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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6월 1일(월) 흐림-바람
<전황>
* 공산군, 서부전선 묘형고지의 유엔군 진지 야간 공격
* 국군, 중부전선 저격능선 공격한 공산군 격퇴
* 유엔군 탐색대, 서부전선 대노리고지 부근 중공군과 교전
<국내>
* 이승만 대통령, 대미타협안 수교
* 국제무역박람회(캐나다에서 개최)에 우리나라 산품 출품
* 공군, 시설하사관 교육대 개편하여 항공병학교에 이동
<해외>
* 필리핀 민주당 대통령 후보 로물로와 내셔날리스트당 후보 막사이사이, 퀴리노 현 대통령 지지자들의 책모 저지에
협력하기로 동의
<주> : 본 자료는 6.25전쟁 1,129일간 일지(1950.6.25.~1953.7.27) 내용이며,
- 저자는 부영그룹 창업자인 이중근회장 편저입니다.
감사합니다.
1953년 6월 2일(화) 흐림
<전황>
* 동부전선 류크카슬고지에서 치열한 전투 계속
* 중공군, 서부전선 T형 고지와 포크참고지 내습
* 유엔 공군, 동부전선 공산군 진지에 22만 6,800kg 고성능폭탄 투하
<국내>
* 이승만 대통령, 미 대통령에게 ‘한 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후 외국군 동시 철수 제안하는 내용 전달
* 스티븐슨 미 육군장관, 현재까지 한국전쟁에 쓴 비용이 150억 달러에 달했다고 상원 세출분과위원회에서 언명
1953년 6월 3일(수) 맑음-바람
<전황>
* 국군, 맹렬한 반격전 전개, 류크카슬고지 공산군 격퇴
<국내>
* 이승만 대통령, 휴전 전 한 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제의
* 변영태외무부장관, 미 대통령에게 한 미상호방위조약 등 휴전 4개 조건 전달
* 육 해 공군 합동위령제 거행
*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문화인 등록문제에 관하여 문교부와 합의
<해외>
* 미 상원, 중국의 유엔 가입 적극 반대를 만장일치로 가결
1953년 6월 4일(목) 흐림-비
<전황>
* 국군 보병부대, 중부 및 동부 전선에서 지난 27일 상실한 7개 전초진지 탈환전 전개
* 최덕신 대표, 회담에 계속 불참석, 연락장교 이수영 대령만 참석
<국내>
* 국회 본회의, 휴전대책특별위원회 구성 결의
* 공보처장, 중공군의 한국 철퇴 규정 않는 여하한 휴전 수락 없다고 비난
1953년 6월 5일(금) 비-흐림-바람
<전황>
* 동부전선 묘형고지에서 전투 계속
* 유엔군 포로수용소 당국 발표,
마산 포로수용소에서 북한 반공포로 2,000명, 유엔군 측 휴전회담 제안에 반대 데모 전개
<국내>
*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방한하여 이승만 대통령 회담
*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전라북도 남원에서 발족
1953년 6월 6일(토) 비
<전황>
* 공산군, 동부전선 류크카슬고지 동쪽에 침투
* 휴전회담 본회담, 공산군 측 요구로 개회 19분 만에 산회, 한국대표 불참
<국내>
* 이승만 대통령, 미국 원조 없어도 최후까지 싸우겠다는 정부 의견 발표
* 상공부, 수출 광석 검사규칙 제정
* 농림부, 유엔한국재건단과 농기구 원자재 등 원조에 관한 계획 협정
1953년 6월 7일(일) 비
<전황>
* 유엔군부대, 동부전선 류크카슬고지 탈환전 실패
* 휴전회담 본회담, 오전 11시 개회, 공산군 측 요청으로 2차에 걸쳐 휴회
<국내>
*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서울 도착, 이승만 대통령과 2차에 걸친 긴급 협의한 후 도쿄로 귀환
* 변영태 국무총리서리,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서한에 휴전 후 ‘한 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반대한다고 언명
* 전국에 준 비상계엄 선포
1953년 6월 8일(월) 비-맑음-흐림
<전황>
* 양군 참모총장회의, 2차에 걸쳐 비밀회의 개최, 포로교환문제에 관한 세목 토의
<국내>
* 이승만 대통령, 전투 계속 결의 재천명
* 국회 본회의, ‘휴전에 대한 대기태세와 의안심의보류에 관한 동의’ 가결
*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국가건설위원회 조직 도시건설성을 도시경영성으로 개칭
<해외>
* 한국 정전담판 쌍방 대표단, 판문점에서 ‘중립국송환위원회의 직권범위’ 협의 서명
* 양유찬 주미대사, 기자회견
- “만일 현 상태로 휴전이 성립되면 한국군은 한사코 전투를 계속할 것이다”
1953년 6월 9일(화) 흐림-맑음
<전황>
* 휴전회담 본회의, 개최 12분 만에 공산군 측 요구로 산회
<국내>
* 테일러 미 제8군사령관, 이승만 대통령 방문, 30분간 비밀회담
* 국회, 유엔총회. 미 대통령 및 상하원, 영국수상 등에게 휴전반대 메시지 발송 결정
* 서울특별시경찰국, 휴전반대 시위에 대비하여 비상경계발령
<해외>
* 베이징방송, 판문점 휴전협상 쌍방대표단 간에 포로교환문제에 관한 완전하고 최종적인 합의 성립 보도
* 윌슨 미 국방장관, 주한미군 철수 최소한 6개월 후에 개시될 것이라고 상원 세출분과위원회에서 증언
1953년 6월 10일(수) 흐림-맑음-흐림
<전황>
* 북한군, 동부전선 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한 압박 증가
* 중공군 약 7,000명, 중동부전선에서 야간에 공격 개시
* 중공군, 철원 북서쪽 해리고지도 공격
<국내>
* 국회 본회의, ‘군 환율 인상 반대에 관한 건의안’ 가결
* 백선엽 육군참모총장, 미국에서 서울로 귀환, 즉시 경무대로 이승만 대통령 방문
* 변영태 외무부 신태영 국방부장관, 국회에서 휴전협정 증언
* 서울에서 휴전반대 철시
<해외>
* 임병직 유엔 한국대표, 성명 발표
- “판문점 휴전회담 진전은 서방 제국에 의한 한국의 신뢰심을 파괴시켰다”
* 스위스 정부, 한국포로송환중립국위원회 참가를 미국 정부에 통고
1953년 6월 11일(목) 흐림-맑음
<전황>
* 유엔군, 크리스마스고지에서 공산군에게 상실했던 진지 재탈환
* 미 제3사단, 철원 북서쪽 해리고지에 대한 중공군 약 1,000명의 몇 차례에 걸친 공격 격퇴
* 유엔 공군, 지상군 엄호해 일선 공산군 진지 맹폭
<국내>
* 이승만 대통령, 현 조건에서 휴전은 우리이게 죽음을 의미한다고 성명
* 국회 본회의, ‘한미동맹체결에 관한 건의안’, ‘휴전반대국민운동전개에 관한 건의안’ 가결
* 부산에서 정부대안 절대지지 시민궐기대회 개최
1953년 6월 12일(금) 맑음-흐림-맑음
<전황>
* 중동부전선의 고지 공방전 더욱 격화
* 유엔군, 김화 북서쪽 저격능선에 대한 공산군 600명의 공격 격퇴
* 유엔군 세이버 제트기대, 사리원 북서쪽 비행장 및 진남포 북서쪽 강타
<국내>
* 국방부, 육 해 공 3군으로 구성된 휴전대책위원회 설치
* 서울과 부산에서 연일 휴전반대 시위
1953년 6월 13일(토) 흐림-맑음-흐림
<전황>
* 공산군, 맹렬한 포화 엄호 받으며 수도고지 포위 공격
* 유엔군 세이버 제트기대, 공산군 MIG 제트기 2대 격추, 1대 격파
* 양군 참모장교들, 군사분계선 및 휴전협정 세목 최종 검토
<국내>
* 국회 본회의, ‘전원위원회 개의에 관한 동의’ 가결
* 상공부, 1953년도 중소기업 부흥계획 책정(162만 3,000달러 계상)
* 공산공군기, 김포공항과 인천에 조명탄 투하해 서울시 공습경보 발령
1953년 6월 14일(일) 흐림
<전황>
* 공산군, 중동부 및 동부전선에서 대규모 야간공세 개시
* 미 전함 뉴저지 호, 동해안 묘형고지의 유엔 지상군 지원해 공산군 거점에 함포사격 집중
<국내>
* 국회, 휴전문제 대책수립 위한 비공개 전원위원회 개최
* 국무회의, 문교부 제출 ‘한국유네스코위원회 설치법안’ 통과
<해외>
* 캄보디아 국왕, 태국으로 망명하여 프랑스의 캄보디아 와전독립위약에 항의
1953년 6월 15일(월) 흐림-맑음
<전황>
* 공산군, 동부 및 중부 전선에서 약 3만 병력으로 유엔군 진지 맹공
* 유엔 해군, 지상군 엄호하여 공산군 해안 목표 강타
* 유엔 공군편대, 공산군 전초기지에 개전 이래 최고 기록인 2,115회 출격
<국내>
* 이승만 대통령, 한국에 불리한 기사를 보도하는 내외신문기자 활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
<해외>
* 미 국무부 발표, 스웨덴 스위스 인도 폴란드 체코 5개국이 한국포로송환중립국위원회 참가를 미국 정부에 정식 통고
* 스위스 국방부, 한국포로송환중립국위원회 스위스 대표 50명, 휴전조인 후 2개월 내 한국에 도착,
약 6개월간 체재할 것이라고 발표
1953년 6월 16일(화) 흐림-맑음-바람
<전황>
* 국군 제5사단 및 제8사단, 지형능선 동쪽 북한강 상류지역에 신방위선 전개
* 유엔 공군기대, 지상군에 대한 엄호 출격 계속
<국내>
* 한 미군수뇌회의, 이승만 대통령 참석하에 중부전선에서 개최
* 재무부, 정부 환도 대비 위해 15일부터 국고 세출자금 공급을 재무부 서울분실에서 취급한다고 언명
1953년 6월 17일(수) 비-바람
<전황>
*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휴전 후 설치될 합동군사휴전위원회 유엔군 대표에 브라이언 소장 임명
* 휴전회담 본회담 재개, 201ᅟᅮᆫ간 화합한 후 유엔군 측 요청으로 재차 휴회
- 한국 측 대표 최덕신 소장 의연히 회의 불참
<국내>
* 이승만 대통령, 6월 6일자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서한에 한국은 휴전협정 수락할 수 없다고 답서
* 진헌식 내무부장관, 방공비상태세 포고문 공포하여 서울특별시 및 경기 강원도 일대에 실시
1953년 6월 18일(목) 비-맑음-비-바람
<전황>
* 유엔군, 철원 북서쪽 해리고지에 대한 중공군의 공격을 격전 끝에 격퇴
* 휴전회담 참모장교회의, 오전 11시부터 1시간 30분에 걸쳐 회합 후 무기 휴회, 양측 번역관회의 개최
<국내>
* 이승만 대통령, 유엔군 포로수용소에 수용 중인 반공포로 2만 7,000명 석방 명령
* 금융통화위원회, 한화 대 미화 매입률 60 대 1, 매도율 61 대 1로 결정
* 원용덕 헌병사령관, 경고 발하여 전국에 수용 중인 애국포로 18일 오전 5시 기해 전원 석방했다고 발표
<해외>
* 피어슨 유엔총회 의장, 한 국 정부가 북한 출신 반공포로 석방한 것은 극히 중요한 사태라고 언명
1953년 6월 19일(금) 흐림-비-바람
<전황>
* 유엔 공군기대, 북한강 상류-금성 남방전선에서 야간에 개전 이래 최대 조명작전 전개
* 유엔군 포로수용소사령부 발표, 19일 새벽 부평 제10수용소에서 반공포로 494명 탈출하는 소요 발생,
30명 사망, 114명 부상
* 한국 출병 각국 대표, 반공포로 석방을 사전에 협의
<국내>
* 이승만 대통령,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의 서한에 휴전조건 수락할 수 없다는 회신내용 공개
* 김일성 펑더화이, 유엔군 측 포로석방과 관련해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에게 항의 서한 발송
1953년 6월 20일(토) 비
<전황>
* 미 제5공군, 유엔군은 이 주간에 중공군 대공포화 등으로 비행기 19대 상실했다고 발표
* 남일 공산군 측 수석대표, 포로석방사건에 관해 김일성 펑더화이가 클라크 유엔사령관에게 보낸 항의서한
유엔군 측 대표에게 수교, 석방포로 전원 재수용 요구
<국내>
* 보건부, 석방 반공포로에 대한 무료 치료를 각 도립병원에 지시
* 원용덕 헌병사령관, 한국헌병대는 여하한 대가 지불하고라도 모든 한국인 반공포로를 석방할 것이라고 성명
* 공산군, 휴전회의에서 석방포로 전원 재수용 요구
<해외>
*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반공포로 석방은 유엔군사령관에 대한 확약을 위반한 처사로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불허라는 항의 서한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달
1953년 6월 21일(일) 비-맑음-흐림
<전황>
* 국군, 동부전선 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한 중공군 공격 격퇴
<국내>
* 대구 포로수용소, 반공포로 대거 탈출
* 미 공정대, 포로수용소 감시
<해외>
* 클라크 유엔사령관, 반공포로 석방은 전적으로 한국에 책임이 있다고 성명
* 인도 스웨덴 스위스 3국, 한국포로송환중립국위원회 참가 계속 준비하고 있다고 미국에 통고
1953년 6월 22일(월) 비-바람
<전황>
* 유엔 해군구축함, 원산 해안포대 공격
<국내>
* 이승만 대통령, 클라크 유엔군사령관과 회담에서 휴전 대상 3개 조건 제시
* 유엔군 포로사령부 대변인, 21일 중공군 포로 107명 탈주하여 한국 경찰에 체포,
그 중 57명이 유엔군에 인도, 50명이 한국 경찰에 억류되어 있다고 언명
1953년 6월 23일(화) 비-맑음-바람
<전황>
* 중공군, 중부전선 김화 부근 유엔군 진지를 야간에 공격
* 유엔군 포로사령부, 22일 부산 근방 수용소에서 반공포로 교살시체 발견했다고 발표
* 휴전성립 후 최고기관이 되는 군사휴전위원회의 유엔군 대표단, 문산에 본부 설치
<국내>
* 이승만 대통령 휴전에 찬성할 3개 조건 제시
- ⓵ 중공군의 철수 또는 중공군 및 유엔군의 한국 동시 철수
⓶ 철수에 앞서 한 미방위조약 체결
⓷ 휴전 후 정치회담을 3개월 기한부로 하고, 회의에서 평화달성에 실패할 경우 전투 계속
<해외>
* 피어슨 유엔총회 의장, 이승만 대통령에게 반공포로석방 항의하는 서한 전달
1953년 6월 24일(수) 맑음-흐림-바람
<전황>
* 남부지구 경비사령관 이용문 준장, 비행기 사고로 전사
<국내>
* 이승만 대통령, 현 상태로 휴전협정 성립하면 국군은 유엔군사령관 휘하에서 이탈하겟다고 통고
* 평양방송, 북한공산군사령부가 발표한 전쟁 발생 이래 3년간 종합전과 발표
1953년 6월 25일(목) 비-바람
<전황>
* 공산군, 김화 북서쪽 저격능선에서 공격 계속
* 유엔군 B29 폭격기대, 북한비행장에 연 5일째 폭격
<국내>
* 헌병총사령부, 반공포로 석방을 비난한 조병옥 피검, 김성주 구속
* 원용덕 헌병사령관, 포로를 더는 석방하지 않을 것이며 포로수용소 경비 임무는 이미 미군 측에게 이관되었다고 언명
* 한국음악가협회(회장 현제명) 창립
1953년 6월 26일(금) 비
<전황>
* 국군, 중동부전선 수도고지에서 공산군 공격으로 약간 후퇴
* 유엔군 세이버 제트기대, 압록강 부근 상공에서 공산군 MIG기 2대 격추
<국내>
* 국방부 병무국, 제2 국민병 신상신고기간 해제 발표
- “과거 기피행위를 일체 불문에 부치고 자유로이 신고하게 하기 위하여 기피단속을 해제한다”
<해외>
* 해리슨 휴전회담 유엔군 수석대표, 클라크 유엔사령관과 회담차 문산에서 도쿄 도착
* 베이징방송, 이승만 대통령의 휴전에 앞서 모든 외국군 철수 주장은 전쟁을 계속하려는 것이라고 비난“
1953년 6월 27일(토) 비
<전황>
* 국군 제 3사단, 수도고지 남쪽 룩아웃 산봉 재탈환
* 중동부전선 저격능선에서 전투 계속
<국내>
* 이승만 대통령과 로버트슨 미 국무차관보, 제2차 회담 개최
* 민주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 휴전반대와 포로석방지지 결의
<해외>
* 함마슐드 사무총장, 라디오방송에서 한국통일 위해 전쟁 속행하려는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에 반대 입장 표명
* 퀴리노 필리핀 대통령, 필리핀에 있는 일본인 전범에 대한 특사령에 서명, 전 사형인의 종신형 감형 승인
1953년 6월 28일(일) 흐림-비-바람
<전황>
* 중동부전선 수도고지 남쪽 관망산에서 국군, 중공군의 공격으로 야간 후퇴
* 국군, 중공군 공격으로 서부전선 소노리고지의 2개 전초기지에서 후퇴
*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공산군 측에 석방포로 재수용 불능 통고
<국내>
* 로버트슨 미 대통령 특사, 이승만 대통령과 제 3차 비밀회담
* 중앙청 회의실에서 각 시 도 공보과장회의 개최
* 평양방송,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 지원자들이 한 미상호방위조약 체결하여 정치회담 방해 기도한다고 비난
1953년 6월 29일(월) 비-흐림
<전황>
* 국군 제 3사단, 약 5시간에 걸친 격전, 수도고지 남쪽 관망산 재탈환
* 유엔군 측 연락장교, 판문점에서 개최, 석방반공포로 재수용 요구한 공산군 측 서한에 대한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의 회답 전달
<국내>
* 이승만 대통령, 로버크슨 특사 4차 회담
* 상공부, 면포 가격 14수(手)로부터 16수로 변경
1953년 6월 30일(화) 흐림-맑음
<전황>
* 동부전선 북한강과 크리스마스고지 사이에 있는 버지니아고지에서 격전
* 로버트슨 미 특사, 머피 정치고문 및 매커들 국무차관보 등 전선 시찰, 서부전선의 미 사단 방문
* 리지웨이 나토군최고사령관, 휴전회담 요청, 장소는 원산항 네델란드 병원 선상
<국내>
* 미 대통령 특사 로버트슨 국무차관보, 이승만 대통령과 55분간에 걸쳐 제 5차 회담
* 국회 본회의, ‘신형식 설화사건 및 광주 여수 공비사건 조사에 관한 건‘ 가결
* 중앙방송국, 부산에서 서울로 복귀해 1일 14시 방송
* 평양방송, 29일부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의 공산군에 대한 회답을 미국 측의 휴전에 대해 무성의 표시한 것이라고 비난
<주> : 본 자료는 6.25전쟁 1,129일간 일지(1950.6.25.~1953.7.27) 내용이며,
- 저자는 부영그룹 창업자인 이중근회장 편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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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953년 6월 30일... 6.25전쟁... 발발된지 1,102일째 입니다.
다음달 1953년 7월 27일날에는 휴전협정이 체결된 날이랍니다.
6.25전쟁 1,129일간의 전쟁도 끝난 것이 아니고 잠시(?)휴전으로 협정된 것이다.
금년 2019년은 6.25전쟁 발발한지 69주년인 때...
현재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안탑깝고 한스럽고 애처롭고 서글프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