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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냇골 통신 - 봄에 쓴 시 모음 / 최병무
쇠냇골 통신 40 - 봄소식
나는 이번에는 봄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겨울을 지나가며 들판의 야생초와 나목들의 안부가 몹시 궁금했다
특수 제작한 발열내복이라도 걸치고 있다는 것인가,
언 땅에서 뿌리들은 내통을 하고 일제히 푸른 제복의 斥候를 지상으로 보낼 것이다 그 장엄,
지금 폭설경보 발령 중이다 너희를 시샘하는 冬將軍의 심술을 잊지는 않았겠지
부끄러운 봄, 꽃나무 함부로 꺾지 못하겠다
2010. 2. 15
쇠냇골 통신 44 - 봄나들이
즉흥적으로 바다에 갔다
그 옛날 모세는 이 바다를 이용하여 영광의 탈출을 하고 지구가 둥근 것을 믿고 콜롬부스는 뱃길을 열었다
이 바다에 서서 나는 아직도 바닷물이 넘치거나 폭포처럼 허공으로 낙하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지구 반대 편의 세상은 거꾸로 붙어있을 거라는 불안은 내 오래된 신념이었으니까) 더구나 지구는 돌고 있다는 것 아닌가, 하여 천체물리학자는 달의 引力을 끌어들였고 마침내 우리가 우주의 티끌같은 이 별에서 사는 것이라고 단정을 했다
좌우간 해양학자는 이 거대한 수족관 앞에서 흥분하며 골몰하였을 것이고, 나는 어쩌지 못하도록 이 거대한 저수지의 신비에 빠지고 식구들은 3시간을 달려와 무창포에서 일상의 탈출을 하고...
2010. 2. 27 무창포에서
쇠냇골 통신 50 - 안심寺 수국
불안한 날은 안심寺에 간다
저 소담한 생, 수국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여 살기 때문이다
저 오밀한 무리들 한마음 이루었네
한 자리에서 꽃보살들 안심을 이루었네
2010. 4. 1
* 내 마음 속 상상의 안심寺, 문우들과 淸韻詩堂*에서 시를 이야기하는 중에 수국을 피웠다 淸韻詩堂은 임보 시인님이 지어주신 글방의 이름이다
쇠냇골 통신 124 - 꽃이 하는 말
꽃은 그냥 피는게 아니다 세상이 꽃이 되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깜박하시어 꽃을 만들지 않으셨으면 어쩔 것인가,
내가 한번 친절하면 세상이 친절해진다
쇠냇골 통신 162 - 소를 키우고 싶다
우리집 '기쁨이'처럼 (기쁨이는 내 누이가 겨울산에서 구조한 유기견의 이름이다) 지켜주고 싶다 기쁨이는 지금 대수술을 앞두고 있다
전염병이 창궐하던 날들을 지날 때 선량한 소의 눈망울이 생각났다 언제 산골로 들어가면
송아지 한 쌍 입식하여 키우고 싶다 노역도 면제하고 코뚜레도 씌우지 말고 되새김질의 명상을 바라보면서 내 소가 죽는 날까지 그렇게 동거하고 싶다
슬픈 가축의 역사, 소가 하는 말을 들어보고 싶다
2011. 3. 25
쇠냇골 통신 183 - 봄나들이
성경에,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예루살렘을 품었다는 메시아의 고백은 지금도 나를 울렁이게 한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봄을 찾으러 은진이를 데리고 길을 따라 나섰다 우리는 주일마다 은진이를 위한 이벤트를 마련한다
再活에 성공하고 직장생활 10년째, 은진이는 지금 심하게 月曜病을 앓고 있는데 토요일 밤 그렇게 행복하던 그가 일요일 저녁 땅거미가 기어들면 우울이 배가하고 혼자 울기까지 한다
은진이의 일요일 밤은 우울하지만 이튿날 점심 때쯤 나는 전화를 해준다 말하자면 심기를 살펴보는 것인데, 그의 목소리는 어김없이 다시 환하다 우울도 일과성이고 평화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증표, 안도하는 월요일 오후 내 평화도 지속된다
한 식구가 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집은 각자의 생을 담아두는 그릇이다 봄을 찾아 집을 나섰다 차는 길 있는 곳까지만 간다
2011. 5. 5 밤
* 아직은 한적한 화양계곡에 당도하여 물소리를 듣다가 다음 행선지로 꼭 반 세기만에 내 유년의 옛집을 찾았다. 놀라워라, 아직 마당의 돌배나무가 건재하고 있다니!
그때 눈길에 빠지며 주일학교에 다니던 시골교회당도 그 자리를 지키고, 학교 운동장만 손바닥만하게 줄어 있었다. 그 무렵 우리집(학교 관사)에 전화가 처음 가설 되었는데, 개통하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는 그 옛집에서 수줍은 강아지를 만났다. 은진이는 일단 강아지를 만나면 환호한다. 낯가림을 하지 않는 그 녀석은 일단 꼬리 먼저 흔들어 댔다. 대저 강아지들은 귀가 밝고 코는 명품이다. 주걱을 구부려놓은 듯 역삼각형의 그 녀석의 귀가 귀여워 다시 쳐다 보았다. 그때 우리가 키운 강아지는 쥐약을 먹고 죽었는데 그 사건 이후 우리는 개를 키우지 않았다.
들뜬 내가 앞장을 서서 뒷동산에 올랐다. 식구들은 덩달아 시간여행을 함께 하고... 지금은 사라진 내 유년의 봄날 풍경, 하나 - 저 골짜기를 따라 나뭇꾼들은 저마다 진달래를 나뭇짐에 꽂고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참고로, 은진이가 현재 자기의 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 무리 중에서 자기가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은진이는 알고 있다)
/ 동산
쇠냇골 통신 194 - 들판에서
땅 속에 다 있다 거기서 사과나무는 사과만, 포도나무는 포도만 나무들은 제 것만 취한다
아름다운 햇살과 비와 바람을 합성하는 이 엽록의 공장은 지금 분주하다
거기 작은 씨방에 들어앉을 칩 속에 유전자 지도가 있다 오직 과육을 달게 만들어 이동의 자유가 있는 날짐승과 길짐승, 사람들에게 먼곳으로 종족을 퍼뜨려 주기를 위탁하는 것이다
이 공장의 특산품은 비타민인데 사람들은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여기는 방문객이 쓰다가 버린 탄소와 산소를 맞바꾸는 장터다 (만일에 나무도 산소를 마셔야 한다면 누가 숲에 가겠는가)
접 붙이는 것은 나무를 욕되게 하는 일이다 최근에 생물학자들은 나무들도 말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2011. 5. 17
쇠냇골 통신 201 - 봄 풍경 하나,
겨우내 햇볕을 보지 못한 다리들이 아슬한 봄나들이 나왔다
다리들만으로도 빛나는 거리, 내 봄날엔 순경들이 무릎 위 치마길이를 재고 다녔다
(열대化가 빨리 진행되면 동산의 이브처럼 벗고 살라나?)
2011. 5. 25
쇠냇골 통신 207 - 다시 들판에서
새들은 위험한 곳에 집을 짓는다 우리는 종종 새가슴에 대해 이야기 했다
사실 자동항법장치는 이 부족이 처음 사용했는데 대륙 간의 이동에 유용하다 우리도 '쇠로 만든 새'에 달아 놓았다 네비게이션도 이 부족이 처음 만들었을 것 이라는 심증이 간다
방위와 항로에 관한 한, 집을 찾아오는 일에 관한 한 그를 따를 자 없다
포르릉, 작은 새가 흔적을 지우며 날아 간다 날아가면서 뒤를 보지 않는다
2011. 6. 2
쇠냇골 통신 208 - 서 있는 형제들*
꿀을 나르는 벌과 꽃처럼 공생을 위한 아름다운 식량은 없는가,
비타민이 가득한 성찬을 마련하고 種의 번성을 기원하는 '서 있는 형제들'처럼 아름다운 유혹은 없는가,
2011. 6. 3
* 서 있는 형제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나무를 이렇게 불렀다
쇠냇골 통신 264 - 다시 오는 봄
나무의 환생을 믿는다면 온갓 木材를 소중히 다루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식탁을 닦다가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마다카스카르에 가면 樹齡이 5000년이 된다는 바오밥 나무, 나무의 精靈이 살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봄 소식에 지상의 나무들은 뿌리들은 지금 분주할 것이다
2012. 3. 13
쇠냇골 통신 268 - 花信
늘 다니는 沿道에 개나리가 만발한 것을 뒤늦게 알고나서 목련은 꼭 마중하리라 다짐했는데 목련도 만발했다 둘러보니 영산홍도 준비를 끝냈다 방한복도 없이 밤새 떨었을 꽃나무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변명하자면 쏜살같이 車를 몰고 다니는 내 일과가 꽃에게 실례를 했다) 금년에도 내 구역의 花信은 개나리-목련- 영산홍 순이었다
장전을 마친 저 火藥 봉오리들, 저 꽃을 폭탄이라고 부르면 안되나?
2012. 4. 9
쇠냇골 통신 270 - 봄밤에 쓰는 시
세월을 잘게 부순 시간은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한번은 돌아보아야 할 내 地圖, 지문같은 미로들, 경계만 있을 뿐 내 지도에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일회성의 生이 아니므로 神은 우리를 간섭하지 않으며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誡命을 만들었다 나는 조물주가 인격적인 최고의 과학자이심만 믿는다
손금같은 생의 지도를 건넌다 풍문으로 우리는 학습을 한다
남은 세월 추상적이지 말 것, 그리움은 실천이 되도록 할 것, 生活의 문을 세울 것, 내 생의 지도가 보편성을 갖도록 할 것,
2012. 4. 26
* 한 生, 당신에게 바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쇠냇골 통신 274 - 나비
지금 주유 중인가봐, 저 연료 주입하면 공중부양이 시작된다
저 우아한 활강과 비행 좀 보아, (나비效果*라는 말도 생겼잖아)
꽃들의 성찬에 초대 받았다 이 아름다운 공생의 관계, 꽃으로 가는 길을 찍으며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한다
2012. 5. 7
* 나비效果 Butterfly Effect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이론.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N. 로렌츠가 처음으로 발표한 이론이지만 나중에 카오스 이론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온다는 의미로 쓰인다.
로렌츠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기상현상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커져서 결국 그 결과에 엄청나게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쇠냇골 통신 275 - 봄날 오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애국자라는 주장을 나는 종종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서울을 뜬 것은 잘한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냥 눌러 있었으면 나는 우선, 아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물론 지금과 똑 같은 세 딸도 얻지 못했을 거다
도시가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바다가 먼 것이 흠이지만 내가 쏘다니던 이 거리는 여전하다 헌책방이 있던 자리를 24시 편의점이 차지했을 뿐 내 청춘이 시작된 淸州, 이번 생이 썩 잘되지는 않았지만 이룬 것보다 이루지 못한 것이 더 많았으므로 내 몽상의 버릇은 여기서 시작된다
후회하는 生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가난한 날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언제 車 없는 나라, 물물교환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봄날, 이쯤에 머무는 것도 좋다
2012. 5. 12
쇠냇골 통신 276 - 아침에 문득,
사람은 각자 전생과 고집이 있다 하느님도 어쩌지 못하는 인습의 벽, 성격이 운명이다
유전자 지도가 해독되었다 이번 생의 줄거리는 대체로 정해져 있을 거라는, 그래서 우리는 수정의 기회를 잡고 이렇게
왔다가 간다
2012. 5. 27
* 사막에 가면 사막의 神이 살고 있고 초원에는 초원의 神이 산다. 神은 편재하므로 우주는 神들의 놀이터다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하느님을 유일신이라고 믿는다. 神은 또한 자기를 믿는 사람들이 서로 싸울 것도 알고 있었다
쇠냇골 통신 352 - 봄날 아침에
디지털 시대엔 그리움도 속도戰이어서 걸어가서 너를 만나고 길 위에서 이야기하던 날이 불현듯 그리워졌다 (편지는 성장의 기록이었다)
쏜-살-같-은-세-월, 이 배경은 돌아보아야 측량이 된다 봄날 아침 까닭없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사라진 것과 사라질 것들, 나는 새 천년이 시작될 땐 곧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더 높은 진화의 週期가 도래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특별한 소식이 없다
어젯밤엔 고산族의 여행기를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고도가 높으면 행복지수도 높다 부탄왕국도 그랬고 잉카의 후손들도 그랬다 한없이 불편할 곳, 부족할 곳 나는 왜 그곳에 가는 꿈을 꾸고 있는지
이것도 바람인가, 지구촌 어디쯤에서 그렇게 살다 가고 싶다
2013. 5. 14
쇠냇골 통신 414 - 봄 소식
나의 노년은 귀족적이지 못하여 그런 나를 닮았을 내가 쓰는 시도 사치스럽지 못하다
간절기엔 시를 써야할 것 같은 의무가 생긴다 이 소리가 생활의 문을 두드린다
다시 오는 봄, 火藥처럼 꽃들은 봄의 탄환을 장전하고 나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말 중에서 봄의 詩語를 찾는다
(새벽에, 송별의 눈 내렸다)
2014. 3. 9
쇠냇골 통신 415 - 목련賦 봄기운 완연하고 목련 봉오리 부풀었다 지난 겨울, 아파트 화단에서 무책임한 듯 서 있던 목련은 (사실은 혹한에 떨고 있었을) 확실히 성격이 급하다 해마다 잎도 내지 않고 꽃 먼저 밀어내는, 花信의 전령사처럼 봄소식을 전한다 봄밤에 환하게 꽃燈을 켰다가 작심한 듯 일시에 낙화할 목련, 2014.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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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
첫댓글 지금은 곷의 말들이 왁자한 때입니다.
봄 시편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