을 안내하는 등대도 배가 가까이 오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등대는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등대가 밝히는 빛을 따라서 암초를 피하고,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평생 3가지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대에게 가장 값진 시간은 언제인가?" "그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톨스토이'는 정답까지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사람은 지금 마주한 사람입니다. 지금 내가 마주한 사람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누구도 앞으로 어떤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세상에 온 유일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그때그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선행을 다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그런 삶이 모여서 영원한 생명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오늘의 성인
성 예레미야 (Jeremiah)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 650-588년경BC
성 예레미야(Jeremias)는 구약성서 예언서 중 하나인 예레미야서의 저자이다.
만일 성서에 이 예언자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유다이즘과 그리스도교는 그 종교적 본질을 아주 달리 했을 것이다. 예레미야가 마음과 인격의 종교를 주창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언자 이사야보다 1세기 뒤에, 그러니까 기원전 650년경 예루살렘 근교의 어느 사제 가문에서 출생하였다. 성서는 예레미야의 생애와 성격을 그 어느 예언자들 보다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예레미야를 3인칭으로 묘사하는 이야기들이 성서에 다수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기원전 626년 그러니까 요시야 왕 치세 제13년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젊은 예언자로 나섰다(예레 1,2). 그는 유대왕국의 멸망이 예견되었고 드디어는 예루살렘의 몰락을 초래한 비극적 시대를 살고 있었다. 요시야왕의 종교개혁과 주권회복은 유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었지만, 불행하게도 609년에 그 왕이 므기토에서 전사하게 됨으로써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고대 중동의 세계는 또다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으니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가 612년에 함락됨으로써 바빌론제국이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바빌론 왕 느브갓네살은 팔레스티나를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집트는 유대왕국을 사주하여 바빌론의 지배에 항거하도록 하였으니, 느브갓네살은 597년에 예루살렘을 함락하였고 주민의 일부를 유배지로 끌고 갔다. 이집트의 조종에 끝내 놀아난 유대는 또다시 바빌론 세력에 항거하였다. 587년에 바빌론 군대는 한 번 더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성전을 깡그리 파괴하였고 저항세력의 지도자들을 또다시 유형지로 끌고 갔다.
예레미야는 이 어두운 시대의 역사적 비극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가 이 비극을 좌시한 것은 아니었다. 예언자는 지도자와 민중에게 하느님 말씀의 대변자로 나서서 맹렬히 설교했고 위협했으며 왕국의 몰락을 예고했던 것이다. 다윗의 왕좌를 차지했던 유대의 왕들은 예언자의 이 불칼 같은 경고를 아예 무시했으며 또 군인들은 예레미야가 패배주의를 선동한다고 비난하며 그를 박해하고 고문하며 투옥시키기까지 하였다. 드디어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예레미야는 바빌론 강기슭에 유배가 있던 사람들(시편 137)에게서 희망을 보았지만 망명하는 것을 끝내 거부하고 고국 땅 팔레스티나에 머무르기로 하였다. 그의 보호자는 바빌론인들이 임명한 총독 게달리야였다. 하지만 유태인의 한 무리가 총독을 암살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들은 바빌론인들의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예레미야를 인질로 삼아 이집트로 망명하였다. 아마도 예레미야는 이집트에서 소리 없이 죽어간 것 같다.
이 험난한 운명의 사나이의 드라마는 단순히 사건들만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전 생애가 일종의 비극이다.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끝까지 그 말씀에 충실하다 보니, 예레미야는 그야말로 ‘말씀의 고독한 예언자’가 되고만 것이다. 그는 성품이 온순했고 사랑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야훼는 그에게 ‘무너뜨리고 파괴하며 전복하고 없애버리는’ 사명(1,10)을 주셨다. 그의 예언은 끝없는 불행만을 예고하였다(20,8). 예레미야는 평화를 원했건만 자기 가족과 왕들과 사제들, 그리고 거짓 예언자들과 모든 민중을 반대하여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예레미야는 “온 나라 안에서 싸움과 불화의 사나이로 통한 것”이다(15,10). 그가 이 같은 사명을 수행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예레미야는 말씀에 의해 완전히 가루가 될 뻔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20,9). 하느님과의 내적인 대화는 온통 고통의 외침이었다. “무엇 때문에 나의 고통은 끝이 없나이까?”(15,18) 욥의 저주를 예고한 예레미야의 그 외침은 고백론의 절정이다. “내가 태어난 그날은 저주받을지어다!”(20,14 이하).
하지만 이 고통은 예레미야의 영혼을 정화시켰으니 하느님과의 내밀한 친교를 가능케 하였다. 우리에게 이 예언자가 그토록 귀중하고 가까운 인물로 나타나는 것은 새로운 계약을 성문화시켜 예고하기에 앞서(31,31-34) 자신이 먼저 마음의 종교와 내적인 종교를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인격적 종교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종교의 가르침을 심화시켰다. 하느님은 마음과 콩팥을 꿰뚫어 보시는 분(11,20)이요, 각자의 행실대로 갚아주시는 분이다(31,29-30). 하느님과의 우정은 인간의 거짓스러운 마음의 소산인 죄에 의해 끊어진다. 거짓말이 모든 죄의 뿌리란 것을 예레미야만큼이나 강조한 사람은 없다(4,4; 17,9; 18,12). 이 점에 관한 한 예레미야는 호세아 예언자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 같다. 율법은 그에 의해 내면화되었으며 또 하느님과의 모든 관계는 마음의 소산임을 그가 밝혔기 때문이다. 예레미야가 인간의 개인적 인격에 큰 관심을 둔 것으로 보아 신명기(申命記)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물론 그가 신명기에 바탕을 둔 요시야왕의 개혁을 처음에는 환영하였으나 마음의 회개가 없는 제도적 개혁이 무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민중의 윤리적 종교적 삶을 변혁시키기 위하여 내적 인간의 개조 없이는 불가능함을 예레미야가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사명은 살아생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으나 죽은 뒤의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만 갔다. 마음의 종교에 기초를 둔 ‘새로운 계약의 사상’은 예레미야로 하여금 유다이즘의 아버지가 되게 하였다. 우리는 에제키엘서와 제2 이사야서(40-55)와 시편들에서도 그의 영향을 찾아 볼 수가 있다. 마카베오 시대의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민족의 수호자들 중의 한사람으로 꼽았다(2마카 2,1-8; 15,12-16). 예레미야는 힘과 물질보다는 영성적 가치를 더 중대시하였고 또한 영혼이 하느님과 맺은 내밀한 관계를 밝혔다 하여 이 예언자는 그리스도교의 새 계약을 준비한 인물로 통한다. 말씀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과 말씀 때문에 당한 그의 고통은 이사야서 53장의 야훼의 종의 모습을 예고하였으니, 예레미야는 그리스도의 형상(形象)을 앞질러 보여 준 것이다.
성 페레그리노 라치오시 (Peregrine Laziosi)
활동년도 : 1260-1345년
신분 : 신부
지역
같은 이름 : 라찌오시, 뻬레그리노, 뻬레그리누스, 페레그리누스, 페레그린
이탈리아 포를리(Forli)의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성 페레그리누스 라치오시(Peregrinus Laziosi, 또는 페레그리노 라치오시)는 젊어서 한때는 로마냐(Romagna)의 반 교황당에서 적극 활동하다가 성 필리푸스 베니티우스(Philippus Benitius, 8월 23일)를 만나면서부터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는 시에나(Siena)의 ‘마리아의 종 수도회’에 입회하여 고향으로 갔으며 그곳에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설교, 고행, 성덕 그리고 고해신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의 발에 있던 암이 기적적으로 치유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암환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 그는 1702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726년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파나세아 (Panacea)
활동년도 : 1378-1383년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과로나(Quarona)
같은 이름 : 파나시아, 파나씨아, 파나케아, 파넥시아
성녀 파나케아(또는 파나세아)는 이탈리아 노바라(Novara) 교구의 과로나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아기일 때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녀의 아버지는 재혼을 했는데, 새어머니로 들어온 이는 종교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성녀 파나케아는 신심이 깊었고, 이는 새어머니의 미움을 사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그녀는 기도하던 중에 새어머니에 의해 맞아 죽었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67년에 승인되었다. 성녀 파나케아는 파넥시아(Panexia) 또는 파나시아(Panassia)로도 불린다.
성 시지스문도 (Sigismund)
활동년도 : +523/558년?
신분 : 왕, 순교자
지역 : 부르고뉴(Bourgogne)
같은 이름 : 시지스문두스
프랑스 남동부와 스위스의 남서부는 부르고뉴 왕의 휘하에 있었고, 그 당시의 통치자는 아리우스파(Arianism)에 속한 군네발드(Gunebald)였다. 그가 죽기 전 왕위를 계승한 아들 성 시지스문두스(Sigismundus, 또는 시지스문도)는 그 후 정통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이것은 비엔(Vienne)의 주교 성 아비투스(Avitus, 2월 5일)의 노력 때문이었다. 한때 그는 전쟁에서 패한 뒤에 은수자 생활을 하며 생모리스(Saint-Maurice) 수도원을 세웠으나 결국은 체포되어 오를레앙(Orleans)으로 끌려갔다. 성 아비투스가 중재하였으나 프랑스 국왕은 그를 처형하고 우물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의 유해는 나중에 발굴되어 보헤미아(Bohemia)의 프라하(Prague) 주교좌 성당에 안장되었고,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게 되었다.
성 리카르도 팜푸리(Richard Pampuri)
활동년도 : 1897-1930년
신분 : 수사, 의사
지역
같은 이름 : 리까르도, 리까르두스, 리차드, 리처드, 리카르두스
성 리카르두스 팜푸리(Richardus Pampuri, 또는 리카르도)는 1897년 8월 12일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 근처 트리볼지오(Trivolzio)에서 태어났다. 안젤라 팜푸리(Angela Pampuri)와 인노첸테 필리포(Innocente Filippo)의 11남매 중 10번째 태어난 에르미니오(Erminio)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세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인근 마을에 사는 이모 집에 맡겨졌는데 7년 후인 1907년에 아버지 또한 밀라노(Milano)에서 돌아가셨다. 그는 인근에 있는 두 곳의 초등학교를 다녔고 밀라노로 가서 중학교를 마쳤다. 그리고 파비아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1915년 파비아 대학의 의대에 들어갔다. 그는 1915년과 1920년 사이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하사관과 의무병으로 근무했다. 1921년 7월 6일 파비아 대학의 약학과와 외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의사로 있던 삼촌 밑에서 3년간 의료 실습을 마친 후 밀라노의 한 병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들을 돌보던 그는 그리스도교 사도직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사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선교사제가 되고 싶었지만 건강 문제 때문에 단념했었다. 젊은 시절 어느 곳을 가던지 그리스도교적 덕행의 모범이었던 그는 세상 속에 살면서도 복음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고백하고 너그러움과 열정을 갖고 자선사업을 실천했었다. 바쁜 일정 중에도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다.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성모님께 대한 깊은 신심으로 하루에 한 번 이상 묵주기도를 바쳤고, 파비아 대학 가톨릭 액션 단체의 근면한 회원이었으며,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와 작은 형제회의 3회원으로도 활동했다.
소년 시절부터 가톨릭 액션 단체에 참여했던 그는 실습을 위해 모리몬도(Morimondo)에 갔을 때 본당 신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음악 밴드와 가톨릭 액션 젊은이 단체를 조직하여 그 첫 번째 대표로서 성 비오 10세(Pius X)의 전구 아래 두 단체를 두었다. 그는 또한 본당의 선교 후원회의 간사를 맡기도 했고 자비를 들여 청년 모임과 농민과 지역 노동자들을 위한 정기 피정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의사로서 유능하며 자비로운 그는 환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의술을 베푸는 데 있어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가난했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약과 돈 그리고 음식과 이불을 가져다주곤 하였다. 그의 자선사업은 모리몬도 근교의 도시 근로자들과 이웃의 손길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퍼져나갔고 다른 마을과 도시로도 확산되었다.
6년 동안 의사로 일한 그는 수도원에 입회하고자 했고, 이에 ‘거룩한 의사’를 잃을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슬픔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컸고 지역 신문에서까지 기사화하였다. 그는 결국 1927년 6월 22일 밀라노의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에 입회하여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자신의 의학기술을 지속하고 동시에 복음적 거룩함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을 택하였다. 그는 리카르두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브레시아(Brescia)에서 지원기를 마치고 1928년 10월 24일 서원을 하였다. 서원 후 그는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브레시아의 천주의 성 요한 병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곳에서 성 리카르두스 팜푸리 수사는 아름다운 자선을 실천하여 모든 이의 존경을 받았다. 수도자로서 그의 삶은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에도 그랬듯이 동료, 환자, 의사, 진료 보조원, 간호사, 그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덕과 자선의 탁월한 모범이었다.
성 리카르두스 팜푸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때 얻은 병으로 인해 일종의 폐병을 앓고 급속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밀라노로 치료를 받으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1030년 5월 1일 33살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그는 ‘자신의 전문지식을 자비의 사명으로 변형시키는 방법을 아는 의사로서, 자신 안에 천주의 성 요한의 진정한 아들로서의 카리스마를 살았던 수도자로서의 기억을 남기고’ 하느님께로 돌아간 것이다. 그의 시신은 고향에 돌아와 묻혔으며 그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졌다.
그는 1981년 10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는데 이날 강론에서 교황은 이렇게 말하였다. “짧지만 열정적인 삶을 산 리카르두스 팜푸리 수사는 모든 하느님 백성에게 자극이 되는데 특히 젊은이와 의사, 수도자들에게 큰 자극이 된다. 그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기쁘고 용기 있게 살도록 초대하며, 항상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가르침을 따라 다른 이들을 위한 봉사에 스스로를 헌신하도록 초대한다.” 그는 1989년 11월 1일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녀 그라타 (Grata)
활동년도 : +4/8세기
신분 : 과부
지역 : 베르가모(Bergamo)
같은 이름 : 그라따
성녀 그라타는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성 루포(Lupo) 대공과 그의 아내 성녀 아델라이드(Adelaide)의 딸로, 그녀의 남편과 사별할 때까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성녀 그라타는 그리스도인이 된 후 그녀의 부모를 개종시켰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에서 거룩한 부인으로 신망을 얻었고, 특별히 순교자들의 시신을 안전하게 그리스도교 전례에 따라 매장하는데 큰 열성을 지니고 있었다. 성녀 그라타는 테반 군단의 군인 순교자인 성 알렉산데르(Alexander)의 유해를 천으로 정성껏 감싸 영예롭게 매장했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성녀 그라타는 지혜와 자비심으로 베르가모를 다스렸다. 그녀의 생애에 관한 증거는 분명하나 활동 연대에 대해서는 일치하지 않고 있다. 그녀는 베르가모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