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
안소근 수녀
『호교론』들이 주로 이교인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는 최초로 유대교에 맞서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는 저서다. 작품은 이틀간 유스티누스와 유대인 트리폰이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실제 대화의 기록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인 표현 방식일 것이다. (21쪽)
☕ 실제로 유다인과 대화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대화록’이라는 형식으로 저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본문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제2차 반로마 항쟁 이후의 시기에 유스티누스가 에페소에서 트리폰을 만나 대화를 시작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만일 트리폰이 실존 인물이라면, 그는 반로마 항쟁 이후에 팔레스티나를 떠나 에페소로 피신한 유대인일 것이다. (21쪽)
유스티누스는 철학이 인간을 하느님께 이끌고 하느님과 결합시킨다고 믿었으나, 여러 철학 학파들은 그러한 철학 본연의 목적을 놓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유스티누스는, 인간 영혼이 자력으로 하느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던 예언자들을 통해서만 참된 진리를 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이르게 된다. 유대인인 트리폰이 그러한 유스티누스에게 인간(예수)에게 희망을 두는 것은 하느님을 버리는 일이라고 말하자, 유스티누스는 트리폰과 대화를 시작한다. (22쪽)
트리폰은 그리스도인들이 할례와 안식일 같은 모세 율법의 규정들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인간을 믿는다고 비판한다. 이에 유스티누스는 유대인들의 하느님과 그리스도인들의 하느님이 오직 한 분이신 같은 하느님이심을 인정하면서도, 구약의 율법은 일시적인 것이고 유대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율법의 규정들은 과거 유대인들의 죄 때문에, 또는 그들이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었다. 이제 새 계약이 맺어졌고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니, 구원은 오직 그분을 통하여 이루어질 뿐 구약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23쪽)
유스티누스는, 구약의 여러 본문들이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역사상의 인물들에 관한 예언이 아니라 사람이 되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임을 설명하고, 구약성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예표들을 지적한다. (23쪽)
트리폰은 구약의 여러 본문들이 장차 올 메시아에 관한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처럼 예수를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는 예수를 그저 한 인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에 유스티누스는 구약성경 안에 이미 그리스도가 두 번 오실 것이 예고되었음을 상기시키며, 그리스도가 첫 번째 오실 때에는 수난과 죽음을 당하실 것이고 두 번째 오실 때에는 영광스럽게 오시리라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에 앞서 오리라고 예언된 엘리야였으며, 이사야가 예언한 바와 같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그분이 바로 참된 메시아라고 역설한다, 특히 십자가에 처형된 이가 메시아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트리폰에게 유스티누스는, 구약성경에 십자가에 대한 예표들이 있음을 밝히고 시편 제22편을 예수 그리스도에 비추어 설명한다. (23쪽)
유스티누스는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 관하여 책 전체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다. 이는 여호수아, 예수아, 예수가 그리스어로는 모두 같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된 땅으로 이끌고 백성 이 그 땅을 상속 재산으로 차지하게 한 것은 모세가 아니라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였다. 이 여호수아는 예수라는 이름을 지닌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그분을 믿는 이들은 참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하느님의 약속을 상속받는다.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리라는 것 역시 구약에서 이미 예고된 바이다. (24쪽)
유스티누스가 철학을 거쳐 그리스도교에 입문하게 된 점 이나 그가 자신을 계속 철학자로 이해 했던 것은 유스티누스 시대와 그 이후의 이교인들과 대화하는 호교론을 위한 바탕이 된다. 그러나 그가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 게 되 었다는 점은 몹시 특이하다. 이는 유대교의 구약 해석과 구별되는 구약성경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25쪽)
다른 호교론들과 구별되는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의 특징은 바로 이러한 구약 해석에 있다. 트리폰은 유스티누스와 구약성경을 놓고 토론한다. 트리폰은 구약성경을 읽으면서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고, 유스티누스는 구약성경을 통하여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다. (25쪽)
☕ 같은 구약성경을 읽고도 트리폰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고, 유스티누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인다.
유스티누스와 트리폰의 대화는 2세기 그리스도교 교부와 유대인의 대화를 통해 유대인의 입장에서 특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소들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구약 해석을 어떻게 정당화했으며 유대인들이 하느님으로 인정할 수 없었던 나자렛 예수의 신성을 어떻게 구약에 근거해 설명했는지 보여 준다. (25쪽)
현대 그리스도교의 구약 해석은 유스티누스의 해석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근대 이후의 성서 해석에서는, 교부들과 달리 구약 본문들의 일차적 의미가 그리스도론적 해석에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본문이 작성된 시대에 저자가 표현하려 했던 것이 본문의 일차적 의미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교 스승들의 해석을 어리석다고 말하며 거부했던 유스티누스의 입장과는 달리, 현대의 가톨릭 성경 해석에서는 유대교 구약 해석이 나름대로 지니는 정당성을 인정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정경 범위가 다르므로 구약 성경이 서로 다른 맥락 안에서 이해된다는 데에 기인한다.
(25-6쪽)
이사야서 7장의 임마누엘 예언에 관하여, 현대의 일반적인 해석에서는 트리폰이 주장하듯이 이사야서의 본문이 ‘동정녀’가 아닌 ‘젊은 여인’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태어날 아기는 일차적으로 히즈키야를 가리킨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일관성이라는 원칙에 따라 구약과 신약 전체가 하나의 책으로서 그리스도교의 성경을 구성한다는 점을 근거로, 유스티누스가 주장하듯이 이 예언이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 잉태에서 더 충만하게 실현되었음을 알아본다. (26쪽)
☕ 이사야서의 예언은 구약적인 관점에서는 히즈키야를 가르키지만, 성경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그리스도를 가르킨다.
고전적 형태의 역사비평을 넘어서고자 하는 근래의 가톨릭 성경 해석에서는 이 두 가지 의미가 모두 성경 본문 안에 들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성서 해석에 있어 구약과 신약의 관계, 구약의 그리스도론적 해석 그리고 여기에 많은 빛을 비추어 주는 교부들의 성경 해석이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26쪽)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극복되어야 할 대립만을 보여 주는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구약 해석을 위한 근거를 보여 주는 책이며,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들에게는 어리석음”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1코린 1,23)에 대한 믿음의 근거를 바로 구약성경으로부터 제시해 주는 책이다. (27쪽)
☕ 구약에 숨어 있는 그리스로를 볼 수 있는 책이다.
첫댓글 같은 구약성경을 읽고도 트리폰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고, 유스티누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인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근거를 바로 구약성경으로부터 제시해 주는 책이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