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잃은 가마솥, 달구벌
팔공산 비슬산 든든한 테두리 삼아
조물주가 공들여 빚어낸 거대한 가마솥
아뿔싸, 장작불만 지피고 뚜껑 덮는 걸 깜빡하셨네
갇혀버린 열기 속에 온 동네가 모락모락 쪄지고 있네.
시원한 소식 품고 타지에서 달려온 바람
첩첩산중 비탈길 넘느라 기운을 다 썼구나
산마루 고개 넘어 헉헉대는 저 거친 숨결
골목마다 선바람은 간데없고 뜨거운 입김만 훅훅 뿜어대네.
태양의 지독한 짝사랑은 오늘따라 유난하여라
구름 장막도 걷어치우고 쏟아내는 불타는 고백
도망갈 곳 없는 아늑한 분지 한가운데서
우리네는 매미 소리 장단 맞춰 그 뜨거운 사랑을 온몸으로 견뎌내네.
온몸으로 견뎌내네.
온몸으로 견뎌내네.
지화자
가마솥에 담아낸 대구(大邱)의 산천과 삶
1. 대구(大邱) 지명의 기원, 커다란 솥(鼎)
그림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솥은 대구의 옛 지형적 특성과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대구는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대표적인 분지(盆地) 지형입니다. 마치 커다란 가마솥 안처럼 온기가 쉽게 모이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끓어오르는 대구의 지리적 형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솥 아래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은 대구 특유의 열정과 뜨거운 삶의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2. 대구를 적시는 세 줄기 젖줄: 낙동강, 금호강, 신천
가마솥 안에는 대구 땅을 풍요롭게 만드는 물길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 낙동강: 대구의 서쪽을 굽이쳐 흐르며 영남의 젖줄 역할을 하는 장쾌한 물줄기입니다.
○ 금호강: 거문고 소리가 나는 물굽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강으로, 대구 북부를 감싸 안으며 낙동강으로 합류합니다.
○ 신천: 대구 도심을 북쪽으로 질러 흘러 금호강으로 들어가는 친숙한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생명수입니다.
이 세 물줄기가 만들어낸 배산임수의 명당 안에 대구의 옛 마을과 기와집, 탑, 그리고 백성들의 정겨운 삶터가 들어앉아 있습니다.
3. 화폭을 완성하는 선인과 자연
○ 붓을 든 선인(仙人): 솥 위에서 신선처럼 커다란 붓을 들고 구름과 물길을 그려 넣는 인물은 자연의 이치로 대구라는 명당을 빚어낸 영험한 기운 혹은 대구의 인문·문화적 깊이를 조율하는 상징적 인물로 해석됩니다.
○ 주변의 영산(靈山): 솥 둘레로는 대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팔공산과 비슬산의 웅장한 산세가 펼쳐져 있습니다. 소나무와 매화, 폭포, 들판의鹤(학)들이 어우러져 한 편의 도원경(桃源境)을 이루고 있습니다.
○ 솥 외벽의 문양: 용 문양과 축제를 즐기는 풍물패의 모습이 각인되어 있어, 이 땅에 태평성대와 안녕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해학적이고 숭고한 소망을 담았습니다.
대구라는 고장의 풍수지리적 형국과 강줄기,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숨결을 '가마솥'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영감 넘치는 소재로 아주 감각적으로 제작한 그림 입니다.